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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미 시즈카 『나아가야만 보이는 것』 -3-(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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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0, 2020 10:07에 작성됨.

프로듀서가 시즈카에게 다시 준 기회. 그것은 앞으로 있을 시어터 내 정기 공연에서, 센터로 서서 신곡을 노래하는 것이었다.


"미라이."

"네~!"

"츠무기."

"네."

"세리카."

"네!"

"줄리아."

"응."

"마지막으로, 시즈카."

".....네."

"이번 정기 공연은 여기 있는 다섯이 나가기로 했지? 센터는 시즈카. 시즈카는 거기서 새로운 곡을 선보이는 걸로."

"그렇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를 대표하여 대답한 시즈카가 결의에 찬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에헤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해."

"서로 최선을 다하죠."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시즈."

"시즈카 씨라면 분명 잘 할 수 있을 거에요. 힘내요!"

"모두....."


동료들의 따스한 응원에 시즈카는 긴장을 조금 누그러트렸다. 프로듀서는 시즈카를 향해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프로듀서의 휴대폰에서는 음악 플레이어가 실행되어있었다.


"자, 이게 네 신곡이야."

"이게...."

"SING MY SONG.....?"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아, 이 경우는 불여일청인가. 하여튼 들어보렴."


프로듀서가 재생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대기실에 퍼져나가는 음색에 귀를 기울인다. 진중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멜로디는 후렴부분에서 절정으로 다다른다. 앞에서 차곡차곡 쌓아올렸던 애절함이 비장함으로 터져나오는 순간. 모두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와....."

"후후, 어때. 멋지지? 작곡가 선생님도 힘 좀 썼다더라."

"그런, 가요."


음원이 전부 재생된 뒤. 프로듀서가 휴대폰을 거두며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모두, 날 위해 이렇게까지나. 시즈카에게 다시 한 번 부담감이 엄습해왔다. 프로듀서는 시즈카의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어루만지며 격려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잘할 수 있어."

"네....."


시즈카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프로듀서는 다른 모두를 돌아보며 일렀다.


"전에 해봐서 알겠지만, 다시 말해줄게. 평소 하는 것 외에도 레슨하고 트레이닝이 더 늘거야. 우선은 최대한 다 같이 연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스케줄을 짜두었어."


라인으로 보낼 거니까 확인해보고, 혹시 이상 있으면 말해주렴. 네! 모두의 힘찬 대답이 돌아오자 프로듀서는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었다.


"그럼 열심히 해.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아, 그렇지. 얘들아."

"뭔가요, 프로듀서."

"혹시 쟤가 너무 무리한다 싶으면 좀 막아줘."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프로듀서가 가리킨 곳으로 한데 모였다. 프로듀서가 말하는 '쟤'는 시즈카였다. 시즈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네에!? 저요?"

"미라이, 세리카. 시즈카가 막 안 쉬고 아직 더 할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굴면 팔다리 꼭 붙잡고 막으렴."

"네!"

"데헤헤~ 맡겨만 주세요!"

"자, 잠깐! 미라이, 세리카! 프로듀서! 두 사람한테 이상한 걸 불어넣지 좀 마세요!" 

"아하하하, 그치만 그렇게 안 하면 시즈, 분명 무리할 게 틀림없으니까. 좋아. 그 때는 나도 거들어줄게."

"주주줄리아 씨까지!"

"저기, 그러면 저는 어디를 붙잡아야하는 걸까요."

"츠무기 씨, 그러니까 그럴 필요는....아아, 정말! 프로듀서 때문에!"

"오호호~ 왜 그러니? 모두가 널 걱정해주는 건데."

"이런 걱정은 받고 싶지 않아요!"


프로듀서가 자신이 일으킨 작은 소동을 즐겁게 지켜보는 도중이었다. 돌연 삐리리릭- 하고 벨소리가 울려, 모두의 시선이 이번에는 그리로 집중되었다. 프로듀서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말했다.


"잠깐 나갔다 올게."

"네."


아이돌들은 대수롭지 않게 그를 보내주었다. 업무상 프로듀서가 전화를 받는 일은 잦았다. 대기실 바깥으로 나간 프로듀서는 복도를 한참 걷다, 인적이 드문 곳에 가서야 겨우 멈춰섰다.


삑-


"늦게 받아서 죄송합니다. 765 프로덕션입니다. 네, 네. 지난번에 한 번 연락을 드렸었죠. 괜찮습니다. 잘 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이제 곧 정기 공연에도 나오는 걸요. 실은 이 건으로 아버님한테 전해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저희 연락망에는 어머님 쪽만 등록이 되있다고 전에 말씀을 드렸었죠. 아, 네. 메모 가능합니다. 불러주십시오."


방금 그 전화는 시즈카의 집에서 건 것이었다. 프로듀서는 어깨에 휴대폰을 끼운 채 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들려오는 번호를 휘갈겼다. 시즈카 아버지의 연락처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아버님께는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좋은 하루 되세요."


.....후우. 시즈카의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프로듀서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쪽하고는 그래도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편이라서 다행인데. 이제 전화를 걸 상대는.....안 돼. 벌써부터 겁 먹으면. 프로듀서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시즈카는 자신을 믿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믿음에 보답해야한다. 아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대다. 어른이 힘을 보태줘야해. 프로듀서는 적어놓았던 연락처를 그대로 휴대폰 화면에 뜬 자판에 쳐서 넣었다. 그리고는 초록색 수화버튼을 꾹 터치했다.


뚜- 뚜-


-여보세요?


"갑자기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그, 저희는 765 프로덕션이라는 예능계 사무소로, 저는 프로듀서 역을 맡고 있습니다."


-예능계 사무소? 무슨 볼일로 제게....


"댁의 따님 모가미 시즈카 양이 저희 사무소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쪽이. 그래서 어떤 용건이지요? 업무 시간입니다. 빨리 말씀하세요.


"실은 이와 관련해서 꼭 전해드리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되시는지요?


-굳이 직접 만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편이라도 보내십시오.


"아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건 꼭 만나서 전해드려야할 이야기입니다. 이번 주말이 어렵다면 다른 시간대라도 좋습니다. 부디 제게, 약간의 시간이라도 할애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주말 xx시. 한 번뿐입니다. 어디서 만날 건지는 정해놓았습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근방에 OO카페라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 만나는 게 좋을 듯 싶은데, 어떠신지요?


-알겠습니다. 그리 하지요.


"네! 감사합니다. 추후 리마인드 메일도 따로 보내놓겠습니다. 업무 시간에 지장을 준 점 사과드리며 이만 통화를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요청에 응해주신 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합니다."


뚝.


좋아.....이걸로 되었어. 내가 할 일은 끝났다. 프로듀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내고는,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쉬었다.


.....


...


그리하여 시어터 정기 공연 당일이 되었다. 단체곡 및 다른 아이돌들의 차례가 끝난 가운데, 시즈카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건 결코 무의미한 게 아니야.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시즈카는 뒤를 돌아봤다. 시즈카 쨩. 시즈카 씨. 시즈. 자기 몫을 마치고 돌아온 모두가 눈을 맞춰줬다. 웃어주었다.


지금까지 해온 게 있으니까 만날 수 있는 게 있었어.


바라는 내일이 있어. 보고 싶은 경치가 있어. 시즈카는 다시 앞을 바라본다. 저만치 멀리서 보이는 무대. 그 텅 비어있는 공간은, 이번 공연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시즈카는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러다 문득 기억났다는 듯, 다시 뒤를 돌아봤다. 일말의 망설임이 남아있던 그 눈에는, 양복 차림을 한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 프로듀서는 웃으면서 작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갔다와. 직접 말로 한 건 아니지만, 시즈카는 들린 것 같았다.


그러니 나는 노래 부를 거야. 꿈.....이룰 때까지!


시즈카는 빛나는 스테이지로 뛰어들었다.


.....


...


-단-♪ 1프레이즈를-♪ 1소절♪  1음을-♪ 

-빛나게 하기위해서-♪ 새겨 넣는거야-♪

-마음을 담아서-♪ 나의 모든 것을-♪


시즈카가 'SING MY SONG'을 부르는 한창이었다. 무대 뒷편에 서 있던 프로듀서는 지난 주말에 있던 만남을 회상했다.


-그쪽 요청에 응한 건 어디까지나 예의상입니다. 설득하려고 해봤자 소용 없습니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시즈카 아버지는 각 잡힌 양복 차림으로 약속장소인 OO카페에 나타났다. 약속 시간에 딱 정확하게. 10분 먼저 도착해있던 프로듀서는 정중하게 예약해두었던 자리로 안내했다. 시즈카의 아버지는 심드렁한 태도로 프로듀서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기보다는 한참 작은 프로듀서를 슥 훑어보더니, 대뜸 저런 말을 했다. 설득해봤자 소용없다고.


-설득하러 온 게 아닙니다. 전하러 왔습니다.


예상했던 바였다. 거기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탁자에 공연 티켓을 내밀었다.


-이번 저희 극장의 정기 공연에서 댁의 따님이 신곡을 피로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보러와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리겠습니다.


말로만 그렇지, 태도는 거의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즈카의 아버지는 기가 막히다는 듯 물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나는 그 애가 아이돌을 하는 걸 반대합니다. 그쪽도 알고 있을 텐데. 본다고 해서 내 마음이 바뀔 거라 생각하는 거요?

-아니요. 저는 그냥 봐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시즈카의 진심을. 아버님이 아무리 반대한다고 해도 꺾이지 않을 시즈카의 꿈 말입니다.


저 어딘가에는 분명, 시즈카의 아버지가 있겠지.....회상을 마친 프로듀서가 먼 눈으로 객석을 비추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다행히 현장 스텝한테 시즈카의 아버지가 있다고 확인받았다. 이걸로 마음이 바뀔 거라고는 추호도 기대 안 해. 그저 봐주었으면 한다. 댁네 따님이 얼마나 아이돌에 진심인지.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제발, 그것만이라도. 프로듀서는 남몰래 주먹을 꾸우욱 쥐었다.


.....


...


그로부터 며칠 후. 


똑똑-


"들어오세요. 어?"


프로듀서가 시어터 내 사무실에서 묵묵히 타자를 치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들린 노크 소리에 응답하자 꼭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시즈카였다. 시즈카가 사무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오자  프로듀서가 그를 향해 의자를 돌려 앉았다. 시즈카는 더없이 진지한 눈으로 프로듀서를 보았다. 잠시 동안 이어진 침묵. 호, 혹시 또 무슨 일 생겼나. 프로듀서가 불안한 마음에 슬쩍 찾아온 이유를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감사합니다."


시즈카가 돌연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감사를 표했다. 프로듀서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뭐, 뭐가.....?"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공연 때, 저를 보러 왔었다고....프로듀서가 꼭 보러 와달라고 말했다고요."

"에, 아아, 그거. 뭘 그 정도야."

"아니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프로듀서에게, 시즈카는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표했다. 으음, 마음은 알겠는데. 프로듀서는 무거워진 분위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빨리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아버님은 뭐라 하시든?"

"여전히 반대한다고 하셨어요."

"그럼 그렇지."


혹시나- 하고 기대할 것도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조급해하지 말자. 그쪽에서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 없을 정도로, 시즈카를 대단한 아이돌로 만들자. 프로듀서가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였다. 시즈카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렇지만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반대한다고 해서 포기할 애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라고....."

"오옷! 그래서 그래서?"


그 말에 프로듀서가 바로 반색하면서 뒷 내용을 보챘다. 시즈카는 수줍게 웃으면서 답했다.


"약속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고 했어요."

"약속이라고 하면.....역시 그거?"

"네."


헤에, 그래.....아주 작은 진전. 그렇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프로듀서는 시즈카에게 조금 장난끼 있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 약속이 완전히 없어질 수 있도록, 힘내야겠네."

".....네! 앞으로도 프로듀스, 잘 부탁드립니다!"


시즈카는 그 미소를 향해, 희망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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