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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가 미라이 『바보는 이윽고 세계가 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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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5, 2020 09:30에 작성됨.

.....


...


지난 날 치렀던 오디션 결과, 프로듀서는 내 손을 들어줬다. 코토하는 전통의 강호라고 한다면, 츠바사는 의외의 다크호스. 내가 저 둘을 물리치고 라이브에 출전할 기회를 얻게 된 건, 충분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저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 기회라는 게, 동료랑 싸운 끝에 얻어낸 거라서?  아니었다. 그 싸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한 사람 때문이었다. 


미라이. 카스가 미라이. 좀 엉뚱한 구석이 있긴 해도, 아주 밝고 솔직한 녀석.


이래서야 연습하려고 해도 영 손이 가질 않는다. 기타를 레슨실 구석에 세워놓고는 마룻바닥에 푹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코토하, 츠바사와 같이 오디션 통보를 들었던 날을 떠올렸다. 이야기가 끝나고 사무실에서 나갔더니, 미라이가 프로듀서에게 달려왔지. 그러고는 뭔가 말하려는데, 프로듀서가 일방적으로 '라이브는 셋 중 하나로 정해졌어' 라고.....프로듀서는 누가 나가면 좋을지 열심히 생각해봤다고 했지만, 의문이 든다. 


그 생각에, 미라이는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던 게 아닌가하고. 


"프로듀서 말야, 정말 이런 식으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가?"


라이브에는 누가 나갈 거냐. 프로듀서는 아직 주최 측에 전달하지는 않은 듯 했다. 그렇지만 이것도 시간문제겠지. 한 번 확정이 되버리면 다시 바꾸는 건 어려울 것이다. 얘를 내보내겠습니다! 해놓고는 아닙니다 쟤를 보낼 겁니다! 하는 식으로 말을 바꿔대면 신뢰를 잃어버릴 거다. 내가 이쪽 업계에 빠삭한 건 아니라지만 이런 게 중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의를 제기하려면, 빨리 해야해.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할까. 그 능구렁이 같은 프로듀서, 분명 요리조리 말을 바꿔가며 넘어가려고 할텐데. 으으음.....확 잡아챌 수 있는 그런 말이 필요한데.....


"어라? 문이 열려 있네? 누가 있나?"

"앗, 미라이?"


오늘은 휴일일텐데, 어째서 미라이가? 갑작스러운 방문객에 깜짝 놀라고 있자니, 미라이가 줄리아 씨! 하고는 쪼르르 달려왔다. 언제나처럼 조심성이라는 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무방비하게 밝은 얼굴. 히지만 내 눈엔, 그 때 무척 아쉬워하던 모습이 한데 겹쳐보였다.


"츠바사한테 들었어요! 줄리아 씨가 이겼다면서요! 축하해요!"

"아아, 생큐. 그런데 날 축하해도 좋은 거야? 츠바사가 엄청 분해했을텐데."

"괜찮아요. 츠바사 녀석, 한 입만~ 이라고 해놓고서는 왕창 내 과자 먹었으니까. 복수하는 거에요."

"아하하, 그래."

"줄리아 씨는 미리 연습하려고 온 건가요?"

"응. 미라이는?"

"저요? 저는.....그냥?"

"엥?"

"집에 있기에는 좀 심심하고 그래서.....그냥 와봤어요."

"뭐야 그거....."


미라이의 실없는 대답을 웃어넘기려다 멈췄다. 저 '그냥' 이라는 게 진짜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직 서 있는 미라이에게 손짓해 바닥에 앉도록 했다.


"저기, 미라이. 정말 괜찮겠어?"

"네?"

"그 때 프로듀서가 말했잖아. 넌 안된다고."

"아....."


환하던 미라이의 얼굴에 약간 그늘이 졌다. 역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그래도 프로듀서 씨, 다른 기회가 있으면 그 때는 저한테 맡긴다고 했어요."

"그렇겠지. 그런 쪽에 거짓말을 할 녀석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넌 그걸로 만족해? 미라이에게 다시 한 번 묻자, 미라이는 확실하게 답하질 못하고 시선을 이리저리 질질 끌었다. 그러더니.


".....아, 알겠다!"

"응?"

"양보해주려는 거죠!"

"그럴 리 있겠냐. 나도 당연 나가고 싶지."


그랬다. 이게 곧바로 프로듀서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언제까지고 꾹 눌러둘 수만은 없는 거겠지. 나 하나 라이브 나가겠다고 곤경에 처한 동료를 못 본 체 하는 건 절대 록한 게 아니니까. 


"그치만, 이대로 나가기에는 좀 걸리는 게 있어서 말야."

"네? 뭐가요?"

"너 말야, 아무 것도 없이 무작정 라이브에 나가고 싶다고 한 건 아니겠지?" 

"그럴리가요! 잔뜩 연습했어요."

"그럼 먼저 내게 보여줄 수 없을까?"

".....좋아요."


미라이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조금 뒤로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벌써 기백부터 평소와 달랐다. 절로 쥐어지는 양 주먹. 나는 미라이가 보여줄 연습의 성과를 숨죽여 기다렸다.


.....


...


"어이, 프로듀서. 잠깐만."


이제 막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그 쪽을 돌아보았다. 왁스를 발라 뒤로 넘긴, 특유의 새빨간 머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줄리아였다.


"왜 그래? 혹시 라이브 준비에 무슨 문제라도?"

".....아직 그 쪽에 확답 주지는 않았지?"

"응?"


갑자기 왜? 네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물어보는 건지 몰랐지만, 일단 숨길 건 아니었기에 솔직하게 답했다.


"내일 하려고. 왜 그래. 혹시 라이브 준비에 문제라도 있니?"

"그건 아니야. 그냥 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


줄리아가 슬쩍 운을 떼며 들어왔다. 제안?  반문하는 내게, 줄리아는 한 번 더 말을 던졌다.


"미라이 말야, 전부터 이번 라이브에 나오고 싶었다고 하던데."

"아 그거....."


결국 전부 알아버린 모양이었다. 곤란하네~ 역시 눈치빠른 녀석은 싫다니까. 만화에나 나올 법한 흑막 캐릭터 같은 대사를 치고 싶은 충동을 꽉꽉 눌러참았다. 그리고는 프로듀서로서 해야할 말을 입에 담았다.


"그렇지만 이번 라이브는 이제까지와는 규모도 주목도도 다르니까. 아무래도 실력을 중시할 수밖에 없어. 미라이에게는 미안하지만."

"프로듀서."


말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줄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오디션에서 빼버리는 건, 너무한 거 아냐?"

"뭐....."

"걔 있지, 계속 연습했었어. 라이브에 나갈 거라고."

"그랬어?"

"아아."


.....그러고보면 그 때, 미라이가 연습 어쩌고 하고 말한 게 기억이 난다. 으....그 애를 무시하게 되어버려서 더 미안해지네. 그렇지만. 내가 반론을 생각하려던 참이었다.


"어제 연습한 걸 봤어. 당신이 그렇게 강조하는 실력도, 정말 많이 올랐더라."

"헤, 헤에.....말로만 들어서는 모르겠는 걸."

"그러니까 그 쪽에 확답을 주기전에, 오디션을 한 번 더 여는 건 어때."

"오디션을, 한 번 더?"

"아아. 나하고 미라이.....둘 중 누가 더 이번 라이브에 어울리는지 그 눈으로 직접 확인해줬으면 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나.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


-미라이. 잠깐 괜찮니? 전에 라이브 관련해서 말인데, 다시 한번 오디션을 열까 하고.


이런 라인 메세지를 보낸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덜컥! 하고 사무실 문이 부서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열리더니, 쑥하고 커다란 질량을 가진 물체가 별안간 내게 뛰어들었다.


"할게요!!!!"

"꺅!?"


하,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우당탕 쿵탕할 뻔 했다. 겨우겨우 그 자리에 버티고 선 나는 그 물체가 미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 할게요! 오디션! 지금 바로 하나요? 누구랑 하나요? 역시 줄리아 씨랑? 아니면 츠바사하고 코토하 씨하고도?"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런데 너, 그거 말하려고 여기까지 뛰어왔니?"

"네.....?"

"라인으로 답장하면 되는 걸 가지고....."

"아, 그렇지 참. 정말 하고 싶어서 그만. 데헤헤."


여전히 못 미더운 아이다. 살짝 식어버린 눈이 향하려는 걸 겨우 억제하며 품 안에 쏙 들어와버린 미라이를 뒤로 천천히 밀어냈다.


"뭐 좋아. 줄리아한테도 보내놨는데 이 시간이 괜찮다고 하더라. 미라이는?"

"저도 괜찮아요."

"어디보자.....그렇네. 이 때 레슨이나 일도 없고."


혹시나 미라이가 까먹은 일정이 있을까 해서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내 확인해봤다. 음. 그래. 딱히 겹치는 일 없네. 미라이도 괜찮다고 했으니 이 날로 정하자. 나는 미라이에게 거듭 일시를 알려주었다.


"알겠지? 까먹으면 안된다? 만약에 미라이가 깜빡하고 오지 않으면, 그 때는 정말 줄리아가 라이브에 나갈 거야. 다시 오디션 해달라고 해도 절대 안 해줘."

"에이, 괜찮다니까요. 저도 이제 중학생인 걸요."

"그렇게 말해놓고는 또 깜빡할까봐 그래."


깜빡하는 게 나로서는 좋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걸 대놓고 노리는 건 정말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잔뜩 비겁한 나이지만 이 이상 비겁해지면 정말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미라이가 제 시간에 올 수 있도록은 해야지. 그래, 아예 그 날 아침에 미리 전화를 주는 것이 좋겠다.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미라이를 돌려보냈다. 


그런지 며칠이 지나, 약속했던 당일. 시어터 레슨실.


여러 아이돌들이 연습을 해도 걱정 없게끔 널찍한 공간을 자랑하는 이 곳에, 나와 줄리아, 그리고 미라이만이 서 있다. 나는 언제나의 정장 차림. 줄리아와 미라이는 트레이닝웨어. 줄리아는 거기에 더해 애용하는 기타도 함께하고 있었다.


"에헤헤~ 프로듀서 씨, 전화 고마워요!"

"그정도야 뭘. 그리고 굳이 전화 안해도 되었더라. 잊지 않고 잘 찾아왔네."

"그게- 제가 안 나오면 줄리아 씨가 나간다고 하니까요!"

"뭐야, 불만 있냐?"

"불만은 없는데.....그래도 제가 나가고 싶은 걸요."

"농담이야. 근데 어쩌지? 나는 미라이가 나가는 것보다는, 내가 나가고 싶은데."

"앗....그럼 질 수 없네요."

"그래. 질 수 없지."


씨익. 줄리아와 미라이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의미의 웃음을 교환했다. 언제부터 쟤네들이 저렇게 친해졌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오디션 쪽이 더 급하다. 나는 둘 사이에 끼워넣듯 오디션 시작을 알렸다.


"자, 정다운 대화는 거기까지. 슬슬 준비하렴. 먼저 줄리아부터 한다고 했지?"

"응."

"줄리아는 유성군. 미라이는 미래비행이랬나?"

"네!"

"음원을 준비할게. 미라이, 뒤로 물러서렴. 줄리아는 내가 신호를 주면 시작해."


구석에 놓아두었던 노트북에서 음원 파일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줄리아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지이잉- 하고 일렉 기타 특유의 쨍한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본격적인 노래가 시작되었다.


-하늘을 수놓는-♪ 별에 올라타-♪ 나는 미래로♪

-소원을 가득 담은-♪ 가방을 꼭 쥐고서♪


첫 두 소절이 끝난 뒤 폭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속주. 기분 좋을 정도로 상쾌한 질주감을 선사하면서, 그대로 다음 소절로 이어진다. 음원에서 흘러나오는 규칙적인 드럼 소리와 어우러지는 노랫소리. 살짝 긁히는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는 노래와 찰떡 궁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발소리가 울려퍼지네-♪ 어느덧 난 달리고 있었어-♪


살짝 분위기가 전환되는가 싶더니, 다시 처음의 질주감으로 돌아간다. 아니, 그보다 더. 빛나는 별들이 비처럼 쏟아져내리는 것 같아.  역시나 하는 완성도에 흡족한 마음으로 무대를 감상하고 있자니, 특이한 게 눈에 띄었다. 


"흐음.....헤에."


줄리아는 노래와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약간의 몸짓이나 율동도 곁들이고 있었다. 줄리아는 춤에는 영 소질이 없는 편이었지. 약점. 아이돌로서는 확실한 감점 요소. 그러나 줄리아는, 그 약점을 나름 극복해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고작 하루나 이틀, 혹은 며칠 정도로는 쌓을 수 없는 숙련도로 무대를 이끌어가면서, 그보다 한 층 더 나아가려는 모습까지 선보이다니.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마음이 찡하고 울렸다.


"소원은 전부 다 빌었어? 나와 함께 미래로.....생큐."


이윽고 노래를 전부 마친 줄리아가 한 손을 높이 들며 마무리 포즈를 취했다. 나는 개운한 마음 반, 그렇지 못한 마음 반으로 미라이를 돌아 보았다.  미라이는 마치 홀린 것마냥 줄리아를 보며 작게 와아.....하고 탄성을 흘리고 있었다.


"미라이."

".....대단해....에, 아앗! 네!"

"이제 네 차례야."


아직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는 미라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제서야 미라이는 터벅.터벅.터벅. 하고, 아주 어색한 걸음걸이로 앞을 향했다. 


"할 수 있겠니?"

".....네."


전처럼 은근 압박주고자 하는 게 아닌, 순수한 걱정을 담아 미라이에게 물었다. 미라이는 줄리아가 비켜준 자리에 딱 멈춰섰다. 그리고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그 동그란 두 눈에서는 반짝, 하고 빛이 감돌았다. 아, 저건. 줄리아가 보여준 푸른 유성의 것과는 다른, 미라이 만의 빛. 처음 이 애와 만났을 때 발견했던 것.


그렇지만 그 빛은 과연, 조금 전 무대를 이길 수 있을까? 


열심히 연습한 걸 알아주지 못해 미안해. 그렇지만 저 정도는 되어야 라이브 무대에 설 수 있어. 미라이. 너는 저만큼의.....아니, 저보다 더 대단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겠니? 내게, 그리고 앞으로 만날 수도 있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음원 틀게."

"네! 갑니다!"


이상하게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마음을 외면하며, 미라이에게 시작을 고했다. 미라이는 손을 번쩍 들며 크게 외치는 것으로 화답했다. 


달칵.


재생버튼을 누르자 경쾌한 전주가 흐르기 시작한다. 미라이는 특유의 '화이!'라는 기합 소리와 함께 스텝을 밟으며 두 팔을 번갈아 흔들었다. 확실히, 표현이 좋아진 것 같다. 무작정 되는대로 움직였던 전과는 달랐다.


-즐거운 것만-♪ 있는 건 아냐-♪

-고민도-♪ 있긴 해도-♪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복잡하고 활동량 많은 동작을 연속하면서도 발성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실력이다. 열심히 연습했다는 건 거짓이 아닌가보네. 확실히 대단해.  


-정신없이-♪ 열중하게 되는 일-♪ 포기하거나 하진 않을래-♪


나는 '근사한 기적'을 부를 때보다는 조금 낮은 음정의, 힘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느껴진다, 미라이의 진심이.


-날아보자 점프 업!


힘차게 치켜올린 주먹에도 절로 눈이 갔다. 미라이는 노래를 열창하며, 특유의 하늘을 나는 듯한 동작을 잇달아 선보였다. 딱딱하거나 어색함이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어느덧 나는 그 동작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있었다. 


통통 뛰어다니는 두 발걸음. 


흩날리는 밤색 머리카락.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 


정말로 즐거워보여. 


쭉 펴고, 흔들고, 허공을 휘젓는 두 팔은 마치 하늘을 날아오르는 날개와도 같이.


-드넓은 하늘 높이-♪ 날아가보자-♪


이상하다. 분명 여기는 시어터내 레슨실이고, 미라이가 딛고 있는 건 마룻바닥일텐데. 자꾸만 미라이가 하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한히 넓은 푸르름 속에서,  마음껏 날며 춤추며 노래하는 미라이. 


-닿아라, 닿아라, 너에게 닿아라!


미라이가 그 소절을 힘껏 부른 순간, 한줄기 강한 바람이 마음을 뒤흔들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한쪽 눈을 윙크하며 상큼하게 미소짓는 미라이. 자유로웠던 그 몸은 어느덧 마무리 포즈와 함께 멈춰있었다. 아, 언제 끝난 거지. 너무 대단해서. 너무 눈부셔서 그만 잊고 있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조금 뻑뻑해진 두 눈을 몇 번 껌뻑였다. 그리고는 한 번 심호흡. 아니, 두 번, 세번.


"프로듀서 씨?"

".....미안해."


이렇게나 빛나는 너를, 그저 밀어내기에 급급했다니. 계획에 방해된다고 생각해버리다니. 마법과 같은 시간이 끝난 뒤 거센 파도와 같이 밀려들어오는 후회막심함을 이기지 못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에, 에에에!? 프, 프로듀서 씨!?"

"그동안 너를 믿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에, 저, 그, 그게....괜찮아요! 그동안 저, 많이 실수하고 그랬으니까, 그럴 만도....."


그치만, 지금이라면. 한참 허둥지둥했던 미라이가 내게 다가왔다.


"지금은 저, 믿음이 가죠?"

"당연!"

"에헤헤, 그러면 이제 고개 드세요. 사과 안해도 되니까."


정말 그래도 괜찮겠니? 괜찮다니까요! 자, 자, 빨리. 미라이의 거듭된 요청에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조금 멀리서 줄리아가 천천히 다가오는 게 보였다.


"어때 바보P. 미라이가 굉장하다는 거, 이제 좀 눈치챘어?"

"응....."

"그 얼굴을 보니 말 안 해도 알겠네. 라이브에 나가는 거, 미라이지?"


NO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줄리아는 그럼 그렇지. 하고 픽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어쩔 수 없나. 미라이, 다음에는 각오하라고."


줄리아는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이더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레슨실을 떠났다. 떠나가는 뒷모습에 미라이는 해맑게 네! 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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