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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8장, 작은 존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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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25, 2020 00:48에 작성됨.

-제8장-

작은 존재


[도쿄 스이게츠 학원 중등부 2학년 A반 교실 ------ 중학생 카츠라기 타로]


“오늘 종례는 여기까지. 오늘은 정기 부활동이 있는 날이니까 빼먹지들 말고. 이상.”

“기립, 경례.”

“감사합니다.”


  친구들이 나의 구령에 맞춰 일제히 인사를 마치자, 선생님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시고는 출석부를 챙긴 뒤 교실 앞문으로 나가셨다. 친구들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는 각자의 부활동 장소로 이동했다. 육상부와 야구부원 중에는 이미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가방을 챙긴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가 끝자리에는 타도코로가 사쿠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이치 군, 오늘 부활동 올 거지?”

“어? 아... 그게...”

“오늘은 공모전 공지도 있으니까, 꼭 와야 해.”

“...알겠어. 가방만 챙겨서 갈게.”

“그러면 먼저 가 있을게. 도망치면 안 돼! 쫓아갈 거니까!”

“네에...”


  타도코로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타도코로에게 다가갔다.


“여, 타도코로.”

“카츠라기... 무슨 일이야?”

“사진부, 갈 거지?”

“귀찮긴 하다만... 가야지. 꼭 오라고 하니까.”

“사쿠라한테 특별히 부탁한 거니까, 되도록 성실하게 임해 줘. 내 입장도 난처해진다고.”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


  타도코로는 4월 말부터 사진부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작년부터 부활동 같은 건 안 한다고 잡아떼던 것을 사쿠라에게 부탁해서 사진부에 반 강제로 입부시켰다. 이번 달로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는 타도코로 개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사실 나도 1학년 때는 사진부에 속해 있었다. 1학년 2학기부터 학생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만둔지라 전문적인 지식은 거의 모르지만, 그래도 몇 차례 촬영을 나가면서 자연이라던가, 일상 풍경을 사진에 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타도코로에게 사진부 활동을 제의한 것도 그런 기억 때문이었다.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새로웠다. 움직이는 일상의 한 순간을 담아내는 것은 평소와 다른 시각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타도코로에게도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물론 타도코로가 사쿠라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여러 가지 의미로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먼저 간다. 그 사진 공모전, 고등부 학생회랑 연계해서 꽤 크게 하는 행사니까 잘 준비해봐. 명색이 사진부인데 입상작이 없으면 좀 그렇잖아.”

“알아서 잘 할 테니까. 딱히 참견하지 마.”


  타도코로는 적당히 손을 흔든 뒤 가방을 메고 교실을 빠져 나갔다. 나는 그런 타도코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칠하기는.”


  누군가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옆을 돌아보니 코다이가 한 쪽으로 가방을 멘 채 서 있었다. 아마 함께 학생회에 가기 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타도코로가 그렇지 뭐.”

“예나 지금이나... 저놈의 츤츤거리는 거는 어떻게 안 되나 몰라.”

“내용물은 착하니까 괜찮지 않을까.”

“어떻게 좀 해 봐, 카츠라기. 저 녀석 다루는 데는 네가 전문 아니었어?”

“다룬다니, 물건도 아니고...”


  나는 코다이와 함께 교실을 나서서 학생회실로 향했다. 작년의 코다이는 건들거리기도 하고, 타도코로와 자주 부딪히고는 했는데, 이 녀석도 성격이 나쁜 것은 아니었는지, 작년 말부터는 타도코로와도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고, 학생회 활동에도 성실하게 임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뭐 한다고 했었지?”

“중고등부 연합 미디어공모전 회의.”

“미디어공모전? 동영상 같은 거?”

“글쎄, 일단 사진 공모전은 있다고 했는데. CGM이나 만화 같은 것도 받지 않을까? 자세한 건 회의해봐야 알겠지.”


  우리는 학생회실로 가는 길에 사진부의 모임 장소인 D반 교실을 지나쳤다. 교실 앞에는 디지털 카메라를 든 타도코로, 그리고 카메라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쿠라가 서 있었다.


“우와, 이 구도, 멋지다! 건물 옥상이야?”

“아, 응. 옥상은 아니고, 그냥 실내에서 창밖으로 찍은 거야.”

“사진은 잘 모르겠다더니, 재능이 있네. 신이치 군.”

“그래...?”


  잘 모르기는. 지난 주말 내내 「도시 풍경 사진 가이드」 같은 제목의 책을 들고는 적당한 빌딩은 다 들쑤시고 다녔으면서. 타도코로 때문에 그날 쓴 교통비가 대체 얼마였던가. 보통 신주쿠는 잘 가지 않기 때문에, 통학 정기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구간이어서 용돈에 엄청난 출혈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좌우간, 나는 사이좋게 서 있는 두 사람을 뿌듯하게 바라본 뒤, 코다이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타도코로는 겉으로는 까칠해보여도 가끔씩 솔직해지기도 하고, 꽤나 허술한 구석도 있었다. 갑자기 사람이 변해서 밝음 200% 같은 상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변하고 있으니까 좋은 거 아닐까.

  나는 틈만 나면 티격태격하던 작년의 타도코로와 코다이를 떠올리며, 그 때의 둘과 지금의 둘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다들 한창 클 때라고들 하니까,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이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코다이 녀석, 분명 작년에 나보다 작았는데. 언제 이렇게 큰 거야?!



[도쿄도 오타구 키사라기 자택 ------ 중학생 키사라기 치하야]

 

  -삑, 삑삑삑, 삑삑삑삑. 띠리릭.

  도어락이 모노톤의 기계음을 내며 열리자, 소녀는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싸우는 소리보다는 정적이 반겨주는 편이 훨씬 나았다. 소녀는 목욕을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들고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숙제를 거의 다 마쳤을 즈음, 소녀의 휴대전화에서 메일 알림이 울렸다.


[발신인: 코이데 | 제목: 부탁이 있어 | 내용: 코이데야. 정말 미안한데 다음 주 조별활동에 쓸 것들을 대신 준비해줄 수 있을까? 지난번에 모은 비용은 월요일에 전해줄게. 갑작스럽게 간사이에 가게 되어서 일요일 늦게 도착하거든. 다른 아이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다들 일정이 있는 것 같아서. 부탁할게.]


  소녀는 메일을 다 읽은 뒤 숙제를 마무리하고 일어났다. 사실 이미 목욕을 마친 뒤라 밖에 다시 나가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집에 있어 봤자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꽤 더운 여름이었지만 소녀는 언제나 흰 셔츠에 긴 바지 차림이었다. 그나마 여름에는 셔츠가 반팔로 바뀌는 것 정도의 바리에이션이 있을 뿐이었다.

  소녀가 간단한 에코백 하나를 들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현관이 열리면서 소녀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다녀오셨어요.”

“치하야, 어디 가는 거니?”

“다음 주에 쓸 준비물이 필요해서요.”

“이야기하지 그랬니. 오는 길에 들러도 됐는데...”

“상관없어요.”


  소녀는 형식적으로 대답하고 어머니를 지나쳐 현관을 나섰다. 막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어머니가 소녀를 불러 세웠다.


“치하야. 용돈은 충분하니? 이거, 가져가렴.”


  소녀의 어머니는 천 엔 지폐 몇 장을 내밀었다. 소녀는 애써 돌아보지 않으며 대꾸했다.


“괜찮아요. 많이 남아서.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소녀는 밖으로 나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부모님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했다. 지난 5년간 쭉 그래왔다.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대화를 시도해본 적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때마다 비슷한 일들이 매번 반복되어왔다. 노력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발버둥 치더라도, 결국 상황은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 시간이 하루, 이틀 반복되자 소녀는 발버둥치는 것조차 그만 두었다.

  소녀는 집 근처의 역에서 전철을 타고 상점가 쪽으로 향했다. 두 세 정거장을 지나 내린 뒤, 출구로 나와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문구점이라면 집 근처에서도 찾을 수 있었지만, 이번 조별과제는 꽤 살 것들이 많아서,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상점가까지 나온 것이었다.

  쇼핑은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품목이 꽤 다양하긴 했지만, 어차피 용도가 비슷비슷한 문구류라 동선을 크게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1072엔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소녀는 계산을 마치고 문구점 밖으로 나온 뒤, 건너편의 CD샵으로 향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흔한 일이 되었지만, 아직 구형 피처폰을 쓰는데다 집에서 주로 CD 플레이어를 사용해서 음악을 듣고 있었기에, 선호하는 클래식 같은 장르의 음악은 직접 CD를 사고는 했다. 

  소녀가 CD샵 입구에 다가서자, 등 뒤로 악기를 멘 4인조가 막 CD샵에서 나오고 있었다. 소녀가 그들의 옆을 지나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에 밀려 중심을 잃고 말았다.


“꺄악!”

“아앗?!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다친 데는 없으신가요?”


  원인제공자인 젊은 남성은 당황한 표정으로 넘어진 소녀에게 다가와 사과했다. 등 뒤에 메고 있던 기타 때문에 돌아서는 과정에서 소녀를 밀치고 만 것이었다. 

  소녀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넘어지면서 손을 짚는 바람에 살짝 긁힌 데다, 준비물로 샀던 도화지가 구겨지고 말았다.


“괜찮습니다. 딱히 다친 곳은 없어요. 그런데...”

“아, 종이, 망가지고 말았네요... 다시 사 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뇨, 그러실 것 까지는...”

“아니에요. 짐을 메고 있었으니까, 돌아설 때 더 주의했어야 하는데... 적어도 배상은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사실 소녀는 좀 더 주의해 달라, 같은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지만, 남자가 너무 미안해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낯선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때였다. 앞서 걸어가던 3인조가 뒤를 돌아보고 그를 불렀다.


“어이, 미유키! 뭐 하고 있는 거야~! 빨리 가지 않으면 늦어버린다구~!”

“미안! 먼저 가서 세팅해줘! 금방 따라갈게!”

“일단 알겠어! 너무 늦지 않게 와야 해!”


  남자는 일행에게 대꾸한 뒤 다시 소녀 쪽으로 돌아섰다. 세팅이라는 말과, 남자와 일행들의 악기를 미루어볼 때, 아마 일종의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남자는 다시 소녀에게 말했다.


“그러면, 종이는 금방 다시 사 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네...”


  남자는 그러고는 방금 전에 소녀가 나왔던 대형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둘둘 말린 종이 묶음을 들고는 소녀에게 다가왔다.


“정확히 어떤 재질일지 몰라서, 같은 사이즈에 여러 종류를 샀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폐를 끼친 건 이쪽이니까요. 아, 그리고 이것도.”


  남자는 주머니에서 새 연고와 밴드를 꺼내 소녀에게 내밀었다.


“아까 넘어질 때 손을 짚으신 것 같아서. 응급처치라도 할 때 쓰세요.”

“감사합니다.”


  소녀가 딱히 다친 곳은 없다고 했지만, 방금 전에 손바닥을 긁힌 것을 보았는지, 일부러 연고와 밴드를 따로 사 온 것 같았다. 소녀는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럼 이만...”

“저기, 잠시만요!”

“네?”

“혹시 밴드 활동 같은 걸 하고 계신 건가요?”

 

  소녀는 몸을 돌려 걸어가려는 남자를 불러 세웠다. 불러 세워진 남자는 잠시 당황한 것 같았지만, 소녀의 질문을 듣고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답변했다.


“아, 네. 한... 20분 정도 뒤에 오모리역 앞 광장에서 버스킹을 하는데, 혹시 괜찮다면 와 주실래요?”

“길거리 공연이군요. 가능하면 들를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은 죄송했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몸을 돌려 역 쪽으로 향했다. 남자가 말한 공연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있었기에, 소녀는 예정대로 CD샵에 들렀다 역으로 향하기로 했다.

  사실 어차피 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기에 들르겠다고 했지만, 소녀는 길거리 공연을 그렇게까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노래를 좋아해서 콩쿠르 같은 대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본인 자체가 공연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고, 게다가 무대가 아닌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것은 소리를 전달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음악을 들어주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굳이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억지로 들려주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든, 마침 집으로 돌아갈 시간도 되었기에 소녀는 CD샵을 나서서 역 쪽으로 향했다. 역 앞 광장에 도착하자, 몇몇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자 사람들 너머로 악기를 세팅하고 공연을 준비 중인 밴드의 모습이 보였다. 좀 전의 남자도 기타를 앰프에 연결하고는 음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준비가 모두 끝나자, 간이 드럼 키트 앞에 앉은 드러머가 스틱으로 예비박을 주었다. 이에 맞춰 베이스와 기타가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곡은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었다. 하지만 기타의 리드 선율이 맑고 포근해서, 듣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녀는 마치 주변으로부터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주변의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들이 전부 들리지 않게 되면서, 소녀는 오직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과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음이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고, 제대로 된 공연장이나 음원에 비해서 부족한 점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넘어선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무대와 달리 관객들과 같은 눈높이, 가까운 거리에서 전하는 음악은 고유한 매력이 있었다. 소녀는 길거리 공연을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이전의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곡이 진행되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모여들면서 시작할 때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밴드의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연주가 끝나자 다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소녀는 그 뒤로 두 곡을 더 들었다. 앙코르까지 마치고 밴드가 철수를 위해 정리를 시작하자, 사람들은 다시 흩어져서 자신들의 원래 목적지로 향했다. 소녀는 좀 전의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남자는 소녀를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공연, 잘 봤어요.”

“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길거리 공연 같은 걸 자주 하시는 편인가요?”

“네.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는 건 기쁘니까요. 연주하는 보람도 있고. 아마추어기는 하지만, 버스킹을 할 때면 관객 분들이랑 이어지는 느낌이라서...”

“이어...진다...”


  소녀는 생각에 빠졌다. 자신은 분명 음악을 좋아했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자신의 노래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소녀가 노래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과거에 대한 속죄였다.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을 위해 노래했다. 하지만 소녀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신이 좀 전에 밴드의 연주와 이어졌듯이,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한 없이 밝게 웃어보이던 그 아이처럼, 노래로 자신과 이어져 마음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미유키! 기타에 물린 선 좀 줄래?”

“아, 여기!”


  남자는 기타에 꽂혀 있던 선을 뽑아서 베이시스트에게 살짝 던졌다. 소녀는 생각에서 빠져 나와 남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즐거웠어요.”

“저야말로 감사해요. 아, 그리고 좀 전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거라면 괜찮아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녀는 인사를 나눈 뒤 돌아서 역으로 향했다. 남자는 그런 소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앰프를 정리하던 드러머가 남자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좀 전의 그 아이야?”

“응. 어쩌다보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멍한 분위기야. 피곤해서 그래?”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것도 인연이지 않을까, 싶어서.”

“얼씨구. 무슨 인연이 가는 데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생기냐. 낯간지러운 소리를 표정 하나 안 바뀌고 하는 것도 재능이네. 정리나 도와. 곧 있으면 해가 떨어지니까.”

“푸흐, 알겠어. 쌀쌀맞기는.”


  남자는 다른 이들을 도와 다시 악기와 음향장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 상점가의 하늘에는, 식어가는 열기와 함께 붉은 노을이 드리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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