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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7장, TODAY with M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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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6, 2020 20:05에 작성됨.

[도쿄 스이게츠 학원 고등부 복도 ------ 히야마 레이나]


  점심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수업 종이 울리자, 나는 치하야와 함께 밴드부실에 갈 생각으로 교실을 나와 D반쪽을 바라보았다. D반 앞 복도에는 치하야와 타로 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와 숨은 뒤, 마치 무언가를 엿보듯이 문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저기, 레이나. 뭐 해?”

“응?!”


  뒤를 돌아보니, A반 교실에서 나온 신이치 군이 나를 오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잠시 허둥댔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신이치 군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 봤을 때, 둘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으으, 정말! 신이치 군, 이럴 때 방해하다니 못됐어!”

“아니, 그러니까 뭔데...”

“쉿. 혹시 들리면 안 되니까, 조용. 저기, 혹시 요즘 치하야랑 타로 군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

“에...? 카츠라기랑 치하야가?”

“그 왜, 어제 연습 때도 그렇고, 오늘도 쉬는 시간마다 같이 있고, 방금도 저기서 둘이 얘기하고 있었다고!”

“그래...?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 방금까지 있었다고? 카츠라기는 먼저 밴드부실에 가 있겠다고 했는데.”

“뭐?!”


  나의 의심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과도한 망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제 타로 군을 불러내는 치하야의 모습에서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단순히 그거 하나로 그러는 것은 아니고, 오늘 오전 중에 쉬는 시간마다 둘이 복도에서 잡담하고 있는 것도 수상했고, 방금도 타로 군과 신이치 군의 말이 서로 다른 것이 이상했다. 비록 확실한 증거는 없어도, 이런 상황은 나의 ‘레이나 레이더’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어쨌든, 우리도 슬슬 연습하러 가자. 레이나.”

“흠... 그래.”


  밴드부실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타로 군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교내에서 내가 모르는 경로라도 있는 걸까? 설마 조금 전에 내가 잘못 본 건 아닐 텐데... 좌우간, 치하야와 사토 군이 도착한 후로 연습은 평소와 같이 평범하게 진행됐다. 연습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던 중, 사토 군은 타로 군에게 말을 걸었다.


“카츠라기. 오늘도 끝나고 생물부 있어?”

“아니. 오늘은 CD샵에 가볼까 하는데.”

“그래? 흠... 그러면 타도코로. 끝나고 어디 같이 안 갈래?”

“싫어. 귀찮아.”

“아, 좀...”


  나는 타로 군이 CD샵에 간다는 부분에서 흠칫했다. 오늘 아침, 치하야는 분명 방과후에 CD샵에 간다고 했었다. 모든 것들이 하나씩 들어맞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확실한 상황인데 단순한 망상이라고 치부하기에도 좀 그랬다.

  치하야와 타로 군, 사토 군이 먼저 돌아가고, 마지막으로 나온 신이치 군은 밴드부실 문을 잠그고 있었다. 나는 그런 신이치 군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아, 신이치 군. 이제부터 우리는 한 팀이야!”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야. 좀 알 수 있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오늘 방과 후에 한가해?”

“특별한 일정은 없어.”

“그러면 나랑 같이 현장 수사를 나가자! 끝나고 교문 앞에서 기다려 줘.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야!”

“......?”

“좋아, 그러면 이따가 봐, 신이치 군!”

“ㅇ, 어이, 레이나?!”


  나는 신이치 군을 뒤로 하고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우리 치하야가 연애라니, 그것도 상대가 타로 군이라니! 가만히 두고 보기에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잠깐만. 그런데 아이돌은 연애 금지 같은 게 있지 않았던가?



[도쿄도 오타구 게이큐카마타역 인근 CD샵 ------ 타도코로 신이치]


  아, 이거 난감한데.

  나는 지금 레이나와 함께 상점가에 나와 있다. 원래 내 역할대로면 레이나와 사토의 주의를 적당히 돌렸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치하야도 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대놓고 하면 못 알아채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저기, 레이나...”

“쉿! 저기 왔어! 어레, 치하야 혼자 왔네?”


  우리는 상점가 앞의 화단을 가림막 삼아 적당히 숨어 있었다. 카츠라기에게 슬쩍 귀띔해주기를 잘 한 것 같았다. 치하야는 주변을 살짝 둘러보더니 CD샵 안으로 들어갔다.


“거봐, 레이나. 우리도 슬슬 돌아가ㅈ-”

“잠깐, 잠깐!”


  내가 화단 뒤편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레이나는 다급하게 나를 멈춰 세웠다. 레이나가 가리킨 쪽에는 평상복 차림의 카츠라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봤지? 내 레이더는 정확하다니까. 신이치 군.”

“...”


  카츠라기는 눈으로 상점가를 쭉 훑었다. 그러고는 이내 CD샵에서 조금 떨어진 액세서리 가게로 들어갔다.


“어?!”

“왜 그래, 레이나?”

“타로 군이 치하야와 다른 가게로 들어갔어!”

“그렇다니까. 레이나가 너무 민감한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레이나와 나는 숨어 있던 곳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레이나는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적어도 완벽하게 눈치 챈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나도 내 임무를 충분히 다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나는 만화에 나오는 탐정 같이 손을 턱에 대고 고민에 잠긴 레이나에게 말했다.


“레이나, 그러지 말고 크레이프나 먹고 갈래?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럴까? 신이치 군, 보기보다 센스가 있네!”


  ‘옆에서 수시로 부정하기’와 ‘너무 민감한 거야’ 스킬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뒤, 크레이프로 결정타를 날리면서 레이나의 주의를 완전히 돌리는데 성공한 나는, 스스로의 능력에 감탄하며 치하야와 카츠라기에게 행운을 빌어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할 생각이었기에,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실패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나머지는 맡길게. 치하야, 카츠라기.



[도쿄도 오타구 카마타역 인근 상점가 ------ 프로듀서]

  

-삐빅.

“여보세요, 치하야?”

“프로듀서, 혹시 지금 어디세요?”

“카마타 쪽 상점가에 나와 있어. 판촉 행사 때문에 논의할 게 있어서.”

“그러면 혹시 미팅은 끝나셨나요?”

“응. 방금 끝나고 나오는 길이야.

“다행이다... 저, 이어폰을 고르러 게이큐카마타 쪽의 CD샵에 와 있는데, 어떤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서요. 혹시 골라 주실 수 있을까 해서...”

“게이큐? 금방이네. 그쪽으로 갈게. 늘 가던 거기지?”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치하야와 자주 가던 CD샵으로 걸음을 옮겼다. 새 이어폰을 사려는 걸까. 이어폰이라면 올해 초에 유키호가 생일 선물로 준 게 있을 텐데, 혹시 고장이라도 난 걸까나. 나는 CD샵으로 향하는 중에 요즘 나오는 이어폰 중에 괜찮은 모델이 뭐가 있는지 검색해보았다. 치하야가 쓸 거라면 이참에 하나 사 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치하야는 클래식을 좋아하니까 악기 선율이 잘 담기는 걸로 고르는 게 좋겠지?

  이것저것 검색하다보니 어느새 CD샵에 도착해 있었다. 회전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언제나 변함없이 익숙한 특유의 향초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 오디오 액세서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꽤 먼 거리였지만, 나는 단숨에 치하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지하게 진열대를 바라보는 치하야는 주변과 확실히 구분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교복 차림에 마스크도 쓰고 있어서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았지만, 치하야를 오래 봐온 나는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치하야를 처음 마주쳤을 때를 떠올렸다. 그 때도 치하야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매장 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CD에 가득 담긴 음악 속에 묻혀, 누구보다 진지하지만 행복한 모습이었다. 내가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자, 치하야가 먼저 나를 발견하고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치하야에게 다가갔다.


“바쁘신데 불러내서 죄송해요. 프로듀서.”

“아니야. 마침 근처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어폰을 고르는 거야?”

“네. 제 건 아니고요, 선물할 거예요.”

“그렇구나. 엄청 진지하게 고르길래.”

“아, 그건... 오픈형, 커널형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냥 기계치 속성이 발동된 거였냐. 잠깐 추억에 잠겼던 내 감동을 돌려 줘...


“으음... 그러면, 일단 차근차근 좁혀보자. 일단 유선으로 할 거지?”

“네. 전에 선이 있는 쪽을 선호한다고 했거든요.”

“주 용도는? 음악?”

“네. 주로 악기를 연주할 때 같이 듣거나, 평소에 음악을 들을 때 쓰니까...”

“음악이라면 이쪽 모델 중에서 고르는 게 좋겠네. 그리고 오픈이랑 커널은 귀에 꽂는 부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말하는 거야. 지금 치하야가 쓰는 이어폰, 보여줄래?”

  치하야는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어 내밀었다. 모듈 부분이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는 오픈형 이어폰이었다. 꽤나 고급품인 것 같은데, 유키호의 안목이겠지.


“자, 이거랑 비교해보면 차이가 보이지?”

“그렇네요. 그러면 둘 중에 어느 쪽이 나을까요?”

“글쎄. 아무래도 그 쪽은 개인 취향이라서. 혹시 그 친구가 평소에 어떤 걸 쓰는지 알아?”

“으음...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커널형? 이었던 것 같아요. 모양이 제 것과는 조금 달랐거든요.”

“되게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구나.”

“기왕 선물할거면, 확실한 게 좋다고 생각해서요.”


  그런가. 그래서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순히 기계치 속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방금 전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물론 그 부분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치하야는 선물을 받는 상대를 위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나의 넥타이핀을 내려다보았다. 디자인은 수수했지만, 평소 내가 줄무늬 넥타이를 애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깔끔한 편이 잘 어울렸다. 치하야는 그냥 적당한 걸 골랐다고는 했지만, 아마 이것도 꽤나 섬세하게 고민하며 골랐을 것 같았다. 내가 갑자기 말이 없자, 치하야는 내 쪽을 바라보더니 이내 핀을 알아채고 말했다.


“넥타이핀, 해 주셨네요.”

“당연하지. 치하야가 선물해준 거잖아. 여름에는 조끼 같은 건 입지 않으니까, 넥타이가 펄럭이면 귀찮거든. 핀이 있으니까 엄청 편해.”

“후훗, 마음에 드셨다니 기뻐요.”

“치하야는 친절하구나.”

“네? 갑자기 그건 무슨...”

“보통은 선물을 고를 때 그렇게까지 세심하게 생각하지는 않거든. 겉보기에 적당한 걸 고르기도 하고.”

“그런가요? 저, 예전에는 그다지 선물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일단 선물을 하려면 상대의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걸 배려심이 깊다고 해.”

“...!”


  치하야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표정이 풀리면서 배시시 미소 지었다.


“왜 그래, 치하야?”

“저, 항상 프로듀서에게도, 하루카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배려를 받는 입장이었으니까요. 프로듀서가 배려심이 깊다고 해 주시니까, 왠지 기뻐서...”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을 뿐인걸.”

“프로듀서, 저...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응? 치하야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크게 변하지 않았던 표정, 낮게 유지되는 분위기를 지녔던 소녀는, 지금 내 앞에서 미소를 지은 채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치하야는 변했다. 아니, 변했다는 표현은 알맞지 않았다.


“치하야는, 성장했다고 생각해.”

“성장... 인가요? 레슨은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예전에 비해 기량은 많이 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것도 맞지만, 꼭 기량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한 건 아니야.”

“그러면...”

“치하야는 분명 달라졌어. 분위기도, 성격도, 마음가짐도. 하지만 변하면서도 처음에 이야기했던, 톱 아이돌이 되겠다는 마음은 그대로잖아. 변하면서도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으니까. 나는 성장했다고 표현하고 싶어.”

“프로듀서는 가끔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네요.”

“하하. 그런가.”

“그래도, 저는 그런 프로듀서가 싫지 않아요.”

“좋지도 않고?”

“...조금 싫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치하야는 피식 하고 웃어보이고는 다시 진열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이어폰 하나를 골라 들었다.


“그걸로 괜찮아?”

“네. 음역대랑 성능은 비슷한 것 같아서요. 이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아, 내가-”

“괜찮아요. 프로듀서.”

“에?”

“제 마음을 담은 선물이니까요. 제가 직접 마련하고 싶어요.”

“치하야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문제라니까...”

“싫으신가요?”

“싫지 않아.”

“좋지도... 않으시고요?”


  치하야는 장난스럽게 조금 전의 일을 되갚아주었다. 나는 말없이 웃어보였다.

  계산을 마친 우리는 CD샵을 빠져 나왔다. 치하야는 쇼핑백을 소중히 들고는 새 장난감을 산 어린 아이처럼 수시로 안을 확인했다.


“그래서, 치하야. 이제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야?”

“아뇨. 조금 더 둘러볼 곳이 있어서요. 프로듀서는 사무소로 가시나요?”

“응. 이제 돌아가야지.”

“바쁘신데 같이 와 주셔서 감사해요. 내일은 잡지 취재가 있었죠?”

“응. 기자가 사무소 쪽으로 오기로 했으니까, 평소처럼 학교 마치고 오면 돼.”

“그러면 전 이만 가볼게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프로듀서.”

“내일 보자. 치하야.”


  치하야는 나에게 인사하고는 CD샵에서 조금 떨어진 액세서리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마냥 손해 보는 일은 아니구나, 라는 걸 다시 느끼며, 나는 비뚤어진 넥타이핀을 다시 고쳐 끼웠다. 치하야의 소중한 마음은, 햇빛을 받아 눈부신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도쿄 스이게츠 학원 고등부 복도 ------ 히야마 레이나]


“여- 레이나. 밴드부실 가ㅈ...흐억?!”


  나는 말을 걸어오는 신이치 군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시선을 복도 반대편으로 고정했다. 나는 조금 전부터 치하야와 타로 군을 미행하고 있었다. 둘은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시간이 시작하자마자 만나 같이 밴드부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느지막이 부실에 도착한 뒤, 현장을 급습할 생각이었다.


“아아아, 팔이야...”

“미안, 신이치 군. 하지만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라고!”

“또 그 얘기야? 그러게, 별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쉿. 조용히 따라 와.”


  그 때였다. 옆을 지나가던 줄리아짱이 말을 걸어왔다.


“여, 레나, 신치. 뭐 해? 수상한 포즈를 취하고는.”

“줄리아짱, 안녕! 지금은 좀 바빠서. 나중에 이야기하자!”

“응...? 뭐, 그래.”


  줄리아짱은 잠시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신이치 군이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취하자 대충 알겠다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거 봐. 이상한 오해를 받는다고. 레이나.”

“쉿, 쉿!”

“하아...”


  나는 투덜거리는 신이치 군을 조용히 시키고 둘을 운동장까지 미행하는 데 성공했다. 스탠드 뒤쪽에 숨어서 지켜보는 사이, 둘은 밴드부실 문을 열고는 무언가를 살피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안으로 들어갔다.


“저거 봐, 신이치 군! 방금 엄청 수상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고! 휴대전화만 보지 말고!”

“응? 알겠어. 그러면 조금 대기했다가 들어가면 되는 거지?”

“좋아. 잠깐 기다렸다가, 바로 현장을 덮치는 거야!”

“레이나, 조금 이상한 취미가 있네...”

“그치만, 치하야와 타로 군이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으음...”


  정말이지, 신이치 군은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아까부터 자꾸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누구랑 그렇게 라인을 하는 거야?


“이 정도 기다렸으면 충분하겠지? 따라 와, 신이치 군!”

“에? 레이나, 잠깐만...!”


  나는 종종걸음으로 스탠드 계단을 내려와 밴드부실 앞에 도착했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뒤,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어젖혔다!


-펑!


  문을 열자마자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순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자, 내 앞에는 타로 군이 터진 폭죽을 들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치하야는 마커를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역시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이트보드의 맨 위에는, 아직 다 쓰지 못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 레이나의 생일을 축하합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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