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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7장, TODAY with M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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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4, 2020 22:57에 작성됨.

-제7장-

TODAY with ME


[도쿄 스이게츠 학원 고등부 밴드부실 ------ 히야마 레이나]


“자, 됐다. 혹시라도 이상한 냄새가 난다거나, 공기가 안 좋은 기분이 들면 바로 이야기하렴.”

“네! 감사합니다!”


   시설관리를 담당하시는 니시카와 선생님께서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설명해주신 뒤에 행정실로 돌아가셨다. 지난 서머 페스티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우리는 교내에서 입지를 늘려 에어컨을 하사받을 수 있었다. 물론 새로 사 준 것은 아니고, 음악실 에어컨을 교체하면서 기존에 있던 스탠드형 에어컨을 물려받은 식이었다. 그래도 중요한 건 에어컨이 생겼다는 사실이니까,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나?


“흠흠흠~ 어?! 에어컨이 생겼네?”

“안녕, 레이나.”

“어서 와! 방금 니시카와 선생님이 달아주고 가셨어.”


  내가 온도를 조절하는 사이, 늘 함께 다니는 3인조가 밴드부실로 들어 왔다.


“서머 페스티벌 상금으로는 어림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된 거야?”

“원래 음악실에 있던 거야. 음악실 에어컨을 바꾼다고 해서, 그럼 고장 난 것만 아니면 밴드부실로 옮겨 달라고 부탁드렸지.”

“밴드부실도 엄연히 부활동 장소인데, 지원이 너무 박하다니까...”


  신이치 군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물론 빵빵한 지원금에 학교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받는 오케스트라나, 동문회의 지지를 받는 합창부에 비하면 옛 비품창고를 쓰는 우리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서머 페스티벌 무대는 학생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니까, 스이게츠제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이면 확실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모처럼 에어컨이 생긴 건 좋잖아. 타도코로.”

“뭐, 그건 그렇지만.”

“치하야는? 오늘부터는 나온다고 했잖아. 아무도 못 봤어?”


  치하야는 지난주에 화보집 촬영 일로 학교를 쉬었다. 이번 주에는 다시 나온다고 했는데, 오전에 바빴는지 D반 근처에 가 봐도 치하야를 만날 수 없었다. 

  그 때, 마치 사토 군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밴드부실 문이 열리고 치하야가 들어왔다.


“치하야, 어서 와! 촬영 수고했어!”

“오랜만이야. 다들.”

“헤에, 초 인기 아이돌은 학교에서도 마주치기 힘드네.”

“미안, 선생님들께 밀린 수업 자료를 받느라. 그리고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후후.”

“그럼그럼! 우리 치하야는 전국적인 초 인기 아이돌이 될 거라고. 아직 갈 길이 멀지!”


  치하야는 요즘 음악 방송에서 자주 얼굴을 비췄다. 비록 나는 가지 못했지만, 지난번에는 오다이바 쪽에서 소속사의 아이돌들이 전부 나오는 올스타 라이브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반에서도 몇몇 아이들이 다녀왔는지, 티켓에 사인을 받으러 밴드부실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치하야가 더 바빠지면 우리가 모여서 연습하기도 힘들어지겠지?”

“아, 그건...”


  치하야는 사토 군의 말에 조금 난감해 보였다. 처음에도 걱정한 부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연습시간 확보가 어려워지면 활동이 힘들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치하야가 보컬리스트라는 점이었다. 보통 합주 과정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부분이 세션이라서, 처음에 키 조정이나 리듬 정도만 합의한 뒤에는 주로 세션과 보컬이 따로 연습하고, 나중에 보컬을 얹는 식으로 진행할 수 있어서 부담이 적었다. 내가 이런 이유를 들어 치하야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순간, 신이치 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음, 확실히 그렇겠지. 그래도 신경 쓰지 마, 치하야. 우리는 치하야의 아이돌 활동을 최우선으로 응원하고 있으니까.”

“타도코로 씨...”

“오늘은 친절하네, 타도코로.”

“시끄러. 합주는 세션끼리 맞춰볼 수도 있는 거잖아. 보컬은 나중에 얹어도 되니까 부담도 적다고.”

“뒤늦게 이유를 덧붙여도 소용없네요.”

“후후, 고마워, 타도코로 씨.”


  나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 아이들. 역시 잘 골랐어. 친절한 아이들이라 정말 다행이야...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신이치 군이 평소보다 부드럽네. 평소에는 좀 더 태클 담당인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치하야, 계곡에 갔었지? 어땠어?”

“응? 어땠냐고 해도... 놀러 갔다기보다는 업무로 간 거니까.”

“헤헤, 그런가?”

“화보 말고도 이것저것 찍은 사진들이 있기는 한데, 가능하면 가져 올게.”

“기대하고 있을게!”


  나는 치하야에게 계곡에 대해서 물었다. 우리 가족도 조만간 피서를 갈 예정이었는데, 계곡 같은 곳은 딱히 가본 적이 없어서 명소나 맛집 같은 팁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다.


“저기, 카츠라기 씨.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잠깐 괜찮아?”

“응? 뭔데?”

“그... 잠깐 와줬으면 해서.”

“응...? 아하. 알겠어.”


  타로 군은 그러더니 치하야를 따라서 밴드부실을 나섰다. 굳이 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내용이라도 있는 걸까나?


“저 둘,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ㄴ... 엑. 무슨 짓이야, 타도코로!”

“사토, 앰프 전원이 안 들어오는데, 멀티 탭이 멀쩡한지 좀 봐 줘.”

“말로 해도 되는 거잖아?!”

“시끄러. 빨리.”


  신이치 군은 말을 끊으며 팔꿈치로 사토 군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쩌면 신이치 군은 뭔가를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사토 군이랑 나한테는 숨겨야 하는 이야기인가? 흐음. 여고생의 감이 간질간질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굳이 캐물을 것까지는 없겠지. 그래도 역시 신경 쓰이네.


“레이나, 지난번에 보내줬던 곡, 기본 비트만 맞춰줄 수 있을까? 솔로 파트가 영 감이 안 와서.”

“응? 알겠어. 기타 솔로 두 마디 전부터 들어가면 되지?”


  나는 일단은 드럼 앞에 앉아 스틱을 꺼내 들었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신이치 군의 연습을 도와주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도쿄도 오타구 765프로덕션 ------ 프로듀서]


“다녀왔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프로듀서 씨! 치하야짱도 어서 와.”

“오오, 수고했네, 제군들.”


  나는 치하야와 잡지 인터뷰 업무를 마치고 사무소로 복귀했다. 웬일로 사장님과 오토나시 씨가 TV 앞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계셨다.


“바쁘신가 보네요, 서류 업무인가요?”

“아, 그건 아니라네. 조금 복잡한 상황이긴 하지만...”

“네?”

“하루카짱이 학교 숙제를 도와달라고 해서 보고 있는데, 사장님과 함께 봐도 영 진도가 안 나가서요...”

“아...”


  탁상에 놓인 종이를 자세히 보니 수학 문제지였다. 수식의 기호를 살펴보니 미적분 문제인 것 같았다. 수학 문제라는 걸 풀어본 지가 한참이 된 데다, 학창시절에도 수학은 주특기가 아니었기에, 나도 답을 쉽게 떠올리지는 못했다.

  우리 셋이 곤란해 하자, 치하야가 다가와 문제지를 살펴보았다.


“정적분에 대한 문제네요. 두 접선의 접점의 좌표를 구한 뒤에, 삼각형의 넓이에서 그래프로 둘러싸인 넓이를 빼면 돼요. 접점은 x좌표가 나와 있으니까, 둘 중 하나에 대입해서 y좌표를 구하면 되고요.”

“오, 그렇구먼. 키사라기 군은 수학을 잘 하는군.”

“역시 치하야구나.”

“지난 주 쯤에 배웠거든요.”

“요즘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아무래도 바빠지면 힘들지 않아?”

“시험 정도는 따라가고 있어요. 빠진 수업은 따로 보충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치하야와의 첫 미팅을 떠올렸다. 그 때도 치하야는 최상위권의 성적을 받고 있다고 했는데, 아이돌 활동이 바빠진 지금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벌써 반년이구나. 시간이란 참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간다는 걸 다시 느꼈다. 

  치하야의 밝아진 성격이나 나의 서류 작업 숙련도 같은 점들은 긍정적인 변화지만, 치하야의 성실함과 톱 아이돌을 노린다는 마음만은 첫 걸음을 내딛던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처음에 가지고 있던 소중한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은 기뻤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A.I.R.A.]의 홈페이지를 확인했다. 지난주만 해도 C2 상위권에 있었던 치하야의 랭크는 C1으로 올라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B랭크 진입도 멀지 않은 것 같았다.


“치하야, 이번 주 집계가 올라 왔어. C1 랭크 업이야!”

  소식을 들은 치하야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올스타 라이브 이후로 랭크 업 속도가 빨라진 느낌이네요.”

“응. 특히 요리방송 게스트 출연이 호응도가 좋았나 봐. 방송국 쪽에서도 VOD 조회 수가 높다고 칭찬하더라.”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후후. 프로듀서 덕분이에요.”

“치하야가 노력한 결과야.”

“요리방송은 프로듀서가 추천해주신 거니까요. 저, 사실은 전에 프로듀서가 무대 아래에서도 매력을 보여줄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던 말을 의심했거든요. 그런데 지난 요리방송도 그렇고, 화보 촬영도 그렇고, 어쩌면 노래만큼 중요한 일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엿한 아이돌로 성장했구나. 치하야.”

“네. 아직은 부족하겠지만,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의심했다는 건 좀 섭섭하지만 말이지.”

“그, 그래도! 지금은 알고 있다니까요!”

“하하, 농담이야, 농담.”

“정말이지... 지금의 프로듀서는 신뢰하고 있으니까, 짓궂은 장난은 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살짝 놀리자 치하야는 당황하며 반박했다. 나는 치하야의 ‘신뢰하고 있다’는 말이 굉장히 기뻤다. 치하야는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편하게 다가가서 신뢰를 쌓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랭크가 오르고 아이돌로서의 기량이 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뢰 관계를 키우면서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인격체 자체가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큰 성과였다. 


“프로듀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얼마든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는, 어떤 게 좋을까요?”

“선물? 대상에 따라 다르기는 할 텐데...”

“고마운 마음이랑, 축하하는 느낌으로 뭔가를 선물하려고 하거든요. 저, 딱히 무언가를 선물해본 경험이 없어서...”

“음. 그런 거라면 거창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마음을 전하고 싶은 거잖아? 너무 비싸거나 큰 선물은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가요. 그러면 이거, 받아주세요.”


  치하야는 그러고는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마감이 조금은 서툴렀지만, 파란 땡땡이 포장지에 정성스레 싸여 있었다.


“에? 이거, 내 거야?”

“네.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뭔가 형태가 있는 걸로 선물해드리고 싶어서요.”

“고마워. 치하야. 감동이야.”

“다행이네요. 후후.”

“하지만 선물을 이미 가져와 놓고 받는 사람한테 물어본다니. 의외라서 귀엽네.”

“ㄴ, 네?! 아, 그건... 꼭 이거 때문에 여쭤본 건 아니고요. 또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겸사겸사 여쭤본 거예요.”

“흐음. 그렇구나. 아무튼,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지금 열어봐도 돼?”

“네?! 그, 조금 부끄러우니까 나중에 열어봐주세요! 아니, 오늘 일은 끝났으니까, 저는 이만 돌아갈게요!”

“응? 아, 그래. 조심해서 돌아가.”

“네. 수고하셨습니다, 프로듀서!”


  치하야는 급하게 인사를 한 뒤 평소의 치하야답지 않게 조금은 허둥지둥하며 사무소를 빠져 나갔다. 나는 책상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커터칼로 조심스레 테이프를 자른 뒤, 포장지를 벗겨 냈다.

  안에는 손바닥만 한 상자와 메모가 들어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은색의 깔끔한 넥타이핀이 들어 있었다. 나는 메모를 읽어 내렸다.


[프로듀서는 항상 넥타이를 매고 계시니까 유용하실 것 같아서 골라봤어요. 저는 디자인 같은 부분은 잘 몰라서 깔끔한 걸로 골랐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항상 감사해요, 프로듀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치하야.]


  나는 넥타이핀을 끼워 보았다. 사실 전에 넥타이핀을 써 본적이 없어서 정확히 어떻게 끼워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도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온 사진이랑 비슷하게 끼웠으니까, 대충 맞는 거겠지. 내가 넥타이를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자, 자리로 돌아온 오토나시 씨가 말을 걸어왔다.


“어머, 프로듀서 씨. 넥타이핀인가요?”

“네. 방금 치하야가 선물해준 건데... 이렇게 끼우는 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전에 써본 적이 없어서.”

“네? 치하야짱이...?”

“네. 감사 선물로 받았어요.”

“와아아아......”

“음? 오토나시 씨, 얼굴이 빨간데, 혹시 열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에요!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오토나시 씨는 어째선지 얼굴을 붉히셨다. 무슨 일이지...?

  나는 계속해서 넥타이핀 사용법 예시를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넥타이핀 선물의 의미’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링크를 클릭해 한 블로그에 접속했다.


“...!”


  블로그 포스팅의 내용을 쭉 읽어보자, 단숨에 오토나시 씨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넥타이핀 선물의 의미◎ 넥타이핀에는 ‘당신을 가지고 싶어요’, 또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어요’라는 의미가 있어요! 속박적인 의미나, 부적과 같은 의미를 지닌답니다.]


  ...에.

  에이. 모르고 그런 거겠지. 음. 치하야는 인터넷 문물과 친하지 않으니까. 음음. 당연하지.

  넥타이핀이라는 거, 꽤나 편하구나. 인터넷에서 말하는 의미부여보다 치하야가 특별히 생각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줬다는 게 더 중요하겠지.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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