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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6장, 神SUMM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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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9, 2020 16:03에 작성됨.

 [도쿄도 니시타마군 오쿠타마마치 히카와 계곡 ------ 키사라기 치하야]


  계곡에서 물장난을 하는 후타미 쌍둥이와 주변의 모습을 찍은 뒤, 소녀는 동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까지 그늘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하기와라, 마코토, 미나세의 3인조도 어느새 바비큐 그릴 주변에 모여 있었다.


“프로듀서! 고기를 몇 번이고 뒤집으면 육즙이 빠져 나가서, 처음 뒤집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구요! 이 고기를 보세요. 이렇게 되면 나중에 여러 번 뒤집어야 해서 문제가 생길 거예요! 집게, 이리 주세요!”

“...에, 유키호?! 뜨거우니까 내가 해도 괜찮은데?!”

“용납할 수 없어요! 프로듀서는 그늘에서 쉬고 계세요!”

“어어?!”


  소녀는 –여러 가지 의미로-활기 넘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뒤,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파라솔 밑 그늘에 앉았다. 잠시 후, 짧은 머리에 보이시한 동료, 키쿠치 마코토가 소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 치하야. 사진도 찍어?”

“응. 프로듀서한테 이것저것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한 번 볼래?”

“봐도 돼?”

  마코토는 카메라를 받아 들고 사진 몇 장을 넘겨보았다. 그러다 평소와 달리 활발한 모습의 하기와라 유키호가 담겨 있는 사진에서 멈춰 섰다.


“헤에, 유키호, 이 사진에서 엄청 박력 넘치게 나왔네. 치하야는 사진을 잘 찍는구나.”

“그래? 고마워, 마코토.”

“이것도 잘 나왔네. 유키호는 야키니쿠에 진심이니까, 헤헤.”

“마코토는 하기와라 씨랑 친하지?”

“응. 유키호는 뭔가 여자력 넘치는 느낌이니까, 동경하게 되어버린다고 할까나~”

“여자...력?”

“그, 유키호의 정숙함이라던가, 부드러운 면이라던가. 숙녀 같은 느낌이 들잖아.”

“흐음... 그런 뜻이구나.”


  소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코토에게 물었다.


“저기, 마코토. 마코토는 순정 만화라던가, 방금 전의 여자력이라던가, 이것저것 알고 있지?”

“에?! 아, 응. 그렇긴 한데... 헤헤, 역시 좀 부끄럽네.”

“그러면... 나는, 그런 면에서는 어떻다고 생각해?”

“...에?”

“여자력이라던가, 귀여움이라던가, 역시 부족하지 않을까, 하고 고민이 돼서...”

“으-음. 치하야도 치하야 나름대로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귀여운 멘트 같은 건 알려줄 수 있어.”

  그 때였다. 물놀이를 마친 아미와 마미가 소녀와 마코토가 앉아 있는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우~후~후~? 치하야 언니, 큐트의 세계에 눈을 뜬 거야~?”

“마미들이 퓨어링~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구~?”

“어? 아니, 꼭 그런 건...”

“자자, 사양하지 말고! 마코찡, 치하야 언니를 붙잡아 줘!”

“어?! 알겠어!”

“ㅈ, 잠깐만, 마코토?! 아미, 마미,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도쿄도 니시타마군 오쿠타마마치 히카와 계곡 ------ 프로듀서]


  유키호에 의해 그릴 앞에서 쫓겨난 나는 아즈사 씨가 채소를 손질하는 것을 돕다가, 적당히 그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날이 워낙 뜨거워서 너무 오래 일하다가는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옆에 물이 흘러서 그런지 그늘에 있으면 그나마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물 한 병을 비우고 뒤로 살짝 누웠을 때, 마미가 다가왔다.


“오빠오빠, 잠깐 와 볼래?”

“응? 왜 그래, 마미?”

“우~후~후~? 기대하라구?”

“아니, 그래서 대체 뭘...”

“조용조용! 일단 묻지 말고 따라오시라!”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마미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반대쪽 파라솔에 가까워지자, 마코토, 아미와 함께 서 있는 양 갈래 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어라, 저건 누ㄱ...... 치하야?!”

“ㄲ, 꺄- 삐삐삐삐... 모두의 아이돌, 치이-짱이에요...!”

“...”

“저기 오빠, 뭐라도 반응해주지 않으면 치하야 언니가 상처받을 거라구?”

“......”

“저기, 프로듀서? 많이... 이상한가요?”

“제가 전수해준 필살 멘트는 괜찮지 않았나요?”

-주륵.


“오빠가 얼어붙은 채로 코피를 쏟고 있어-?!”

“프로듀서!!!”

-찰칵, 찰칵 찰칵.

“하루카는 언제 왔어?! 그보다 왜 찍고 있는 거야?!”

“릿짜-앙! 구급상자가 필요해!”


  내가 의식을 차린 것은 약 5분이 지난 뒤였다. 단순히 치하야의 양 갈래가 너무 귀여워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아마 날도 더운데다 최근 과로한 것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귀여운 걸 보고 코피를 쏟는다니, 만화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눈을 떠 보니 아미, 마미와 치하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가 살아 있어!”

“오빠가 이대로 깨어나지 않으면 오빠의 책상 서랍에 숨겨진 땅콩전병을 어떻게 나눠야할지 걱정하고 있었어!”

“아니, 그런 건 걱정하지 마... 그보다 내 땅콩전병은 어떻게 알았어?!”


  이 녀석들, 당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챙겨둔 거였는데, 오토나시 씨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내 책상을 헤집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아미, 마미! 프로듀서님을 귀찮게 하지 마! 자, 이리 와서 좀 도우렴.”

““네에-””


  아미와 마미가 떠나자 나는 치하야와 둘이 남겨졌다. 어째선지 어색한 기류가 돌아서 나는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머리, 풀었네.”

“죄송해요, 프로듀서!”

“에?”


  치하야는 다짜고짜 나에게 사과했다. 아니, 딱히 사과할 일은 아닌데. 코피야 치하야 때문인 것만은 아니고, 무엇보다 양 갈래가 엄청 귀엽기도 했고.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저, 귀여운 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괜한 짓을 해서 프로듀서를 이렇게 만들고... 한심하다고 생각해요. 역시 음악에만 집중하기 위해 삭발을 하는 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만 두자.”

“그렇지만...!”

“자, 일단 진정하고. 삭발 같은 건 프로듀스 정책상 절대 금지야. 나, 치하야의 긴 머리를 좋아하거든. 아마 팬들도 그럴 거고.”

“프로듀서...”

“그리고, 양 갈래도 엄청 잘 어울리던걸. 멘트는 마코토가 가르쳐 준 거지?”

“아.”

“음? 치하야?”


  치하야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고는 딱 봐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을 붉혔다. 아마 진정되고 나니 조금 전의 일이 기억나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치하야? 왜 그래? 얼굴이 빨간데. 혹시 더워?”

“......아무것도 아니에요. 역시 잊어주세요!”

“치하야?!”


  치하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미키가 잠들어 있는 반대쪽 그늘로 도망쳤다. 흐음. 이러면 배드 커뮤니케이션이 되려나. 그래도 귀여운 치하야를 볼 수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나중에는 양 갈래를 컨셉으로 화보 같은 걸 찍어도 좋겠는걸.



[도쿄도 니시타마군 오쿠타마마치 히카와 계곡 ------ 키사라기 치하야]


  소녀는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급한 대로 일단 프로듀서의 시야에서 벗어나 반대편 그늘로 도망쳐 왔다. 아무리 분위기에 휩쓸렸다지만, 꺄- 삐삐삐삐라니, 치이짱이라니. 꼬마아이일 때도 그런 짓은 한 적이 없는데.

  소녀는 그늘에 앉아 무릎을 감싸 안고 고개를 푹 숙였다. 프로듀서가 귀엽다고 해준 것은 내심 기뻤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모습을 다른 때에도 보이는 것은 역시나 수치스러웠다.

  소녀가 몸부림치는 사이, 옆에 잠들어 있던 미키가 부스스 깨어났다.


“아, 치하야 씨. 좋은 아침인거야~”

“지금은 아침이 아니지만... 미안, 미키. 깨워버린 것 같네.”

“미키는 배가 고파서 깬 거니까, 치하야 씨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는 거야. 아후.”


  막 깨어난 미키는 삐죽 튀어나온 금발을 정리했다. 소녀는 그런 미키를 바라보며 미키의 뛰어난 스타일을 다시 체감했다. 귀여운 외모에 샛노란 금발, 중학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돋보이는 몸매까지. 막 깨어난 미키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과 같은 모습이었다.


“치하야 씨, 혹시 미키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무리 미키라도 그렇게 쳐다보면 부끄러운 거야~”

“미안해, 미키는 역시 스타일이 좋구나, 하고 생각했어.”

“미키, 그런 이야기는 자주 듣지만, 그래도 치하야 씨가 칭찬해주니까 기뻐! 아, 그래도 불편한 점도 있어. 중학교에 입학할 때 샀던 속옷들이 안 맞아서 금방 다 버렸거든. 몇 개는 언니가 가져가서 입고 있는 거야.”

“ㄱ, 그렇, 구나...... 큿.”


  굴욕적이지만 소녀는 중학생 때 이후로 속옷을 새로 산 일이 거의 없었다. 낡아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특별히 새 것이 필요할 일이 없었다. 아즈사에게 에둘러 물어본 뒤로는 조언에 따라 매일 아침 우유를 마시고는 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어서 내심 신경 쓰고 있었다.


“맞다, 미키, 좀 전에 치하야 씨의 양 갈래 머리를 본 거야.”

“그걸 봤어?!”

“아미랑 마미가 큰 소리를 내서 깨 버렸던 거야. 잠깐 보고 다시 잠들었지만.”

“그랬구나... 혹시, 어땠어?”

“미키적으로는 엄청 귀여웠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그래?”


  소녀는 다시 부끄러워졌다. 이제는 귀여움이라는 정의가 어떤 식으로 내려지는 것인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치하야 씨는 치하야 씨 있는 그대로가 좋은 거야.”

“응? 그건 무슨 뜻이야?”

“미키, 노래하는 치하야 씨를 보고 있으면 분위기에 압도되어버리는 걸. 그리고 평소에 노래를 가르쳐주는 치하야 씨는 상냥하니까, 그 갭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

“갭...?”


  프로듀서도 대충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특별히 의식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마 다른 이들에게는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 평소의 모습이 꽤나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무대에서는 엄청 멋있고, 평소에는 상냥하니까 좋은 거야. 물론 가끔 잔소리 하는 건 좀 그렇지만.”

“하지만 미키, 레슨은 전력으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

“우으- 미키도 나름 열심히 하고는 있는 거야. 노래도 댄스도 그럭저럭 되는 걸.”

“미키는 재능이 있으니까, 조금 더 진심으로 노력하면 분명 더 대단한 아이돌이 될 거라고 생각해.”

“아핫, 귀찮은 건 싫어도, 치하야 씨가 칭찬해주는 건 기쁜 거야.”

“미키도 참... 후훗.”


  소녀는 -본인은 아직 부족하다고 하지만- 음악에 조예가 깊었기에, 평소 동료들의 보컬 트레이닝에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미키는 아이돌 활동이나 레슨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소녀가 노래를 가르쳐줄 때면 그 어떤 레슨보다도 열심히 배웠다. 소녀는 그런 미키를 마치 여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노래를 좋아해주는 것도 기뻤지만, 빛나는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미키를 바라볼 때면 무심코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르던 유우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미키 본인은 싫어하더라도 종종 잔소리와도 같은 조언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저 재능을 단순한 노력 부족으로 썩히는 것은 노력파인 소녀에게는 쉽게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치하야 씨는 그런 걸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미키는 이미 충분히 치하야 씨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고 난 뒤, 미키는 툭툭 털고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고는 프로듀서와 다른 동료들이 있는 테이블 쪽을 바라보았다.


“미키, 배고프니까 하루카한테 주먹밥 만들어달라고 할 건데, 치하야 씨도 같이 가지 않을래?”


  소녀는 미키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소녀는 지난번에 요리 방송에 나간 후로, 타카츠키와 가나하에게 간단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레시피들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중에서는 야키니쿠를 이용한 주먹밥 레시피도 있었다. 


“저기, 미키. 가나하 씨가 주먹밥 레시피를 가르쳐 줬는데, 나라도 괜찮으면 만들어 줄까?”

“치하야 씨가, 주먹밥을? 미키, 엄청 기쁜 거야!”


  예전 같았다면 소녀가 직접 요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영양 밸런스 정도야 신경 쓰고 있지만, 전에는 저녁식사를 대충 넘기고 나머지는 보충제로 해결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요리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 방송을 계기로 요리도 간단한 것부터 하나 둘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요리라는 형태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소녀가 그만큼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양 갈래 해프닝도 사실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프로듀서야 전에도 괜찮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만, 소녀는 여전히 자신의 비주얼 어필이나 귀염성 부족 등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발군의 스타일을 지닌 호시이 미키를 바라볼 때면 그런 걱정이 더욱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키가 직접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기에, 소녀의 마음은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노력해나가는 과정에서 꼭 모든 것을 바꿀 필요는 없구나, 이전의 자신에게서도 소중히 간직할 부분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 미키.”

“응? 어떤 거?”

“전부 다.”

“...? 잘 모르겠지만 도움이 됐다면 기뻐!”


  소녀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미키에게 감사를 표했다. 미키도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였다.

  미소 짓는 두 소녀의 주변에는,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짝을 찾는 매미의 울음소리,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편안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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