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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5장, arcadia-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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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7, 2020 23:18에 작성됨.

-제5장-

arcadia


[도쿄 스이게츠 학원 고등부 2학년 복도 ------ 히야마 레이나]


“레이나, 안녕. 키사라기도.”

“아키타 군, 안녕!”

“안녕하세요. 아키타 씨.”

  그 많던 벚꽃 잎은 눈 깜짝할 새에 다 져버렸다. 더위가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하복을 입는 친구들도 많아졌다. 나는 물론이고, 치하야도 블레이저 대신 반팔 세일러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치하야는 부쩍 바빠졌다. 이런 저런 음악 방송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인기가 많아진 것이 이유였다. 교내에서도 꽤 알려져서, 자세히는 아니어도 ‘우리 학교에 키사라기라는 애가 아이돌을 한다더라’는 정도는 다들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가끔씩 CD에 사인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도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선뜻 다가오기가 어려웠는지 나에게 사인을 받아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치하야는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 주었기 때문에, 직접 받으러 와도 괜찮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례합니다-!”

“어서 와, 레이나, 치하야.”

“안녕안녕-!”

“다들 와 있었네.”


  신이치 군, 타로 군, 그리고 사토 군은 이미 부실에 와 있었다. 타로 군은 베이스를 조율하고 있었고, 신이치 군과 사토 군은 무언가를 조립하고 있었다.


“짜잔! 완성!”

“힘들었다... 이게 뭐라고...”


  선풍기였다. 아무리 환풍기가 있다고는 해도, 밴드부실은 문을 닫으면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서 금방 더워졌다. 그래서 지난주쯤에 이번 분기 예산으로 선풍기를 주문했는데, 신이치 군과 사토 군이 지금 막 조립을 끝낸 것 같았다.


“저기, 레이나. 역시 우리도 에어컨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될 거 같은데.”

“그렇지만 우리는 신설된 부활동이라서 가난한 걸. 당분간은 선풍기로 버텨야 돼.”

  신이치 군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걸. 우리가 열심히 활동하면 지원이 조금 더 늘어날지도?


“만드느라 고생했겠네. 고마워, 타도코로 씨, 사토 씨.”

“이 정도쯤이야!”


  치하야는 두 사람에게 감사를 전했다. 막 조율을 끝낸 타로 군이 입을 열었다.


“많이 편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네, 치하야.”

“그게 무슨 뜻이야, 카츠라기 씨?”

“그 왜, 처음에 우리가 결성되고 나서도 꽤 한참동안 치하야가 말을 놓지를 못해서 고생했잖아.”

“맞아 맞아, 그랬었지. 아직도 사토 씨, 마이크 좀 연결해주시겠어요? 하던 치하야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응...?”

“정말, 너희, 치하야를 놀리지 마!”


  치하야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치하야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것은 사실이었다. 맨 처음에는 삐걱거리기도 했고, 어떻게 해봐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느낌이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타로 군과 신이치 군이 상황을 정리해준 덕분에 언젠가부터 치하야도 우리를 편하게 대해주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는 말도 편하게 놓고 있다. 이 정도면 엄청난 발전이라고 할 만 했다.


“자, 그래서. 오늘 우리가 모인 이유는-”


  나는 모두를 번갈아 바라보며 운을 띄웠다. 그 후 들고 온 포스터를 펼쳐 보이며 중대발표를 하듯이 말했다.


“스이게츠 서머 페스티벌! 우리 밴드부도 전격 출전 결정이야!”

“올해도 쟁쟁하겠는 걸.”

“우리도 무대에 서는 이상, 목표는 역시 우승으로 해야겠지.”

“우승하면 에어컨을 달아 달라고 해 보자!”

“하지만 사토, 서머 페스티벌이 끝나면 금방 가을인데?”


  타로 군과 신이치 군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치하야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보니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작년 서머 페스티벌 때 치하야도 공연했었나?”

“응. 그 때는 합창부에서 다 같이. 그래도 이렇게 소규모 그룹으로 해본 적은 없어.”

“기대된다. 그치?”

“응. 우리끼리 본격적으로 무대에 서는 건 처음이니까. 기대되네.”


  잠시 후, 나는 분위기를 정리하고 말을 이었다.


“자자, 그래서, 오늘은 무대에서 선보일 메인 곡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연 준비 과정에서 곡을 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매우 중요하다. 프로페셔널 밴드라면 자체적으로 음악을 프로듀싱해서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와 같은 스쿨 밴드는 주로 대중적인 음악을 편곡하거나 커버하는 방식으로 무대를 완성한다. 때문에 곡을 선정하는 것은 공연의 분위기 자체를 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밴드곡 중에 유명한 게 어떤 게 있더라? 랏도? 미스치루?”

“난 스피츠 곡도 좋은데. 로빈슨이라던가, 아리가토 상이라던가.”

“잔잔하고 감미로운 곡도 좋지만, 역시 임팩트가 있는 쪽이 좋지 않을까? 치하야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어떤 곡이라도 좋아. 하지만 임팩트라면... 헤비메탈일까.”

“ㅎ, 헤비... 메탈...?”


  치하야는 아는 음악의 범위가 넓으니까,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해보는 거겠지. 하지만 역시 헤비메탈은 무리일지도... 기타랑 베이스도 그렇겠지만, 헤비메탈의 드럼 라인은 아직 나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잠시 후, 가만히 듣고 있던 사토 군이 입을 열었다.


“저기, 헤비메탈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은 어때? 조금 열혈한 느낌으로. 메카물 오프닝처럼.”

“메카물...?”

“아, 치하야는 잘 모르려나? 왜, 그 커다란 로봇이 나와서 싸우는 애니메이션 장르야. 건O이라던가, 알O노아라던가. 그런 애니메이션들은 오프닝 곡이 엄청 파이팅 넘치거든.”

“애니메이션은 본 적 없지만, 그런 계통의 음악이라면 들어본 적 있어.”


  나도 로봇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건O이나 마O가 같은 유명한 것들은 들어본 기억이 있다. 로봇 이야기가 나오자 왠지 눈이 초롱초롱해진 타로 군이 말했다.


“그럼 「arcadia」는 어때? 제노그라시아라는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인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거든.”

“제노그라시아! 나도 어렸을 때 챙겨 봤는데! 프라모델도 샀었어. 지금도 내 책상 선반에 있거든.”

“아아, 조종사와 메카가 교감을 나누며 성장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였지~”

“저기, 즐거운 건 좋은데, 그 arcadia라는 곡, 일단 들어보는 게 어때?”


  남학생 세 명이 동시에 저렇게 흥분하는걸 보니, 그 제노그라시아라는 애니메이션, 꽤나 유명했나보네. arcadia라는 곡도 꽤 마음에 들었다. 빠른 리듬에 파워풀한 보컬, 그리고 기타 리프와 어우러지는 바이올린 선율도 멋있었다.


“멋있지, 멋있지! 이야,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응. 좋은 곡이라고 생각해. 이 곡이라면, 확실히 인상적일 것 같네.”

  남자애들은 이미 대찬성인 것 같고, 치하야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는데...


“그런데 얘들아. 이 곡, 바이올린 선율이 중요한 역할인데, 바이올린은 어떻게 하지?”

“““아.”””


  들떠 있던 남학생들이 일제히 얼음이 됐다. 멜로디는 기타로 편곡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바이올린이 내는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사토, 너 바이올린은 못 다뤄?”

“전자 음악 믹싱이라면 조금씩 배우고 있지만, 클래식 악기는 무리야.”

“명색이 밴드부인데, 악기 하나 정도는 배우라고.”

“언제는 잡무 담당이라고 하더니. 너무 태도가 빨리 변하는 거 아니야?”


  신이치 군과 사토 군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치하야가 입을 열었다.


“저기, 얘들아. 나, 조금이지만 바이올린을 켤 수는 있어.”

“오? 대단하네, 치하야!”

“그렇지만, 노래하면서 바이올린을 켜는 건 힘들 텐데, 괜찮아?”

“노래하면서 바이올린을 켜본 적은 없지만... 일단 연습해볼게.”

“아, 그리고 이 곡, 1절에 들어갈 때 보컬과 바이올린이 겹치지 않는 부분도 있어서, 정 어려우면 겹치는 부분은 줄이고 바이올린 솔로를 살리는 쪽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러면 arcadia로 결정이야?”

“좋아. 이 곡으로 하자.”


  곡을 결정하는 건 비교적 수월했지만, 치하야가 어째선지 고민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길래,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치하야, 왜 그래? 역시 바이올린은 무리일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역시 로봇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잘 모르겠어서... 곡을 들어봤다고는 해도, 그 배경 스토리에서 나오는 감정 선을 어떻게 담아내야할지 잘 모르겠어.”

“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실 이 곡을 부르는데 굳이 로봇 애니메이션의 감정 선까지 이해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치하야는 프로니까, 그만큼 음악을 진심으로 대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도 로봇 애니메이션을 잘 몰랐기에, 뾰족한 수를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 같이 고민하던 중, 사토 군이 아이디어를 냈다.

“저기, 다들 이번 주말에 한가해? 치하야는 어때?”

“이번 주라면, 특별한 스케줄은 없어.”

“그러면, 다 같이 오다이바에 가보는 건 어때?”

“오다이바...?”

“응! 오다이바에는 실제 사이즈 건O도 있고, 과학관에 전시된 로봇도 있거든. 다양한 애니메이션 굿즈도 있을 거고.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냥 놀러가고 싶은 건 아니고, 사토?”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토 군의 아이디어를 듣고 잠시 생각하던 타로 군이 입을 열었다.


“괜찮지 않을까? 확실히 오다이바에는 이런저런 것들이 많기도 하고, 치하야는 아이돌 활동을 하니까 앞으로 더 바빠질 거 아니야. 그 전에 조금이라도 기회가 될 때 다 함께 어딘가 놀러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어때?”

“내 말이 그 말이야! 어때, 타도코로?”

“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 치하야, 레이나, 너희도 괜찮아?”

“나는 괜찮아. 치하야는?”

“일단은 괜찮아. 프로듀서께 말씀드려서 최대한 시간을 비워 볼게.”

“좋아, 그러면 오다이바 관광으로 결정!”

“사토, 관광도 좋지만, 일단은 로봇물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니까?”

“이래도 저래도 좋은 거지!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 타도코로.”


  왠지 본 목적보다는 관광이 우선시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괜찮지 않을까? 다 같이 놀러가는 것도 단합에 도움이 되겠지. 치하야랑 같이 놀러 나가는 것도 처음이니까. 기대되네.



[도쿄도 오타구 765 프로덕션 ------ 프로듀서]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안녕, 치하야! 오늘은 기분 좋아 보이네.”

“네. 밴드부에서 여름 시즌 축제에 나가기로 했거든요.”

“오, 그 때 이야기한 부활동, 열심히 하고 있나보구나. 아이돌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역시 부활동도 좋지. 청춘이구나. 치하야도.”

“정말, 프로듀서...”


  요즘 치하야는 전보다 밝아진 느낌이다. 점점 아이돌 랭크가 오르면서 꿈에 다가서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예전에 이야기했던 부활동-사실 신이치와 같은 밴드부였지만-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거 같았다. 치하야의 학교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 성격도 밝아지고 있으니까 긍정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기, 프로듀서. 오늘의 연기력 레슨 말인데요...”

“응응.”

“저, 건O이 보고 싶어요.”

“...에?”


  신이치, 너는 치하야한테 뭘 가르쳐주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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