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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2장. Snow Whit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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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4, 2020 22:35에 작성됨.


[도쿄 스이게츠 학원 고등부 2학년 A반 ------ 카츠라기 타로]


  시계는 12시 30분을 가리켰다. 왠지 평소보다 무료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도 그렇게까지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나름 수업은 흥미를 갖고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은 이상하게 수업에 눈이 가지 않았다. 나는 창가에 기대어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이. 카츠라기.”


  타도코로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사토는 2단으로 쌓은 도시락 통을 양 손으로 들고 왠지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타코야끼래.”

“어째 점심보다는 간식에 가깝지 않아? 나는 양식 같은 것도 좋아하는데.”

“너희, 얻어먹는 주제에 요구가 많은 거 아니야?”

“먹어주는 거지. 네가 요리 실력을 길러 레이나에게 이름이 불릴 수 있도록.”

“시끄러. 옥상으로 갈 거지?”

“늘 가던 대로.”


  나는 타도코로와 사토를 따라 교실을 나섰다. 옥상이면 오늘도 키사라기가 있으려나, 하고 생각하던 순간, 복도 끝 D반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 쌍이 보였다. 니시야마 선배와 키사라기였다. 흔치 않은 조합이네, 하고 생각했다 왜 갑자기 니시야마 선배가 2학년 층까지 찾아와 키사라기를 불러냈을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싶어 잠깐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먼저 올라가 있어. 잠시 들를 곳이 있어서, 바로 따라갈게.”

“응? 알겠어. 빨리 와.”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을 하며 C반 앞 복도에 멈춰 서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둘과는 거리를 조금 둔 상태라 대화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다. 분위기 상으로는 그렇게 화기애애해보이지는 않았다. 한 2분 정도 지났을까, 키사라기가 니시야마 선배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나를 지나쳐 복도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니시야마 선배는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C반 앞에서 죽치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말을 걸었다.


“타로, 누구 기다려?”

“아뇨, 사실은 선배가 저희 복도에 와 계셔서, 무슨 일인가 해서요.”

“그렇구나. 잠깐 걸을까? 소프트콘 먹을래?”

“뭐... 좋아요.”


  타도코로랑 사토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왠지 지난 번 연습 시간의 일도 있고,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점들이 있어서 니시야마 선배에게 전말을 듣기로 했다.


“키사라기, 퇴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네? 합창부요?”

“응. 지난번에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타나카도 조금 걱정된다고 해서, 본인에게 직접 물어봤는데... 개인 사정도 있고, 기존에 못 나온 것도 책임을 느끼고 있다면서. 합창부를 그만 두는 쪽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어.”


  바보 같다. 책임감을 느낀다면 틈틈이 나와서 함께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키사라기라면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1학년 때 합창부에서 보였던 모습, 그리고 일상적으로 고립된 채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상처로 인해 쌓은 벽, 다른 이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킨 천재. 중학생 시절의 그 녀석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죠?”

“뭐, 특별한 수가 있나.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네. 곧 콩쿠르 연습을 시작할 텐데, 실력자가 이탈해서야...”

“그렇네요...”


  니시야마 선배는 착잡해보였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행동을 취할 생각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원래 선배는 나서서 행동하는 대신 뒤에서 좋게 좋게 가는 편이었다. 게다가 니시야마 선배가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키사라기의 마음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건 내 쪽이었다. 그 날 점심시간 이후 타도코로 녀석이 잊을 만하면 키사라기에 대한 것을 물어와서 그랬는지, 아니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유를 끼워 맞춰보면 지금의 키사라기에게서 그 때의 그 녀석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이! 카츠라기-!”

  타도코로의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 왔다. 바로 위를 올려다보니 녀석은 옥상 난간에 기대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토는 그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뭔가 잊어버린 것 같지 않아-?”


  잊어버린 건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오래 흐른 것은 사실이었다. 사토의 타코야끼, 남겨주지 않았으려나.


“아, 내가 너무 오래 잡고 있었던 거 같네. 미안.”

“아니에요, 선배.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니시야마 선배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학교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때, 등 뒤에서 니시야마 선배가 나를 불렀다.


“아, 타로.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할게.”

“네? 어떤 부탁이에요?”

“무리한 부탁일지 모르지만... 키사라기, 챙겨줬으면 좋겠어.”


  갑작스러웠다. 물론 최근 신경을 쓰고 있던 건 맞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선배가 왜 내게 그런 부탁을 하는 걸까. 


“네...? 노력은 해 볼게요. 그렇지만 저도 키사라기랑 친분이 없어서...”

“알고 있어. 그래도 역시 팀워크나 관계 조율은 네가 제일 잘 하는 것 같아서. 그 애, 음악에는 누구보다 진심이야. 합창부에 남게 해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그래도... 음악에 대한 부분을 놓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어.”


  아, 멋진 말이네- 하고 생각했다. 선배, 역시 나긋나긋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요. 물론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해 달라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얼떨결에 승낙하고는 친구들이 기다리는 옥상으로 향했다.


“늦어서 미안.”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뭐야, 먹고 있던 거 아니었어?”

“사토가 뚜껑 여는 순간이 보여주고 싶대.”

“뭐? 기다리자고 한 건 너였잖아.”

“...그럼 열어볼까.”


  타도코로는 츤데레 같은 반응을 보이더니 사토를 재촉했다. 조금만 솔직했다면 여학생들에게 더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까 그건 니시야마 선배였지? 합창부 일이야?”


  사토가 물어왔다.


“응. 부원 일 관련해서 논의할 게 있어서.”

“작년부터 왜 니시야마 선배랑 종종 같이 있나 했더니, 합창부여서 그랬던 거구나.”

“그걸 봤으면서도 내가 합창부인 걸 몰랐다고?”

“니시야마 선배는 성격이 좋으니까, 그냥 챙겨주는 거라고 생각했지. 그보다 네가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잖아.”

“그랬...던가.”


  나는 여전히 생각이 복잡했다. 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오늘은 키사라기가 옥상에 있지 않았다. 그러고는 티격태격하는 둘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들이라면, 상담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있잖아. 할 말이 있어.”

“뭔데?”

“왜 너 답지 않게 쭈뼛거려. 뭐 죄라도 지었어? 아니면 기다려준 거에 너무 감동했다던가?”

“-키사라기에 대한 일인데.”

“...에?”

  

  ...왜 그렇게까지 놀라는 거야. 타도코로는.

  


[도쿄 스이게츠 학원 고등부 옥상 ------ 타도코로 신이치]


“그만 둔다고? 합창부를?”

“응. 니시야마 선배한테서 들은 거지만,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 같아.”


  이상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니시야마 선배의 말 중에서 “음악을 놓지 않게 해줬으면” 이라는 부분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키사라기는 아이돌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니시야마 선배의 상냥한 생각은 훌륭하지만, 분명 키사라기는 음악을 놓으려고 합창부를 그만 두려는 게 아닐 것이다. 지난 토요일, 만화에 나오는 여고생마냥 입에 토스트 한 장 물고 뛰쳐나가던 뮤 삼촌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이돌 업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담당 프로듀서라는 사람이 주말에도 중요한 회의를 할 만큼 바빠지기 시작했다면, 분명 아이돌 본인도 점차 활동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합창부를 그만 두려고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음악 자체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키사라기, 합창부에서는 어때?”


  나는 최대한 돌려서 의미를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그냥 아는 대로 이야기해버려도 상관없지만, 뮤 삼촌이 했던 이야기도 있는데다 본인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내가 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합창부에서도 딱히 존재감이 있지는 않는데... 실력은 최상위지만, 선배들이랑 마찰이 있는 편이야. 얘기했듯이 이번에도 부장 선배랑 그런 일이 있었고.”

“저기...”

“그러면 역시 문제는 음악이 아닌 거네.”

“얘들아...?”

“그런가... 그러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사토가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카츠라기와 나는 너무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었던 나머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세 번째에 사토가 폭발했다.


“아, 진짜! 너희, 지금 엄청 이상한 거 알아?”

“...에?”

“왜 그래, 사토?”

  

  카츠라기와 나는 오히려 네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사토를 쳐다보았다.


“생각을 해 봐. 키사라기랑 너희가 무슨 사이인데? 타도코로, 넌 지난 금요일 점심시간 전까지 누군지 알지도 못했고. 카츠라기, 너도 합창부라고는 해도 그 전까지 별다른 얘기조차 안 했잖아? 그런데 타도코로는 오늘 오전 내내 쉬는 시간 마다 키사라기, 키사라기 타령을 하지를 않나. 카츠라기는 갑자기 와서 음악을 지켜주네 뭐네 하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지 않나, 딱 들어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음. 확실히. 그럴지도. 잘 떠올려 보면 지난 금요일 오후랑 오늘 오전에도 다이고나 카츠라기를 붙잡고 키사라기에 대한 것을 묻기는 한 것 같다. 그렇지만, 뭔가 비밀 아닌 비밀을 알게 되어버리면 관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물론 뮤 삼촌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에도 그랬던 건 아직도 의문이기는 하다. 왜 그렇게까지 신경이 쓰였을까? 진짜 운명론 같은 건가? 내가 또 철학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그러고 보니 다이고에게서 들은 게 있는데.”


  카츠라기가 입을 뗐다. 


“오늘 아침에, 레이나가 키사라기랑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나봐. 공연 초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거 같은데.”

“뭐? 이번 주 토요일 공연에 대한 이야기였을까? 키사라기를 초대한 걸까?”


  사토 녀석. 우리가 이상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너는 언제 레이나의 공연 스케줄까지 꿰고 있었던 거냐.


“토요일에 무슨 공연이 있는데?”

“몰라? 레이나네 밴드가 나오는 소형 라이브라고. 인디즈 나이트.”

“그런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인디밴드 연주회 같은 걸까. 나도 중학생 때는 기타를 배운 적이 있으니까, 밴드 라이브에 관심이 없지는 않지만... 사토는 조금 전까지 화를 내던 기세는 어디 가고 갑자기 눈이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같이 갈래? 인스타그램 페이지에서 티켓 사전 예약도 해놨어. 세 장.”

“우리가 못 간다고 하면 어쩌려고 세 장씩이나 한 거야.”

“같이 가자. 아카바네에서 저녁 8시에 해.”

“아카바네?! 게이큐카마타에서도 한참이잖아!”


  여기는 도쿄도의 남쪽 끝인 오타구였고, 공연이 있는 아카바네는 북쪽 끝인 기타구였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게이큐 노선을 타고 출발해 시나가와에서 갈아타고도 수십 분은 족히 가야할 거리였다.  


“뭐 어때, 토요일이잖아. 다음 날은 일요일이라고.”

“그런가... 일단은 어울려줄게.”


  말은 귀찮은 것처럼 했지만, 사실 카츠라기와 나도 토요일에 별다른 일정이 없었으므로 사토와 함께 가기로 했다. 키사라기가 올지도 모르고. 잠깐, 키사라기가 오는 게 중요한 건가? 아무튼.


“꽃구경 계획은 없어? 더 늦어지면 벚꽃이 져버릴 텐데.”

“생각해보니 아카바네 근처에 벚꽃이 유명한 곳이 있지 않았나?”

“아카바네 상점가라면, 먹을 것도 많다고 들었는데.”


  사토와 카츠라기는 어느새 화제를 옮겨 아카바네 상점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만쥬라던가, 전병이라던가, 카라아게 같은 걸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이 반짝거렸다. 그래서 좀 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된 거냐고. 게다가 타코야끼도 먹었잖아. 저 둘은 한 번 꽂히면 들떠서 흐름을 잃어버리는 성향이 있는데, 지금도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게 카츠라기가 돈카츠 카레보다 카라아게 카레가 더 훌륭한 이유를 설파하던 중에, 수업 시작 5분 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시간이 좀 빠른 느낌이네.”

“네가 늦은 것도 한 몫 했어. 카츠라기.”

“그러게 미안하다니까...”


  우리가 깔고 앉았던 종이 상자를 다시 옥상 창고 옆에 세워 놓는 사이, 사토는 빈 도시락 통을 정리했다. 우리 셋은 옥상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며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에 도착해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스타를 열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에 사토가 말했던 라이브 이벤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인디...라이브......, 아니, 인디즈 라이브였던가?’


  사토에게 다시 물어보려다 괜한 관심을 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을 더듬으며 검색을 계속했다. 결국 다섯 번째 시도에 [아카바네 인디즈 라이브]라고 검색해서 찾아낼 수 있었다. 인디즈 나이트였구나. 방금 전에 들은 건데도 가물가물하네. 좀 더 세련된 이벤트 네임을 정할 수는 없는 걸까.


[인디즈 나이트 / 아카바네 오오미야 라이브 하우스 / 토요일 오후 8시 오픈, 8시 30분 시작]


  8시 오픈이라면... 넉넉히 점심 먹고 이동해서 아카바네 상점가를 즐기면 충분하겠지. 혹시 유명한 제과점이 있을까 검색해보려던 순간,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는 바람에 황급히 화면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자, 교과서 23쪽이다.”


  나는 역사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지라,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이고 저 사람이 이 사람인 거 같은데.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다는 생각을 하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교정에는 벚꽃 잎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당장 학교에서도 벚꽃을 볼 수 있는데, 꽃구경을 계획해서 떠날 이유가 있을까. 음. 하얀 꽃잎은... 예쁘구나... 후와암......


[도쿄도 사나가와구 음악 스튜디오 ------ 히야마 레이나]


“안녕하살법!”

“아, 안녕하살법 받아치기!”

“그게 뭐에요...?”

“에에-? 카구야 몰라?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네, 히야마는...”

“그걸 모르면 뒤처진 거예요?!”

  

  기타리스트인 타다노-이름은 츠바키라 모두들 타츠라고 부르지만- 언니와 베이시스트 야마우치 오빠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인사법을 나누었다. 인터넷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유명한 만화였던가?

  그 후로는 평소와 같이 연습을 진행했다. 연습실이 달라져서 스네어와 하이햇의 위치를 조정하느라 시간이 들기는 했지만, 연습 자체는 매끄럽게 잘 진행됐다. 컨디션도 좋았다. 이대로 할 수 있다면 치하야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이번 주 평일 연습은 사실 오늘이 전부야. 내일부터는 야마우치가 야근이라고 해서, 가능하면 각자 연습하고 토요일 리허설에서 최종으로 맞춰보는 걸로 할게.”

“네-”


  나는 스틱을 가방에 넣은 뒤, 스네어를 풀어 놓고 마지막으로 연습실에서 나왔다. 야마우치 오빠랑 나머지는 집이 멀어 먼저 역으로 나섰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타츠 언니는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같이 돌아갈까? 히야마.”

“좋아요.”


  연습실 건물을 빠져 나와 역으로 걸어가는 길, 언니는 평소와는 달리 별 말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학교에 대해서나, 이번 달에는 러브레터를 얼마나 받았냐는 등의 농담을 던질 만도 했는데, 오늘의 타츠 언니는 어딘지 모르게 멍해보였다.


“...언니?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응? 왜?”

“뭐랄까, 좀 지쳐 보여서요.”

“아, 응. 요즘 아르바이트 대신 회사 면접을 보고 있거든. 여기 저기 돌아다니려니까 좀 지쳤나봐. 역시 눈치가 빠르네. 히야마는.”


  언니는 웃어보였지만, 눈치가 빠르지 않더라도 누구나 평소와의 차이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고등학생의 신분이었지만, 대학에 다니고 있는 보컬 언니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사회인이라 다들 바빴다. 오늘도 공연이 있는 주 월요일이라 특별히 시간을 빼낸 것이었다. 베이스의 야마우치 오빠는 회사에서 승진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타츠 언니도 최근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입사면접을 보고 있다고 한다. 몇몇 인디밴드들은 메이저 데뷔를 노리기도 하지만, 우리 밴드는 태생적으로 취미생활로 시작된지라 다들 슬슬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바빠지고 있었다.

  타츠 언니와 나는 카마타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기 위해 걸었다. 나는 타츠 언니에게 치하야를 초대했다는 것을 자랑했다.


“저, 토요일 라이브에 학교 친구를 초대했어요! 아이돌을 하고 있는 애라서, 같은 엔터테이너끼리 앞으로도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서-”

“저기, 히야마.”

“네?”

“너에게, 해줘야 할 말이 있어.”


  강가의 보도를 지나던 중, 언니는 갑자기 멈춰서더니 어두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게... 뭔데요?”

“사실, 이번 공연이 우리 밴드의 마지막 공연이야.”

“...네?”


  날벼락이었다. 비록 작년에 비해 자주 모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해체라니, 순간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언니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짜...에요?”

“응. 다른 애들은 이미 알고 있어. 너한테는 이번 공연이 끝나고 이야기해주려고 했는데, 그래도 역시... 알려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언니는 그 후로 차분하게 각 멤버들의 상황과, 다들 바빠지는 바람에 지금처럼 연습을 하거나 공연을 서는 것이 어려울 거라는 점을 설명해줬다. 나를 걱정해서인지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언니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고통스러워보였다. 


“나가나와는 내가 아는 친구의 밴드로 이적하기로 했어. 마침 그 쪽에 건반이 빈다고 해서. 너도 다른 밴드를 알아봐줄 수 있는데...”

“언니, 전 괜찮아요.”

“...응?”

“저, 지난 한 해 동안 정말 즐거웠으니까. 이번 공연은 절대 아쉽지 않게 준비할거에요. 그리고 다들 연락하고 지낼 거잖아요? 막 저 모른 척 하고 그러시는 거 아니죠?”

“푸흐.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크레이프 먹고 갈까? 이 시간에도 여는 가게를 알거든.”

“좋아요!”


  다행히도 방금 전까지 울 것 같았던 언니는 웃는 얼굴로 함께 크레이프 가게로 향했다. 하지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뒤, 멀어지는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나 몰래 눈물을 훔쳤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씻은 뒤 책상 앞에 앉아 숙제를 꺼내 들었다. 잠시 후, 하얀 무언가가 펼친 교과서 위에 살며시 떨어졌다. 올려다보니 방충망이 열려 있었다. 벌레가 잔뜩 들어올 뻔 했는데, 다행히도 열린 틈이 작아 벌레가 통과하지는 못했다. 나는 방충망과 창문을 닫은 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하얀 무언가는 벚꽃 잎이었다. 우리 집 에서 벚나무가 심어진 거리까지는 꽤 멀었는데, 어디서부터 날아온 것인지 쉽게 추측이 되지 않았다.


“...어?”


  툭. 하고 액체 한 방울이 벚꽃잎 옆에 떨어져 교과서를 적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울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슬픈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생각을 뛰어 넘은 것 같았다.



[도쿄도 미나토구 M모 방송국 ------ 프로듀서]


“이야~ 765씨, 맞지? 아주 나이스했어! 실시간 코멘트도 뜨거워! 포텐셜이 보이는 아이돌이 나왔구만. 신인 프로그램은 이런 보람이 있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디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대기업에서 나온 쟁쟁한 신인들도 있었지만, 치하야가 파워풀한 보컬로 오디션장을 장악하는 덕분에 상위권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현장 총괄의 반응을 보니 이어진 TV 출연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았다.

  비록 신인 발굴을 위한 방송이었지만, 이 정도 규모의 TV 출연은 데뷔 후 처음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잘 잡아냈으니 이제 치하야도 본격적으로 지명도를 높일 길이 열렸을 것이다. 어쩌면 다음 달에 CD가 발매되고 나면 D3 랭크 승격도 가능할지 모른다. CD 샵 제휴 판촉 행사도 잡아 놓아야 하고, 스트리밍 서비스 쪽도 신경 써야 해서 바빠질 게 분명했다. 온라인 마케팅 쪽은 오토나시 씨가 담당하고 있지만, 오토나시 씨는 내가 입사한 이후 연수 프로그램이랑 회계 서류 쪽 일로도 충분히 과로하고 계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는 일은 덜어드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당장은 내가 치하야를 메인으로 하루카, 유키호의 3인조를 담당한다고 하지만, 나머지 후보생들이 데뷔할 때가 되면 어떻게 유지할 수 있으려나. 일단 리츠코도 사무직과 프로듀싱을 겸하고 있으니까 일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니지. 그래도 12명을 상대로 프로듀서 두 명이잖아. 사무원도 오토나시 씨 하나뿐이고. 치하야가 아직 E랭크니까 이른 걱정이려나. 때가 되면 사장님께서 인력을 보충해주시겠지.


“다녀왔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프로듀서.”

“수고했어, 치하야. 대단했어! 생방송 반응도 좋았대. 관계자 분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아.”

“다행, 이네요. 후우...”


  치하야는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치하야가 매일 아침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는 것은 들었지만, 최근 몇 일간 오디션 준비로 레슨에 매진하기도 했고, 현장의 긴장감도 있어서 꽤나 지쳐 보였다. 그만큼 무대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힘들지? 땀 닦아줄게.”

“네? 그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어요...!”

“그러지 말고, 자. 어서.”


  나는 타올을 들고 조심스럽게 치하야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요즘은 메이크업도 다 워터프루프라서 번질 염려는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얼굴은 조심하는 게 좋으니까.


“우읍... 프로듀서, 얼굴 정도는 스스로 닦을 수 있어요. 어린 애도 아니고.”

“아아, 그런가. 미안. 그래도 거울을 보고 닦는 것보다는 편할 것 같아서.”

“후훗, 친절하시네요.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아, 웃었다. 초반에는 다쟈레에 빵 터질 때 빼고는 잘 웃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종종 자연스러운 웃음도 보여주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걸 보니 기뻤다.


“피곤하지 않아? 조금 쉬었다 돌아갈까?”

“저기, 프로듀서. 지난번에 말씀 드렸던 거...”

“인디즈 나이트, 오늘이었지? 기억하고 있어. 8시 오픈이니까 아직 시간은 충분해. 피곤하면 쉬었다 가도 괜찮아.”


  치하야는 지난 월요일에 미니 라이브에 같이 가 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작은 인디밴드 연주회였는데, 치하야가 아이돌을 하는 것을 알게 된 친구에게서 티켓을 받았다고 했다. 특별히 같이 갈 사람이 없다고는 했지만 이럴 때라도 불러주니 영광이었다.

  내가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치하야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

“왜 그래, 치하야?”

“기억해주셨군요. 감사해요. 프로듀서.”

“당연한 일인걸. 담당 아이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지.”

“그러면 바로 이동해도 괜찮을까요? 사실은 그 쪽에서 들르고 싶은 장소가 있어서요.”

“치하야가 힘들지 않다면 괜찮아.”


  치하야와 나는 방송국을 나와 역으로 이동했다. 물론 사무소 전용 밴도 있긴 하지만, 기름값도 문제고, 도쿄의 퇴근 시간 도로는 항상 꽉 막혀있어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다. 나는 치하야와 함께 지하철의 몸을 실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슬픈 사실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치하야를 알아보는 사람도 얼마 없어서 지하철로 맘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 치하야는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치하야를 보며 ‘언젠가 A랭크의 톱 아이돌이 되면 이렇게 한가하게 지하철을 탈 수도 없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카바네 역에서 내렸을 때 시각은 6시 30분을 조금 넘어 있었다. TV 출연 후에 치하야가 먹은 거라고는 방송국에서 제공해준 샌드위치 두 조각이 전부였기에, 나는 주변에 적당한 식당이 있을지 찾아보았다. 아카바네 상점가는 사실 정오부터 한 잔 걸칠 수 있는 이자카야가 많은 곳이라서, 그냥 둘러 봐서는 치하야랑 저녁을 먹을 적절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프로듀서, 이쪽이에요.”

“응? 아,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지. 그런데 치하야, 저녁은 먹지 않아도 괜찮아?”

“방송국에서 샌드위치를 먹어서 지금은 괜찮아요. 프로듀서는 괜찮으신가요?”

“나는 점심을 많이 먹는 바람에. 치하야가 괜찮다면 상관없어.”


  점심 때 타루키 정에서 평소보다 조금 많이 먹었더니, 나는 아직까지도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은 점심도 점심이지만 치하야의 오디션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하루카가 챙겨 준 쿠키를 잔뜩 집어 먹은 게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서, 들르고 싶은 곳은 어디야?”

“이쪽이에요. 프로듀서.”


  왠지 평소보다 조금 들떠 보이는 치하야를 따라 도착한 곳은 소프트콘 가게였다. 아카바네 주변을 검색해보다가 얼핏 본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라, 여기는?”

“꽤 유명한 소프트콘 가게에요. 저, 아카바네에 온다고 해서, 와보고 싶어서요.”

“좋아, 내가 사 줄게.”

“네? 꼭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사실 경비로 처리하는 거지만 말이야. 치하야에게 감사를 받는 건 기쁘니까. 선의의 거짓말로 숨기는 편으로 해야겠다. 음음. 

  치하야와 나는 소프트콘 하나씩을 사서 공원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치하야는 왠지 엄청 진지한 얼굴로 소프트콘을 음미하고 있었다.

“저기... 프로듀서? 왜 빤히 쳐다보시는 거죠?” 

“하하, 치하야는 소프트콘을 좋아하는구나.”

“ㄱ..갑자기 웃지 말아주세요! 단 거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우유가 들어간 쪽을 좋아해서요.”

“미안미안. 치하야도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치하야도 조금씩 편하게 대해주고 있고. 음. 역시 아카바네에 오길 잘 했어. 치하야를 초대해준 친구가 누군지는 몰라도, 공연이 끝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꼭 감사를 표해야겠다. 나는 잠시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치하야는 다 먹은 소프트콘을 들고 왠지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저기, 프로듀서...”

“응응. 하나 더 먹을래?”

“하아?! ...네. 하나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치하야의 친구 분. 정말로 감사합니다!

  치하야는 사실 그 후로 소프트콘을 두 개 더 먹었다. 네 개 째는 내가 뜯어말렸다. 물론 치하야가 혼자서 아카바네에 올 일은 많지 않을 테니까, 기회가 있을 때 먹어보고 싶은 건 알겠지만... 네 개는 배탈이 날 게 분명하지 않은가.

  좌우간, 시계가 7시 30분을 가리키자 우리는 라이브 하우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8시부터 오픈이니까, 주변을 조금 둘러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기 봐, 저기 봐! 저 카라아게 집, 엄청 유명한데, 가보지 않을래?”

“그렇지만 사토... 이미 저녁에다가 크레이프까지 먹고 있잖아. 배불러...”

“그보다 오픈까지 30분이라고. 슬슬 가지 않으면 늦을지도 몰라.”


  뒤에서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삼인조가 만담을 나누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저쪽도 라이브에 가는 것 같았다. 우리랑 같은 쪽으로 가는 걸까. 신이치 또래로 보이는데. 녀석도 예전에는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한 적이 있었지- 같은 생각을 하던 중...


“어? 뮤 삼촌?”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멈춰 서자 치하야도 멈춰 서서 돌아보았다. 나의 조카, 타도코로 신이치가 오랜 친구 둘과 함께 손에 크레이프를 든 채 서 있었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신이치는 나보다도 더 놀란 것처럼 보였다.


[도쿄도 기타구 아카바네 거리 ------ 타도코로 신이치]

  

  에? 에? 에-?!

  뮤 삼촌을 만난 것 까지는 그렇다고 치는데, 동행이 있었다는 것은 알아채지 못했다. 게다가 왜 그 동행이 키사라기인 걸까?!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뮤 삼촌은 ‘키사라기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알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대충 삼촌의 표정을 보아하니 삼촌도 만만치 않게 놀란 것 같았다.


“어라, 키사라기잖아. 안녕?”

“......? 안녕하세요. 카츠라기 씨.”


  카츠라기가 키사라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냥 키사라기, 라고 부르는구나. 합창부 때문에 나름 면식이 있는 거겠지. 잠깐. 그보다 카츠라기랑 사토도 뮤 삼촌을 알잖아? 위험해. 이대로 서로 아는 척을 했다가는-


“프로듀서, 이 분들을 아시나요?”

“어? 아, 그게...”

“저ㄱ...”

“죄송합니다. 지인 중에 닮은 사람이 있어서 착각한 것 같습니다.”


  내가 끼어들려고 하는 순간, 카츠라기가 먼저 뮤 삼촌에게 사과했다.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뭐지? 카츠라기가 먼저? 왜? 어떻게 알고...? 생각해보니 이 녀석, 삼촌을 아는 척 하는 대신에 키사라기에게 먼저 인사했지. 대체 뭐지?


“ㅈ.죄송합니다.”


  나는 일단 카츠라기에게 동조하며 사과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뮤 삼촌을 모른 척 하려니 보통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게 아니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보다 치하야, 아는 사이 같은데?”


  방금까지 당황했던 뮤 삼촌은 카츠라기와 나의 사과에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다. 오히려 키사라기는 그렇게까지 놀란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 점심시간에 옥상에서 보았을 때보다는 어딘가 부드러워 보였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분들이에요. 같은 합창부인 카츠라기 씨랑, 두 분은 성함이...?”

“안녕! 난 사토야. 카츠라기랑 친해!”

“타도코로 신이치, 우리 둘도 A반이야. 카츠라기랑 자주 붙어 다니거든.”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옥상에서 뵌 적이 있었죠.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특별히 사과 받을 상황은 아니었는데, 어떻게 대응해 드려야할지 모르겠어서.”

“아니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다시 딱딱한 인상으로 돌아왔다. 동급생인데도 굉장히 예의를 갖추는구나. 오히려 뮤 삼촌에게 말하는 것보다도 딱딱한 것 같은데? 그보다 그때의 일, 기억하고 있었네. 


“세 분도 어딘가 가시는 길인가요?”


  레이나가 키사라기를 라이브에 초대했다고 했으니까, 분명 뮤 삼촌과 키사라기는 우리와 같은 라이브 하우스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큰일이다. 이대로면 어색한 상태로 라이브 하우스까지 동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임기응변으로 어떻게든 넘기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아, 우리는...”

“모처럼 주말이라 벚꽃 구경을 나왔어. 아카바네에는 볼거리가 많은 것 같아서. 지금은 카라아게 가게를 찾고 있던 중이야.”


  이번에도 카츠라기가 나섰다. 이 녀석,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인거지?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술술 나오는 설명도 청산유수였다.


“그러시군요. 그러면 나중에 학교에서 뵙겠습니다. 즐거운 시간되시길.”

“그래. 나중에 봐. 키사라기. 그쪽 분도,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안녕-!”


  카츠라기와 사토가 두 사람을 보내준 뒤, 나는 굉장히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물론 저 두 사람도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잔뜩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사토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은 무슨 상황이었던 거야? 일단 모르니까 조용히 있기는 했는데. 키사라기는 왜 뮤 형이랑 같이 인디즈 나이트에 가는 걸까?”

“너랑 뮤 형이 당황하는 것 같아서 일단 적당히 둘러대기는 했는데, 역시 상황 설명은 해 주겠지, 타도코로?”

“어... 그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가는 길에 듣자. 그보다 그렇게 이야기해 놨으니까 동시에 들어가는 건 피해야겠지. 잠깐 저쪽으로 빠져서 우회로로 가는 게 좋겠어.”

“카라아게 가게를 찾는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어?!


  ...무슨 일이 지나간 거지. 방금.

  


[도쿄도 기타구 아카바네 거리 ------ 카츠라기 타로]

  

  무슨 일이 지나간 걸까. 뮤 형-타도코로네 삼촌이었지만 중학생 때 이후 사토와 나는 그냥 형이라고 부른다-이 키사라기와 함께 인디즈 나이트에 간다. 왜지? 둘이 아는 사이인가? 그런 거라면 타도코로가 요즘 며칠간 키사라기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도 설명이 될지도,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그 순간의 타도코로와 뮤 형이 너무나도 당황한 것 같은 얼굴이라 내가 나서서 적당히 발뺌했다. 특히 타도코로는 별 생각 없이 뮤 형을 불렀다가 키사라기를 보자마자 소스라친 거라서, 일단은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자, 그래서. 설명해 봐. 타도코로.”

“음. 상황이 어떻게 된 거냐면-”


  타도코로는 걸으면서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솔직히 모든 디테일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충 키사라기는 아이돌을 하고 있고, 뮤 형이 키사라기의 담당 프로듀서이며, 뮤 형과 타도코로가 가족이라는 것은 키사라기에게 숨기고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였다. 뭐야 그게. 간단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엄청 복잡하잖아. 애초에 그런 걸 굳이 숨겨야하나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저쪽 입장에서는 키사라기가 학교에서 타도코로를 불편하게 여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나였어도 그런 상황이라면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을 것 같긴 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던가.

  최단경로에서 벗어나 몇 블록을 도느라 가는 길이 그렇게 순탄치는 않았지만, 우리는 오픈 시간을 2분 정도 넘기고 라이브 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 그 둘은 우리가 주변을 도는 사이에 직통으로 갔으니 먼저 들어갔을 것이다. 


“궁금한 건 많지만 나중에 천천히 하고, 지금은 일단 들어가자.”

“그래그래. 레이나의 공연에 집중하고 싶다고!”


  우리는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라이브 하우스 치고도 조금 넓은 편인데다 꽤 사람들이 와 있어서, 내부에서 서로 마주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오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첫 팀이 무대에 오르면서 라이브가 시작됐다.

  어째선지 최근 며칠간 다이나믹한 일이 많은 것 같지만, 일단 지금은 떨쳐버리고 레이나의 라이브를 즐기기로 했다.



[도쿄도 기타구 아카바네 오오미야 라이브 하우스 ------ 히야마 레이나]


  우와, 떨려라.

  이번 공연은 우리 밴드의 피날레를 장식할 중요한 공연이다. 비록 1년이 조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해나가는 즐거움, 단순히 음악만이 아닌 그걸 넘어선 가치를 알려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이게 마지막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음 주가 되면 또 타츠 언니가 연습실 장소를 알리는 라인 메시지를 보내올 것만 같았다.


“히야마, 긴장돼?”

“헤헤. 티 나요?”

“응. 아까부터 자꾸 빙글빙글 돌잖아. 처음 무대 설 때처럼.”


  타츠 언니는 나에게 다가와 물병을 내밀었다. 나는 물을 받아들고 목을 축였다.


“조금 전에 라이브 하우스에 들어오면서 팬 분을 만났어. 오늘 아침에 인스타 보고 깜짝 놀라셨다면서, 꼭 해체해야겠냐고 물어보시더라.”


  우리 밴드에도 팬이 있었구나. 깜짝 놀랐다. 물론 라이브 하우스를 즐겨 찾는 마니아들이 있긴 했지만, 특별히 우리를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은 잘 몰랐다.


“우리, 비록 마지막이지만, 영원히 헤어진다거나 하는 게 아니잖아. 지난 시간동안 우리가 뭘 해왔는지 모두 보여준다 생각하고 아쉬움 없게 가자. 어때?”


  나는 말없이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역시 지금 모든 걸 보여주는 게 나을 것이다.


“이번 앙코르 끝나고 바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대기해주세요!”

“아, 네!”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늘 하던 대로 뒷주머니에서 스틱을 꺼내 들고 휘리릭 돌렸다. 처음에는 멋있게 돌아가질 않아서 고민이었는데, 오래 하다 보니 이 루틴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타츠 언니, 야마우치 오빠, 나가나와 언니, 카가 언니는 무대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무리에 합류하자, 타츠 언니가 심호흡을 하고 늘 하던 구령을 맞췄다.


“자, 갈까!”

“오오!”


  우리의 피날레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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