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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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紫雨林 - '있지'
호타루는 나의 누나다.
6 남매 대가족 가운데에서 막내인 내가
유일하게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는 바로 위의 누나다.
정확히 말하자면 막내인 내가 끔찍이도 누나를 챙기는 것이지만...
누나에게서 소식이 오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내가 안부를 묻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누나는 어릴 적부터 걸어 다니는 불행이라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누나에게서 소식이 올 때면 심호흡부터 해야 한다.
평소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한 것부터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무인도에 고립되거나
뒷산에 등산을 갔다가 야심한 밤까지 길을 잃고
정처 없이낯선 곳을 헤매거나 하다가 구조요청을 한 적도 있고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여 보호자가 필요하거나
독립하고 살던 집에 불이 나서 한동안 갈 곳을 잃고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다.
어릴 적엔 그런 누나가 덜렁대고 부주의한 탓에
여러 사건에 휘말리고 또 당하는 것이라 여겼지만
나이가 들고 또 누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즈음엔,
나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세상은 누나를 미워하고 있었다.
세상은 모두를 미워하지만, 호타루 누나는 특히 더 그랬다.
바란다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는 것, 그 사소한 진실이
얼마나 슬프고 먹먹한 일인지 알수록
나는 호타루 누나를 점차 슬픈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누나를 부수고 할퀴었으며
그 때마다 태연히 피와 눈물을 닦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내일을 살아왔는지,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어릴 땐 부모님이나 손위의 누나들이 그런 호타루 누나를 돌봐주었지만
결혼과 죽음, 일과 병이라는 각자의 사정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홀로 남게 된 호타루 누나의 곁엔 나 밖에 없다.
한 때 아역시절부터 아이돌을 꿈꿀 정도로 예쁘장하고 고운 누나였지만
오랫동안 함께 일하며 남몰래 사랑했던 프로듀서가 사고로 죽은 뒤,
누나는 소속사에서 나와 돗토리 지역 작은 방송국의 라디오 DJ로
소소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고향에 내려온 지, 벌써 5년.
도시로 다시 나갈 마음도 다른 누군가를 만날 낌새도 없었다.
누나는 혼자 살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누나는 고독과 결혼한 것이다.
부모님을 여의고 나서 남매들이 각자원하는 대로
변변찮은 유산을 나눠 가진 후, 나에게 남은 건 오래된 집이었다.
돗토리의 사구가 보이는 해변가 근처의 단독주택.
서핑 하우스나 해변 카페, 펜션으로 개조하기엔 손익이 안 맞고
위치도 그리 값어치가 있는 곳도 아닌 오래된 고택이라서
그리 눈독 들이는 누나들도 없었고, 다들 도쿄로 또는 해외로
직장을 가졌거나 나가있었기에 자연스레
돗토리에 직장을 가진 내가 관리하고 살게 되었다.
큰 누나들이 손이 많이 가는 호타루를 잘 부탁한다며
신신당부를 하고 떠난지 몇 달 동안,
처음엔 호타루 누나도 집에 함께 머물며살곤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호타루 누나는 좀 더 머물러도 된다는 말에도
"폐를 끼치기 싫으니까."라는 말을 하며
얼마 전부터 따로 살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누나가 이 집을 굳이 나서게 된 내막 중에 하나로
장례식장에서 '그러면 앞으로...다 큰 처녀가 남동생하고단 둘이 살게 되는데,
그건 좀 그렇지 않느냐.'는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누나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그것이 누나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알았기에
쉽사리 그런 말을 내뱉지 못했으리라.
해변 방송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호타루 누나의 방은
1LDK의 단출한 구조의 방이다.
10대, 20대 시절 아이돌 활동으로 벌어둔 돈이 있어
제법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기에 식비나 여비 등의 경제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누나는 정말 생존에 필요한 것에만 돈을 썼다.
마치 로봇처럼, 누나에게 돈은 의미가 없어보였다.
방 한 구석의 '그 사람'의 흔적들이 깃든 '제단'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고, 예쁘장하지만 마음이 텅 빈 소녀에겐
흑심의 유혹이 너무나 자주 찾아든다지만, 누나는 좀 달랐다.
큰 누나들이 좀 꾸미고 다니라며 앞 다투어 보내주는
명품 가방이나 보석들, 화장품이나 요즘 유행하는 맛있는 음식들도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잊혀 지거나 전부 나에게 보내진 것을 보면
누나에겐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사구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처럼,
해변에 밀려왔다 덧없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누나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건 이미 모두 누나의 곁을 떠나 버리고 없었다.
이따금 오랫동안 소식 없는 누나가 걱정되어 종종 찾아가보면
어김없이 크고 작은 불행들이 그녀를 덮친 뒤였다.
한 번은 손가락에 반창고를 하고 있거나,
팔이나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꿋꿋하고도 흐트러짐 없이
매일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처럼 평온했다.
먼지 하나 없는 방에서 제단 위에 놓인,
하얀 국화꽃들은 한 번도 시들지 않았다.
그건 마치 때 묻지 않는 누나의 그런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누나는 자신의 불행이 그 이를 집어삼킨 것이라 했지만
나는 오히려 누나를 지키지 못한 그 사람이 미웠다.
그 사람 이름이 적힌 빛바랜 명함과 누나의 아이돌 시절의 사진들이
액자에 보관되어 가지런히 놓인 모습 앞에서,
나는 어쩌면 우리 가족이 될 수 도 있었을 그 사람을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그 사람을 용서했다. 사실 그는 이미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여자 혼자 살면 생각보다 얕보기 쉬우니까...”
현관 앞의 그 사람의 낡은 신발을 구두 솔로 닦거나
옷장에 숨겨진 듯 걸린 구식 양복을 꺼내 다릴 때면
애써 외면하듯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생방송이 있는 날이면
누나는 제단 앞에 라디오를 켜 두고 일을 나갔다.
누나는 이따금 제단 앞에서 그 날의 일을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듯 이야기하거나, 재미있었던 라디오 프로그램 사연을
다시 이야기하며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
팬레터...그러고 보면,누나의 라디오에는 과거 누나의 팬들이 보내주는 팬레터나
새롭게 알게 된 청취자들이 보내는 편지들이 주로 등장했다.
무척 인기 있는 코너는 아니지만, 5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나름 잘 꾸려나가는 모양이었다. 한 때 거대한 소속사에서, 큰 무대에서
화려한 시절을 보냈을 누나가 자그마한 해변 마을 방송국에서 조곤조곤히 사연을 읽고 있다니.
누가 보면 인기 아이돌의 볼품없는 최후라 칭했을 모습이겠지만,
크고 화려하고 거대하고 빠르고 값비싼 것들. 그런 것들이 결국
그 사람을 누나에게서 앗아가게 만들었으니까.
작지만 정교한 녹음 장치로 이루어진 녹음실,
온갖 감정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연 편지들과
시간을 잊게 만들어주는 감미로운 노래들만으로 이루어진 온전한 누나만의 공간.
그곳에 있는 지금의 누나에겐 그 어떤 눈부신 조명도,
커다란 스테이지도 필요치 않았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도쿄에서 보낸 누나였지만,
지금은 바다와 사막과 먼지 없는 방에서 고요히 살아간다.
슬프다면 슬픈 삶이었지만, 슬픔만이 있었던 건 아니기에
나는 누나의 미소가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서른을 앞둔 스물의 끝자락에서 누나는 마치
이제야 자신의 자리를 찾은 듯 평온해보였다.
내일은 모처럼의 휴일,
호타루 누나와 함께 오랜만에 사구로 피크닉을 나갈 생각이다.
분명 비가 내리겠지만,
나는 이제 개의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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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스레드판에서 '호타루가 누나/언니인 세상에서, 호타루의 동생이라면?' 이라는
주제를 주사위를 굴려 얻게 되어 즉흥적으로 단편글을 써보게 되었답니다.
늘 불행에 시달려 손이 많이 가는 가족 내의 아픈 손가락인 호타루 누나와
그런 누나를 곁에서 묵묵히 챙겨주며 바라보는 남동생의 입장....
항상 열 세살의 어린 나이의 호타루를 '동생'으로만 생각했었지
'누나'나 '언니'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지라 더욱 색다른 경험이었군요.
기회가 된다면 후속작을 써보고 싶을 정도로
저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런 글쓰기 였습니다.
부족함 많은 글이지만 재미있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러가지 생각이라....
그러고 보면, 저 역시 제 글을 읽고 말해주시는
이런 저런 이야기와 감상들을 통해
아이돌들에 대한 프로듀서님들의 새로운 시선과 생각을 알게되어
무척 뜻 깊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돌마스터 시리즈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대표하는 개성이 있고,
캐릭터간의 관계나, 캐릭터만의 극대화된 특성이 있기에...
캐릭터의 기믹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비유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무척 흥미롭게 여겨집니다.
호타루 누나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 가...는
이 글을 읽어주시는 뭇 프로듀서님들마다 다르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어떤 감상을 하시든 끝까지 글을 읽어주시고 느낀 바를 들려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이라니....
부족함 많은 글에 과분한 칭찬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항상 어린 호타루를 보면 가슴이 저미는
알 수 없는 슬픔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는데
연하의 입장에서 연상의 호타루를 새롭게 바라보니
뭐랄까...더욱 그런 묘한 기분이 극대화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남들은 다 각자의 날개를 펴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홀로 먼저 세상에 나아갔다 둥지로 돌아온 상처 입은 작은 새.
유독 같은 핏줄 가운데...어딘지 모르게 부족함 많고
손이 많이 가지만 올곧고 씩씩하기에 결코 밉지 않은,
그런 형제나 자매의 입장으로 가족을 바라보는 기분...
그런 심정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요.
호타루가 가족이었다면 분명 그런 기분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레드 판에서 얻은 색다른 주제로 글을 써보고자
즉흥적으로 써본 글이었지만...이토록 응원받을 줄이야...
깊은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 역시 프로듀서님들의 글들을 보며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특유의 재미를
감탄하고 부러워한 적이 많았습니다.
함께 글로 아이돌들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알아간다는 것은 정말 뜻 깊은 일이네요.
앞으로도 호타루가 많은 프로듀서님들에게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라 그런지,
어딘지 모르게 아련하고 쓸쓸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의 글이 써보고 싶어질 때가 있군요.
호타루의 고향인 '돗토리 현'의 명소인 '해안 사구'를 생각하며
사막과 바다, 고향과 가족이 주는 이미지를
호타루의 불행한 인생사와 엮어 잔잔히 풀어나가보았답니다.
비록 '해안 사구'에 실제로 가 본 적은 없지만, 글을 쓰면서
기회가 된다면 그 아름다운 풍광과 쓸쓸한 사막의 느낌을
한 번 쯤은 느껴보고 싶어졌네요.
호타루가 어릴적 보고 자랐을 그 황량하지만
눈물나게 아름다운 바닷가의 사막의 풍경...속으로
사연 많은 호타루 누나와
이해심 많은 남동생은 어떤 소풍을 떠났을까요.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군요.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며...
부족함 많은 글을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