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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까마귀 연대기 -3-(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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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0, 2020 14:15에 작성됨.

왕권파는 단순히 우사밍 왕조를 반대할 뿐이지만, 공화파는 모든 왕조 자체를 반대하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히오리에게 있어 나라 정치의 전통을 파괴하고 국가체계를 전복시켜 뒤엎으려는 또 하나의 쿠데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버젓이 왕이 있는데 또 누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말인가?


잡초는 싹수가 보일 때부터 뽑아버려야 한다. 지금 뽑지 않으면 훗날 곡물들의 영양을 죄다 빨아먹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거한다고 해도 타이밍을 잘 잡아야 나중 되어서도 걸릴 게 없는 법. 히오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계획을 세워서, 언제쯤 공화파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잘 보여줬다고 소문이 날지 고민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공화파를 숙청할 계획을 완성한 히오리는 그것을 미유 왕에게 보고했다.


「공화파 대신들과 귀족들을 모두 초대해 왕궁의 한 별장에서 파티를 여는데, 그들이 의심하지 않게 왕권파 대신과 귀족들도 몇 명 섞여서 들어간다. 파티 시작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왕권파 대신 및 귀족들은 조금씩 빠져나가고, 공화파 사람들만 남았을 때 군사들을 투입해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척살한 뒤 별장을 불태운다.」


이것이 히오리의 계획이었다.


허나 미유 왕과 하루카를 비롯해 형제들은 공화파 처단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지난번 반反왕권파 토벌 사건을 통해서 공화파의 영향력도 많이 수그러들었다고 들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굳이 공화파를 없애기까지 해야 하나요?”


“저는 공화파가 아직 존재하는 한 왕권이 완전히 확고해지긴 어려우리라고 봅니다. 게다가 누가 알겠습니까? 지난번의 반反왕권파처럼 무리를 모아 쿠데타를 또 한 번 일으킬지.”


“비록 공화파가 쿠데타를 일으킨다고 해도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했다간 반反왕권파처럼 사형 당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 테니까요.”


“하지만...”


“기사단장이시여. 사실 정말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옵니까, 보좌관이시여.”


“. . .그대는, 저와 정말로 많이도 닮으셨군요...”


이 말을 듣자, 히오리는 가슴이 크게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알고 있었다.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이것은 모든 꾸짖음과 설득을 함축한 말이었다.

히오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 너무 독단적이었나.”


따지고 보면 반왕권파를 처단한 것도 히오리 본인이었다. 미유 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히오리의 독단으로 자이젠 영주와 수많은 대신들 그리고 귀족들이 죽었다. 그나마도 당시엔 반왕권파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었기에 그들을 처단한 것을 진압한 쪽으로 이해하고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지금의 공화파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영향력이 강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왕권파 토벌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영향력은 없느니만 못할 정도로 줄어들었고, 그저 조용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공화파들을, 굳이 찾아내서 죽여야만 하는가? 


심지어 왕권파 대신들마저 이 일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히오리 공주님이 너무 예민하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확실히 전임 왕이시자 아바마마이신 나나 폐하 시절에 있었던 반反왕권파와 공화파 대신들의 월권행위가 도를 넘긴 했었죠.”


“어쩌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셨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반대 세력을 숙청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으신 것 같고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날카로우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외람된 의견이지만, 히오리 공주님께서는 왕으로 즉위하지 않으셨을 뿐 충분히 폭군의 기질을 보이고 계십니다.”


대신들의 말대로 히오리는 어렸을 적부터 대신들의 입김이 왕권을 위협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의 입김은 너무 강했고, 급기야는 우사밍 왕조의 혈통을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조차도 우후죽순 나타났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 나나 왕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고, 그럴수록 대신들과 귀족들은 점점 더 날뛰면서 왕좌에 월권행위를 하려들었다.

히오리가 일평생 추구했던 목적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본때를 보여줘서 다시는 왕권을 넘보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반왕권파 토벌 사건을 통해, 그 목표가 드디어 이루어졌다.

자이젠 영주를 처단했고, 반왕권파 귀족들과 대신들을 숙청했다. 그리고 공화파 대신들의 힘도 대폭 약화시켰다.

이제 우사밍 왕조의 왕권은 다시 예전처럼, 즉 미유들의 어머니 코토리우스 2세가 살아있을 때처럼 강력해졌다.


하지만 히오리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아니, 만족할 수 없었다. 반대파를 완전히 제거하고 싶었고, 그것이 이 나라와 아버지의 왕조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한평생을 다 바쳐도 좋았다.


허나 왕궁은 결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공화파를 완전히 숙청하려는 히오리를 지속적으로 뜯어말렸고, 급기야 미유 왕은 히오리의 군사통제권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그녀에게 한 달 근신을 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근신이 풀렸을 때, 히오리를 설득하기 위해 아버지 나나 왕의 유언장을 다시 한 번 읽어주며 히오리를 달랬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안팎으로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길 원하셨어. 하지만 네가 이렇게 계속 숙청을 하고 있으면 당장은 평화롭게 보일지 몰라도 결국엔 이 왕조를 더욱 빨리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지 몰라. 히오리, 너도 기억하고 있을 거야. 아버지께서 우리와, 이 나라에게 그토록 바라셨던 게 무엇인지. 너는 공화파가 왕국의 평화를 위협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상은 네가 위협하는 것일지도 몰라. 그들도 결국엔 이 나라의 백성이야. 그러니까 제발 이제 숙청을 그만둬.”


물론 히오리도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당장 나나 왕 대만 해도 얼마나 혼란스러웠는가. 그리고 미유와 히오리를 비롯해 일곱 공주가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모든 걸 기억하고 있는 히오리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맞아요...아버지 상왕께서 원하셨던 것은 그러한 평화였어요...”


“맞아. 알고 있었네, 히오리.”


“상왕과 폐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즉, 이젠 공화파에게 겨누었던 칼들을 거두고, 국가기사단장으로서 오직 나라의 안녕과 국방을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약속한 대로 히오리는 공화파 제거 작전을 모두 파기했고, 그곳에 주둔시켰던 군대를 모두 철수시켜 본진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렇게 4년, 5년이 지났다.

우사밍 왕국은 경제, 무역, 국방, 기타 모든 부문에서 놀라울 정도로 전에 없이 발전하여 카르메아 대륙의 패자覇者로서 군림했고, 영토 또한 나나 왕 대보다도 더욱 넓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귀족평민 할 것 없이 모든 백성들은 미유 왕을 지지하였고, 공화파는 어느 새인가 사라졌다. 공화국을 염원하던 자들조차 미유 왕의 애민 정신과 효율적인 국가 발전 정책에 탄복하여 스스로 미유 왕을 지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에 미유 왕은 30대의 젊은 왕이었고, 히오리 또한 30을 바라보고 있는, 아직 20대의 창창한 청년 장군이었다.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그 속에서 히오리는 많은 것을 보았고 또 느꼈다.


성벽에서 도시의 발전된 수많은 건물들과, 백성들의 밝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히오리는 되뇌었다.


"아버지...드디어 저희가, 아버지께서 많이도 걱정하셨던 부분을 해결했습니다."


"어머니...이제 더 이상 저희를 걱정하지 마시고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아버지 나나 왕이 그토록 바라고 원하여 유언으로까지 남겼던 궁극의 평화가, 이제야 비로소 이루어진 것을 실감하며, 히오리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 달이 지나, 히오리는 이웃 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다시 한 번 전장으로 향했다.



히오리는 평생 작게는 가족을 위해, 크게는 국가를 위해 살았으며, 나라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허나 그 일들 중엔 분명 옳지 않았던 일들도 있겠지. 그것은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이 판단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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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보았습니다. 전에 올렸던 걸 지우고 풀버전으로 올려요.

이 글은 다람G항의 창댓에서 영감을 얻어 작성한 글입니다. 영감을 받았다고는 해도 내용을 독자적으로 구성한 거라 실제 창댓과는 내용 차이가 클 거예요.

전에 올렸던 글은 한컴파일 기준으로 A4 33장 분량이지만, 이번 글은 A4 55장 분량입니다. 그래서 3편으로 나누어 업로드했죠.

미나미도령 앞으로도 간바리마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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