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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프로듀서 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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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9, 2020 07:35에 작성됨.

그리고 운명의 장난같이 나는 깨어난다. 나를 깨운 것은 휴대폰의 알람소리. 천천히 눈을 뜨고 주변을 쳐다본다. 주변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나의 내일처럼 어둡다. 이상하다, 분명히 아침은 아닌 것 같은데. 몽롱한 나의 정신을 휘감은 작은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카오루....」


잘 알지 못하는 번호로 온 긴 문자. 하지만 그것의 첫 문장을 본 순간, 나는 대번에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카나데가 알려준 것이겠지, 나는 아직도 꿈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자신에게 조소를 날리며 중얼거리고는 문자를 읽어내려간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 소녀가 부디 나를 싫어하기를 바라면서, 모든 것의 원인인 나를 책망하기를 바라면서.


「어째서....」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카오루의 문자는 정중하고 애절하게 나의 무죄를 말하고 있었다. 무죄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나는....」


그런데 어째서일까,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외로워서였을까, 그것은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일까. 나는 결국 알아내지 못한 채로 다시 잠들었다. 카오루가 보낸 문자가 들은 휴대폰은 품 속에 꼭 껴안고, 그 곳에 내가 찾던 따스함이 있다는 듯이 껴안으면서 말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대원죄를 저지른 나는, 대체 무슨 희망을 바라는 것일까.


새로운 아침은 무정하게도 다시 밝아온다. 뒤섞여버린 감정은 나몰라라한 채로,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일상을 보낼 준비를 마친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회사로 가는 길. 아늑한 전철 안, 그 곳에서 나는 익숙한 정수리 냄새와 함께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째서였을까, 문득 고개를 들어 별 것 없어보이는 식상한 광고 판넬을 쳐다보았다. 아무 특색도 없는 음료의 광고. 하지만 나는 그 광고를 보며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오카자키 야스하. 내가 프로덕션을 그만두기 며칠 전에 신입 아이돌로 입사했었던 사람. 어째서일까, 나는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와 나는 특별한 관계도 아닌데, 그저 잠깐동안 그녀의 상담을 맡아 진행했을 뿐인데 말이다.


오카자키 양을 만났을 때에, 나는 마유의 일을 막 접하고 프로듀서로서의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한 때였다. 사표는 수리되어 상부의 재가만 기다리고 있었고, 퇴직하기 전에 한 아이돌 연습생의 심리상담을 해달라고 직속 상사로부터 부탁받은 상태였다. 이질적인 상담 요청. 상담에 특화된 프로듀서도 아니었던 나였던지라 어째서 나에게 그런 요청을 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어쨌든 회사를 나가기 전까지는 상사였으니까, 게다가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었기에 거절할 수 없어 그러겠다고 답했다. 안심하는 상사의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나와 같은 눈을 한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오카자키 야스하라고 합니다. 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오카자키 씨. 자, 그럼 이 쪽으로 앉아주세요.」


「네.」


친애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인사. 하지만 나는 그 인사에서 어째선지 그리움을 느꼈다. 어째서였을까, 나와 같은 눈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혼자 뚝 떨어진 듯한 사람의 표정. 어쩌면 나는 그녀에게서 나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뵌 적이 있는 얼굴이네요. 아, 사쿠마 마유 씨의 프로듀서 씨죠?」


딱딱한 목소리로 날아온 한 마디의 말. 그 말은 비수같이 날아와 나를 깊숙이 찌른다. 부서진 유리조각의 느낌이 났다. 조각난 마음을 완전히 부숴버리는 차갑고 날카로운 말.


화가 치밀어올랐다. 어째서였을까, 그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마유의 사건으로 모든 기운을 사그라트린 상태였다. 치밀어올랐던 화는 절망이 되었고, 절망은 곧 수긍을 이끌어내었다. 아니, 수긍이라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였다고 하는 편이 옳을까. 그래, 나는 순응해버린 것이다. 내가 그렇게나 아끼던 사쿠마 마유라는 아이가 없는 이 세상을, 나는 긍정해버린 것이었다. 어쩌면 난 그 순간에 그 말을 부정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순순히 그녀의 말을 긍정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도 그것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네, 그랬죠. 이제는 더 이상 아니지만요.」


아무렇지 않으려 노력하며 내뱉은 나의 말. 하지만 오카자키 양은 그런 영혼 없는 말에 속아넘어갈 사람은 아니었다.


「아, 그랬죠.... 죄송합니다, 잊으려고 노력하셨던 일일텐데.」


「괜찮습니다. 뭐, 보통은 그렇게 저를 표현하시죠. 톱 아이돌 사쿠마 마유의 프로듀서라고요.」


「....어째서 프로듀서 씨가 제 상담역인지 알 것 같네요.」


그 말을 하고서, 오카자키 씨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평소의 나라면 미소라고 보지도 않았을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었다만 어쨌든 그 때의 나는 그녀가 살짝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소라고 보기 힘든 우울과 찡그림이 뒤섞인 표정이었지만, 나는 어째선지는 몰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프로듀서 씨라면 이야기 할 수 있는 모양이예요. 정말, 언니 말고는 이런 사람 처음이예요.」


언니라니, 야스하 양은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그녀도 나처럼 소중한 사람을 허망하게 떠나보낸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오카자키 양의 입에서 술술 나왔다. 그래, 마치 마유와 내가 금세 가까워진 것처럼 말이다. 나는 조금의 향수를 느끼며 내 앞에서 자신의 상처받은 과거를 이야기하는 작은 새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조그마한 카나리아는 노래해야만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때에 내 앞에는 슬픈 노래를 지저귀는 카나리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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