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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프로듀서 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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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4, 2020 03:35에 작성됨.

내 앞에 놓여진 프라푸치노가 바닥을 보인다. 슬쩍 쳐다보니 카나데의 앞에 놓여진 카페오레도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마실 것을 더 주문하겠냐고 물어보자, 카나데는 고개를 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씨,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는데.」


「부탁할 것?」


「응. 부탁할 것.」


무엇 때문일까, 카나데의 표정이 조금 굳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표정에 덩달아 카오루도 살짝 굳어져 있었다. 나는 불타오른 재가 떠올랐다. 완전연소하지 못하고 찌꺼기로 남아버린 회색 재. 나는 그 회색 재로 남은 한 아이돌을 떠올렸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에 실족해버린 천사. 나는 그 천사를 마유라고 불렀다. 사쿠마 마유.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다. 


「마유가 묻힌 곳, 알고 있지?」


마유가 묻힌 곳. 시간이 멈춰버린 장소. 그래, 당연히 알고 있다.


「카오루와 함께 가고 싶어. 안될까?」


안될 이유가 없었다. 카나데의 입에서 나온 말이고,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다만...


「괜찮아요, 마유 언니라도 이해해 줄 테니까요.」


「이해....」


마유가 이해해줄까. 그래,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는 이해해주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해주길 바란다. 마유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부탁해, 프로듀서 씨.」


난 거절할 수 없었다. 최소한 난 두 사람의 눈동자에 담긴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다. 


카페에서 나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로 발걸음을 옮긴다. 차를 가지고 온 것이 다행이었군. 그렇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걸었어야 할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유명 연예인 두 명을 대중교통에 태울 수는 없지. 그렇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다. 매니저나 이런 사람들도 근처에 있겠지만 항상 관리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차를 타고 가다 근처의 꽃집에서 꽃을 샀다. 흰 색의 국화.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태어난 꽃. 아니, 어쩌면 나 혼자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꽃은 그저 피어났을 뿐이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같은 인간의 몫이다. 그래, 모든 것은 내 감정의 발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감정을 품었던 나 자신, 그리고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이 곳이야.」


봉안당의 끝, 이제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을 구석에 마유가 있다. 그래, 전직 톱 아이돌 사쿠마 마유는 18세의 일기로 이 곳에 묻혀있다.


「이 곳이, 마유 언니의....」


카오루의 중얼거림. 그 중얼거림이 나의 발목을 얽매는 것을 느끼며 국화를 내려놓는다. 오시리스 신의 무덤 앞에서 나의 심장의 무게를 고해바치는 느낌이다. 심장의 무게가 깃털보다 무겁다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였던가. 그렇다면 나는 분명히 영겁의 지옥으로 떨어질거다. 깊고 아득한 영겁의 지옥 속으로, 죽음보다도 더한 슬픔의 늪으로 말이야.


「모든 것이 당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합장을 하고 있던 카나데의 입술에서 묘한 질문이 튀어나온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냐니, 물어볼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그야 나는 당연히...


「당신은 아무런 죄도 없어, 프로듀서 씨.」


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당신의 잘못이 아니야.」


카나데의 입에서는, 내가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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