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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沈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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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9, 2020 17:12에 작성됨.

비가 내린다.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를 이 비가, 오늘도 내린다.

주변에는 벌써 빗물이 철철철 흘러넘치고, 사무소 외벽에 달린 홈통에서는 물이 쉴 틈도 없이 흘러내린다.

이 사무소에 오다 보면, 최대한 안 그러려고 하고 있지만, 빗물이 내 어깻죽지를 계속 적신다.

이게 이렇게 젖어버리면 나중에 옷이 마르면서 (소위 말하는)꾸리꾸리한 냄새가 어깻죽지와 소매에서 나는데, 그 냄새가 엄청나.

내 코를 찌르는 것도 문제거니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냄새가 풍길 수 있어서 안 돼, 안 돼.



게다가 옷뿐만 아니라 신발이 젖는 것도 큰 문제다. 옷은 많이 젖지만 않았으면 어떻게든 말릴 수가 있다. 말릴 때 냄새가 나서 그렇지.

하지만 신발은 아니야. 신발은 필시 젖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물건인 거야. 원하든 원치 않든 빗물을 첨벙첨벙 밟으면 다 젖어버리고, 그 속에 신은 양말도 곧 젖어버린다.



혹시 다들 그 느낌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왜 있잖아, 신발이 젖어버림으로서 양말도 발가락 끝부터 조금씩 젖어가는 그 불쾌함.

처음엔




‘조금 젖은 거니 괜찮겠지. 이제 딱 이 상태 그대로 보존해서 사무소까지 가자.’




싶지만, 결국엔 끝내 양말을 지켜내지 못하고 빗물에게 정복되어 버리는 대참사를 겪노라면, 실로 불쾌함의 극치를 달리게 된다. 게다가 잘 마르지도 않고.








이렇게 비가 많이 오니, 기분도 자연스럽게 우울해진다.

흐린 것도 적당히 흐려야지, 24시간 내내 빗소리를 들으며 먹구름 낀 하늘을 보는 게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지 알아?

게다가 올 때도 잔뜩 젖어서 왔는데, 갈 때도 잔뜩 젖어서 갈 걸 생각하니 짜증이 지대로 밀려온다.

내 신조는 ‘내가 행복한 게 제일이야!’지만, 지금은 전혀 행복하지 않아. 이 날씨에 어떻게 행복하라는 거야?




그러고 보니 하나 일화가 생각나네. 우리 집 근처에 개천이 하나 있는데, 평소엔 개천가 도로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곤 했어.

날이 좋으면 근처 풀밭에서 텐트치고 캠핑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전거 타는 사람도 있었고, 근처 테니스코트에서 스쿼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



근데 이번에 비가 몇 날 며칠을 내리면서 그 모든 게 다 침수되어 버렸어.

개천의 흙탕물이 수위를 높이면서 보도를 전부 덮어버렸고, 이젠 어디가 도로였는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 잡초건 쓰레기건 다 쓸려 내려오더라고.

나는 그때서야 홍수洪水라는 게 뭔지 처음 알았어. 안 그래도 다른 지역에서 일찍이 홍수주의보가 떴었는데, 결국엔 우리 동네에도 뜨고 말았지.

단지 개천가 도로가 잠긴 것만으로도 굉장히 식겁했었는데, 집과 살림살이가 모두 잠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어.






가끔씩은 먹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비치는 맑은 날도 있지만, 그런 시간도 얼마 안 가서 저녁때쯤 되면 다시 먹구름이 끼어.

왜 자꾸 비가 오는 거야? 장마기간이 원래 이렇게 길었던가? 

장마전선의 영향은 이미 충분히 실감했으니 이젠 제발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어. 축축해서 죽을 것 같다고.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주륵주륵, 주르르르륵 내리고 있다.

모르겠네, 이젠 아무래도 좋아. 싫다고 해도 비는 내릴 거고, 또 내 옷과 신발은 계속해서 젖어갈 거야.




“아아아~우울하다. 계속 비가 오네.”



“항상 행복을 추구하던 네가 우울하다니 웬일이야, 히나나?”



“아하하하, 이렇게 비가 오는데 기분이 다운되지 않을 수가 없잖아~”




애써 밝은 척 대답했지만 정작 나온 말은 네거티브. 스스로도 괴리감이 느껴진다.

우울한 게 본심이긴 했어도 그 본심이 너무 자동적으로 나온 것 같아 좀 놀랐어.




“하긴 그러네. 날씨도 벌써 며칠째 궂고.”



“이렇게 흐리고 궂으면 전혀 행복하지 않단 말이야.”




날씨만 궂은 것이 아니라, 내 옷의 어깻죽지와 신발, 그리고 양말도 축축해서 불쾌해.

마르려면 한참 걸리겠거니와, 마르면 또 냄새가 나겠지. 그런 거 싫어.




“오늘도 분명 어딘가는 빗물 때문에 침수되겠지.”




그게 우리 동네든, 아니면 다른 지역이든 말이야.

뭘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게 더 슬픈 거 있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우산 잘 쓰고 다니는 거랑 옷과 신발이 안 젖게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어.




나 말고도 젖은 사람들이 많은가봐. 토오루 선배도, 마도카 선배도, 코이토도, 프로듀서도, 하즈키 씨도, 사장님도 모두 다 푹~젖어서 왔나봐.

어떻게 알고 있냐고? 지금 사무소에 구린 냄새가 진동을 하거든. 옷이 젖어서 눅눅해지면 나는 냄새가 어디 할 것 없이 전방에 퍼져 있어.

옷이야 갈아입으면 되는 거지만 이런 냄새는 도저히 참기 힘들어. 제습기와 더불어 공기청정기가 절실해.




제습기라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제습기는 除濕機잖아. 습기를濕氣 제거해버리는 기계라서 제습기.

지금 이 사무소에 습기가 가득 찼어. 가득 차서 소파랑, 의자랑, 책상이랑, 바닥이랑, 벽이 끈적거려. 끈적거린다는 건 내 피부에서 찰기가 느껴진다는 거야.

며칠 내내 비가 와서 사무소 공기가 온통 습해졌고, 그로 인해 여러 군데가 꽤 축축해졌어. 침대에 앉으면 왠지 치마가 젖는 느낌이야. 그리고 진짜 젖더라.

지금도 제습기가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도무지 습기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여. 제습기가 빨아들이는 만큼의 습기를 폭우가 내뿜거든. 아니, 어쩌면 제습기가 온 힘을 다해 습기를 빨아들이면 그 두 배 정도 되는 분량이 사무소에 채워진다고.

마치 제습기 1대 VS 가습기 2대가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젠장, 태풍의 눈은 대체 언제쯤 오는 거야?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이 비가 좀 멈췄으면 좋겠어.

빗물 때문에 강물이 범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빗물 때문에 옷과 신발이 젖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 뭐가 됐든 좋으니까 비만 좀 안 왔으면 좋겠다고!








오늘은 트레이닝을 받는 날이다.

한 가지 특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오늘자 트레이닝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트레이닝보다도 가장 기분 더러운 트레이닝이었어.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야. 단지 계속된 장마가 주는 특유의 우울함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그렇다고는 해도 오늘 트레이닝은 나 혼자 하는 댄스 및 보컬 트레이닝.

나는 그렇게 잡힌 스케줄에 처음으로 감사하게 되었어. 만약 누군가와 함께 했다면 장마 특유의 불쾌함으로 인해 조금만 스쳐도 짜증내며 싸웠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오늘은 하즈키 씨가 도와준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라서 더더욱 감사하다고. 장마 때문에 우울하기는 해도 누군가에게 짜증내고 싶지 않아. 그건 내 행복이 아니니까.






열심히 셀프 레슨에 매진하다가, 조금 휴식하기 위해 벽에 기대어 앉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귀가 쨍쨍할 정도로 울려 퍼졌던 음악 소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꺼져버리니 순간 적막함이 내 귓가를 대신한다.



이런 와중에도 비는 내리고 있었고, 습기는 당최 지워질 줄 몰라서 바닥에 내 발자국을 쉴새없이 남겼다.

등줄기는 땀으로 젖었고, 묻고 더블로 내 팔과 다리마저 끈적해졌다.




“젠장, 기분 나빠, 이 느낌. 소름끼쳐.”




오늘은 그냥 이 정도로 끝내고 빨리 씻자. 더 이상 끈적거리긴 싫단 말이야.








샤워실에 들어가 깨끗하게 씻었어.




“흐아아~시원하다! 역시 씻는 게 제일이야! 행복해!”




끈적거리는 땀들도 다 씻겨나가고, 습기 때문에 고생하는 내 울적함도 사라지고, 일석이조야. 아하하!




그러고 보면 말이지. 샤워기 소리랑 빗소리랑 똑같은 것 같아. 쏴아아아, 쏴아아아, 하잖아.

샤워기 물이랑 빗물이랑 똑같은 것 같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가며 나를 적시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있는 샤워실에도 비가 내리는 것 같아 괜히 또 울적해진다. 

샤워실의 뜨거운 김이 먹구름으로 바뀌어 나에게 계속해서 비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

그냥 빨리 나가자. 더 이상은 쓸데없이 우울해지고 싶지 않아.








옷을 갈아입은 뒤에 사무소로 돌아오니 시원하네! 에어컨을 틀었나봐!




“에어컨이다! 시원해! 아하하~”




역시 씻고 난 뒤의 에어컨은 국룰이란 말이지!






생각해보니까, 보통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다고 하잖아. 그럼 비가 내리는 날은 엄청 추운 거고.

근데 왜 장마철에는 땀이 나는 걸까? 오히려 시원해서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

비 맞아서 감기 걸릴 거면 장마철에도 춥던지, 더울 거면 감기가 아니라 더위를 먹거나 열사병에 걸려야 정상이잖아.

역시 이 세상은 불합리하고 미스테리한 것들 투성이야. 뭔지는 몰라도 신님이 설정을 잘못 한 것 같네.








하루, 또 하루, 그렇게 우울하게 비가 오는 날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희소식이 들렸다.




「이번 주말부터는 비가 그치고 날씨가 풀릴 예정입니다.」




Horray! 이게 얼마만의 태양이야! 이제야 광합성을 좀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생각했는데, 막상 주말이 되니까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완전히 다른데?




「[도쿄현청]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를 발령합니다. 국민들께서는 가급적이면 외출을 자제하시기를 바랍니다.」




폭염주의보가 떠 버렸어.

일반적으로 비가 내리고 난 뒤에는 전체적으로 기온이 내려가 선선해지기 마련인데, 이번엔 오히려 더 올라갔어. 더 뜨거워졌다고.

저기요, 신님, 날씨패치가 심각하게 잘못됐는데요? 선선해지는 게 아니라 더 더워지다니!

그 덕분에 오늘 밤엔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고 자도 더웠어. 잠옷이 온통 땀으로 젖을 뻔 했다고.



그래서인 걸까, 프로덕션에 도착하면 상시 켜져 있는 에어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에어컨 밑에 앉아 차디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노라면 아아~극락이 따로 없더라!

에어컨을 만든 캐리어 아저씨는 진짜 인류의 구원자가 틀림없어!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소크라테스님에 이어 세계 5대 성인으로 추앙해야 마땅해!




“아하하~시원하다!”



“뭐해, 히나나.”



“아! 토오루 선배! 선배도 여기 앉을래요? 여기 굉장히 시원해요!”



“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을게.”




동경하던 토오루 선배가 곁에 앉다니! 나 행복해!

토오루 선배도 이 바람에 만족했는지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네!

토오루 선배도 선배지만 나도 굉장히 시원해서 좋아!

이대로 퇴근시간까지 여기 앉아서 바람 쐬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 에어컨 바람 속에서 오래 있지 못했고, 다시 찜통더위가 난무하는 스케줄을 가야 했다.

장소도 하필 오사카 지역, 간사이 지방에서도 특기할 정도로 덥다는 그 곳!

최남단 후쿠오카나 쿠마모토가 아닌 건 다행이지만, 교토-오사카 일대도 만만찮게 덥다고.

신기하다면 신기하달까,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비가 오던 때가 다시 그리워져. 적어도 비가 오던 때엔 이 정도로 덥지는 않았으니까.




다행히 야외촬영은 아니었고 오사카시청의 강당 내에서 하는 실내촬영이었어.

이 날씨에 야외촬영 했다간 누구 하나 쓰러질 거야. 더위 먹고 지쳐서 의식을 잃을 거라고.




“근데, 그 곳은 침수 안 됐지?”




전에 장마 때문에 홍수가 나서 여기저기 침수된 사례가 많아. 인터넷에 검색하면 끝도 없이 나와.

누군가가 올린 사진 중에는 지하주차장에 물이 가득 들어차서 거기 있던 차들이 전부 녹슬고 고장 났다는 내용도 있어. 그거 굉장히 뼈아픈 문제잖아.

그곳도 그런데, 설마 오사카시청 강당도 그렇게 되진 않았겠지?




“다행히 침수되지 않았어. 여기가 그래도 고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있어서 홍수의 영향을 많이 받진 않았다고 하더라.”




프로듀서님이 말했어.

아하하~그렇다면 다행이네! 거기도 침수되었다면 나 굉장히 우울했을 거야.

더 이상은 홍수 때문에 고통 받는 걸 보고 싶지 않단 말이지.








오사카시청 강당에 들어가니 프로듀서님의 말대로 침수의 흔적 없이 깨끗했다.




“아하하~다행이네! 아무데도 녹슬지 않았어!”



“녹슬면 방송을 못 하니까. 제작진도 충분히 알아보고 장소를 섭외한 거야.”




하긴 그렇겠네. 기자로 파견된 게 아닌 이상 홍수 피해를 입은 장소를 섭외할 리가 없지.

홍수 피해를 입은 건 굉장히 슬픈 일이야. 터전이 물에 잠기면 되돌리기가 정말 어려우니까.

우리 집이 물에 잠기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야~








즐거운 촬영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응? 뭐 스토리 같은 거 없었냐고? 딱히 재미있는 썰은 없었어. 그리고 방송 보면 알 수 있을 거니까 굳이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지.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씻은 뒤 선풍기를 쐬며 저녁식사를 했어.

엄마가 해주는 밥이랑 반찬은 언제나 맛있어~역시 집밥이 최고야!





그냥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집에도 에어컨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저 오래된 선풍기 한 두 대가 우리 집 냉방장치의 전부야.




“엄마~”



“왜 그래, 히나나?”



“우리 집에도 에어컨 하나 달았으면 좋겠어.‘



“뭐? 에어컨? 안 돼, 비싸.”



“선풍기 두 대 돌려서 나오는 한달 치 전기세보다는 쌀 것 같은데 말이야.”



“뭐라고?”



“상식적으로 이 폭염 속에서 선풍기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네 돈으로 사. 너도 이제 돈을 벌고 있으니까.”



“아이돌 시작한지 1년도 안 돼서 받는 돈이 얼마 안 돼.”



“그럼 돈 많이 벌면 그때 에어컨 사거라.”



“왜 에어컨을 안 사주는 거야? 돈 아껴서 딱히 쓸 곳도 없으면서.”



“얘 좀 봐라. 집세, 전기세, 식비, 교통비, 니네 학교급식비로 나가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학교 무상급식이야. 학교급식비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아무튼! 나가는 돈이 엄청 많으니 안 돼!”




변명 한번 참 궁색하십니다.

에어컨 하나 설치하면 집이 지금보다 더 시원해질 텐데, 엄마도 그걸 알 텐데.

물론 에어컨이 좀 비싼 건 맞지만! . . .맞지만. . .

비싼 걸 알고 있으니 할 말이 없네.

그렇다고 꽤 옛날 스타일의 보급용 회전 선풍기 2대만 가지고 여름을 견디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은 아닌 것 같지만.








밤 9시, 저녁과 밤의 경계선이 되는 시간.

텔레비전에서 앵커가 전해주는 여러 가지 잡다한 소식들이 흘러나온 뒤, 기상캐스터가 나와서 날씨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음 주 화요일부터는 기압 전선들이 겹쳐서 다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측됩니다.”




에? 또 비 온다고? 이거 좋아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비가 오는 날은 우울하다고 햇님을 찾게 되고, 막상 햇님이 뜨면 너무 덥다고 비오는 날을 원하게 되고.

이거 완전 끝없이 반복하는 무한루프잖아. 뭘 어쩌라는 건지 내 스스로도 모르겠네.

이게 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게 아니라 습도가 올라가서 그래. 습도만 안 올라갔으면 그런대로 좋은 여름이 되었을 텐데.



뉴스가 끝난 뒤 채널을 돌렸다.

딱히 재미있는 게 안 나와서 이리저리 돌리다가, 문득 어느 이름 모를 가수 한명이 무대 위에서 통기타를 치고 있는 음악프로를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기타 잘 치는 사람 좋아해. 아니, 정확히는 동경한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 기타를 연주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게임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좀 그런 마음이 생겼어.

나도 한번쯤은 기타를 연주해보고 싶어. 흔히들 말하는 ‘인디 음악’ 같은 스타일의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

그런 것, 인디 음악, 한번쯤은 시도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화요일, 새벽부터 태양은 숨어버리고 그 대신 구름이 모습을 드러내며 비를 뿌리기 시작했어.

어찌나 세게 내리기 시작하는지, 바닥마루와 창문 가까이에 있던 물건들이 모두 젖었더라고.

창문을 닫은 뒤 대걸레로 바닥에 흐르는 물을 닦았어. 




“아무도 비가 이렇게 들이치고 있단 사실을 모르고 있었나?”




그리고 젖은 물건들 뒤처리도 꽤 힘들 것 같아. 가스버너 젖으면 못쓰게 되는 거 아니야?

여러 모로 총체적 난국이야. 이 이상 더 젖지 않은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한 일이지.







오늘은 오프라서 시간이 남기도 하고 해서 밖으로 나와 보았어.

으와~습기 때문인가? 역시 땀이 계속 줄줄 흘러내리네. 3분도 안 되어서 내 이마와 관자놀이가 땀으로 젖었어.

조금만 있으면 온 몸에서 땀이 나게 될 거야. 등줄기도, 팔목 부근도 곧 있으면 축축해질 거라고.




밖에 나오자 내 눈 앞에 보인 건, 흙탕물로 변해버린 개천가였어.

저걸 봐,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사라졌잖아.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저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 내리는 빗줄기를 고려하면 20분 후 흙탕물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게 저 징검다리만은 아니게 되겠지.




“엄청나네...”




엄청나다는 그 말밖에는 달리 할 말도 없어. 확실히 엄청나긴 하니까.




“이 비가, 언제쯤에나 그친다고 했었더라?”




얘기로는 8월 중반쯤에나 끝난다고 했었는데, 워낙 기상청이 헛발질이 좀 심해서 신뢰가 잘 가진 않네.

어쨌거나 이게 정답이든 오보이든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이 나한테 한 줄기 희망이 되기는 해.

하지만 이번 폭염을 보면 장마전선이 완전히 물러난 다음 좋은 상황이 온다고 장담은 못할 것 같지만...






저 흙탕물을 보고 있으니, 엉뚱하다면 엉뚱한 생각이 들었어. 이왕이면 기발한 생각이라고 해줬으면 좋겠지만.




“저 흙탕물 안에는, 뭐가 있을까?”




흔히 물밖에 없다고들 말하겠지만, 글쎄,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네.

흙탕물은 물에 흙이 섞여서 만들어진 거지만, 과연 저기엔 흙만 섞였을까? 모르긴 몰라도 다른 잡다한 것들도 잔뜩 들어갔을 거야. 잡초줄기라든가, 나뭇가지라던가.

그런 잡다한 것들이 뒤섞여 저 범람하는 흙탕물 개천가를 만드는 거고.



아아, 보기만 해도 축축해. 가만히 서서 단지 개천가가 범람하는 걸 보고 있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내가 저 강물에 들어간 것 같아.

내가 저 강가에 들어가면 분명 물줄기가 내 발목을 휘감겠지. 무릎까지 차오르겠지. 허리춤을 적시겠지. 그리고 떠나려는 나를 가로막고 자신의 품속으로 껴안고 어딘가로 데려가겠지.

나는 강의 품에 깊이 안겨 숨도 쉬지 못한 채 그저 강이 데리고 가는 곳으로 끌려갈 거야.

그리고 내가 숨을 멈출 때쯤에, 그때서야 강은 날 놔줄 거야.

분명 그렇게 되면, 난 그냥 죽는 거겠지. 바보 같은 죽음이야.

뜻밖의 재난을 당해서 죽는 거라면 몰라도 제 발로 범람하는 개천가에 걸어 들어간 거니까 그 누구도 애도하지 않을 거야.




지금 내가 무슨 소리 하는 거냐고? 그냥. 비가 오니까 다시 우울감이 도진 것 같네.

전혀 행복하지 않아. 우울하다는 것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야.

비가 오면 사람의 기분이 축 처져서 다운되기 마련인데, 그럴 때에 기분을 조금이라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집에서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해. 그래야 기분이 고양되고 우울하지 않거든.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음,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네.




뭐, 이건 그냥 농담한 거지만, 진짜로 그렇게 사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이 장마철에 밖에 나가서 뭘 할 거야? 나가봤자 습기 때문에 땀만 나고 좋을 게 없잖아.

게다가 어깻죽지나 신발도 쉽게 젖어서 집이든 어디든 들어가면 축축하고 냄새나서 더 불쾌해.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말이야.


비가 그치는 것도, 햇빛이 약해지는 것도 원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빨리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와서 발을 씻고 어깻죽지가 젖어버린 옷을 세탁기에 넣었다. 분명히 우산을 쓰고 있었는데 왜 젖은 건지 모르겠어.

오늘 꺼낸 옷이지만 냄새나면 안 되니까 다시 세탁기에 들어가거라. 다음 기회에는 냄새 안 나는 옷으로 다시 태어나렴.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어깻죽지가 다시 젖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겠지만, 세탁기에서 다시 나오는 날엔 비가 안 올지도 모르니까 희망을 가져.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비가 내리는 소리가 오묘하게 섞여서 내 마음을 때린다.




촤아아,



쏴아아,



위이이잉,



슈아아아,




이 소리를 들어봐.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지 않아?

비 내리는 시원함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건가봐.

이런 게 정말 좋아. 청각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거.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비도 오니까, 비를 예찬하는 노래를 들어야지.

‘비의 랩소디’라든가, ‘이 비가 그치면’이라든가, ‘깡’이라든가,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라든가 말이야.

우리 회사에서는 그런 노래 한 곡 나오지 않으려나.

자, 플레이!





“떠나가요~아주 먼 곳으로~! 그대 소식 내게 올 수 없을 그만큼~”




음~노래 좋네! 나중에 한번 개인적으로 불러봐야지!

이 가수가 부른 노래들은 음역대도 적당하고 노랫말도 좋아서 어느새 따라 부르게 된단 말이야.





“다 잊어요~ 내게 마지막이 될 사랑도~ 모두 다 버려두고 갈게요~!”




크으~분위기 좋고! 역시 비를 예찬하는 노래답게 멜로디 짱이네!




결국 흥에 취한 나머지 침대에서 일어나 혼자서 게릴라 라이브를 열면서 덩실덩실 춤을 췄어.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시간이 멈추길 기도해”




음악에 취해 혼자서 정신없이 춤추면서 노래하고 난 뒤 다음 음악으로 바꾸려고 정신을 차린 순간, 나를 보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어.




“이년이 미쳤나.”



“. . . ;;”




혹시 이런 적 있어? 굉장히 뻘쭘해.

간혹 댄스 영상에서 춤추다가 가족들한테 들켜서 분위기 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지금에야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이해해버렸어. 이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필 깡 댄스 추고 있을 타이밍이었지.




“뭐하는 거니, 너?”



“. . . 난 말이지, 우울할 땐 빗속에서 깡을 춰ዽ”




크으~ 애드리브 한 번 완벽했어.

지금 비도 내리고 있고, 그래서 우울하기도 하니 토씨 하나 안 틀린 말이잖아?

 내가 춤추는 모습이 들키기도 했겠다, 그냥 막가파식으로 계속 춤췄어.

어차피 부끄러울 것도 없어! 뭐가 부끄러워! 




김마꾸이 엣따 한국다람쥐, 한국다람쥐~




나는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우울함을 떨쳐내고자 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10초간 보고서는 다시 부엌으로 갔어.

그런 눈치를 받으니까 왠지 눈물 날 것 같네. 뭐랄까, 왠지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렇게밖에 할 게 없게 된 현실이 아파.




“비도 오고 그래서~네 생각이 났어. 네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 거지 별 의미 없지~”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



“무척이나 울었네~ 비에 비 맞으며! 눈에 비 맞으며 빗속의 너를~!”




발라드도 부르고, 록도 부르고, 비에 관한 아는 노래들을 전부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렇게 혼자서 고릴라콘서트를 하고 있으니까, 확실히 기분도 고양되고 좋아졌어.

게릴라 콘서트 아니냐고? 맞긴 한데, 고릴라가 가슴을 때리듯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고릴라콘서트인 거야.

엄마가 내 노래를 듣고 있는지,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행복해졌고 또 개운해졌으니 만사 오케이야!

게다가 셀프 보컬 트레이닝이랑 댄스 트레이닝도 같이 되고 일석삼조라구!




“아하하~정말로 행복하다! 이제 안 우울하다~!”








밤이 되어서도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장마철이니까 당연하긴 하겠지만, 쉴 틈 없이 비가 내려서 빗소리가 이젠 지겨울 정도야.

동시에 ‘이쯤 되면 개천가에서 범람한 흙탕물의 수위가 엄청 높아지지 않았으려나?’ 싶기도 해.

아까까진 그저 도로를 덮는 수준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도로와 개천가를 나누는 외벽까지 올라왔을 수도 있어.

지금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는 비라면 그 정도도 가능하겠지.

내일 아침이 되면 이 비가 그쳐 있기를 바라고 싶어. 너무 많이 내리면 문제가 생기니까. 이미 너무 많이 내려서 문제지만.



지금이 밤이니만큼 아까처럼 가무歌舞를 할 수도 없다.

목소리를 작게 해서 노래를 부를 수는 있겠지만, 자칫하면 밑층에서 시끄럽다고 민원 들어올 수도 있어. 게다가 흥도 안 나고.

그리고 춤은 말할 것도 없겠지. 괜히 쿵쿵거렸다가는 맘스터치와 민원크리로 욕바가지를 더블로 먹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니 너무 심심해졌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핸드폰으로 SNS를 한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것뿐인데, 요즘 SNS에는 크게 흥미가 없다.

트위터는 트위터 머법관 때문에 싫고, 페이스북은 정치적 선동질 하는 따봉충들 보기 싫어서 잘 안 해. 인스타는 아예 계정조차 없고.



그러면 게임을 하느냐면 그것도 아니야. 난 딱히 게임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아니거든.

옛날에는 RPG 게임 같은 걸 자주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에 질렸어. 아무리 일러가 고급지고 예뻐도 말이지, 뭔가 성적인 부분을 강조하니까 기분 나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 게다가 허구한 날 몬스터 사냥하고 PvsP 대전하는 건 너무 보급형이라 식상하고 재미없잖아.



그러면 책을 읽느냐면 그것도 좀 아니지.

물론 책이야 읽을 수 있지만, 이미 내 방에 있는 책은 다 읽은 것들뿐이야. 한 몇 번은 반복해서 읽었을걸.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내용을 다 외울 정도로 계속 읽으면 질리기 마련이야. 그곳도 한 권이 아니라 수십 권을 말이지.

이제 이 책들도 질렸어. 지금이 밤만 아니었으면 도서관에 가서 새로운 책들을 읽었을 텐데.




결국 내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이냐? 자는 것, 그뿐이다.

지금 시간은 밤 9시, 그리고 평소에 내가 잠드는 시간은 밤 10시. 아직 1시간이나 남았어.

분명 지금 잠들면 야심한 새벽에 깨게 될 거야. 그리고 대여섯 시가 될 때까지 잠들 수 없겠지. 내 체질이 그래.

그리고 억지로나마 잠든다 해도 꿈속에서 이상한 것들을 잔뜩 보게 될 거야.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어지럽다고 해야 하나.

마치 빗물에 잔뜩 불어난 개천가 흙탕물에 빠지는 것처럼 말이야.

헤어날 수 없는 악몽의 물결에 발목을 잡혀 삼켜지고, 저 깊은 바닥까지 속수무책으로 끌려가.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악몽의 물결 속에서 빠져나와 눈을 뜨면 도저히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아. 시간은 이미 아침 9시를 넘겼을 거고.

대여섯 시의 악몽이란, 그런 거야. 난 그런 악몽에 두 번씩이나 침수되기 싫어.





결국 10시까지 하는 일 없이 라디오 들으면서 빈둥거리다가 시간이 딱 되자마자 불 끄고 눈 감고 바로 잠들었다.

그래, 정시에 잠들어야 새벽에도 안 깨고 악몽의 물결에 침수되지도 않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가 착한 어린이기는 무슨. 난 오히려 늦게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단 말이야.

중간에 누가 깨우지 않는 한 잠도 푹 자고, 꿈도 안 꾸고. 이 얼마나 환상적이야?



그러니까, 모두들 잘 자.








다음 날이려나, 내가 일어난 시간이. 물론 다음 날이겠지.

혹시 내가 12시가 되기 전에 깬 건 아닌가 싶긴 해서 한 소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12시가 되기 전에 깨지도 않았고, 새벽에 깨지도 않아서 다행이야.

지금 시간은 아침 8시 반, 기침起寢하기 딱 좋은 시간대지, 안 그래?





오늘도 비는 내리고, 나는 프로덕션에 가야 한다.

가면서 개천가 상황을 좀 봐야겠어. 강물의 수위가 선을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 봐야겠어.

선을 넘었다면, 분명 외벽을 넘어 도로까지도 물줄기가 뻗었겠지. 그러면 꽤 큰 문제인데.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거라, 히나나!”



“빗길 조심하고.”




신발과 마스크를 챙겨 입은 뒤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장맛비가 철퍽철퍽 내려주시는군.

기압전선이 흩어지고 비가 그치려면 아직 한참 남았으려나.




개천가 도로를 걸었어. 어차피 프로덕션 가려면 이쪽으로 가야 하기도 하고.

걸어가면서, 개천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지.

그런데,




에?




물이 어제보다 엄청 줄어든 느낌인데?

비가 그렇게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위가 낮아졌어?

혹시 내가 잠든 사이에 비가 그쳤었나?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오히려 놀랐어. 




“하룻밤 사이에 수위가 이렇게까지 낮아진다고?”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어. 거인이라도 와서 사슴이 옹달샘 물을 먹듯 빨아먹지 않는 이상 이렇게 빨리 증발할 수가 없다고. 아니면 신님께서 물기둥을 일으켜서 하늘로 끌어올렸던가.

하여튼 이렇게도 급격히 수위가 낮아지는 건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란 말이야...다 어디로 간 거지.








프로덕션에 도착하니 평소와 다름없이 에어컨과 제습기가 가동 중이다.

덥고 습해서 땀이 줄줄 흐르는 사람에게 여기는 그야말로 천국, 파라다이스야.

여기 283 프로덕션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에어컨이 1위, 하즈키 씨가 2위이며 사장님은 28위에 불과해.

그만큼 에어컨은 더위와 땀에 찌든 우리에게 시원함과 편안함을 선사해준다고. 적어도 이 여름엔 말이지.

참고로 겨울엔 코타츠가 1위야. 인간 따위는 결코 1위를 차지할 수 없어.





소파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만끽했다.





“아~시원하다!”




조금 있으면 나레이션 녹음 수록을 하러 가야 하지만 그런 거 몰라. 그냥 더 쉬고 싶어.

이 파라다이스를 벗어나 다시 습기로 가득 찬 밖에 나가야 하잖아. 정말로 싫어.

차라리 프로덕션 내에서 레슨을 잡아준다면 좋았을걸. 그나마 에어컨 밑에서 있을 수 있잖아.





하지만, 안 갈수는 없으니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지. 음악이라도 듣고 있을까.

오늘도 비가 오니까, 이번엔 날씨가 맑아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목이나 가사에 태양이 들어가는 노래를 들어야겠어.




“어디보자~어떤 곡이 좋으려나~!”




플레이리스트를 뒤져보니 ‘태양처럼’, ‘눈코입’, ‘해야’, 기타 등등, 있네.

좋~아. 그럼, PLAY!




“해야~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앳된 얼굴 솟아라!!!”




크으~락스피릿에 취한다!

역시 태양이 뜨려면 이 정도 흥은 있어줘야 하겠지!

해야~떠라! 빨리~떠라! 빨랑 좀 해야 솟아라!








“히나나, 시간 됐어. 가자.”




한참 음악 듣고 있던 중에 프로듀서가 나를 불렀어.




“응응~이제 갈게!” 





자리에서 일어나 프로듀서의 뒤를 따라가, 주차장에 있는 차를 탔어.




“오늘도 비가 내린다.”




되뇌었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저기 내리는 비를 보니 느낌이 또 달라.




‘언제쯤 비가 그치고 구름이 갤까, 언제쯤이면 다시 맑은 날이 돌아올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또 우울해져. 이런 생각 하지 말 걸 그랬어.

비가 내리면 텐션이 다운되고 기분이 가라앉아. 

발이 닿지 않는 저 깊은 우울의 늪으로 속수무책으로 빠져 들어간다. 마치 대여섯 시의 악몽처럼.

어지러이 내 몸과 마음을 흔들고, 다시 눈을 떴을 때조차 돌아오지 않은 내 정신이 나를 움직인다.




그렇게 나는 또, 침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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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보았습니다. 이번 장마 시즌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다 완성하고 나니 장마전선은 이미 물러나고 없는 상황이네요...

미나미도령 앞으로도 간바리마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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