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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프로듀서 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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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3, 2020 03:22에 작성됨.

「그래, 일단 들어보도록 하자. 무슨 일인데 그래?」


「들어주기는 하는구나.」


「여기까지 왔고, 어쨌든 유명 여배우 하야미 카나데 님이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말은 들어봐야지. 그래, 무슨 일이야?」


「...10년 전의 아이돌 동료들이랑 만나기로 약속했어. 당신도 와 줬으면 좋겠는데.」


「거절하도록 하지.」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너무나도 순순히 튀어나온 거절의 말. 하지만 내 행동에 대한 이유는 충분히 있다. 10년 전의 죄악. 그것은 내가 죽음을 생각했을 정도로 너무나 커다란 죄악이었기에, 그녀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자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삶조차도 과분하다고 느끼는 나다. 그런 내겐 그녀들을 보아야 할 명분이 존재하지 않아.


「정말로 보지 않을꺼야, 프로듀서 씨?」


그런데 어째서일까. 카나데는 이런 나의 반응조차도 예상했다는 듯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마저 띄우고 있었다. 미소. 단 한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미소에 잠시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를 유혹하고선 유쾌한 미소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던 카나데와, 그런 카나데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무라던 내가 있던 시절.


「거절한다고 말했잖아. 그 말로는 충분하지 않아?」


「뭐,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그런 분이 왜 그 곳에는 매년 가실까? 게다가 저번 주말에도 가셨고.」


「그건....」


그 곳. 그 특정되지 않은 장소가, 나의 가슴을 후벼판다. 그래, 그 곳. 나의 업보와 피로 얼룩진 사랑 노래와 내면의 죽음이 묻혀져 있는 장소. 


「아니야?」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하기 싫다는 거구나.」


나는 두 번째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녹차 프라푸치노가 든 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한 모금 마신다. 프라푸치노에 담긴 녹차 탓인가, 입가에 쓰디쓴 약 같은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녹차를 고른 것은 실패였는지도 모르겠네. 나는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씁쓸한 프라푸치노를 내려놓고 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카나데와의 대화는 종료. 마지막에 카나데는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간단한 작별인사를 나누고 어느샌가 카페에 와 있던 매니저의 차를 타고 가 버린다. 매니저라, 옛날에는 매니저 한 명 없이 내가 직접 집까지 태워주고는 했는데 말이야.


집으로 가는 길. 왠지 울적했던 나는 근처의 바에 홀린듯이 들어가 무작정 칵테일 한 잔을 시켰다. 나온 칵테일은 블러디 메리. 예전에 자주 마셨던 칵테일이다. 술이 세지 않았던 내게 그 무엇보다도 효과 좋았던 심신안정제였던 칵테일. 지금이야 술의 힘을 빌려 잠을 청하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너무나도 슬픔을 주체 할 수 없을 때에는 한 잔씩 마시고는 한다. 나의 피를 마시듯이, 나와 그녀의 피가 칵테일 안에서 섞이는 합일을 고대하는 듯이. 


술이 약한 나는, 블러디 메리 한 잔을 들이킨 날에는 완전히 취해 천천히 옷을 벗고 침대에 쓰러져 잠을 청한다. 하얀 침대, 검은 몸, 그리고 순백의 여자 두 명. 두 명 모두 내가 아는 얼굴이었고, 두 사람 모두 티끌 하나도 없는 차림으로 나의 몸을 천천히 핥으며 나를 자극하기 시작해간다. 이건 변하지 않는 나만의 꿈.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지 않는 나만의 꿈.


「기분 좋으신가요오, 프로듀서 씨?」


언제나 먼저 다가오는 것은 왼쪽 손목을 붉은 실로 묶은 소녀. 귀여우면서도 나이답지 않은 미성숙한 몸으로 다가와 나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그녀는, 어느샌가 나의 하반신으로 내려와 자신의 봉긋한 두 언덕으로 나의 것을 감싸안고는 부드럽게 상하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보드랍고 따스한 언덕의 움직임. 그 움직임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나는 어느샌가 그녀의 뒷머리를 붙잡고 더욱더 그녀를 원하게 된다.


「나를 잊어버리면 섭섭하다고, 프로듀서 씨?」


그리고 붉은 실의 소녀를 시기하는 듯이 신비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소녀가 한 명. 아아, 그래. 나는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다. 한 명은 하야미 카나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자아, 프로듀서 씨는 이런 것을 좋아하지?」


나의 입술에 진하디 진한 입술을 가져다대고는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이 따스한 숨을 내뱉는 카나데. 그런 우리 두 사람의 사이를 시기한다는 듯이, 나의 것을 정성껏 애무하던 소녀가 행위를 멈추고는 삐진 목소리로 입을 연다.


「정말, 카나데 씨! 프로듀서 씨와 좀 떨어지세요오! 마유도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아, 미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기분 좋아서 말이야. 그래, 포지션을 바꿀까?」


소녀의 말에 입술을 맞대고 있던 시간만큼 얽어진 타액을 보여주며 미소를 짓는 카나데. 그런 카나데의 미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나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놓고 자신의 입술을 내 입술에 박아넣는 붉은 실의 소녀. 그래, 이 아이의 이름은 마유다. 사쿠마 마유.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그 이름.


아침이다. 나는 애매한 꿈과 선명한 현실의 햇살의 감촉으로 깨어난다. 어슴푸레한 아침안개를 맞으며, 아직 반쯤은 몽롱한 잠의 세계에 취해 있는 내가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탄 회사행 전철. 전철 안에는 익숙한 정수리 냄새와 향수 냄새, 그리고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인 것은 확실한 것들이 섞여 기묘한 냄새를 풍긴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일까, 나는 왠지 모르게 우울한 나 자신을 달래가며 전철에서 내린다.


전철에서 내려 회사로 향하자, 내 직속 상사가 왠지 모르게 살가운 척을 하며 아는 체를 한다. 무슨 일이지, 원하는 것이 있을 때에만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안녕하세요, 차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물론 좋은 아침이고말고! 그래, 주말은 잘 보냈나?」


「아, 네. 그럭저럭....」


「그럭저럭이 아니던데! 신문에 자네 사진이 떡하니 나와있는 것을 모른 척할 셈인가?」


신문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신문에 난 것은 10년 전의 해명 기자회견 때를 제외하면 없는데. 내 얼굴을 본 상사는 정말로 모르냐는 듯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늘자 신문....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대할 가치도 없는 증권가 찌라시를 내민다. 이런 신문을 그는 왜 보는걸까, 나는 잠시나마 눈썹이 찌푸려지는 감각이 내 얼굴을 타고 흐른 것을 느꼈다.


「...이게 무엇입니까?」


「거 참, 자기 얼굴도 못 알아보는 인간이 어디 있나! 분명한 자네 얼굴이잖은가, 아닌가?」


「그건....」


 「자, 이래도 대답해주지 않을건가? 자네가 여배우 하야미 카나데와 무슨 관계인지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라고는 해도 이런 부외자가 함부로 침범할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성역이고, 나의 기쁨과 슬픔이 공존했던 시간이다. 그러니까 내 앞에 잔뜩 표정을 구긴 채로 서 있는 아저씨가 물어볼 것이 아니다. 죽었어야 했던 몸이라고는 해도,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남모르는 추억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은 거잖아.


「죄송합니다, 차장님. 그저 어쩌다보니 만나서 몇 마디 대화를 했을 뿐입니다.」


「흐음....」


나의 말에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사. 다만 점점 의심을 푸는 듯하는 얼굴을 보아하니 이 이상 묻지는 않을 모양인 것 같았다. 그래, 더 이상 묻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이 이상 물어본다면 정말로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혐오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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