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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날 두 사람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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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5, 2020 22:15에 작성됨.

P: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치히로 씨."


치히로: "이, 이 정도는 해야죠."


치히로는 떨리는 손으로 영수증을 확인하자 거기엔 20만 원 이상의 금액이 적혀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다.
굳어지는 입꼬리를 프로듀서가 눈치채지 못하게 감추어버린다.


P: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되나요?"


치히로: "무슨 소리예요? 설마 그냥 밥만 먹고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P: "어... 아닌가요?"


치히로: "아니에요.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차려입지도 않고 평상시 그대로 나왔을 거예요."


P: "그럼 또 뭐 할 건데요."


치히로: "일단 걷죠. 어차피 거기까지 가려면 걸어야 하니까."


P: "어디길래요?"


치히로: "그냥 잠자코 따라오세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장서는 치히로와 그 뒤를 따르는 프로듀서.
사실 지금이라도 반론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왕 식사도 얻어먹었으니 조금만 더 즐겨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들떠 보이는 치히로 씨는 드물었으니까.
그런데 그 장소가 어디길래 들뜬 걸까?
프로듀서는 유추할 겸 물어보기 시작했다.


P: "꽤 걸었는데 아직 멀었어요?"


치히로: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해요."


P: "흠... 이 근방이라면.. 아, 치히로 씨가 자주 가는 술집인가요?
여기 근처에 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치히로: "있지만 오늘은 거기가 목적이 아니에요.
음, 여기서 오른쪽이었던가..?"


P: "뭐야, 치히로 씨 여기 처음인 거예요?
조금 헤매는듯한 느낌이 드는데."


치히로: "처, 처음 아니에요! 단지 오랜만에 와봐서.
일단 잘 따라오는 거 맞죠?"


P: "뒤에 착 달라붙어있으니 걱정 마세요."


골목을 따라서 왼쪽, 오른쪽, 직진 그리고 또 오른쪽.
미로 같은 방식으로 목적지를 향하고 있는 두 사람.
정말로 이게 맞는 길일까 하는 것도 잠시.
좁은 골목을 벗어나 큰 길로 빠져나왔다.
벌써 해가 지는 건지 하늘은 점점 황금색에서 보라색으로 바뀌어간다.
주변을 둘러보는 프로듀서는 기시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냥 평범한 큰 길거리와 흔한 카페, 건물들일 뿐일 텐데.
어디선가 많이 봐왔던 풍경인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P: (여기가 어디였더라... 왠지 낯설지가 않아..)


치히로: "다 왔어요 프로듀서!"


빙글 뒤를 돌며 어때라는 얼굴을 하는 치히로.
이곳은 평범한 거리에다가 바로 앞에 카페가 있는 정도.
여기가 정말로 최종 목적지라고?
어리둥절해서 다시 물어보는 프로듀서였다.


P: "정말로 여기가 치히로 씨가 그렇게 와보고 싶은 곳이에요?"


치히로: "네! 너무 오랜만이라 많이 변하긴 했네요 여기도."


P: (그냥 평범한 거린데...?)


치히로: "아, 그래도 여기 카페는 안 변했네요. 그리워라."


P: "그냥 흔한 카페잖아요."


치히로: "무슨 소리를! 이 카페는 추억의 장소라고요!"


P: "추억이요..?"


치히로: "네, 아주 소중하고 그리운 추억의 장소."


애정이 실린 눈으로 거리와 카페 그리고 프로듀서를 순서대로 쳐다본다.
이곳이 치히로의 추억의 장소.
보기에는 그냥 흔해빠진 거리와 카페가 있는 장소다.
하지만 계속 느껴지는 기시감과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는 풍경.
그리고 미묘하게 그리움을 느끼는 프로듀서였다.


P: (이 느낌은 도대체 뭐지?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아.)


치히로: ".... 프로듀서는 여기가 그립지 않으신가요?"


P: (나? 치히로 씨뿐만 아니라 나도 여기에 연관이 있는 거야?
하지만 정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야.
근데 구도가 안 맞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지?)


치히로: "그렇겠죠... 좀 오래됐으니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죠.."


P: (분명 우리 둘이 여기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조금 달라..)


치히로: "괜찮아요 그냥 돌아가죠."


P: "잠깐만요 치히로 씨. 전 여기 서있을 테니 치히로 씨는 조금 떨어져 주시겠어요?
그리고 저한테 다가와서 명함... 없죠? 절 스카우트하는 척해주세요."


치히로: "네? 갑자기 무슨."


P: "그냥 해주세요 그럼 떠올릴 것 같으니까."


의구스럽지만 일단 시키는대로 프로듀서에게서 멀어지는 치히로.
프로듀서는 카페 앞에 서있었고 10m정도 떨어져 있는 치히로가 보인다.
프로듀서가 오라는 신호를 보이자 치히로는 어색하게 걸어온다.
그리곤 목을 가다듬고 영업용미소를 지었다.


치히로: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P: "누구신지."


치히로: "저는 346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P: 346이면 유명한 대형 연예 기획사잖아요? 그런 사람이 무슨 일로 저를."


치히로: "일단 여기서 계속 서있는 것도 그러니 저기 있는 카페에서 이야기하죠."


이 말을 끝으로 프로듀서는 느껴졌던 기시감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이 상황, 둘이 만나는 구도 모든 것들.
우뚝 서있는 프로듀서를 조심스레 쳐다보던 치히로는
빙그레 웃고 있는 프로듀서를 발견하자 놀라면서 물어봤다.


치히로: "프로듀서? 일단 시키신 대로 해봤는데 어떠신가요?"


P: "고마워요 치히로 씨."


치히로: "그렇게 어려운 부탁도 아닌걸요."


P: "아뇨. 여기로 데려와줘서 고마워요.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너무 오래돼서."


치히로: "기억... 나셨어요?"


P: "여기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346프로에 입사하게 된 곳이기도 하고요.
그걸 어떻게 잊어버리겠어요."


치히로: "전 프로듀서가 잊어버린 줄 알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알아차리지도 않았고 어벙하게 있었잖아요."


P: "이 근방은 돌아다니지 않아서요. 도대체 몇 년 만인지.."


치히로: "아마 3,4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요?"


P: "아뇨 그것보다 더 많이 지났을 거예요.
아, 그럼 치히로 씨 지금 나이 삼시-"


치히로: "그 이상 말하면 새벽까지 끌고 다닐 겁니다?"


P: "읍! 아뇨, 전 그냥 그때랑 똑같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치히로: "프로듀서야말로 그때랑 똑같은 양복이네요."


P: "그냥 비슷하게 생긴 것뿐이에요.
그 양복은 너무 헤지고 오래돼서 버려버렸어요.
제 첫 양복이었는데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치히로: "그렇게 따지면 저도 이 옷 말고 항상 입는 걸로 올 걸 그랬나 봐요.
그랬다면 프로듀서가 쉽게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P: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옷이 더 마음에 들어요.
제가 놀리는 걸로 들리시겠지만 정말로 어울리세요."


치히로: "... 진심으로 들리니 괜찮아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해요 프로듀서."


치히로: "좋아요! 추억을 실컷 즐겼으니 마지막은 화려하게 장식할까요!"


P: "설마 여기서 그냥 빠빠이 하고 완벽하게 끝나는 결말이 아니라는 건가요?!"


치히로: "아까 프로듀서가 말했던 제 단골 술집이 마침 딱 근처에 있네요?
각오는 돼있나요 프로듀서?"


P: "저, 저기 이제 전 게임 하러 떠나야."


치히로: "아주 좋은 각오네요. 자, 한잔하러 갑시다!"


P: "아, 앗! 안돼, 내 게임들!"


그렇게 억지로 끌려진 프로듀서는 치히로 씨의 잔소리와 충고,
좋은 말씀 등등을 듣고 난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시간은 새벽 2시 언저리쯤.
피곤한 눈을 억지로 열어 컴퓨터를 간신히 키고 책상에 엎드리자
쏟아지는 잠을 거절할 틈도 없이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후일담.


P: (아... 피곤해. 술기운이 월요일까지 남아있을 줄은 몰랐는데..)


치히로: "ㅈ, 좋은 아침 프로듀서."


P: "좋은 아침입니다? 치히로 씨 웬일로 항상 입는 옷이 아니시네요?"


치히로: "그게 아직 여운이 남아서 아깝다고 할까요?"


P: "그 옷은... 토요일에 입었던 옷이랑 완벽하게 똑같네요.
역시 잘 어울리시네요 그래도 불편하지 않겠어요?"


치히로: "괜찮아요. 그런 것쯤 쉽게 감당할 수 있으니까요."


P: "그럼 오늘도 열심히 일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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