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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억하는 방법

댓글: 2 / 조회: 1063 / 추천: 3



본문 - 07-20, 2020 00:08에 작성됨.

お気に召すまま - Eve


"기억상실증이라는 거....생각해보면 엄청 편리한 것 아닐까?"

"그건 또....무슨 뚱딴지 같은 말씀이세요. 슈코씨?"

"기억을 못한다는 건, 단순히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지옥이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무엇을 하든...

결국 매일이 처음처럼이라는 거네?"

"또 쓸데없는 말을...."

"그럼...매일 어떤 밥을 먹어도, 같은 메뉴도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말도 되겠지?"

"...그래서...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란 말이지."

"점심 메뉴 결정이 곤란한 상황에는

기억상실이 해결책이란 말인가요?"

"생각해봐....프로듀서와 내가 지금껏 먹었던 것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매일 매일 처음 먹는 음식처럼 느낀다면...

일생 일대의 중대한 걱정 하나가 사라지는 거라구.

'오늘은 대체 뭘 먹지? 이거? 저거? 아니면 그거? 아아~ 복잡해!'

...따위의 말은 작별이다...이런 말씀이지."

"네에...네에...그래서 기각된 메뉴들 말고 다른 제안은 없으신가요?"

"그럼...프로듀서씨, 오늘 점심은 간단히 초밥이나 먹으러 갈까?"

"그건 어제 저녁에 먹었는 걸요. 그리고 점심으로 초밥이라니 무슨 바람이 분건가요."

"그럼...선심 써서 차슈 라멘에 교자."

"선심 쓴 것 치곤 꽤나...그리고 그건 이틀 전에 먹었군요."

"으음.....그럼, 치즈 햄버그 스테이크 정식."

"정식이라 붙으면 일단 뭐든 치히로씨에게 먹혀들거라 생각하시는 거죠. 

애석하지만 그것도 이미 며칠 전에 먹었으니 기각."

"아아- 정말이지. 어떻게 일일이 다 그런 시시콜콜한 걸 기억하는 거야?"

"그야, 언제나 결제는 제가 하고 있으니까요. 업무 중 식비, 간식비 모두

치히로씨에게 보고해야하는 입장도 생각 좀 해주시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그럼 프로듀서는 지금까지 먹은

빵의 개수를 일일이 기억하는 거야? 말로만 듣던 레인맨?"

"그보다는 슈코씨 쪽이 오히려 아까의 말씀처럼

'점심 메뉴와 관련된  선택적 기억상실'인 건 아닐까요.

어찌된 게 하루만 지나면 모든 메뉴가 초기화되잖아요."

"그치만, 성장기 소녀는 언제나 배가 고프다구.

그런 점에서 선택지는 많을 수록 좋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성장판이 닫히기 전까지."

"덕분에 일주일 내내 자루소바만 먹었던 적도 있는 것, 아세요?

가끔은 소거법도 메뉴 선정에 고려해 보심이..."

"아! 그 소바집. 문 닫지만 않았다면 지금도 먹고 있었을텐데...

아쉽네...그보다 그런 걸 일일이 다 기억해서 하나 하나 제외시켜나가다간,

언젠가 지구상에 먹을 게 하나도 없어질 거야.

그런 점에서 오일 파스타에 마르게리따 어때?"

"정말이지....또 잊으셨어요? 미야모토씨, 이치노세씨랑

어제 야식으로 드셨잖아요. 냉동피자. 차가운 콜라도 곁들여서"

"엣....?! 어떻게 알았어? 여자 기숙사라도 훔쳐본 거야?"

"흠흠...프로듀서가 되면 자고로 밤에도 낮에도

담당 아이돌을 느낄 수 있는...눈과 귀과 있다는 사실만 알아두셔요."

"아아~ 역시 카나데, 삐쳤구나. 정말....귀이여우운~ 우리의 리더씨라니까."

"한창 드라마 연기 때문에 몇 주 째 특훈에 녹즙만 먹으며 감량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보란듯이 라지 사이즈 피자를  먹는 악의 없는 잔인무도함....생각해보셨나요."

"우와. 누굴까 그런 악마적 악취미의 주인은?"

"유혹 이블이라고 아실려나 모르겠군요."

"음...기억나지 않네. 다음에 만나게 되면 내가 잘 타일러서,

이왕 먹는다면 이탈리안 피자 말고 시카고 피자로 먹으라고 충고해둘게."

"하아...다른 건 다 잊으셔도 하야미양...정말로 화났었다는 것만은 기억해두세요."

"으음...먹을 것에 대한 원한은 쉽게 풀리지 않는데 말이야....지독한 녀석들이네."

"......능청스럽게 말하시만 사실은 미안한 마음도 있으시죠?"

"아니. 그보다...배고파 죽을 것 같아."

"아무튼 다음번에 만나면 제대로 사과해두세요. 멤버들 간의 불화는 원치 않으니."

"알았어. 알았어.....아! 카나데 말이 나온 김에 샥스핀이나 먹으러 갈까?

요 건너편이 바로 차이나 타운(中華街)이잖아?"

"정말로 슈코씨의 의식의 흐름은 못 따라 가겠는걸요?

시오미 씨의 메뉴 선정 논리 회로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거에요?"

"그때 그때 달라. 마치...프로듀서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네......?"

"......사실 말이야, 나 지금까지 프로듀서가 맛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먹여주고 사 준 것에 정말 감사하고 있어."

"....갑자기요?"

"아이 참,...들어봐, 따지고 보면 프로듀서와 함께

아이돌을 하면서 먹어왔던 수 많은 음식들이

나의 피와 살이 되어 지금의 프로듀서에게 돌아온 것이잖아."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모르겠지만 생리적으론 그렇죠."

"그런 점에서 나의 세포 하나 하나, 체액 한 방울 한 방울 마다....

당신과 먹고 마시며 함께한 시간들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고 봐도 되는 것...아닐까?"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군요."

"프로듀서가 나와 먹은 메뉴들을 차가운 머리로 하나 하나 기억한다면...

나는 이 몸으로....당신이 먹여주고 키워 준

이 더운 피와 따뜻한 살로,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을 기억하며 살아갈거야."

"저기...슈코씨...?"

"......이것이 내가 당신을....기억하는 방법이야. 그것만은....진심이야."

"에...다 좋은데요, 슈코씨...근데..은근슬쩍 달라붙어서

저를 저쪽으로 밀어내시는 까닭은 대체 뭘까요?"

"어라? 눈치챘어? 오늘의 가게는 저기야."

"에.....뭐에요? 결국은 전에 갔던 초밥집이잖아요!"

"...그렇지?"

"대체 지금까지 이야기를 뭐로 들으신 건가요!"

"흐음....그럼 질문! 지금까지 대화 내용 중에 프로듀서씨가 메뉴를 제안 한 적은?"

"에....딱히....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요."

"그럼 다음 질문! 지금 껏 슈코가 제안한 메뉴들 중 프로듀서가 수락한 것은 몇 개?"

"....그것도 없네요."

"그럼...마지막. 이런 교착 상태에서 제 시간 내에 우리가 점심을 함께 먹을 확률은 얼마?"

"하아.....그것도 그렇네요. 타임 리미트라..."

"......부탁이야. 오늘도 이 몸으로 당신을...좀 더 기억할 수 있게 해줘. 응?"

".....오....오해 살만한 발언 좀 하지마세요!"

"후훗....자, 그럼 실례합니다~!"

"오늘도...결국....치히로씨에게 용서를 비는 수 밖에..."

그날 슈코는 회전 초밥 스무 접시 분량의 프로듀서에 대한 기억을 몸에 새겼다.

그와 함께 영수증을 받아들면 온화한 치히로씨의 불타는 미소를 볼 생각에,

이미 오금이 저린 프로듀서의 시름도 깊어만 간다.


머리로 아이돌을 기억하는 프로듀서와, 몸으로 프로듀서를 기억하는 아이돌.

언젠가 두 사람의 기억이 하나로 뒤섞이는 날도 있겠지만....

그건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 아쉽지만 지금은

이런 미적지근한 해피 엔드로도 이미 런치 타임은 끝나버리고 만다.

"그래도....맛있었지?"

"네.....맛있었어요."

"그럼...다음에도 또 부탁해."

".......저야말로요."

가게를 나서며 만족스럽게 미소짓는 소녀를 보면서,

남자는 '메뉴 고민에는 기억상실'이 해결책이라는 그녀의  특이한 지론을

조금이나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과 몇 걸음 뒤에

'디저트 메뉴'로 다시 무한 루프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역시...기억 상실은...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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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Weissmann입니다.

이 글은 본래 [주사위]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 스레드에서


슈코를 주인공으로 하여

'기억상실증  아이돌' 을 소재로 해피엔딩을 써본 단편입니다.


최근 스레드판에서 주사위를 굴리며

상황에 맞는 짤막한 단편이나 댓글을

가략히 써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항상 이런 저런 생각을 한 끝에 글을 쓰곤 했는데, 이런 식으로

 무작위 소재로 글을 써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네요.


언제나 '점심 메뉴' 결정에 고심을 겪은 것을 경험을 바탕으로

차라리 기억이 초기화 된다면...이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슈코를 그려보았습니다.


언제나 먹을 것을 밝히고 또 먹는 것을 좋아하는 슈코이기에,

담당 프로듀서로서 맛있는 것을 잔뜩 사주고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네요.


점심 메뉴라...

최근에 먹어본 것 중 일생 최초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중국에는 없는)'중화냉면'일까요.


새우와 해삼, 오징어 등의 해산물 냉채와

당근,오이,양파 등의 아삭한 채소 고명이 곁들여진

평양 냉면도 부산 밀면도 아닌 독특한 육수맛의 중화 냉면,


특히 낙화생 소스를 적당량 풀어 먹으면

고소함과 시원함이 함께 느껴지더군요.

땅콩 소스를 넣어먹는 냉면이라니...정말 신선했습니다.


뭐랄까...'엄청 맛있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내일 점심 메뉴는 또 무엇이 좋을까....

아이커뮤의 프로듀서님들도 모두 


매일 찾아오는 사소한 결정의 순간에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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