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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날 두 사람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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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8, 2020 13:18에 작성됨.

한가롭고도 평화로운 토요일.
이리저리 뛰어가면서 일을 해온 프로듀서는 늘어지게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원래라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상관없었다.
핸드폰 알람은 미리 꺼뒀고 프로듀서의 잠을 방해될 것들은 미리 차단해버렸다.
현관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만 빼면.


잠에 빠져있던 프로듀서는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뒤척였다.
그리고는 졸린 눈으로 현관 쪽을 살펴봤다.
열린 흔적은 없고 굳게 닫혀있는 문.


'바람 소리였나 보네...'


다시 눈을 감고는 졸음에 몸을 맡기려는 찰나,
무언가가 누워있는 프로듀서 몸을 덮쳐왔다.


"크엑! ㅁ, 뭐!?"


"좋은 아침이에요 프로듀서.
사실 아침도 아니고 한낮이지만요."


눈을 떠보니 프로듀서의 몸을 걸터앉으면서 손인사를 하는 센카와 치히로.
정체를 파악하자 찌푸린 얼굴이 된 프로듀서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으... 아까까지만 해도 잘 자고 있었는데."


"알아요. 얼마나 푹 자고 있었는지 제가 문 여는 소리도 못 들을 정도였잖아요."


"그냥 바람 소리인 줄 알았죠... 어쨌든 왜 온거예요."


"오늘 일정이 뭔가요 프로듀서?"


잠이 날아가 버린 건지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자 치히로도 따라 일어섰다.
멍하니 있다가 자기 컴퓨터와 게임기를 가리키는 프로듀서.


"먼저 컴퓨터로 게임하고 피곤하다 싶으면 다른 게임기로 게임할 거예요."


"어.. 그게 끝이에요?"


"네. 사실 완벽하지 않나요?
모처럼 만에 쉬는 날이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으니 게임하기 딱 좋은 날이죠."


"오, 아니에요 프로듀서 절대로 아니라고요."


"맞아요. 요즘 일이 많아서 게임할 시간이 없었다고요.
그러니까 실례지만 이제 나가주시겠어요?
저만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제가 왜 여기 왔는지 정말로 이해를 못 하셨나 보네요."


"알람 대신에 깨워주신 거요?"


"아니에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치히로.
아무 관심 없단 듯이 흥미 없는 표정인 프로듀서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무엇인지 말해보라는 몸짓을 하자
치히로는 헛기침을 한 뒤 프로듀서 가슴에 손을 대면서 말했다.


"저와 함께 어디 놀러 가자고 말하러 온 거예요."


"..... 네?"


"그러니까 우리 둘이서 어디든 간에 같이 놀러 가자고요."


"싫어요."


프로듀서가 고민할 것도 없이 즉답을 내리자
이번엔 치히로가 멍한 표정으로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치히로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침대에 앉아서 프로듀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왜요?"


"아까도 말했지만 오늘은 게임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어요.
제안은 고맙지만 치히로 씨, 거절하도록 할게요."


"그게... 프로듀서의 선택이란 거죠..?"


"넵. 치히로 씨도 귀중한 쉬는 날인데 여기 계속 있지 마세요.
저는 저대로 주말을 보낼 테니까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치히로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프로듀서 침대에 누워서
원하는 걸 사주지 않아서 떼쓰는 아이처럼 버둥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치히로를 보고 프로듀서는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제 부탁 들어줄때까지 계속 이럴거예요!"


"그만 하세요! 무슨 애도 아니고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에요!"


"몰라요! 이건 전부 프로듀서 때문이니까 그런 줄 알아요!"


"그게 왜 저 때문인데요! 먼지 날리니까 그만 해요!"


"그깟 먼지가 뭐가 중요해요!"


계속된 버둥거림에 이불은 점점 뭉개지기 시작하고
베개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프로듀서는 이것을 멈추려면 치히로와 같이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푹 쉬고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말했다.


"좋아요! 알았어요 나갈게요 됐어요!?"


"두 말하지 않기예요."


원하던 대답이 나오자 우뚝 멈추고는 옷에 붙어있던 먼지를 털어내는 치히로.
그런 모습에 어이가 승천할 뻔한 프로듀서지만
지금은 말싸움보다 주변 청소가 먼저였다.
이불은 꾸겨져서 구석에 들어가 있고 베개는 실종에다가
주변은 먼지투성이방이 되어버렸다.
프로듀서랑 놀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가기 전에 제 방부터 치워주시죠?!"


"네에? 여긴 프로듀서 방이지 제 방이 아닌데요?"


"이 꼴을 만들어버린 사람한테 듣고 싶지 않네요!"



몇 분 후 방 청소를 (하기 싫어했던 치히로를 억지로 붙든 뒤)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
햇볕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고 바람은 솔솔 부는 완벽한 날씨.


"날씨는 쓸데없이 좋네. 좋아요 이제 어디 갈 거예요?
제발 억지로 끌려온 만큼 아주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네요."


"너무 그렇게 세상을 나쁘게 보지 마세요 프로듀서.
그런데 오랜만에 둘이서 있는데 그 패션은 좀 아니지 않나요?"


"이게 뭐 어때서요?"


"항상 입는 양복이잖아요. 설마 양복 말고는 옷이 없는 건 아니겠죠?"


"있어요. 티셔츠나 맨투맨 같은 평범한 것도 있다고요."


"그럼 왜 저랑 있을 때는 그런 걸 안 입는 건데요?!"


"그냥 별로 상관없으니까요.
치히로 씨랑 만나고 노는 게 뭐, 엄청 멋부리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근데 치히로 씨야말로 평소와 다르게 입으셨네요."


항상 입는 형광색 정장이 아닌 하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정장 치마.
구두는 힐치고는 낮은 3cm 단화를 신고 있었다.
치히로는 살짝 기대감을 품은 채 프로듀서에게 느낌을 물어봤다.


"어, 어떠나요? 조금 힘써보긴 했는데..."


"흠...."


프로듀서는 팔짱을 낀 채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치히로 씨는 키가 작으시니 힐보다는 단화가 어울리네,
저렇게 입으시니 새내기 직장인이 된 것 같으시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새빨개진 치히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히죽 웃는 프로듀서는 조금 골리기로 결정했다.


"아~ 잘 어울리시네요 마치 데이트하려고 힘껏 차려입은 것처럼요."


"ㅈ, 정말요?!"


"네, 물론이죠! 사실 항상 입고 오던 그 정장보다 훨씬 이쁘시다고 생각해요.
제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잘 입으셨어요."


"아니에요! 프로듀서도 정말로 잘 입으셨어요..."


"아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신데요?
근데 정말로 왜 이렇게 힘주시고 오신 건가요?
단순히 저랑 놀려고 이런 건 아닐 테고."


"프로듀서 배고프시죠?! 뭐 먹으러 가시지 않을래요 제가 쏠게요!"


"와! 잘 먹겠습니다."


때마침 배가 고팠던 프로듀서는 밥 얘기를 듣자 골리는 걸 멈추고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하는 치히로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프로듀서의 계속된 고민이 이어지자
치히로는 근처 레스토랑을 향해 손을 잡아 이끌어 들어갔다.


"괜찮겠어요? 여기 좀 비싸 보이는데."


"괜찮아요. 그런데 아직도 뭘 먹을지 오래 고민하시는 건 여전하시네요."


"어쩔 수 없잖아요, 이걸 먹고 싶으면 저걸 먹고 싶어지는걸요.
그래서 고민이 길어지는 것뿐이네요."


"알 것 같으면서도 쓸데없는 이유네요."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이유기도 하죠."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대화하느라 아직 정하질 못했네요."


"추천해 주시겠어요? 제가 조금 선택 장애여서 오래 걸릴 것 같거든요."


웨이트리스는 프로듀서와 치히로를 번갈아 보고는 능숙하게 메뉴판을 펼쳤다.
그리고는 빠르지만 이해하기 쉽게 또박또박 설명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경우에는 따로따로 시키는 것보단 여기 커플세트가 좋을 것 같네요.
이 세트를 시키면 음료 2잔이 무료로 제공해드립니다."


"오! 그거 좋네요. 이걸로 하죠 치히로 씨."


"커플... 크흠, 좋아요 가격도 적당하고 괜찮네요."


"알겠습니다. 음료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딸기 에이드 혹시 있나요?"


"있고말고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계속 괴담만 쓰는 것도 뭐 하니 가끔 이런 것도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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