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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키] 이누미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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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1, 2020 00:47에 작성됨.



1.

'이누미'의 장례를 마친 히비키가 일주일 만에 다시 사무소에 출근했다.

'이누미'는 히비키가 기르는 개다. 종양 문제로 동물 병원에 있다가,

급성 쇼크성 심장 마비로 갑작스럽게 죽어버렸다고 한다.

그건 무언가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다. 솔직히, 히비키가 기르는 햄스터인 '햄죠'도 이미 평균 수명을 초월해서 살고 있는 마당에ㅡ

이누미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개를 길러본 적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한낱 동물 때문에

일주일씩이나 장례를 치르겠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히비키가 이누미를 소중한 가족으로 아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사실 납득하지 못한 것은 돌아온 히비키의 태도였다.

아이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거나, 페스티벌 대비 레슨을 받는 와중에도,

히비키는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때때로는 몸을 움찔거리는 것과 같이

무언가 불안해보이고,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이, 자신 때문에 일주일이나 사무소 일정이 지체되었다는 것 때문에 히비키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었다.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딱히 히비키랑 친한 쪽은 아니었으니까.

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같은 사무소에서도 모두랑 친하기는 힘든 법이다.

구태여 따지자면, 히비키는 미키와 타카네와 친한 쪽이였다.

나는 하루카 쪽과 친한 편이고.


하지만, 자주 부대끼는 같은 사무소 동료라는 입장에서는

알고 싶든 알고 싶지 않든 결국에는 동료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보게 되는 법이다.

나는 히비키의 불편한 모습이 죄책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실은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있음에서 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히비키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히비키가 두려워할만한 것이 있었던가?

유키호라면 개를 무서워할 것이다. 타카네의 경우라면 귀신이겠지.

하지만 히비키가 무언가 두려워한다는 걸 들은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히비키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조용히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폴더폰 너머 히비키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언가 다급한 사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히비키가 내게 연락을 한 건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일단은 알겠다고 답했다. 귀찮긴 하지만, 나오지 못할 이유도 없었고

그렇다고 히비키가 불편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부른 곳은 공원 근처 커피숍이었다.

초여름의 햇볕은 벌써부터 제법 열기를 발하고 있어서, 나는 히비키에게 커피숍 안에 들어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히비키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격한 반응으로 밖에서 말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히비키의 이런 반응은 제법 당황스러웠기에, 나는 단박에 그녀가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음을 깨달았다.


"알았어, 그러면 기다려 히비키. 히비키는.. 민트 쵸코지?"


".. 고맙다죠."


일단 한 잔의 아메리카노와 민트 쵸코를 시킨다. 점원이 원두 커피 기계를 돌리자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커피가 쟁반 위에 올라올 때까지 그녀를 가만히 지켜본다.

그녀는 연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원 구석의 나무 아래 그늘진 부분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무얼 그렇게 열심히 바라보는 것일까?


"자, 여기."


"잘 마실께, 치하야."


파라솔 없는 야외 테이블이라는 점이 아쉬웠지만,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솔솔 불어오는 순풍을 맞으니 이것 또한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히비키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천천히 마시기로 유명한 내가 반 잔씩이나 비운 와중에,

그녀의 민트쵸코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 있었다.


"저기, 치하야.. 이상한 말인 건 알겠지만 오해하지 말구.. 그냥 물어보고 싶어서 그렇다죠."


마침내 히비키가 말문을 열었다. 그래, 과연 어떤 사정 때문에 그랬던 거야 히비키?


"..무언가 이상한 거 본 적 있어?"


"이상한 거라.. 하루 종일 넘어지는 하루카 같은 거?"


"그, 그런 농담이 아니다조!"


이런, 너무 긴장한 것 같아서 가볍게 풀어주려고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히비키를 자극한 것 같다. 히비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아니, 긴장한 거라 해야 맞는 표현이겠지. 무언가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어린애 같은 표정이었다.


"... 장례식 이후로 이상한 게 보여서 그래."


"저기, 혹시.. 내 '사정' 가지고 불쾌한 농담 같은 거 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줬으면 좋겠어."


이런, 나도 모르게 날 선 반응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질문이었다.

장례식 이후로 이상한 것이 보인다는, 그런 말인가? 귀신 같은 거?


"미, 미안하다조! 하지만 전혀 놀리려는 건 아냐.

그냥.. 그나마 물어볼 수 있는 게 치하야 뿐이라서 그렇다조."


히비키는 한참 운을 떼다가 다시 말했다.


"..이누미 장례식을 보낸 이후로, 계속 이누미가 보여."


"저런.."


처음에, 나는 그것이 무언가 감정적인 표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누미가 그리워서 아른거린다든가, 하는 감정적이고 수사적인 표현 말이다.

하지만 히비키는 정말로 있는 그대로의 뜻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정말이다조! 자꾸.. 자꾸 이누미 같은 무언가가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조!

어둠 속에서, 구석의 그림자 안에서 이누미가 자꾸 날 바라보고 있어!

자신이랑 같이 가고 싶어서 그런 거야. 자신이 원망스러워서 그런 거라죠!"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 몰래 카메라 같은 것인가?

저기, 몰래 카메라라면 이제 그만 둬줬으면 좋겠어. 너무 재미 없이 뻔한 클리셰잖아?

그러나 나무 뒤편에는 몰래 카메라 촬영 중인 코토리씨 같은 사정 좋은 장면은 없었다.

히비키는 정말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최소한, 그녀 기준에서는.


"잘 모르겠는데.

애초에, 귀신 같은 건.. 그러니까 있다고 한다면.

원한 같은 것이 있어서 생기는 거잖아?

그런데 내가 알기로 히비키는 이누미에게 잘해줬잖아?"


"...자, 자신이 실수해서 그런 것 같아.."


"실수?"


히비키가 주섬수섬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바싹 말라서 비틀어져 있었는데,

한쪽 끝은 말라 비틀어진 문어 대가리처럼 납작했고, 반대쪽으로 갈수록 가느다란 막대기 같았다.

찬찬히 살피던 나는 그 나뭇가지 같은 끝부분에 손톱이 붙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꺅! 히, 히비키! 도대체 그게 뭐야?"


"..원숭이 손가락이다조.."


"그, 그런 걸 왜 가지고 있는데?"


"자신, 어망한테 찾아갔었어..

사실 우리 어망은.. 무당이야. 몰랐지? 헤헤....

지금까지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그런 걸 밝힐 수는 없었으니까.."


억지로 쓴 웃음을 짓던 히비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이누미가 죽었을 때, 자신ㅡ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그래서 어망한테 찾아가서 부탁했어.

이누미랑 계속 함께할 수 있게 도와달라구.. 자신 어망, 아방이 돌아간 이후로 정신이 조금 이상해졌다구 하지만..

정신이 멀쩡했을 때엔 분명 그런 미신 쪽 일을 많이 했었다구 그랬거든.. 오라방이랑 동네 사람들한테.

그때 어망이 준 부적이야.. 이미 써 봤다면서ㅡ 자신한테 줬어.

손가락 3개짜리 원숭이 손이야. 1개에 소원 1개씩.."


"...그런 걸 믿는거야 히비키?"


"제발! 제발!! 제발 믿어달라조!"


히비키가 갑자기 소리쳤다. 너무나도 절박하게 소리쳐서, 나도 모르게 알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프로듀서한테 나중에 따로 말해야겠다.


"자신.. 이누미를 살려달라고 부탁했어.

어망의 말은 진짜였어. 이누미는 정말로 살아났다죠?"


"...장례는 왜 치룬 건데 그렇다면?"


"..잘못된 거야. 잘못 살려낸 거야. 아예 살리지 말았어야 되었던 것이었다조.."


한참을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던 히비키가 이어서 말했다.


"되살아난 이누미는 종양 때문에 끔찍하게 비명을 질렀어.

아아, 원숭이 손가락이 이누미를 죽음에서 다시 부활시켜줬지만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지는 않았던 거다조..

이누미는 너무 아프게 비명을 질러서, 차마 듣지 못할 정도로 비명을 질러댔어.

그래서.. 자신은 이누미를..."


"..아냐 됐어. 그 이상 말하지 말아줘.

이제 장난은 그만하자 히비키, 더 듣기 거북하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이런 건 선을 넘었어!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야? 결국 이누미를 또 죽였다 이런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던 거야?

히비키, 정신차려 진짜!"


"..차라리, 그걸로 끝이였으면 좋았을지도."


그 대답이 너무 서늘해서,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것도 잊고 말았다.

마치 정신 나간 막장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듣기 싫을 정도로 거북했음에도

어쨌든 자리를 붙잡는 기묘한 힘이 있었다.


"..자신, 이누미를 오키나와 근처 산에 묻어줬어.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문득 떠올려버렸어.

자신, 손가락이 2개나 더 있다고..

결국 하나를 또 써버렸어. 이누미를, 살려달라고.

이누미가 자신이랑 앞으로 계속 함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설마, 살아났다고?"


그녀가 말 없이 자신의 폰을 내게 건냈다.

거기에는 영상 하나가 띄워져 있었는데, 히비키는 말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장소는 어둠에 잠긴 산기슭 어딘가였다. 마치 매장하려다가 중간에 멈춘 것 마냥,

구덩이 하나가 파헤쳐져 있었다.

흙이 덕지덕지 묻은, 더러운 천에 싸인 무언가가 화면 가운데에 놓여져 있었다.

곧, 매끈한 손 하나가 그 천을 햐해 조심스레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히비키의 손이 분명했다.

그 순간, 갑자기 천 안쪽의 무언가가 파르르르 몸을 떨었다.

천이 벗겨졌다. 벗겨지며, 노르스름한ㅡ반쯤 썩고 파먹혀 형체를 알 수 없는 초록 인광의 무언가가..

그것은 이누미였다. 되살아났을지언정, 죽음 그 상태 그대로 일어난 것이었다.

역겨운 고름 비슷한 녹색 액체와 함께 턱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과 함께 핸드폰을 치워버렸다.


"...원숭이는 손가락이 5개다죠? 그치?

그리고 자신의 어망.. 어망은, 원래는 정상인 사람이었데.

그런데, 오라방이 그러는데.. 아방이 돌아가고 일주일 후에..

어느 날 밤에 어망이 어딜 나가고 난 다음부터 이상해졌다고 그랬어.

어쩌면.. 어망도.. 나처럼 아방을.."


"결국... 자신은 이누미를 처리했어.

토막내서, 그대로.. 고향집의 아궁이에 전부 태워버렸어.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죠!

그 때부터 보여.. 그림자 속에서, 이누미가.. 이누미가..

지, 지금도 저기서 날 기다리고 있다조!

저기, 저기 보라조!"


히비키가 가리킨 방향은 공원의 나무 아래 그림자 쪽이었다.

허나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잠시, 무언가 어둠 속에서 꿈틀댄 것 같기도 하다.



도저히 믿기 힘든 싸구려 같은 이야기였다. 공포 영화 플롯 중에서도 뻔한 플룻 같은 이야기.

하지만 그런 영상을 보고 나니, 정말 그대로 반박할 수도 없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히비키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그럴 바엔.. 하나가 남았잖아.

그걸 써버리면 되는 일 아냐?"


"..응?"


"그냥, 영영 사라져버리라고 빌면 되잖아.

영영 자신의 눈 앞에 보이지 말라고.

손가락 하나 더 남았으니까, 그걸로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닐까?"


"..그, 그런.. 그, 그렇다죠!

맞아, 이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조?

어쩔 수 없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라조?

치하야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제서야 나는 히비키가 이미 진작부터 그걸 고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등 떠밀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구나..

자기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래. 나라면.. "


"..맞다죠!.. 그러니까.. 자신, 바로 해버리겠다조!

역시 고민할 필요 따윈 없었다조!"


그녀가 원숭이 손가락을 들고


그제서야 무언가 크게 해소되었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과 함께ㅡ

히비키가 말했다.


"고마워 치하야.. 역시, 치하야에게 물어보는 것이 답이었다조!

자신, 내일부터는.. 괜찮을거야 약속할게!"


"..알았어."


그리고 나는 히비키와 헤어졌다.


그날 저녁에,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퍽 당황스러운 전화였기에,

나는 경찰관에게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는 히비키가 자살했다고 말했다.

....



그녀는 한 밤 중에 오키나와 근처 바닷가 방파제 위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듣기로는 그러한 죽음이었다.

한동안 언론이 시끄러웠고, 사무소는 초상 분위기 속에 한동안 휴식 기간을 거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가장 마지막에 그녀와 만난 것이 나였기에,

나는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에 출석해야 했다.

내가 접수대를 통해 자리에 착석하자,

담당경찰관이 사고 현장의 CCTV가 찍은 영상에서 눈을 떼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참.. 죄송합니다. 사무소 친구가 이런 변을 당해서 슬프실텐데,

이런 일로 불러야 해서.."


"...아뇨,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게.. 사고인지 아닌 지가 판명하기가 어려운 문제라..

일단은.. 그쪽으로 정해놓긴 했습니다.

허나 저희 일이라는 게.. 사유가 있다면 사유라도 확인해야 되거든요.

혹시, 최근 히비키씨가 힘들어한다든가.. 그런 모습을 본 적 있었나요?"


"예, 아무래도..이누미가.."


CCTV 속 영상에서는 히비키의 마지막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보였다.


히비키가, 마치 무언가에 끌려가는 것 같은...


검은 개 같은 형상이, 그녀를 방파제 끝자락으로 끌고가고 있었다.


"저기, 잠시만. 저 영상.. 저기요 저거! 저거, 뭐죠?

저 검은 거 저거요!"


"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방파제 근처의 가로등 아래ㅡ

영상 속 흐릿하게 보이는 검은 형체는 히비키를 계속해서 끌고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검게 물든 바다 속에 빠져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히비키의 두 번째 소원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누미와 영원히 함께 해달라던 그녀의 소원은..

결국 완전히 이루어지고 만 것이다.



ps. 심심해서 간만에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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