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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더 꿈을 꾸어야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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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5, 2020 21:12에 작성됨.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본 적 없는 사람들.


들은 적 없는 노래들.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주 많은 것들.


'나'라는 건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다니.


즐거워 보여. 하지만 저런 건 '약함' 이라고 생각해. 


하면 안되는 것.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주 조금은, 아니 실은, 언제나 바라고 있었던 것들.


나는 앞으로 몇 번 더 꿈을 꾸어야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


방금 그것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선명했다.


아직 멍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아직 잠기운이 달라붙은 눈으로 탁상시계를 보았다. 본래 일어나기로 정한 것보다는, 살짝 이른 시각. 조금 더 자두는 게 좋을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든 것과는 별개로, 나는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만 또 완전히 일어나지는 않은 채, 덮고 있던 이불 끝단을 꾹 붙잡았다. 그러면서 좀 전의 꿈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 꿈은 이따금 꾸던 것과는 무척 달랐다.


그 애에 대한 꿈이 아니었다.


그건 '나'의 꿈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그저 닮은 사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키도 체형도 목소리도 전부 나와 똑같았다. 그 뿐만이 아니야. 기본적인 성격 같은 것도 분명, 나와 똑같았다고 생각한다.   꿈 속의 나는, 지금보다 한 살 더 많았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의 나. 그렇다면 혹시, 이건 소위 예지몽이라고 하는 걸까.


하지만 그건, 정말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꿈 속의 나는 웃고 있었다. 본 적 없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그 웃음은 무척 자연스러웠다. 지금의 내가 겨우 지을 수 있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과는 아주 달랐다.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듯한 밝은 미소. 


.....즐거워 보여. 나라는 것은,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구나.


나도 모르게 묘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불쾌한 느낌이 훅 치밀어올랐다. 저런 건 '약함' 이라고 생각해. 노래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내 다짐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고작 1년 사이에 저렇게 무너졌다는 걸까? 아니, 그럴 리 없어. 나는 꿈 속에 나왔던 765 프로덕션.....아니, 거기서는 '시어터'라고 지칭되던 건물을 떠올렸다. 휘황찬란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낡은 사무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였던 것은 확실했다. 


이 사무소가 1년만에 저렇게 될 확률은....거의 0이라 해도 무방해. 그러니까 그 꿈은 예지몽 같은 게 아니야. 내가 저렇게 될 리는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알람이 울렸다. 이젠 정말 일어나야겠지. 나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시트를 정리하고는 불을 켰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슬쩍 문을 열었다. 기분 나쁠 정도로 무거운 고요함이 문 틈으로 파고들어왔다. 다행히도 어제는 조용히 넘어갔나보네. 아주 조금,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살얼음판과도 같은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


꿈이라는 건 대체 뭘까. 


단순한 환상? 미래에 대한 예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던 소망의 투영?


학교와 레슨. 그리고 아주 약간의, 내 의사하고는 반대되는 일들. 며칠 사이로 일어나곤 하는, 밤 중의 소동.....아직 그리 큰 변함은 없는 일상 속에서, 나는 잠깐 꿈에 대해 생각해봤다. 처음 그 때 이후로도, 종종 보게되는 16살인 나. 근본은 같은 듯 보이지만 아주 다른 그 사람. 들은 적 없는 노래들, 본 적 없는 풍경들과 함께하고 있는 그 사람.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그 사람하고 하루카....아니, 아마미 씨가 함께 있는 꿈을 꿨어. 실은 전에도 몇 번 꿈에서 보긴 했었지, 아마미 씨. 그 외에도 아키즈키 씨나 하기와라 씨도. 아마 그들도 같은 '시어터' 소속이라는 걸까. 아니면 무의식의 영역이 아는 사람의 얼굴을 슬쩍 빌려온 것에 불과한 걸까. 어느 게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곳은 765 사무소가 빌리고 있는 레슨실. 나 혼자만이 레슨을 받거나 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아닌 관계로,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마미 씨가. 바로 저기, 그리 머지 않은 편에서. 나는 아마미 씨에게 눈길을 보냈다가, 혹여 눈치라도 챌까 금방 거두어들었다.


아마미 씨와 나는 기본적인 인사 정도만 겨우 나눌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정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마미 씨는 아마미 씨. 나는 나. 같은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지만, 결국은 그뿐. 굳이 다른 누군가와 친해질 필요는 없어. 일적으로 엮이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서까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랬었는데.


오늘은 조금 다르다. 나는 다시 한 번 아마미 씨를 살폈다.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기지개를 펴고, 새빨간 체크 투성이인 악보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하네. 전에도, 그보다 더 전에도 그랬던 것 같아. 아마미 씨는 노력가구나.


일부러 알아내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사실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안타깝게도 그 노력은 실력에는 연결되지 못하는 듯 했으니까. 나는 머리 속에서 손쉽게 아마미 씨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재생할 수 있었다. 나름 열심히 하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노래. 솔직하게 평하자면 엉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이렇게 계속 보고 있을 이유는 없을 텐데. 


아마미 씨의 노력이 보답받지 못하든 말든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었다. 내게는 다른 사람까지 신경 써줄 여유 따윈 없었다. 나는 나만으로도....노래만으로도 벅찼다. 그런데도 나는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단 분명, 아마미 씨가 눈치챌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도 나는 아마미 씨를 계속 보았다. 그 날의 꿈이 거품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그 사람은 예의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아마미 씨를 하루카,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불린 아마미 씨는 전혀 불쾌한 기색 없이, 아니, 오히려 기뻐하는 투로 그 사람의- 내 이름을 불렀다. 치하야 쨩. 지금과 똑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울림으로.


그 뒤로 이어지는, 그리 정확히는 들을 수 없었던 대화. 그렇지만 지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사이 좋은지 알 수 있었다. 나와 아마미 씨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걸까. 지금으로서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아. 어떻게 1년 사이에.....아니, 아니야. 그건 그냥 꿈일 뿐이야. 


그러면 나는, 어째서 그런 꿈을 꾼 걸까.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미 씨와 친해지고 싶었던 걸까? 아니야. 나는 아마미 씨와 친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 그건 아마미 씨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해. 때로 먼저 말을 붙여오기는 하지만, 그건 인사치레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같이 있어봤자 서로 불편하기만 할 뿐이야. 


"그, 치하야 쨩?"


마음 속에서 몇 번이고 고개를 젓고 있을 때였다. 꿈과는 다른 울림으로 내 이름이 들렸다. 저도 모르게 드는 서운함에 당황하면서도 정신을 차리고 두 눈을 크게 깜빡이자, 아마미 씨가 전보다 훨씬 가깝게 보였다.


"괜찮아? 곧 있으면 또 레슨 시작이야. 트레이너 선생님도 오셨어."


그 말에 급히 눈을 굴리며 레슨실을 살폈다. 금방 한 구석에 놓인 낡은 피아노 앞에서 레슨 준비를 하고 있는 트레이너를 볼 수 있었다. 고작 꿈 따위에 주의를 빼앗기다니.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자, 아마미 씨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어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것도."

"에, 아, 아하하.....그렇구나. 응."


내게 향해오는 시선과는 끝까지 마주하지 않은 채, 짧은 한 마디만을 툭 내뱉자 아마미 씨는 조금 당황스러워하면서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언제나와 같은 흐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랬을 텐데.


".....하루카. 아, 아니, 아마미 씨."


나도 정말, 무슨 생각으로 입을 열었는지 모르겠다. 들리지 않았으면 했지만 결국 들어버린 모양인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던 아마미 씨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사람을 불렀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그, 역시 이상하겠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걸까. 나, 대체 아마미 씨에게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내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날 의아한 눈으로 보는 아마미 씨의 얼굴에 서서히 불안함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 아마미 씨. 별로 당신을 나무라거나 하고 싶은 건 아니야. 그냥, 무슨 말을 하는 게 적당할지 고민되어서.....


"그, 알려줘서....고마워."


마치 쫒기는 듯한 느낌에 반쯤 되는대로 내뱉은 말. 아마미 씨의 두 눈이 일순 동그랗게 커졌다가, 곧 호를 그렸다. 에이, 아니야. 그 뒤로 흘러나오는 웃음 섞여 있는 한 마디는 꿈과 조금 닮아있는 울림이어서, 아주 약간 아마미 씨와 시선을 마주했다. 기본적으로 다른 누군가에 대한 관심이 담겨 있는 듯한, 크고 둥그런 초록빛 눈동자. 그저 몇 초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 때. 


-아마미 씨, 키사라기 씨. 레슨 시작합니다.


마침 트레이너가 우리 두 사람을 불렀다. 구원처럼 느껴지는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이번에는 아마미 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방금 그걸로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나는 느슨해져 있었던 긴장의 끈을 다시 붙잡았다.


"저기 있지, 그, 좀 전에, 잘못들은 게 아니라면 치하야 쨩이 날, 이름으로 불렀었지? 하루카, 라고......"


그랬었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방금 기억을 되짚어봤다. 아, 확실히 그랬다. 금방 정정하긴 했어도, 아마미 씨는 전부를 들어버렸다. 역시 불쾌한 걸지도.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름을 불렸으니까. 그렇겠지. 당연하다.


꿈과 현실은 다르니까.


나와 그 사람은 다르니까.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쓴 맛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들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걸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마미 씨가 돌연 이런 말을 해버렸다.


"그, 괜찮다면, 앞으로도 쭉 이름으로 불러도 되니까! 아니, 내 쪽에서 부탁할게. 이름으로 불러줘. 그러면 정말 기쁠 거야. 그, 아, 안 되려나.....?"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소리에 바짝 굳어버린 동안에, 아마미 씨가 조금 앞으로 와서는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 그렇게 바라보면....얼떨결에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하루카는, 아마미 씨는, 아니 이젠 하루카는 내게 밝은 미소를 한 번 보여주고는 뒤돌아 트레이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상한 사람이구나. 내가 그쪽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뭐가 좋다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이쪽이 싫다는 건 또 아니었지만.....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보다는 사이가 조금 진전되어버린 탓에, 나는 꿈 속의 그 사람과 하루카를 떠올렸다. 그 두 사람도 어쩌면, 이런 식으로 친해졌을지도. 그렇다면  나도 언젠가는 하루카와-


.....잠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뒤늦게 제동을 걸었다. 내가 그래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와 정반대로, 그러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많았다. 그래. 내겐 노래 뿐이야. 다른 사람과 시시덕거릴 여유 같은 건 없어. 그리고 지금 무엇보다도 가장 강한 이유라고 생각되는 건, 하나였다. 그래서는 마치 꿈에 끌려다니는 것만 같았다. 


안 돼. 싫어. 


그런 건, 분해. 


만약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저 그 사람을 따라가고 싶지만 않았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는, 나. 그러니까....하아, 이럴 거라면 그 때, 고개를 끄덕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았지만.


"치하야 쨩? 괜찮아?"


아마미 씨가, 아니, 하루카가 다시 날 불렀다. 꿈 속과 조금 닮아있는 듯한, 싫지는 않지만 그래도 좀 껄끄러운 울림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하루카의 뒤를 따라갔다. 이래서야 과연 레슨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


....


아마미 씨를 하루카라고 부르게 된 뒤로부터 며칠 후. 나는 그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꿈 속에서 듣고는 잠을 깼다. 목소리는 나와 그렇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다른 느낌의 노랫소리.  사실, 잠에서 깬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그랬다.


".....외로움은 분명, 행복에 다다르는 그 날의 프롤로그."


전부는 기억할 수 없는 소절 속에서, 나는 가장 인상 깊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입밖으로 내뱉어보았다. 


"파랑새, 만약 행복이 가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는 뒤이어 지금의 내가, 그리고 1년 전의 그 사람이 불렀던 노래의 소절을 마저 중얼거려보았다. 1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을 이토록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까. 단편적으로나마 제시되었던 그 사람의 행적을 짜맞춰본다. 분명 시작은 나와 같았는데.


사라져버린 그 애. 그 때 이후로 그저 가라앉기만 한 집. 어두운 방에 홀로 틀어박혀, 다투는 소리를 반쯤 체념한 채 흘려 듣고 있던 풍경마저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는데. 그런데, 그런데도. 잘도 프롤로그라고 할 수 있는 거네. 


지금의 나를. 


나는 나야. 


나는 그 사람의 프롤로그 같은 게 아니야! 


제멋대로인 분노가 순간적으로 터져나와 나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연관짓게 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지금 벽을 타고 웅웅 울려오는, 누군가의 고함소리보다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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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을 이제와서 올려보네요. 유적 발굴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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