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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모음집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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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4, 2020 23:37에 작성됨.

1.

페인트로 커다랗게 X. Y. Z라고 휘갈겨 써진 벽을 옆에 둔 건물에
빨려 들어가듯이 걸어가는 프로듀서를, 나는 떨리는 몸을 감싸며 따라갔다.


"위험해라! 거기, 조심해!"


조심해야 할 건 프로듀서 쪽이라고. 안 그래도 어두운데 갑자기 모퉁이에서
멈춰 서니까 앞을 되도록 보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고 걷던 나는
프로듀서 등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그치만 프로듀서가 갑자기 멈췄-"


내 말을 자르듯이 프로듀서가 말했다.


"봐... 이게 뭐야... 기분 나빠..."


기분 나쁘다는 걸 누가 좋아서 보겠어..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아도 결구 보고 마는 건 왜일까...

인형? 서양 인형이 떨어져 있다...
더러운데다 머리카락이 거의 빠져 있고 오른손이 없는 기분 나쁜 인형이다.
아니, 어둡고 음침한 이런 곳에서 보니까 기분 나쁘게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밝은 곳에서 보면 그저 더러운 인형이다.. 하지만...


왜일까... 우리를 노려보는 것 같은 저 시선은...


이 너머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보이는 건 착각인가?
달빛이 인형의 얼굴만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기에 한층 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보인다...


"역시 관두자... 나, 속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

"바보야. 자기 좋을 대로 말하지 마."


..............


우리가 여기에 온 건 다름 아닌 프로듀서의 제안이었다.
모처럼 여름방학인데 바다나 수영장에 가지 않고 기숙사에 틀어박혀
에어컨을 튼 시원한 방에서 여름 초에 발매된 신작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건 그거대로 즐거웠고 매년 이런 식으로 보내다가
어느샌가 여름이 끝나 버리기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


"올해는 여름 끝나기 전에 담력 시험 가자!"


프로듀서의 제안에 무서운 걸 싫어하는 나는 내키지가 않았다.
솔직히 끔찍하게 싫었다.
물론 맹렬히 반대했지만

프로듀서는 "아이돌들이 담력 시험하는 건 꽤 재밌잖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 이외의 멤버들은 전부 의욕이 만만한 생태...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기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멤버는 나, 프로듀서, 그리고 미오랑 미호였으나,
 미오는 고향으로 가야한다고 가지 못하게 되어서 3명이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당일이 되어서 갑자기 미호가 감기로 못 오게 되었다고 들었기에
결국 나랑 프로듀서 둘이서 가게 된 것이다.


최악이다...

3명으로도 무서운데 고작 둘이서 가다니...


.............


마을 외곽 예전에 파칭코 가게였다는 폐허가 있다.
그것만 들으면 별로 무섭지 않지만 예전에 그 가게를 운영하던 주인이
경영난에 시달려서 그 자리에서 가족과 같이 집단자살을 했다는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장소는 근처에서도 유명한 심령 스팟이었다.


평소부터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거기에 남아 있는데,
밤이 되면 한층 더 음침해진다.
그 일대기가 뭔가 꺼림칙한 걸로 뒤덮인 것 같았다.


프로듀서가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아주머니가 저기는 예전에 묘지가 있었다고 했지."

라고 중얼거려서,
쓸데없는 정보를 떠올리다니...라고 부들부들 떨면서 향했던 기억이 난다.


둘이서 일단 건물 주변을 둘러보고 입구를 찾았다.
그러자 한 곳, 유리가 깨진 곳이 있었다.
아마도 폭주족이 부수고 안에 들어간 흔적일 것이다.


"저기로 들어가자."


프로듀서가 성큼성큼 들어간다.

이런 곳에서 혼자 남는 건 죽어도 싫기에 그 뒤를 필사적으로 따라갔다.


인형이 있었던 건 입구 바로 근처였다.

이 가게 주인의 자식이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었을까.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기분 나빴다.
오래 있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지나치려고 하니, 프로듀서가 비디오카메라를 멈추고 말했다.


"나오! 너 사진 제대로 찍어야지! 뭐 하러 온 거야!"


그다지 찍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올 때
프로듀서가 건넨 디지털카메라로 인형과 그 주변을 찍었다.
그 자리를 뒤로하고 계단이나 창문, 화장실 등 여기저기를 찍은 뒤, 사진을 확인했다.


어라? 이상하다.

인형을 찍은 사진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있긴 한데 인형이 찍혀 있지 않았다.


"저기... 이거 이상해..."

"뭐가?"

"봐... 아까 그 인형 찍혀 있지 않아.. 분명히 찍었는데..."

"그럼 다시 찍어. 꽤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인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찍으려고 했다.


어라? 없어...
분명히 이 곳에 있었을 텐데..


프로듀서랑 둘이서 그 인형을 찾았다.
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시간도 꽤 늦어졌고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기에
인형은 포기하고 다른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때 인형이 없어진 걸 이상하게 여기고 얼른 돌아갔으면 좋았을걸.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건 종업원용 급탕실로 들어간 후부터였다.
나는 갑자기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픈 두통에 시달렸다.
아니, 솔직히 이 부근부터 기억이 애매모호하다...
여기서는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토대로 얘기하겠다.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그때 나는 갑자기 울기 시작해서 "죽고 싶지 않아.."라고 반복해서 말했다고 한다.


"야, 나오. 왜 그래? 그만둬! 농담이지?"

"죽고 싶지 않아... 아빠 그만둬..."

"진짜로 하지 마!"


그렇게 나를 떠밀었다. 그러자 내가 짊어지고 있던 가방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고 한다.
가방을 열어둔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어느샌가 지퍼가 열려 있었다.


"어이, 뭔가 떨어졌어."

프로듀서가 주워 올려 손전등으로 그걸 비쳤을 때 그는 놀랐다.


"으악!"

그 목소리를 듣고 나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히익! 뭐, 뭐야?"


프로듀서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지금까지 이런 프로듀서를 본 건 처음이었다.
완전히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노려보더니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다.


"너... 이런 장난을 하다니.. 이.."


뭐가 뭔지 몰라 "뭐가?"라고 물으니.


"그 인형 말이야! 그런 걸 가방에다 넣어두고.. 날 놀리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라며 그걸 비추었다.


거기에는 입구에서 본 그 인형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입구에서 봤을 때 표정과 명백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닫혀 있던 입이 뻐끔 열려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마치 담배 같은 걸로 입가를 지져서 구멍을 뚫은 것처럼 되어 있었다.
거기에다 인형 복부에 나이프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몰, 몰라! 내가 아니야! 이, 이런 걸 가방에 넣고 다닐 리가 없잖아!"

"그럼 왜 가방에서 그게 떨어진 건데!"

"그러니까 모른다고!"


언쟁이 벌어졌으나 우리는 아무튼 여기에 있으면 위험하다 싶어서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프로듀서가 나한테 디지털카메라를 뺏더니 "혹시 모르니."이라고 말하면서
인형을 찍고 얼른 급탕실을 나왔다.
둘 다 말없이 출구로 갔다.

이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발걸음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공포로 스스로 얼굴이 굳어진 걸 알 수 있었다.
출구가 보이기 시작하자 왠지 안심이 되어서 빨라진 걸음도 속도를 좀 더 늦추었다.


"어, 어라?"


프로듀서가 갑자기 갈라진 목소리를 내었다.
이상히 여겨서 "왜 그래?"라고 말을 거니.


"여기, 아까 들어간 장소.."


문에다 손전등을 비춘다. 틀림없이 우리가 들어온 입구는 여기지만 왠지 상태가 이상하다.
유리가 깨져있지 않은 것이다.
분명히 들어왔을 때는 유리가 깨져있어서 들어올 수 있었는데.
하지만 거기에 보이는 유리는 깨져 있지 않았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나한테 묻지 마.. 몰라 나도.."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어쩌면 입구가 비슷할 뿐 다른 장소일지도 모르지?"

"아니, 봐 봐. 저기에 내 스쿠터 있잖아."

"아, 진짜다. 어떻게 된 거야! 이거!"

"몰라! 프로듀서가 이런 곳에 데리고 왔으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 어떻게 좀 해 봐!"

"우으..."


패닉이었다.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심상치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분명했으나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나는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깨자.. 어쩔 수 없어. 깨고 나가는 거야!"


그때였다.
나는 손전등을 아직 유리에 비추고 있어서 유리에는 우리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거기에 우리뿐만 아니라 이상한 것도 같이 비치고 있었다.
프로듀서의 바로 옆에서 하얀 것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옆을 바라봐도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점점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애?


키는 130 정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손에는 그 인형이 들려있다.
너무나도 무서워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 같다.
프로듀서는 눈치채지 못한 건지 주변에 뭔가 막대기 같은 게 없나 찾고 있다.


"나오! 너도 찾아 봐!"


유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여자애는 점점 프로듀서에게 다가선다.
프로듀서가 유리로부터 등을 돌린 그때,
여자애는 그의 등에 겹치듯이 올라타서 녹아들듯이 몸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프로듀서가 변한 건 이때부터였다.
유리를 깨기 위해 막대기를 찾는 걸 관두고 갑자기 우두커니 서 있더니
내 쪽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빠는 말이지... 리나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나 말야.. 무서워서 도망치는 거야...
물 끓이는 방에 도망치니 말이야, 아빠는 또 리나를 쫓아와...
죽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어...
리나의 목을 잡고 주어서... 죽.... 어...."


내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지고 못하고 그저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서가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깜짝 놀랐어? 복수야.. 아까 거..."


....장난?


"노, 농담이 심하잖아! 진짜로 웃기지 말라고!"


안심해서 힘이 쭉 빠진 채로 그렇게 말하니.


"리나 인형을 훔친 복수..."


.............


등골이 오싹해졌다.
프로듀서의 얼굴이 히죽 웃는 얼굴로 바뀐다.
붉은 눈물을 흘리면서 낄낄낄 웃는다.


"으악!"


나는 정신없이 유리에 몸을 날려 깨고 밖으로 나갔다.
타고 온 스쿠터에 올라타서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뜨고 싶었다.
왠지 프로듀서가 타고 온 스쿠터가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잠시 스쿠터를 몰고 있으니 점점 진정을 되찾아서 속도를 늦추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도중에 있던 편의점을 들러 보았다.
미호였다.


"나오. 괜찮아? 나 말이야, 감기 괜찮아졌으니까 지금부터 거기에 갈게!"

"아니, 오지 않는 게 좋아..."

"그렇지만 혼자잖아?"

"혼자긴! 둘이서 갔어."

"어? 미오도 갔어? 고향에 간다고 말하지 않았어?"

"뭐? 아니야! 프로듀서랑 같이-"


그 후, 미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렸다.


"그게 누군데?"


2.

내 이야기는 아니고 같은 직장 동료라고 해야 하나 아는 사람 이야기.


친구라고 부르지 않는 건 그놈이 좀 쓰레리가서 그래. 취미가 도촬이야.
무음 카메라 있잖아? 그걸로 장소 가리지 않고 남을 찍어대는 거야.
트위터에 안 올리는 게 천만다행이지.
때때로 히죽거리면서 사진을 나에게 보여 주고는

처음 보는 사람을 멋대로 왈가왈부하는 거야.
쓰레기지?

그래서 그 녀석이 어느 날 "심령사진을 찍었어!"라고 콧김을 뿜으면서 떠들었어.
평소라면 이 녀석 사진 이야기는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가는데,
난 오컬트를 좋아하니까 그때만은 흥미를 보였지.

그 사진 말인데, 평범한 기념사진이었어. 딱히 이상한 건 찍혀 있지 않았지.
굳이 이상한 점을 꼽으라면 이 녀석이 찍은 사진 치고는 드물게도 도촬이 아니라는 점?
그런데 그 녀석은 "머리가 길고 무시무시한 여자가 찍혀 있어."라고 말하는 거야.
아무리 눈 씻고 봐도 그런 건 어디에도 없었어.
그저 다른 동료랑 그 녀석이 미소를 지으며 찍혀 있을 뿐이야.
그래서 나는 네가 잘못 본 거라느니 네 착각이라느니 적당히 말했어.
그때는 그 녀석도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반박하지 않고 물러났지.
하지만 그 이후로도 그 녀석은 몇 번이고 나에게 자칭 심령사진을 보여 주는 거야.


물론 조금이라도 이상한 게 찍힌 사진은 한 장도 없었어.
나는 그 녀석이 드디어 허언증이 도졌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본인은 엄청 진지해서 "왜 이런 게 찍히는 거지."라고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서 나에게 상담을 청하는 거야.
하도 시끄러워서 귀신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지.
방 한가운데 서서 자기 너머에 있는 배경을 촬영하는 방법이야.
혹시 귀산과 투 컷을 찍었다면 당첨이라는데...
아무래도 그 녀석도 당첨된 것 같아.

가르쳐준 다음 날, 얼굴이 시퍼레져서 스마트폰을 나에게 들이대는 거야.
"역시 난 씌었어! 내 들 뒤에 귀신이 있어!"라고 소리치면서.
확인한 나는 소름이 쭉 돋았어. 녀석 뒤에는 분명히 사람이 찍혀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놀랐던 건 녀석이 재차 한 말을 들었을 때였지.

"너도 보이지? 이렇게 똑똑히 찍혀 있다고!
무시무시한 형상을 한, 하얀 옷을 입은 검은 머리 여자가!"

아니야. 찍힌 건 활짝 웃고 있는 그 녀석 자신이었어.
마치 쌍둥이를 찍은 것처럼 그 녀석 어깨너머로 또 다른 그 녀석이 있었지.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를 씩 올리면서.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 녀석은 "뭔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얼굴로
나를 보더니 휴대전화를 빼앗아서 확인했어.
그리고 몇 초동안 굳어 있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면서 날뛰는 거야.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마구 던지면서.
금방 주변 사람들과 내가 억눌러서 진정시켰지만.
생각해보면 그 녀석이 심령사진이라고 말하면서 들고 온 사진에는

전부 그 녀석이 찍혀 있었어.
도촬만 하던 주제에 이상하다 싶었지.


그 녀석이 말하는 '귀신'은 전부 그 녀석 자신인 거야.
그 녀석에겐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보였겠지만.


다행히도 그 녀석은 발광 같은 건 하지 않았어.
며칠 후에 볼살이 쏙 빠져서 병원에서 돌아왔지.
도촬도 안 하게 되었어. 하지만 이번에는 장소 가리지 않고 셀카를 찍는 거야.
왠지 기분 나쁠 정도로 활짝 웃으면서 말이야.

귀신의 진짜 모습은 의외로 그런 건지도 몰라.


3.

헌책방에서 있었던 이야기.


책을 사고 싶다는 후미카와 같이 커다란 헌책방에 갔다.
후미카는 산더미 같은 책을 끌어안고서 계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헌책방에 와본 적이 없었기에 신기해서 넓은 가게 안을 혼자서 둘러보았다.


재밌는 책이 없을까 싶어 미스테리로 분류된 책장을 보고 있을 때 책등이 안쪽으로 꽂혀서
제목이 보이지 않는 책을 발견하고 꺼냈다. [만담을 즐기자]라는 제목이었을 것이다.
글자 크기가 크고 삽화도 많았으니까 초등학생용이었을 것이다.
실려있는 건 [김수한무 두루미]나 [만두 무서워]같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뿐이지만
실려있는 삽화가 재밌어서 펄럭펄럭 넘겼다.


[지옥에 간 소베]라는 이야기에서 여백에 [무서워]라고 누군가 휘갈겨 썼다.
지옥에 간 소베라는 이야기는

주인공 소베가 같이 지옥을 가게 된 치과 의사, 의사, 수도자와 함께
오니에게 잡아먹히게 되었을 때 생전의 직업을 살려 지옥을 헤쳐나가는 이야기였다.
코미디지만 어린애가 보기에 업화나 오니의 삽화가 너무 무섭게 그려져 있었다.
휘갈겨 쓴 메모를 보았을 때도

전에 이 책을 가지고 있던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했다.
다음 페이지 여백에도 메모가 있었다.


[곤란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붉은 펜으로 그렇게 적혀 있었고 문장 속에 [지옥]이라는 글자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 아래에 먹으로 적은 것 같은 글자로 [알았음], 그 밑에 [끝],
그 아래에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뭔가 싶어서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그러자 또 [부탁합니다]라고 적혀 있고 문장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역시 [알았음], [끝],

붉은 글씨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 대화는 군데군데 발견되었다.

붉은 글씨는 옅은 형광색이거나 연필이거나 얕은 펜이거나
여러 가지 있었으나 알았음, 끝이라는 글자만은

언제나 검은 글씨로 먹으로 적은 듯 흰 잔줄이 드러났다.


[부탁합니다] [알았음] [끝] [감사합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음] [끝]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런 메모들을 본 후 이야기가 끝나는 페이지 뒤에 종이 한 장이 끼워진 걸 발견했다.
확대한 건지 누런 화질에 교복을 입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이 찍혀 있었다.
그 아래 소년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사진 식자.
책의 여백에는 휘갈겨 쓴 메모. [부탁합니다]. 문장 속 [지옥]에 동그라미.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후미카에게서 [돌아가죠 프로듀서]라고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책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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