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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모음집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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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4, 2020 01:25에 작성됨.

1.

처음엔 무서웠지.


하지만 이젠 즐기고 있어.
무슨 말이냐고?
매일 아침마다 똑같은 라디오, 똑같이 비 오는 날에, 똑같은 여인이 현관에 놓인
헐거워진 깔개를 밝고 넘어진다면 (12번째인데도 여전히 웃기더라)

너도 재밌을 거야, 안 그래?


왜냐하면 이 호텔에 갇힌 뒤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거든.
모두가 가지 말라고 하던 그 호텔에.
접수 담당자가 행동하는 걸 보고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하지만 내가 듣지 않았지.


처음엔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웠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외로웠어.
이 저주에서 벗어나려고 정말 다 해봤어.
다른 침대에서 자보기도 하고, 최대한 멀리 운전해보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도 해봤어.
하지만 매일 아침마다 난 여기서 깨어나.
항상 7월 16일 아침이라고.


그래서 난 즐기기로 했어.
난 대놓고 넘어진 여인을 바라보며 웃었어.
존재하지 않을 결과는 걱정하지 않고 말이야.
그렇게 비슷한 방식으로 하루를 보냈어.


내 행동은 점점 더 과감해졌어.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전부 해보면서 자유를 만끽했어.
차를 훔쳐보기도 하고, 가게를 털어보기도 하고..
세상은 다 내거였어.
누구든지, 뭐든지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었어.


그 여인은 항상 내 처음 타깃이었어.
내 장난기를 끌어올려 줄 항상 그날의 첫 번째 희생자로 말이야.


여인의 손에서 들고 있던 접시를 떨어트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봤어.
걔가 날 죽일 듯이 노려보더라고.
일주일이 지나고, 난 그 여인의 배에 크게 한방 맥여줬어.
몇 주가 더 지나고, 난 계단에서 그 여인을 밀어제꼈어.
박살 나는 소리에 기분 좋은 떨림이 등골을 타고 내려왔어.


그다음 날은 평소와는 달랐어.


문을 열었을 때, 여인은 복도를 걷고 있지도, 깔개를 밟고 넘어질 뻔하지도 않았어.


여인은 복도 끝자락에 서서 그저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

드디어 난 여기서 자유롭게 된 건가 하고 여인을 지나쳐 달려나갔지만,
그 이외의 모든 건 전부 똑같았어.


그다음 날, 여인은 날 노려보고 있었어.
하지만 이번엔 조금 더 가까이 서서 말이야.


난 그 여인에게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떠났어.


그다음 날 여인은 더 가까워졌어.


더 가까이.


그렇게 그 여인이 내 방안에 서서 날 노려보고 있을 때까지.


난 여인을 두들겨 패고, 찌르고, 목 졸라 죽이기도 해봤어.
그 여인한테서 벗어나려고 정말 뭐든지 했어.


하지만 매일 아침 내가 눈을 뜰 때마다, 여인은 점점 더 가까워졌어.


매일 아침마다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화나있었어.


그리고 결국 이곳까지 왔어.
이렇게 될만했어.


매일 난 어둠 속에서 깨어나.
숨을 쉴 수가 없어.
얼굴 위로 베개가 짓누르고 있어.
이젠 얼마나 내가 죽고 다시 깨어났는지도 잊어버렸어.
공포에 몸부림치고 허우적거려봐도 그 여인의 힘은 너무 세.


여긴 지옥인 거야?


2.


제가 다른 소속사에서 일할 적 이야기입니다.
선배가 스카우트 권유로 인해 들어온 한 여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저보다 나이가 적었는데 어른스러운 분위기에 저보다 연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전배가 치유키의 친구에게 한눈에 빠져서 친하게 지내게 되고,
치유키가 저를 마음에 들어하여 몇 번이나 술자리를 초대하려고 했기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치유키를 이상형 운운하기 전에 아이돌과 프로듀서 관계여서

연애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배가 그런 내게 졸라대는 겁니다.


"P가 안 오니까 치유키가 기분이 언짢아서 술자리 분위기 다 망치고 있어.
싫지도 모르지만 부탁이니까 와줘."


처음에는 각종 구실을 대면서 거절했지만 선배의 말을 그렇게 무시할 수도 없었고,
딱 한 번이라면 괜찮겠지 싶어서 술자리에 참가했습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치유키는 친절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다 같이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술이 들어가면서
점점 치유키가 제게 집중포화를 퍼부었습니다.


"프로듀서는 여자친구 없나요?"

"프로듀서는 언제 어디서 휴식을 취하나요?"

"프로듀서는 술 뭐가 좋나요?"

"프로듀서 지금까지 몇 명이나 사귀었어요?"


프로듀서프로듀서프로듀서프로듀서....


저는 슬슬 짜증이 나서 "아... 응... 그러네..." 등등 의욕 없이 대충 대꾸하면서 외면했습니다.


잠시 후 선배가 너무 마신 건지 잠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이때다 싶어 선배를 부축한다는 구실로 술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날은 딱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다음 날 휴일,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는데
휴대전화에서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치유키입니다. 어제 ○○(선배) 괜찮았나요? 꽤 많이 마신 것 같아서.]


저는 한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어제 저는 치유키와 번호를 교환한 적이 없었습니까요.
아무리 술을 마셨다고 해도 저는 절대로 필름이 끊기지 않습니다.


제가 치유키에게 어째서 내 번호를 아느냐고 추궁하니 치유키는 이렇게 답장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제 프로듀서가 화장실에 간 사이
주변 사람들이 "지금 번호 따 버려"라고 성화를 부려서.
저도 모르게 분위기를 타서 저질렀네요.]


그렇습니다.
치유키는 제가 없는 사이에 제 휴대전화로 자기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어 알아낸 겁니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화를 내며 항의하자 치유키는 몇 번이고 사과하면서
"단순한 문자 친구로 지내고 싶어서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너무나도 굽신굽신 사과하기에 뭐 문자 친구라면 상관없나 싶어서 그때는 용서해주었습니다.


그 후에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빈번하게 문자도 오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일 끝나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으니

만나고 싶다고 문자가 오는 겁니다.
이 무렵에는 다른 멤버들을 챙겨야 했기에 치유키랑 만날 일이 없어질 때였습니다.


뭔가 싶어 사무소를 나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치유키가 바로 왔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치유키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에서 신부가 들고 있을법한

부케를 들고 있던 겁니다.
제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딱 벌리고 있으니 치유키가 들고 있던

부케를 내게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저와 사귀어 주세요."


그때 술자리에서 딱 한 번 만나 제대로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 여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습니다.
잔뜩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스캔들이 날수 있으니

난폭한 언동을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중히 거절한 뒤 치유키를 그 자리에 두고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부터 치유키가 이상해졌습니다.


[아까는 미안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깜짝 놀란 거죠?

저는 전혀 화나지 않았어요. 답장 주세요.]

[프로듀서, 왜 답장 안 하시는 거예요?]

[저 말이죠, 조금 성미가 급한 편이라서.
아까 전 문자, 답장 안 해 주나요? 언제까지 무시할 셈인가요?]

[미안해요, 이제 끈질기게 문자 안 보낼게요.]

[부탁이에요! 전화만이라도 받아주세요!]

[미안 프로듀서, 미안 프로듀서.]


이런 문자가 아침까지 몇십 통이나 오는 겁니다.


개중에는 언제 찍은 건지 술자리 때 저를 몰래 찍은 사진까지 있습니다.
저는 슬슬 분노를 넘어서 공포까지 느꼈기에
서둘러 치유키의 번호를 착신 거부하고 문자를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치유키가 제 집까지 알고 있을 수 있으니
섣불리 자극해서 집까지 온다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말하지 못했습니다.
문자를 거의 다 삭제해갈 무렵, 치유키가 보낸 마지막 문자가 보였습니다.


[프로듀서,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나, 프로듀서와 함께라면 죽어도 좋아요.]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이걸로 끝나면 좋으련만, 치유키의 집념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문자가 온 지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내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지금 ○○ 마을 편의점에 있는데 프로듀서 집은 이 주위죠?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같이 놀러 갈까요?]


치유키가 보낸 겁니다. 프로듀서는 제 집에서 고작 몇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온 겁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조사한 거지.
저는 경악과 공포로 잠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일단 휴대전화를 꼭 잡고 번호를 착신 거부한 뒤,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부디 치유키가 이 집을 못 찾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에게 와 달라고 부탁하거나,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는 등
여러 방안이 있었지만 한심하게도 너무나도 무서워서 그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치유키가 제 집까지는 오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가장 끔찍한 공포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번호를 바꾼 덕택인지 그로부터 일절 문자가 오지 않았기에

저는 치유키를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선배가 하는 말을 듣고 떠올리는 정도입니다.


"정말로 위험했네. P도 참 큰일이었구나. 그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선배는 자기때문에 치유키에게 찍히게 되어서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랑 같이 쉬고 있을때 였습니다.
선배가 휴대전화를 보고 갑자기 표정을 흐리는 겁니다.


"선배, 왜 그러세요?"

"으, 응.. 오늘 아침부터 계속 모르는 번호로 무언 전화가 걸려오는 거 있지?
착신 거부를 해도 또 다른 번호로 걸려오는 거야... 뭐야, 이게..."

"따끔하게 말하는 편이 좋아요. 제가 대신 말할까요?"

"응. 미안해."


저는 선배 휴대전화 통화 버튼을 눌러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배 말대로 전화 상대는 계속 말이 없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저는 화가 나서 그 상대에게 벌컥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 말이야, 아까부터 끈질기다고! 뭐 하는 놈이야!"


[.... 겨우 받아주셨네요, 프로듀서... 잘 지냈어요?]


목이 쉰 치유키의 목소리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선배 휴대전화를 던져 버렸습니다.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들부들 떨립니다.


그 후에는 선배랑 둘이서 울먹이면서 그날 중으로 같이 휴대전화를 바꾸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사무소에 사직서를 내고 선배는 치유키 친구에게
치유키더러 더 이상 내게 달라붙지 말라고 설득 좀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후로 치유키는 더 이상 연락을 보내오지 않았고

저도 더 이상 두려움에 떨 일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무소로 이직한 지금도

치유키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건 고작 휴대전화 하나만으로도 남을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느닷없이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전화가 싫다.
전화받는 게 귀찮다거나 문자를 보내는 게 더 편하다는 뜻은 아니다.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심장이 꽉 옥죄어 오는 것이다.


어느 여름방학. 나, 타쿠미, 료, 리나, 아키, 늘 모이는 다섯 명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여름날 편의점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수많은 벌레들과 한가한 사람들이 모인다.
나도 그중 한 마리다. 시골 편의점은 주차장만이 번드러지게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다지 사람이 오지 않을 땐 우리랑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융통성을 보이는 점원도 있었다.
뭐, 어차피 편의점 점장이랑 아는 사이니까 크게 문제 될 건 없겠지만.
아무튼 시골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뭐 재밌는 거 없어?"


하루에 한 번은 누군가가 그런 말을 꺼낸다.


"없지."


그 대답도 누군가가 내뱉는다. 하지만 그날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이 사람에게 재밌는 곳을 들었는데, 너희 할 일 없으면 거기 가보지 그러냐?"


편의점 점장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택시 운전기사를 소개해 주었다.


"유령이 나온다는 공중전화가 있단다."


그렇게 말하면서 택시 운전기사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인데 그 ■■ 공동묘지 있잖아. 그 뒤에 산길이 있거든.
거기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나온다더라.

고속도로로 나가려면 그쪽을 지나는는 편이 빠르니까
멀리 가는 손님이 있으면 늘 거기를 지나기 때문에 자주 가.
 난 본 적이 없지만 이달 무렵에는 나온다 나온다 소문이 들리니까.
확인하기에 이 시기가 적격이 아니겠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그저 한가하니까 한 번 확인해보자는 기분으로 갔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상황에서 갈지 말지 고르라면 그야 누구라도 가지 않겠는가.
우리도 그랬다.


자전거를 타고 1시간. 도중에 나온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와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하얀 불빛이 딱 하나.
주변에는 가로등조차 없어서 유달리 전화박스가 눈에 띄었다.
공중 전화를 둘러싸고 우리는 이것저것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바탕 떠들고 난 뒤 질린 건지 누가 가자고 말을 꺼낸 걸 신호 삼아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때 따르릉 공중전화가 울렸다. 우리는 느닷없이 울리는 소리에 딱 굳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건데, 그 공동묘지 근처에 있던 길은 차나 사람이 지나는 기척이 없고
정적으로 감돌고 있었다. 시간은 심야. 시골 산길. 산속은 생각보다 어둡다.
공중전화에 달린 형광등만이 유일하게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
규칙적인 소리가 묘하게 크게 들린다.
역설적이지만 공중전화에서 들리는 커다란 소리가 주변에 감도는 정적을 깨닫게 해주었다.


따르릉.


재촉하듯이 공중전화는 계속 울린다. 우리도 누군가가 이 전화를 받아야 되는 게 아닌가
이상한 의무감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도망쳤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그 당시 우리는 담력 시험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전화가 울리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키. 네가 받아봐."
"아니, 네가 받아."


모두 움찔거리면서 서로에게 미루고 있었다. 공중전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럼 내가 받을게."


우리의 리더 격인 타쿠미가 말을 꺼냈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문을 연다.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공중전화박스는 대체로 한 사람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장애인 전용으로 넓게 설치된 것은 이 주변에서 보기 힘들다.
그런 곳을 우리는 꾹꾹 비집고 들어갔다. 혼자 남는 게 무서웠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타쿠미는 우리도 들을 수 있게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미..."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듣기 어렵다. 하지만 말하는 상대가 있다는 건 알 수 있다.
무슨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카... 아... 토... 미..."


카, 아, 토, 미

계속 그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전화가 끊어졌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왠지 맥 빠지네.


타쿠미가 그렇게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도 애써 안 무서운 척하면서 그저 좋은 얘깃거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에는 모두 이 일을 새카맣게 잊어버렸다. 평소처럼 늘 편의점에 모여서
뭔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후. 타쿠미가 죽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사건에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희 얘기는 자주 들었단다. 지금까지 잘 지내줘서 고마워."


타쿠미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했을 때 비로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는 편의점이 아니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했다.
고별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 상복을 입고 있었기도 했고,
제대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쿠미가 없다니 지금도 실감이 안 나."


리나는 죽는다는 말 대신 없다는 말을 썼다.


"그러네. 타쿠마와 마지막으로 만난 건 언제였지? ... 편의점에서인가."

"늘 편의점에서 만났으니까. 하하..."


그 웃음을 따라서 다른 세 명도 힘없이 웃었다. 이 상실감은 대체 뭘까.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그 공중전화를 보러 간 후였었지."

"그래그래, 카토미인가 뭔가 하는 말을 하다가 끊겼던 그거."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난... 떨렸어."


모두 웃으면서 자신도 그랬다고 맞장구쳤다.


"카토미는 뭐였던 걸까?"


모두 타쿠미가 죽은 사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둥, 유령 같은 건 없다는 둥,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 쪽으로 방향을 돌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카토미, 카토미카아토미, 카, 아토, 미카. .... 아토 밋카"


"앞으로 사흘(아토 밋카)..."

"... 그게 뭐야."


야, 어떻게 된 거야. 사흘이라니. 타쿠미가 죽은 건,
타쿠미가 죽은 건 공중전화 사건으로부터 사흘 후잖아.


두 시간 후, 우리는 공중전화 앞에 와 있었다.
혹시 이 공중전화 때문에 타쿠미가 죽은 거라면 우리는 복수를 해야 한다.
모두 손에 방망이나 망치를 들고 있었다.
상복을 입은 여자들이 흉기를 들고 자전거에 타는 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기묘했겠지.
우리는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따르릉.


전화가 울린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리나가 몸을 일으켜서 박스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도 뒤를 따라갔다. 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비집고 들어간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기계음만 날 뿐이다.
잠시 기다려보지만 뚜뚜 소리가 들리면서 끊어졌다.


"나츠키. 이거 그냥 우연 아냐?"

"....."


터널 너머에서 자동차 라이트가 우리를 비추면서 지나간다.
그 라이트 덕분에 지금 하고 있는 짓이 묘하게 부끄러웠다는 걸 깨달았다.


"그럴지도 몰라. 우리 뭐냐. 왠지 바보 같아."


리나가 웃고 우리도 웃었다.
우린 타쿠미가 죽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걸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죽게 된 이유를 갖다 붙이고 싶었다.


유령 따윈 없다니까.
그런 걸로 타쿠미가 죽을 리 없다고.
하하하.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입을 다물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아키였다. 아키가 수화기를 들고 귀에 갖다 댄다.


"아... 후... 카... 토... 츠... 아토... 카..."

"안 들린다고! 좀 더 큰 소리로 말해!"

"아.. 카... 후... 아토, 후츠카."


뚝 소리를 내면서 전화가 끊어진다.


"앞으로 이틀(아토 후츠카)인가..."


료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이틀이라니 너 이런 거 믿는 거야? 내가 이틀 뒤에 죽을 리 없잖아! 그렇지?"


누구한테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키는 그렇게 소리쳤다.


"그래, 맞아. 미안해."


료는 사과하고 나도 리나도 아키를 동의했다.


"우연이라니까."

"그래 맞아, 혼선한 거야."


우리 네 명은 그렇게 말하며 웃어넘겼다.


이틀 후에 아키는 죽었다.


아키의 장례 후, 그 길로 편의점으로 갔다.

점장에게 그 택시 기사가 어디 있는지 듣기 위해서다.
리나, 료, 그리고 나. 조금 전까지는 다섯 명이었던 동료가 세 명으로 줄었다.
저번까지 있었던 것이 없다.
쓸쓸하다거나 위화감이 느껴진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게 없었다.
한 다리와 한 팔을 잃은 기분이다.


편의점에 도착했다. 점장은 우리를 본 뒤 슬픈 얼굴을 한 후, 콜라를 세 개 주었다.


"애석하구나..."

"점장. 택시 아저씨 연락처 몰라요?"

"아, 그 사람 말이냐? 모르겠구나. 무슨 용무라도 있니?"

"그 공중전화가 대체 뭔지 알고 싶어요."

"공중전화인가. 그건 말이지... 아니, 됐다. 알았어. 다음에 온다면 너희에게 연락할게."


점장과 우리는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이 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우리는 편의점에 점점 가지 않게 되었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지금 거기에 있어."


리나다. 그렇게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는다.


홀로 자전거를 몰았다. 몇 번이나 이 길을 지나는 걸까.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친구가 죽어간다.


덩그러니 놓인 공중전화에서 나온 빛만이 그 길을 비추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없었다.


따르릉.


그 종소리 같은 전화벨이 어둠 속에서 울린다. 공중전화 말고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으니까.
자연스레 그 소리가 나는 곳에 시선이 못 박힌다. 무서워서 다리가 떨린다.


철컥하는 소리가 묘하게 크게 울린다. 나는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툭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문이 닫힌다. 눈앞에서 따르릉따르릉 전화가 시끄럽게 울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지만 귀에 대지 않았다.
수화기에서 중얼중얼 소리가 나온다.


"지..."


듣고 싶지 않아. 빈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리나에게 걸려고 했다. 제기랄, 통화권 밖이다.
하필 이럴 때에! 박스에서 도망치려고 문을 밀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까 그렇게 가볍게 소리가 났는데 이번에는 벽으로 변하기라도 한 듯 움직이지 않는다.


중얼중얼 수화기는 계속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 됐어, 누가 좀 도와줘.
탕탕 문을 두드렸다.
누가, 누가 좀 도와줘!


시선 끝에는 다리가 보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도와달라고 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다리, 그 다리는 맨발이라는 걸 깨달았다.
산속에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다리를 보고 그건 인간이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
공포가 밀려왔다.


툭... 툭... 툭... 툭...


반복적으로 박스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텅 하는 소리가 난 순간 어둠 속에서 쑥 손바닥이 나타난다.


텅... 텅... 텅...


힘없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 눈앞에서 울리는가 싶더니 뒤에서 두드린다.
다양한 방향에서 텅텅 손바닥이 나타나면서 소리가 울린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새하얀 발과 손.


보이는 건 그것뿐, 밖은 깜깜한 어둠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중얼중얼 수화기는 아직도 무언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이런 짓을 당하다니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다.


발밑에 있는 틈새에서 묘하게 기다란 손바닥이 쓱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뺀다.
그 손이 들어왔다가 나간다. 하나, 둘, 횟수를 반복할 때마다 그건 늘어난다.


나를 찾고 있는 거다. 싫어, 싫어. 손바닥에 닿지 않도록 도망쳤다. 피했다.
수많은 손. 그 손들이 발밑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중얼거리는 수화기.


"이제 그만두세요! 죄송해요!"


순간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나를 잡으려던 손바닥이 쑥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지금지금지금지금지금지금"


아아, 틀렸다. 한심하게도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때 굉음이 귀를 때렸다. 쩌억 유리가 깨지는 소리. 얼굴과 옷에 파편이 튄다.
리나와 료가 박스를 부수고 있었다.


"야! 괜찮아?"


살았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편의점에 도착해서 진정한 나는 여름인데도 핫초코를 홀짝거리면서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과 내 이야기는 맞지 않았다.
두 사람이 보기엔 내가 박스 안에서 혼자 날뛰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이나 손은 못 봤다고 한다. 애당초 리나는 내게 전화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한다.
통화기록을 확인해 보니 확실히 리나 이름은 없었다.
왜 나는 그 목소리가 리나 목소리라고 생각한 걸까.
묘하게 억양이 없는 목소리였는데.


리나는 료와 같이 내 짐에 가기로 했다고 한다. 료하고는 연락이 닿아서 합류했지만
나하고는 연락이 되지 않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중전화로 간 것이다.
그리고 도착해보니 나는 날뛰고 있었다. 수수께끼투성이인 결말이었다.


택시 운전기사는 결국 두 번 다시 그 편의점에 오지 않았다.
무슨 의도로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가르쳐준 건지
점장은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나는, 전화가 싫다.



오랜만에 돌아온 괴담들입니다!

근데 분량 조절을 실패해버렸네요 너무 길어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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