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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IDOL, NO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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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3, 2020 23:13에 작성됨.


<이번 라이브 대결의 승자는 바로- 765 프로입니다!!!!!


아아, 이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이던가! 어두운 무대 뒷편에서 반쯤 녹아들어들다시피 서있던, 765 프로의 검은 프로듀서. 그녀는 희열에 찬 눈으로  무대를 훑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담당 아이돌- 가나하 히비키의 뒷모습이 보였다.


정말, 해냈구나. 


검은 프로듀서는 등 뒤로 오싹오싹 기분 좋은 소름이 내달리는 것을 만끽하며, 스포트라이트가 비껴난 바로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 프로듀서가 있는 곳만큼 아주 어둡지는 않지만, 그래도 옅게 깔린 어둠 속. 빛. 그걸 아주 코 앞에 두고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패배자가 보였다. 어렴풋하게 살랑이는 연녹빛 머리카락. 


패배자는....시이카. 961 프로의, 시이카! 


거기까지 확인한 검은 프로듀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한 차례 떨었다. 시이카는 그 거대한 공룡 같은 961 프로덕션의 간판 아이돌이었다. 


기대의 신예, 예능계의 새로운 희망, 차세대 아이돌! 


존경과 호의로 가득한 시선 속에서, 무수한 찬사를 받으며 예능계를 거닐던 상냥하고, 청초하고, 강한 소녀. 시이카는 라이브면 라이브, 모델이면 모델, 방송이면 방송.....아이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 가장 좋은 부분만을 가져가, 뭐든지 성공적으로 해치워왔다.


하지만 그런 것도 이제, 다 무의미한 이야기가 된 것이다. 바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프로듀스한 가나하 히비키가, 그녀를 이긴 것이다!


"큭....후훗."


검은 프로듀서는 입가를 비틀며 새까만 웃음소리를 한 차례 토해냈다. 지금 얻어낸 승리는 잠깐 기분 좋을 정도로 끝난 게 아니다. 지금 이 승부로 누가 레전드 아이돌이 될 것인지 결정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레전드 아이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가나하 히비키....! 


"크, 흐흐.....후우.....후."


라고 단정짓기에는 조금, 이르긴 했어도. 검은 프로듀서는 정도를 모르고 마구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집어삼켰다. 히비키에게는 이제 스텔라 스테이지가 남아있다. 전설의 스테이지....그 타카기 사장과 쿠로이 사장도 간절하게 손을 뻗었지만 결코 닿지 못했던, 꿈과도 같은.....


그야말로 영원한 동경의 무대. 


히비키는 이제 여기에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 그 시이카도 꺾어버린 지금이라면, 닿을 수 있어. 분명.....!


검은 프로듀서는 강한 확신을 품은 채 빛나는 무대에서 등을 돌렸다. 트레이드 마크나 진배없는 검은 코트자락이 한 차례 나부낀다. 그 기세를 이어, 프로듀서는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미래의 레전드 아이돌을 맞이하러 가야할 시간이다.


.....


"히비키!"


검은 프로듀서가 무대 뒷편을 빠져나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한데 모아 높게 묶은, 길고 풍성한 검은 머리의 끝자락이 일순 검은 프로듀서의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게 누군지 바로 알아챈 검은 프로듀서는 이름을 외쳤다.


"아, 프, 프로듀서....."


검은 프로듀서의 외침에 그 누군가, 히비키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려 검은 프로듀서와 얼굴을 마주했다. 어라, 이상한데. 검은 프로듀서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겼잖아. 그 시이카한테. 이제 우리들은 레전드 아이돌이 될 거라고. 그러니 기뻐해야할텐데. 검은 프로듀서의 생각과 달리, 히비키의 얼굴에는 근심이 깔려있었다.


"수고했어 히비키. 정말 고생 많았어. 축하해."


아직 얼떨떨한 기분인 걸까? 그렇다면 좀 더 실감이 날 수 있도록 이쪽에서 계속 말해줘야지. 인정해줘야지. 어떻게 얻어낸 자리인데. 검은 프로듀서는 만면에 웃는 얼굴을 채워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담당 아이돌에게 다가가, 움츠리고 있는 작은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으려고 했다. 


"읏...."

"히비키?"


그 작은 터치마저도 지금의 히비키에게는 부담스러웠던 걸까. 히비키는 뭔가 터져나오려고 하는 걸 겨우 억누르는 것마냥 부들부들 몸을 떨며, 입술을 꼭 깨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어라....왜 그러니?"


검은 프로듀서는 닿지 못했던 손을 거두어들이고는, 히비키를 유심히 살폈다. 이 애, 아까부터 왜 이러는 걸까. 왜 기뻐하지 않는 거야? 이겼잖아. 지금까지의 것들보다 훨씬 더 값진 승리를 얻어냈다고? 이 험난한 예능계에서 우리들은 톱 아이돌이 되기 위해 쭉 다른 사무소 녀석들과 싸웠어. 그리하여 마침내, 가장 최대의 적수마저도 거꾸러트렸다고. 


너는 톱 아이돌이 된 거야. 나는 그런 톱 아이돌을 프로듀스하는데 성공했어. 여기서 그치지 않아. 우리들은 앞으로, 그보다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거야. 전설이 될 거라고!


그런데도 넌, 어째서....그런 표정을....검은 프로듀서는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걸 눌러참았다. 그리고는 여전히 상냥한 태도로 히비키가 다시 고개를 들어주길 기다렸다. 히비키만의 밝고,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자길 불러주었으면 했다. 프로듀서. 검은 프로듀서. 별로 좋아하는 호칭은 아니지만, 시라유키 프로듀서. 그렇게라도 불러줬으면 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있는 힘껏 달려와 품 안에 몸을 던져주었으면 했다. 조금 휘청거릴지언정 아예 못 받아줄 건 아니었으니까.


"....."


그랬는데. 검은 프로듀서의 바람과는 달리, 히비키는 그 자리에서 영 꿈쩍하질 않았다. 검은 프로듀서는 이렇게 되면 억지로라도 히비키와 시선을 마주하기로 하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히비키 쨩!"


그 때였다. 히비키의 어깨 너머로 작은 인영이 이쪽으로 내달리는 게 보였다. 조금 전 무대에서도 보였던 연녹빛 머리카락. 패배자. 시이카다. 검은 프로듀서는 순간 양 눈썹 사이를 구겼다가도, 곧 히죽 기분나쁜 웃음을 지었다.


패배한 개는 그답게 꼬리를 말고 얌전히 도망치면 되는 것을. 일부러 이쪽으로 찾아와? 마침 잘 되었네. 본 때를 보여줘야지. 더는 우리에게 대들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더는 우리 히비키한테 가까이 다가올 수 없도록. 이참에 아예 예능계에서 은퇴해준다면, 더욱 좋고. 검은 프로듀서는 양 손을 검은 코트 주머니에 거만하게 꽂아넣었다. 그리고는 시이카가 가까워지길 느긋하게 기다렸다.


"헉, 헉....다행이다....아직 안 갔구나."

"이쪽에는 무슨 볼일이실까, 961 프로의 패배자 양."


그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시이카가 이제 막 그들 곁에 도착해서 숨을 고르는 순간. 대뜸 조롱하는 말이 그녀에게 던져졌다. 


"765 프로의, 프로듀서, 씨."


미리 각오한 바였다. 시이카는 검은 프로듀서를 피하는 일 없이, 올곧고 맑은 눈동자를 그쪽으로 똑바로 향했다. 히비키는 그런 시이카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살짝 곁눈질했다. 그 짧은 순간마저도 놓치는 없이 전부 눈에 담은 검은 프로듀서는 더욱 기분이 언짢아졌다.


"있지, 지금 어떤 기분? 내 생각으로는 꽤 분할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쪽 사장님과 달리 깨끗하고 올바르고 당당하게 우리를 이겨보이겠다고 했지만, 결국 이렇게 져버렸잖아. 후훗."


그래서, 그 분풀이를 하기로 한다. 시이카에게. 얇은 입술에서는 갈고리 같은 비아냥이 튀어나와, 상대방의 마음에 꽂히고는 그대로 축 늘어진다. 싸늘하고도 탁한 두 눈이 가련하게 져버린 백합을 한 차례 기분 나쁘게 훑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이카는 히비키에게 다가가 차게 식은 손에 살며시 자신의 온기를 더해주었다.


으득.


"너어!"


검은 프로듀서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질렀다.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곳 라이브 회장의 복도를 타고 멀리까지 울려퍼졌다. 다른 사람이 듣고 달려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검은 프로듀서는 도저히 목소리를 낮출 수 없었다. 방금 시이카의 행동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신경줄을 확 긁고 지나갔던 것이었다.


"당장 손 치워."

"싫어요. 이대로라면 히비키 쨩은....정말로 혼자가 되어버려요."

"하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히비키에는, 내가 있어. 너 같은 녀석은 필요 없어! 검은 프로듀서가 시이카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시이카는 주눅들지 않고 히비키의 곁을 지켰다. 가만히 숨죽은 듯 서 있었던 히비키는, 겨우 용기를 내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라이트 블루색 두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차올라있었다.


"뭐, 뭐야."


지금이라도 당장 형태가 무너져 떨어질 것 같은 그 모습에, 검은 프로듀서는 숨을 잠깐 멈추었다. 시이카도 깜짝 놀랐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 히비키를 바라보았다.


"프로, 듀서."


히비키가 힘겹게 검은 프로듀서를 불렀다.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말인데.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슬픔이 그대로 녹아들어있는 듯한 말. 검은 프로듀서는 뒷목에 무겁고 차가운 무언가가 내려앉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자신, 지금까지.....열심히 헀어. 프로듀서가 하라는 대로, 했어. 아이돌 랭크를 올렸어. 시이카도 이겼어. 이대로라면 자신, 톱 아이돌이....."

"히비키, 넌 이미 톱 아이돌이야. 이젠 전설이 되기만을 눈 앞에 두고 있어."


검은 프로듀서는 바싹바싹 타기 시작한 목으로 애써 상냥한 말소리를 자아냈다. 단순히 담당 아이돌인 히비키를 달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타이르는 말이기도 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그래서는 결코 안되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검은 프로듀서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예능계는 엄혹한 곳. 약육강식의 공간. 이쪽에서 치지 않으면 당해버리는 곳. 그녀가 예능계에 발을 들이면서 체득해버리고야 말았던 믿음. 검은 프로듀서는 그 믿음을 따라 움직였다.


상대편이 선보일 악곡 스타일을 미리 알아낸 뒤 유사한 무대를 구상해, 그들보다 먼저 선보여 우위를 점하는 전술을 택했다. 그러기 위해 주최측에 로비해, 무대 순서를 조작하는 일 같은 건 예삿일이었다. 


상대하는 아이돌이 유닛을 이루고 있을 경우 슬쩍 헛소문과 험담을 흘려 그들을 이간질시키기도 했다. 그 정도 쯤이야 그녀에게는 식은 죽먹기였다. 


원래 다른 아이돌이 했어야할 일을 슬쩍 가로채어, 담당 아이돌에게 건네주는 것 또한, 기본. 


어떤 때는 알고 지내는 기자와 같이 작당해서 상대편 아이돌에 대한 질나쁜 기사를 퍼트리기까지 했다.


자신이 걸친 코트 뒷자락에는, 그런 업보들이 이미 찐득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다. 악한 행동. 용서받을 수 없는 짓. 잘 알고 있다. 전부, 각오한 바야. 그러니 검은 프로듀서는 이점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히비키는. 


검은 프로듀서는 애써 마른 침을 내어 꿀꺽 삼켰다. 이 톱의 자리는 뒷공작만으로는 따낼 수 없었다. 자신의 담당 아이돌, 히비키의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아니, 아니, 아니. 공로니 가능했다니 하는 것들보다. 


그저, 히비키를. 


내 담당 아이돌을. 소중한 존재를.....


검은 프로듀서는 드물게 진심어린 눈빛을 내비치며 간절히 부탁했다.


"히비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힘내주면 안될까? 전설이 되면, 모두가 우러러 볼거야. 아무도 우릴 뭐라하지 못할 거라니까. 응?"

"싫어!"

"히비키?"

"싫단 말야! 자신은 그런 게, 싫다고! "


그런데도 히비키는 기어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검은 프로듀서는 전혀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히비키를 보았다. 끄윽, 끅. 히비키는 꺽꺽 울음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무너져내리듯 주저앉았다. 왜....대체 왜? 검은 프로듀서의 등이 식은 땀으로 축축히 젖어들기 시작한 그 때. 시이카가 히비키와 검은 프로듀서 사이에 끼어들어 나직히 질문을 던졌다.


"프로듀서 씨는, 이걸로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신, 아까부터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패배자는 패배자답게 얌전히 집에나 돌-"

"확실히 저는 패배했어요. 히비키 쨩에게. 당신에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기라도 한 것? 안됐네요. 패배자의 넋두리를 잠자코 들어줄 정도로, 제 성정은 착하지를 못해서."


더 이상 거리낄게 없어진 검은 프로듀서가 주머니에 찔러넣고 있던 두 손을 확 빼들고는 시이카에게 무섭게 달려들었다. 시이카는 그마저도 각오했다는 듯 버티고 서서,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히비키 쨩은 톱 아이돌. 그렇지만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아요. 다른 아이돌도, 관객들도 히비키를, 아득히 머나먼 위치에 있는 사람처럼.....이렇게나 외롭고 고독하고 슬픈 톱 아이돌은 처음이에요. 이런 톱 아이돌이 되어서, 히비키 쨩이 정말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닥쳐! 히비키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끝까지 곁에 있어줄 거야! 언제까지고 지켜볼 거라고!"

"꺅!"


검은 프로듀서가 시이카를 냅다 밀쳤다. 뒤로 휘청이다 결국 넘어져버린 시이카를 검은 프로듀서는 분노 가득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앙칼진 목소리를 내었다.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기분 나빠, 너. 착한 짓 봐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더는 방해하지 말고 꺼져버려!"

"이젠 그만해!"


그 때였다. 히비키가 방금 그 적의를 그대로 받아치듯 소리쳤다. 검은 프로듀서가 한순간 움찔한 사이, 히비키는 눈물을 한바탕 더 쏟아냈다. 그 모습이 검은 프로듀서의 뇌리에 칼날처럼 박혀들어갔다.


"히, 히비키 쨩...."

"시이카 말대로야....자신에게는, 이제 아무도 없어....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자신은.....아이돌 같은 건 되지 않는 거였어.....!"


히비키가 눈물과 함께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검은 프로듀서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검은 프로듀서. 힘이 쭉 빠져버린 두 눈은 눈물로 엉망진창이 되어서는, 잔뜩 일그러져버린 히비키의 얼굴을 흐릿하게 비췄다. 


"자신,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어. 정점에 오르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세상 전체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대단한 아이돌이 되어서, 모두를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자신은....하나도 기쁘지 않아. 오히려 괴로워. 무서워."

"히, 히비...."


지금까지 참아왔던 설움이 단번에 폭발하고 있었다. 검은 프로듀서는 뭐라도 말하려고 했지만, 히비키에게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감정의 흐름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라이브 회장에서, 방송국에서, 현장에서. 모두, 자신을 굉장히 두려워하는 눈으로 보고는 피해가버려. 커다란 스테이지에서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노래하고 춤을 춰도. 무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 전혀 즐거워하는 기색이 없어. 끝나고나면 대단하다는 듯 박수를 치지만, 자신을 보는 눈은 스쳐지나가는 모두와 똑같아. 자신을 무서워하고 있어. 이런 게....이런 게 톱 아이돌? 이대로 자신, 전설이 되어버리면....또 어떻게 되는 거야?"


사람들의 두려움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먼 곳으로....가버리는 거야? 그건, 그건....싫어. 자신, 더는 할 수 없어. 그런 아이돌, 되고 싶지 않아....그만두고 싶어. 히비키가 마지막에 쥐어짜내다시피 내뱉은 말소리가 검은 프로듀서에게 닿아, 그대로 산산히 부서졌다.


전설이 되어버린 아이돌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아니, 아니야...."


검은 프로듀서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검은 프로듀서는 떨리는 손을 히비키에게 채 뻗지도 못하고, 스스로의 얼굴에 처박듯이 갖다대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땅 속에 고개를 숨기고는, 전부 몸을 숨겼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타조처럼.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야....나는, 그저, 우리들이....이겼으면 했으면 해서....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잖아. 그러니까, 노력한 건데."


털썩. 이제야 겨우 진짜 잘못이 무엇인지 깨달은 검은 프로듀서는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세상에 절하듯 작게 웅크렸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검은 머리카락이 죄인의 얼굴을 가리는 가운데, 지리멸렬한 말소리가 그 안에서 몇 마디 흘러나왔다.


"이게 아니야....아니라고.....이럴 리가.....끅,  흐윽, 욱, 우아아아악!"


그리고 그 말소리는, 마침내 비통한 통곡이 되어 차가운 복도에 가득 들어찼다. 미래를 잃은 아이돌. 그리고 아이돌을 잃은 검은 프로듀서. 혼자 올곧았던 시이카만이 그 둘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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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꽤 장편으로 구상했던 내용입니다만, 장편 쓰는 것에는 영 자신이 없어서 쓰고 싶었던 부분만 냉큼 빼오는 걸로.


NO FUTURE라는 제목은 사가 프론티어라는 고전 게임의 '제노사이드 히트' 라는 최종보스의 공격에서 유래했습니다. 빨갛게 뜨는 NO FUTURE라는 메세지가 개인적으로 섬짓하면서도 멋있더군요. 간만에 좀 늦게까지 끄적적하다 올리네요. 이게 다 야근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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