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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와, 새 한 마리와, 아인슈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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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5, 2020 23:44에 작성됨.

등장 아이돌 : 니노미야 아스카, 타카가키 카에데


그냥 커피 마시는 아스카에데를 쓰고 싶어서 시작했다가, 총선용으로 쓰려다가, 다시 Max Beat 공개 1주년 기념으로 돌아오면서 글이 좀 중구난방이 된 것 같은데, 글 쓰기 재활 작품을 아스카에데로 완성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 합니다.


작 중 등장하는 아인슈페너는 이런(링크) 모습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직 시간이 있군.”


니노미야 아스카는 소파에 앉은 채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집합 시간까지는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향한다. 커피 캡슐을 꺼내 커피머신에 넣고 데미타스를 세팅한 뒤 버튼을 누른다. 뜨거운 커피가 특유의 향기를 내며 잔을 채웠다.


캡슐을 버리고 잔을 들고서 탕비실을 나서려던 아스카의 발이 잠시 멈췄다. 생각해보니, 설탕을 챙기지 않았다.


“뭐, 괜찮겠지.”


하지만 아스카는 그대로 탕비실을 나섰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커피에 설탕을 넣었겠지만, 니노미야 아스카는 성장했다. 이제는 설탕을 넣지 않은 에스프레소쯤이야 가볍게 마실 수 있다.


소파에 앉아 잔을 입가에 가까이하자, 커피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이내 괴로울 정도로 진한 쓴맛이 혀를 감싼다. 하지만 이내 커피의 산미와 희미한 단맛이 쓴맛과 조화를 이루어 깊은 맛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보면, 딱 1년 전이었군.”


그리운 기억이 떠올라,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갔다.



1년 전 어느 날. 아스카는 고민에 빠진 채 거리를 걷고 있었다. 사무소에 들어온 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도저히 사무소의 분위기에 녹아들 수 없었다.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스카가 생각하기에도 좋은 사람이 많은 곳이 이 사무소였고, 본격적으로 데뷔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자꾸만 겉도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정으로 이해받지 못하고, 그저 특이한 연습생 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


이 길에 들어서기 전의 자신이라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애당초 그런 것에 신경쓰는 성격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무소 사람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해서야 아이돌 활동의 결말은 뻔하디뻔하다. 결국,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이해받을 수 있는가. 계속 생각해보았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애당초 이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생각이 길어지다 보니 순간의 변덕으로 비일상의 세계에 뛰어들었지만, 오히려 맞지 않는 옷을 입었던 뿐이었던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생각에 잠긴 채 걸어가던 아스카의 발길은, 어느 카페 앞에서 문득 멈추었다.


“아…”


낯익은 얼굴이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옅은 초록빛을 띠는 갈색 보브헤어.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녹색과 청록색 오드아이. 청록색을 띤 왼눈 아래로 보이는 눈물점. 사무소 최고의 유명 아이돌, 타카가키 카에데가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마치 화보의 한 장면을 떼어낸 것만 같이 아름다운 모습에, 무심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면 사무소에서 자주 마주쳤음에도 인사를 하는 것 말고는 저 사람과 제대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같은 사무소 소속에, 같은 프로듀서를 두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사는 세계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아스카는 생각했다. 저쪽은 연예계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두고 다투는 천상계의 존재. 그에 비하면 자신은 아이돌 경제에 있어 미물에 불과하다. 같은 프로듀서를 두고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그 프로듀서의 두 번째 아이돌일 뿐. 함부로 말을 섞을 수 있을 리도, 섞어줄 리도 없다.


그 순간, 타카가키 카에데의 눈길이 책을 떠나 아스카에게 꽂혔다. 아뿔싸. 너무 오래 보고 있었다. 황급히 눈을 돌리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타카가키 카에데가, 너무나도 밝은 표정으로,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 학교는? 마친 거예요?”


“뭐…… 그렇지.”


카에데의 손짓에, 자신도 모르게 카페에 들어와버렸다. 여기서 거부한다면 더 어색해질 것이라는 부담감, 거절을 생각조차 하기 힘든 수준차의 탓도 있었지만, 애당초 환하게 웃으며 손짓하는 타카가키 카에데를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중학생이라니~ 벌써 10년 전 이야기네요~ 이런 일 저런 일 참 많았었는데~ 그리워라…”


교복 차림의 아스카를 보고 자신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는지, 카에데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중학생 타카가키 카에데라. 쉬이 떠올리기 힘들었다. 아스카가 알고 있는 타카가키 카에데의 인기 포인트는 어른스러운 매력 속에서 종종 드러나는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해맑은 웃음이었다. 중학생이라면 그중 적어도 하나는 없었을 터. 그런 타카가키 카에데를 상상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지? 카에데 씨의 옛날이야기를 하려고 나를 부른 건 아닐 거 같은데.”


“아스카도 참~ 그냥 귀여운 동생이 지나가길래 반가워서 이야기나 하려고 불렀죠. 그동안 이야기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괜찮죠?”


“귀여운 동생…”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애써 감췄다. 알고 있다. 자신은 이제 겨우 열네 살. 스스로는 어른스러움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제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저 어른을 연기하는 소녀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아이 취급을 받는 것은, 결코 유쾌할 수가 없었다.


역시, 이해받지 못하는가.


씁쓸한 감정을 숨기고서, 아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에데 씨가 그렇다면, 나야 영광이지.”


“후훗~”


아스카의 대답에 카에데가 콧노래를 부르며 테이블 한쪽에 세워져있던 메뉴판을 내밀었다. 테이블에 커피가 없는 것을 보니, 카에데도 카페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시고 싶은 거 있어요? 제가 살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제가 살게요~”


“…그러면 감사히 받지. 마시고 싶은 거라…”


메뉴판은 각양각색의 에스프레소 베이스 음료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아스카가 주문할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그럼, 에스프레소를… 아니, 잠깐.”


메뉴판을 훑던 아스카의 눈이 한곳에 꽂혔다.


“이건… 뭐지?”



아인슈페너(Einspänner)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기초적인 몇몇 유럽 언어는 알고 있다. 그리고 커피의 이름은 대개 이탈리아어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예외라면 프랑스어를 쓰는 카페오레 정도. 하지만 이 이름은, 아무리 봐도 독일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Eins는 독일어로 하나라는 뜻이니까.


독일어 이름의 커피라. 관심이 갔다. 하지만 지금 모험을 해도 괜찮을까. 잘 모르는 것을 주문했다가 다 마시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면, 커피를 사주는 상대방에게도 실례일 터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때, 점원이 다가와 둥근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주문하신 아인슈페너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이름을 들은 아스카의 눈이, 바로 메뉴판을 떠나 유리잔에 꽂혔다.


둥근 유리잔의 아래쪽 절반을 새까만 커피가 채우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채우고 있는 것은, 새하얀 크림. 칠흑과 순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아스카를 현혹했다.


“손님,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가, 같은 거로…”


“네, 아인슈페너 한 잔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점원은 이내 자리를 떠났다. 아뿔싸. 저질러버리고 말았다.


“하아……”


하지만 이미 주문을 해버린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후회해봐야 소용없다면, 얌전히 다가올 운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어머?”


카에데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몄다. 만화였다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왜 그래, 카에데 씨?”


“아니요, 그게… 아스카는 설탕커피를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걸 어떻게…”


“그야, 사무소에서 항상 그렇게 마시잖아요?”


그것은 사실이다. 사무소 탕비실에서 내린 커피에, 설탕을 가득 넣어서. 하지만 아스카가 놀란 것은, 그것을 타카가키 카에데가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프로듀서가 말해줬어?”


“아니요. 그냥 자주 그렇게 마시길래…”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가.


생각해보면, 같은 프로듀서를 두고 있어 마주칠 일은 많았으니, 카에데가 자신을 지켜볼 기회는 많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자신이, 감히 타카가키 카에데를 똑바로 마주 볼 수 없었을 뿐. 그 사이에, 카에데는 니노미야 아스카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는 한데… 그냥, 카에데 씨가 마시는 거에 흥미가 생겨서.”


“어머, 기뻐라~”


카에데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정말이지, 무엇이 그렇게 기쁜 것일까.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란 관심은 다 받고 있는 사람에게, 겨우 중학생 한 명이 자기가 마시던 커피에 관심을 보인 것이 이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가만. 방금 뭐라고…?’


‘어쩌면’ 하는 의혹이, 아스카의 머리에 싹을 틔웠다.


대화를 자주 한 적이 없음에도 반갑게 손을 흔들던 모습.


‘귀여운 동생’이라는 표현.


커피 습관을 알 정도로 아스카를 지켜봤고.


자신이 마시려는 커피에 아스카가 관심을 가진 것만으로 웃으며 기뻐한다.


같은 프로듀서의 ‘두 번째’ 아이돌이라는 것은, 그 앞의 ‘첫 번째’ 아이돌에게는, 첫 직속 후배라는 것.


그렇다면, 설마…… 니노미야 아스카는, 타카가키 카에데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불가능한 결론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상한 부분이 있다. 카에데가 아스카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대화를 시도할 기회가 수없이 있었다. 자신이야 카에데를 닿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카에데는 어째서 아스카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말을 걸 수 없었다?’


초등학생 때, 같은 반의 친구에게 ‘아스카는 참 희한한 구석이 있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말을 걸기가 참 힘들었다던가. 지금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말이었다.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었고, 이런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말하자면, ‘혼이 공명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만약, 자신을 이해해주려 하는 사람들까지도 밀쳐내는 무언가가 자신에게 있었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확인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눈앞의 이 사람이, 문제의 해답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기… 카에데 씨.”


“네~ 타카가키 카에데에요~”


“혹시, 내가… 그렇게 가까이하기 힘든 사람이야?”


정적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잠시 아스카의 눈을 바라보던 카에데는, 커피를 들어 홀짝 마시고서는 잠시 숨을 고르고서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사무소에 들어온 뒤로, 쭉 생각했어.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계속 겉돌고 있는 것만 같다고.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따돌려지고 있는 것도 아니야. 카에데 씨도 알겠지만, 다들 맑은 혼을 가진 사람들이지. 그런데도 아무도, 내 세계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아.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필요한 만큼만 나를 대할 뿐이지. 물론 내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라면,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야. 하지만 비일상의 존재가, 아이돌이, 우상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받아들여져야만 해. 그러지 못한다면 도태될 뿐이니까. 그런데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어. 이해받지 못하고 있어. 아니, 심지어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조차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고 있어. 당장 카에데 씨도 그랬잖아.”


그리고 아스카는 자신이 했던 추측을, 눈앞의 가희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져 스스로를 억누르고 싶었지만,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야기가 계속되는 내내, 카에데는 그저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아스카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렇다면 내 존재방식이, 이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건가 싶어서… 그래서…”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문하신 아인슈페너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결국 아스카의 이야기가 끊긴 것은, 주문했던 흑백의 커피가 자신의 앞에 놓이고서였다.


“그랬군요…”


다시 한 모금, 커피가 카에데의 입으로 들어갔다.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저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딸깍. 테이블에 놓인 유리잔이, 카에데의 손을 떠났다.


“먼저, 이건 아이돌 선배 타카가키 카에데로서의 이야기. 그렇네요. 아스카에겐 편하게 다가가기 힘든 느낌이 있어요. 말하자면, 에스프레소 커피 같은 느낌? 다른 커피도 많은데 꼭 이걸 마실 필요도 없을 것 같고, 궁금하기는 하지만 마셔도 쓴맛밖에 나지 않을 것 같으니 굳이 입에 대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아요. 간혹 눈 딱 감고 한 번 마셔본 뒤에 푹 빠지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이 많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죠. 이렇게 다가가기 힘든데, 아이돌로서는… 네. 힘들 거예요. 아스카가 바뀐다면 또 모르지만… 그럴 생각은 없는 거잖아요? 사람의 본질이 바뀌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그러니, 분명히 힘들 거예요.”


테이블 위에 얹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결국, 그런가. 업계 최고의 시선에서 보아도,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렇겠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마저 주저하게 만드는 이 존재방식으로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겠지.


‘비일상으로 가는 문을 열자’라고 했던가. 아무리 타카가키 카에데를 키워낸 프로듀서라도, 결국은 사람이다. 실수할 때도, 틀릴 때도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오답이, 자신을 고른 일이라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힘들 수밖에 없어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우리…라고?”


“그리고 이제부터는, 카에데 언니로서의 이야기.”


잠시 아스카의 표정을 살피던 카에데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아스카가 고민하는 걸 알면서도, 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몰라서 말을 붙일 수가 없었어요.”


“알고… 있었어?”


“어렴풋이는요. 몸을 잔뜩 웅크린 고슴도치가 눈앞에 있는데, 불안해하는 걸 모를 리가 없잖아요. 꼭 제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었어요. 프로듀서님도 언니로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달라고 하셨고. 하지만… 알잖아요. 잔뜩 불안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을 내밀면…”


“더 경계하게 되지. 아, 그래서 아까 그렇게…”


그래서 대화를 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딱 좋은 타이밍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만났다는 건가.


그것이 정답이었는지, 카에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교 때요, 같은 반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었어요. 그 아이들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아스카가 고개를 젓자, 카에데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기분 나쁘댔어요. 생긴 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당연하다. 이 세상 어느 누가 타카가키 카에데를 그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나이니까요. ‘오드아이’(odd eye)니까, 틀린 말도 아니고요.”


“편하게 웃기는 힘든 말장난이군.”


“어, 그렇게 들렸나요? 말장난으로 한 건 아니었는데.”


아차 싶었다. 영단어 odd에는 외짝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상하다, 특이하다는 뜻도 있다. 카에데의 성격 때문에, 아마도 그것을 노린 자조 섞인 말장난이리라 오해하고 말았다. 입꼬리를 올리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를 슬픔이 서린 것처럼 보이는 표정이 오해를 더한 탓도 있었다. 어린 나이였으니, 분명 작지 않은 상처를 남긴 일이었을 텐데.


“아, 아니, 그, 그게…”


“아, 그럼 이것도 기억해뒀다가 프로듀서님한테 써야겠다!”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눌러담았다. 이렇게 카에데가 받아주는 것이 아스카에게도 다행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튼,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사람을 만나는 거에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자연히 말수도 줄었고요. 고등학교 때부터는 컬러 렌즈도 껴봤는데, 크게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모델 일을 할 때까지도, 내내 똑같았어요.”


스스로의 존재방식을 부정당했다. 그런 의미에서의 ‘우리’인가.


“그러다가 프로듀서님을 만났어요. 그쪽에서 먼저 다가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죠.”


“아… 그 기분은 알 것 같아.”


어른이라는 건 다들 획일적으로 부정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 기분을 모를 리 없다.


“어느 날 카페에서 회의를 하다가 그러시더라고요. 제 모습을 바꾸거나 감추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제가 뭐라고 했게요?”


“말은 좋지. 하지만 한 번 존재방식을 부정당한 현존재가 다시 같은 존재론을 논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텐데?”


다시 말해, 또다시 이해받지 못하고, 거부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딩동댕~”


카에데가 유리잔을 들더니 살짝 흔들어보였다. 술도 아닌데, 건배라도 하자는 것일까. 거기에 응해 유리잔을 가볍게 부딪히자 맑은 소리가 울렸다.


부딪힌 잔을 입에 가져다 대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커피 위에 얹힌 크림 때문에 설탕을 탈 수도 없다. 즉, 이 크림 아래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블랙커피. 블랙커피를 쉬이 마시는 어른의 모습을 동경하고 있다고는 해도, 실제로 마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설탕을 타지 않은 커피를, 과연 자신이 마실 수 있을 것인가. 아스카는 눈을 감고 잔을 기울였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부드러운 크림의 감촉, 그리고 혀를 행복하게 하는 감미였다. 그리고 그 단맛이 혀를 완전히 감쌀 무렵, 쓰디쓴 커피가 입에 머금어졌다.


“어…?”


생각보다 마실만한 맛이 났다.


“어때요?”


“맛있어… 분명히 혀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에스프레소, 정확히는 아주 약간 희석되긴 했지만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에스프레소의 맛이야. 하지만 먼저 입안을 덮은 크림의 맛이, 그 쓴맛을 중화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맛을 창조해. 설탕을 넣은 커피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야. 크림과 커피가 서로 뒤섞여서 본질을 잃은 것이 아닌데도, 입에 머금는 순서만으로 이렇게 훨씬 편하게 마실 수 있을 줄이야. 행복해서 미소가 절로 나게 하는 맛이군.”


“후후. 아스카다운 감상이네요.”


유리잔을 내려놓은 카에데가 말을 이어갔다.


“그날 들은 이야기인데요, 아인슈페너는요, 빈의 마부들이 마차 위에서 마시기 위해서 만들어졌대요.”


“호오… 그래서 독일어 이름이었던 거군.”


“네.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라는 뜻이래요. 오스트리아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못지않게 커피로 유명하지만, 흔들리는 마차 위에서는 커피를 마시기 힘드니까 크림으로 덮은 거죠.”


“커피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마시는 장소에 어울리도록 한 건가. 현명한걸. 그 덕분에 마시기도 훨씬 쉬워졌고. 그런데, 그게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지?”


“우리도, 그걸로 충분하다는 거죠.”


“충분하다?”


당분과 카페인을 공급받은 아스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즉, 스스로의 존재방식을 바꾸려하지 말고… 크림을 한 층 얹으라는 건가? 우상에게 어울리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아스카는 이해가 빠르네요~”


마치 진짜로 기특한 동생을 보기라도 하는 양, 카에데가 씨익 미소지었다.


“하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야. 내 존재방식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게 하라니. 그렇게 형편 좋은 방법이 있을 리가…”


그 순간 깨달았다.


있었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


“설마… 카에데 씨는… 그 답을……”


타카가키 카에데의 인기 포인트를 되새겨본다.


갑작스러운 만남에도 자신도 모르게 이 카페에 들어온 계기를 되새겨본다.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자신이, 천상계의 존재를 눈앞에 두고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유를 되새겨본다.


마치 홀린 것처럼 아스카를, 세상을 끌어들인 타카가키 카에데의 마법.


““미소.””


돌이켜보니, 비일상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기대도 잠시였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은, 14살 중학교 2학년생의 마음을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항상 긴장하고 있으니, 웃을 이유도 없었다. 아이돌 일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웃었던 것은…



‘그런가… 확실히 당신과 나는 닮은 듯하네. 후훗. 그곳에 당신이 안내해준다면 가도록 하지. 이것이 나의, 작은 저항의 시작이라고 믿으며.’



…프로듀서에게 스카우트된, 바로 그날이었다.


“그렇군.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나. 그날 뒤로 사무소에서 웃은 적이 없었어. 그랬으니 몸을 웅크린 고슴도치라는 말을 듣는 것도 무리가 아니군. 이 니노미야 아스카가, 그렇게나 긴장해서 떨고 있었을 줄이야.”


“그래도, 스스로 깨달은 것도 대단한걸요? 저는 프로듀서님한테 듣고서야 알았는데.”


“눈앞에 답지가 있으니, 오히려 부정행위에 가깝지 않겠어?”


“답지답지는 않은 사람이지만요. 후훗.”


그렇게 서로 미소지으며, 두 사람은 유리잔을 비웠다. 그 고요를 깬 것은, 카에데의 전화벨 소리였다. 프로듀서에게서 온 전화였다.


“와~ 프로듀서님, 저랑 아스카 같이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전화를… 네?”


카에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갑자기요? ……. 네, 갈 수 있어요. ………. 그러면 인사만 하고 방송국으로 바로 갈게요. 앞에서 다시 전화할게요.”


전화가 끊어졌다.


“일이 들어왔나 본데?”


“네……. 라디오 진행자가 펑크를 냈대요. 미안해요. 먼저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너무 잘 나가는 것도 곤란한 일이군. 이렇게 갑자기 불려 다녀서야 말이야.”


“정말, 그렇다니까요.”


“그러면 그 일을 나눠받을 수 있도록 나도 열심히 해야겠군. 미소부터 시작해서 말이지.”


“어머? 아까랑은 완전 딴판이네요? 기대할게요~”


“기대하고 있어. 그러면, 나중에 사무소에서 만나지.”


“네, 그러면 사무소에서… 앗, 아스카. 여기…”


책을 손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카에데가, 손으로 자기 입가를 가리켰다.


“응…?”


그 동작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아스카가 고개를 갸웃하자, 카에데가 몸을 내밀어 얼굴을 가까이했다.


“잠깐, 카에데 씨? 왜 갑자기…”


그리고, 그대로 자기 입가를 가리키던 손가락으로 아스카의 입가를 닦아내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크림 묻었어요.”


“……!”


“그럼 사무소에서 봐요~”


다시 일어선 카에데는 빠른 걸음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 불과 1분 전까지 의지를 불태우던 아스카가 제정신을 차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말이지… 너무나 강력한 무기로군, 저건.”



그로부터 1년이 흘러, 다시 지금에 이른다. 그리고 이제 아스카는 연예계의 신성이 되어, 1년 전에 비하면 훨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TV 방송 제의까지 들어와, 오늘 그 일부의 촬영을 앞둔 참이었다.


“그때의 대화 한 번에 여기까지 발전하다니, 내가 말하기도 뭐하지만, 괄목상대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카에데 씨와 프로듀서에게 감사할 일이야.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비워진 데미타스를 정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소 문이 벌컥 열렸다.


“좋아, 세이프-!!! 촬영 갑시다!”


“촬영 갑시다~”


시계가 2시 30분을 가리킴과 동시에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프로듀서와 카에데였다.


“딱 맞춰왔네. 평소보다 기운차 보이는데, 프로듀서?”


“당연하죠! 드디어 셔틀 노릇을 한 번만 하면 되는 일이 들어왔는데! 흑흑, 감사합니다. Max Beat…”


“촬영장까지 거리도 Max지만 말이죠. 후훗.”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이는 프로듀서 옆에서, 카에데가 쿡쿡 웃었다.


오늘은, 니노미야 아스카에게는 역사적인, 타카가키 카에데와의 첫 공동촬영일. 1년 만에, 한 자리에 함께 설 자격 정도는 얻은 셈이다. 일상의 세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바로 지금 펼쳐지고 있다.


“뭐, 프로듀서가 기운찬 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지. 바로 나갈게.”


“그럼 차에 시동 걸어둘 테니까 카에데 씨랑 같이 내려오세요~”


하지만 여기서 머무를 수는 없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이해받고, 우상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러니, 계속 나아가야 한다. 드디어 함께 걸을 수 있게 된 선배, 아니, 동료와 함께.


소파에서 일어나 가방을 걸치고 문으로 향한다. 문에 기대선 카에데는 그런 아스카를 보며 웃고 있었다. 존재방식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섰다.


“그럼, 갈까요?”


답은, 정해져있겠지.


“자, 갈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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