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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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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9, 2020 17:25에 작성됨.

안녕하세요, 도묘지 카린이에요.
오늘 저는 꽤나 큰 일, 말하자만 인생의 전환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을 겪었어요.
그게 뭐냐면요...한 번 들어보세요.




신사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대체로 세 부류로 나뉘어요.


1, 이번 한 해의 일들이 다 잘 풀리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러 온 분들.
2, 참배를 하러 오시는 분들.
3, 악귀를 제령하려 오시는 분들.


웬만하면 2번이죠. 1번도 많긴 한데 이건 새해 연초 한정.
3번의 경우는 정말 특별한 경우고, 그나마도 그것 때문에 오시는 분들은 거의 없죠.



그 특별한 경우가, 오늘 생겼어요.
제 또래 되어 보이는 어떤 여학생이 신사의 궁사실에 계신 저희 아버지를 찾아왔는데요.


여학생: 혹시, 시간 되시나요?!


아버지: 무슨 일이십니까?


여학생: 다름이 아니라, 제령 좀 부탁드려요!


아버지: 제령이요? 누구를 말이십니까?


여학생: 저요! 저 빨리 제령해주세요! 아무래도 악귀가 들린 것 같아요!


아버지: 악귀요?!


여학생: 지금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죠?! 그거 최대한 정신줄 부여잡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 이상 더 지체하면 저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아버지: 일단, 알겠습니다. 제령을 해드리겠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제령이 끝난 다음에 듣죠.



하여 저와 아버지는 그 여학생을 앉혀놓고, 제령을 시작했습니다.


「카미사마, 카미사마. 달마인계 우라산.」


「카미사마, 카미사마. 악귀퇴로 제라수고인.」


「카미사마, 카미사마, 이예타희가 타노쉬.」



제령의 주문을 반복하여 외우자, 조금씩 그 효험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으...끄으으으....”


‘오, 이제 효과가 나오려나 보다.’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자,


“끄으으으....끄아아아아아아아!!!!!!”


여학생이 소리를 지르며 발작을 일으켰고,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 즉시 그녀를 붙잡아 제압했습니다.




그렇게 제령을 진행한지 반시간쯤 더 지났을까요? 마침내 여학생, 아니 귀신의 말이 튀어나왔어요.


“더러운 녀석들...감히 이 몸을 쫓아내려 들다니! 좋다, 나는 여기서 물러나지만, 네놈들 중 하나에게, 나보다 강한 령(靈) 하나가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지!!! 크아아아아아!!!!!”


하고 악령은 여학생의 몸에서 튀어나와 소멸되었습니다.
여학생은 잠시 기절했지만 곧 깨어날 수 있었고, 저희에게 감사하였어요.


“그런데, 저는 듣고 싶은 게 있어요. 어쩌다가 악령이 XX씨 몸에 들어간 거예요?”


제가 묻자, 여학생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습니다.
그 여학생의 말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고 하네요.




「그 여학생은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음에 매우 근심하였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걱정과 채근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집중도 잘 안 되고 공부도 손에 잡히질 않아서 걱정하였다.
물론 공부하려고 하면 주변이 괜스레 신경 쓰인다든지, 안하던 청소가 갑자기 하고 싶어진다든지 하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겠지만, 그걸 어떻게든 이겨내고 공부를 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좋다는 학원도 끊어보고, 며칠 정도 독서실에 들어가서 공부도 해보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돈과 시간만 몇 배로 낭비하게 되었다.


그러다 한번은, 공부를 잘 하는 반 친구에게서 그 비결을 하나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문자스킬]이라는 건데, 핸드폰 메모장에다가 특정한 문자를 써놓으면 얼마 후에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듣자하니 그 친구도 그런 방식으로 여러 가지 수혜를 입었다고 한다.


여학생은 기뻐하며 친구에게서 몇 가지 문자들을 알아왔고, 그날부터 그 문자스킬을 사용하여 공부에 대한 집중력도, 그로 인한 높은 성적도, 그리고 심지어 남자친구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친구가 얘기를 안 해주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문자스킬들 중에는 부작용을 동반하는 문자들이 있다. 어떤 문자는 몸을 아프게 한다든지, 사고를 당하게 한다든지, 심지어 환영이나 환청을 보게 한다든지 하는 그런 부작용이 있다.


다행히도 여학생은 사고를 당한다거나 질병에 걸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대신 환영과 환청이 심하게 느껴졌고, 결국 그 환영과 환청은 끔찍한 악령의 형태로 변하여 그녀를 괴롭혔다.


결국 지금까지 문자스킬로 인해 쌓아왔던 모든 것들은 그 부작용으로 인해 무너져서 사라져 버렸고, 이를 견디다 못한 여학생은 이 신사에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된 거예요.”


“노력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그것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건가요...”


“그땐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이건 방법도 쉽고,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효과도 끝내줘서 더욱 매혹적이었고요.”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네, 더는 못할 것 같아요. 한번 악령이 들리고 나니까 무서워서 다신 못 하겠어요.”



사실 저도 문자스킬에 대해 관심을 안 가져본 건 아니었습니다.
중학생 시절에, 저희 집 신사가 재정난에 시달릴 때, 이 문자스킬이라는 걸 쓰면 재물이 들어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왠지 무서워서 안 쓰고 넘어갔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제라도 한 번 써서 신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볼까.’


싶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 여학생이 귀신이 들린 사정에 대한 자초지종을 들으니 문자스킬이라는 것을 사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확 깨져버렸습니다. 저렇게 위험한 일이라면, 안 하는 게 백번 낫죠.




나중에 여학생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알아본 거지만, 그 여학생이 쓴 문자스킬이 무엇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꽤나 위험한 주문들이었네요...’


아무래도 그, 친구라는 분이 부작용을 전달해주시지 않은 것 같아요. 잊어버리고 말 안 해준 건지, 아니면 일부러 얘기해주지 않은 건지.
그런 거 소개해 준 친구 분도 잘못이지만, 그냥 친구 분 말만 믿고 위험한 강령술을 한 여학생도 책임을 면할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날 밤, 신사는 영업(?) 종료를 하였어요.
밤늦은 시간이었던 데다가 본전으로 향하는 길을 밝히는 불도 다 꺼진 상태여서 주위는 어두웠습니다. 얼마나 어두운지 간간다라도 나왔다가 앞이 안 보여서 더듬거리다 근처 나무에 머리 박고 돌아갈 정도였죠.



본전의 불까지 다 소등한 다음 집에 돌아가서 잠을 청했습니다.
잠을 자는데, 어디선가 음울한 소리가 들렸어요.


“우...”


“무슨 소리야, 이게!”



그 음울한 소리는 2분 정도 더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방문이 덜컥 열리며, 검은 그림자의 무언가가 제게로 다가왔어요.


“뭐야! 누, 누구세요!?”


“나는 네가 쫓아낸 령(靈)의 동료다. 아까 오후에 그가 하는 말을 들었겠지! 그 말을 이행하려 내가 왔다.”


“나에게 들겠다, 이건가...근데 왜 하필 나입니까?”


“얘기하려면 길지만, 짧게 얘기하자면 룰렛 돌리니까 네가 걸렸다.”


“. . .”


“미안하다, 농담 좀 한 것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너는 우리의 동료를 괴롭게 하였기 때문에,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할 것이다.”


그 령은 기분 나쁜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지배하고, 너는 나의 육체가 될 것이다.”


말을 마친 령은 저에게 달려들었고, 저는 전력을 다해 저항하다가 기력이 다한 나머지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하루 저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음 날의 밝은 아침이었습니다.


“좋은 아침이다, 카린.”


제 속에서 소리가 울렸습니다. 아무래도 그 령인가 보네요.


“기어코 내 속에 들어가셨네요, 령 씨.”


“그렇다. 네가 아무리 무녀라 해도 결코 나를 쫓아낼 순 없을 것이다.”


령이 장담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이 령은 굉장히 강한 힘이 느껴져요.
지금까지 몇 번의 제령을 해보았지만, 이 정도로 강한 령은 생전 처음이에요.
왜 하필 빙의가 되도 이런 녀석이 된 걸까요.




하루를 살면서 느낀 거지만, 이 령은 저를 집어삼킨다든가 아니면 죽인다든가 할 계획은 없어 보여요. 안심시켜서 잡아먹을 것 같지도 않고요.


다만 이 령이 저에게 하는 일은, 강제 도짓코 만들기를 하고 있죠. 말하다가 혀를 씹게 만든다든가, 잘 가다가 갑자기 넘어지게 한다든가 하는 그런.


또 가끔은 미치게 만듭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미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감정을 치솟게 만들죠.



이것이, 이 령이 저를 괴롭히는 방식이에요.
제게 빙의해서 이렇고 저렇고 그런 끔찍한 짓을 하게 만드는 거죠.
아무리 문자스킬의 악령의 원한이 크다고는 하지만, 굳이 이렇게까지(그것도 당사자도 아닌 다른 령이) 해야만 하는 걸까요~.




제게 빙의한 것 치고는 이 령이 하도 평화롭게 가니까 의문이 들었어요.


“령 씨.”


“왜 그래?”


“령 씨, 악령 아니죠?”


“그게 무슨 소리야?”


“보통 악령이면, 사람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아니면 엄청 해코지하던데. 령 씨는 그런 게 없잖아요.”



그러자, 제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갑자기 일어섰고, 정신 못 차릴 만큼 빠르게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 몸에서 나올 수 있는 속도인 건지도 믿지 못했고요.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마을에 와 있었습니다.


“알겠어, 카린?”


“뭐...뭘요?”


“내가 지금까지 널 그냥 가만히 둔 이유는, 너의 몸에 내가 살려면 어느 정도 맞춰야 하기 때문이야. 결코 내가 악령이 아니여서가 아니야.”


“이, 이해했어요. 그러니까 얼른 돌아가요.”



그제서야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돌아갔다고 해서 평안히 돌아간 건 아니고, 몇 번 우여곡절을 거쳐서야 돌아간 거죠.
역시 악령은 악령이네요.




하지만 상대가 악령이라고 해서 저도 기죽고 지낼 필요는 없어요.
기가 죽으면 오히려 주객전도가 되어 버린다고요.


그래서 저는 령에게 강하게 나갔어요.


“아무리 빙의하신다고 해도 저한테 안 맞춰주실 거면 제령해서 쫓아내버릴 거예요. 령 씨 성불 못 시킬 줄 아나요!”



이런 저의 태도에, 처음엔 령도 매우 화를 냈어요.


“뭐라고?! 네 놈 주도권이 누구한테 있는 건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이제 네 몸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를 조종하려고 하지만, 열에 다섯은 잘 안 돼요.
령이 저를 지배하려는 욕심처럼 제 의지도 그만큼 강하니까요.




그렇게 며칠, 아니  몇 달을 그렇게 사니, 드디어 이 령이 꺾이기 시작했어요.


“너 이 자식...왜 이렇게 고집스러워...”


“왜냐구요? 이 몸은 저의 것이니까요! 저의 의지는 꺾이지 않아요!”


제가 당당하게 외쳤죠.



“이 녀석...이 방법만은 안 쓰려고 했는데...”


그렇게 으르릉거리는 령은, 갑자기 뭔가를 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저는 정신이 아득해짐과 동시에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어요.
아무래도 령이 이젠 진짜로 제 몸을 차지하려는 것 같아요.



“아..안 돼...”


“이제 너의 몸은 정말로 나의 것이다!”



그렇게 무력히 빼앗기려는 찰나,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께서 제 방으로 들어오셨어요.


"카린!"


"아...아버지..."


"기다려라, 카린! 지금 제령해주마!“


아버지께서는 주문을 외우셨고, 저도 전력을 다해, 온 정신을 집중해 주문을 외우며 저항했어요.



「카미사마, 카미사마. 달마인계 우라산.」


「카미사마, 카미사마. 악귀퇴로 제라수고인.」


「카미사마, 카미사마, 이예타희가 타노쉬.」



몸을 빼앗길 수는 없어요.


이 몸은 내 몸이니까,


난 무녀니까,


지금까지 악령을 잘 이겨냈는데 이제 와서 빼앗길 수는 없으니까.



발버둥치고 온 정신을 집중해 악령에게 저항했어요.


“안 돼...나가...! 나가!!!!”




정신을 차렸을 땐 빙의의 고통은 끝나고 없었어요.



“으으으...”


“카린, 정신이 들어?”


“으으으...악령은 갔나요?’


일어나서 움직이는데, 의외로 아무런 느낌도 없었어요.
령이 제 속에 있다면 그 특유의 느낌이 제 몸을 덮을 텐데, 이젠 그런 느낌도 없었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갔나보구나”


“드디어...!”


“만세! 해방이다!”



드디어 령으로부터 해방되었어요!
이제 저는 자유에요!



“그런데 카린, 어쩌다가 네가 악령에 들리게 된 거야?”


“그게, 말씀드리자면 길어요. 어떻게 된 거냐면요...”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렸어요.
아버지는 듣고 매우 놀라셨죠.


“그런 일도 있을 수가 있구나. 이제부터 주의해야겠는걸.”



그 후로, 저는 신사의 무녀로서 많은 사람들을 신님께로 인도해주기도 하고, 참배를 돕기도 하고, 가끔씩 악령을 제령하기도 했어요.


악령에게 들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기에, 더욱 더 제령에 최선을 다했죠.


이제 저는 신님의 보호 가운데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악령으로부터 자유롭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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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 써 보는 카린의 정통 스토리.
듣기론 무녀는 빙의되기 쉬운 직업이라는데, 그래서 써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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