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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코: 상실의 Lacrima (단편)

댓글: 6 / 조회: 167 /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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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8, 2020 01:14에 작성됨.

*사별, 자살 관련 소재입니다.


제 글은 왜 이럴까요. 분명히 무겁고 슬픈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냥 오글거리게 되었습니다... 제 필력에 저도 매우 불만족스럽습니다. 피드백은 무엇이든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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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도시의 불빛은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처럼 화려히 빛난다.

 

하루 종일 잔뜩 찌푸렸던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가로등 불과 상점가의 불이 북적이는 거리를 빛낸다. 안경을 끼고 코트를 입은 소녀, 타카야마 사요코의 숨도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에 하얗게 얼어붙는다. 스케줄을 막 마치고 나온 참인 사요코는 프로듀서가 차로 데리러 오면 함께 시내의 빛 축제를 보러 가자고 조를 참이었다.

요즘 바빠서 조를 틈도 없었으니, 기회는 오늘뿐이야!’

마침 오늘이 지나고 29일에는 사요코의 생일까지 있어, 연말을 맞이하는 그녀의 기분은 있는 대로 들떠 있었다. 매년마다 연말에는 바빠서 누군가와 같이할 시간을 내는 것도 빠듯했지만, 올해는 정말 운이 좋게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과 생일을 모두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게 데이 오프가 잡혀 있었다. 사요코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사요코, 데리러 왔어.”

행복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요코를, 프로듀서의 부르는 소리가 깨운다.

, !”

기분 좋게 사요코는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았다. 프로듀서는 항상 조수석은 위험하다고 사요코를 태우지 않았고, 조수석에 탈 때마다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걸 잘 아는 사요코도, 이런 날에 잔소리를 굳이 듣고 싶지 않았기에 구태여 프로듀서와 가까이 앉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하늘이 하루 종일 참아 왔던 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빛 축제 하는 데 데려가 달라고?”

데려가 달라는 게 아니고! 같이 가 달라고요!”

사요코는 차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빛 축제 얘기를 꺼냈다. 프로듀서도 본인이 올해 하반기에는 자잘한 업무가 쏟아진 바람에 너무 바빠서 사요코에게 신경을 못 써준 점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연말의 데이 오프 때는 또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물도 하나 준비해 가방에 꼭꼭 숨겨두고, 크리스마스 전 주에는 살짝 긴장하고 있었을 정도이다. 그렇게 자기가 어떻게 신경을 써주면 사요코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하던 차에, 사요코 본인이 해결책을 자기 입으로 말해 주니 프로듀서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는 흔쾌히 승낙하고, 차를 빛 축제의 하이라이트, 전구 트리가 있는 번화가 쪽으로 몰았다.

좋다, 그러면 변장은 조금만 더 철저히 해 주고…”

창에 김이 서린다. 사요코는 프로듀서의 당부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창에 웃는 얼굴을 그린다. 웃는 얼굴 뒤로 가로등의 불빛을 받은 눈송이가 빛난다. 정말로 어여쁜 밤이다. 정말로.

어디서!”

갑작스레 프로듀서의 어조가 급변한다. 차가 심하게 흔들린다. 반대쪽 차선의 차가 핸들을 놓친 듯, 중앙선을 넘어 프로듀서 쪽을 향해 날아온다.

꺄아악!”

사요코!”

타이어가 타는 소리, 브레이크 타는 냄새, 그리고 미끄러지는 차, 굉음, 다시는 잊지 못할 금속 찌그러지는 소리. 흐르는 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아픔, 사람들의 비명소리.

사요코가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닥에 고인 검은 피 위로 내려앉아 녹아가는 함박눈의 눈송이였다. 가로등 불빛이 이지러진다.

 

언제인지도 모를 겨울날, 사요코는 눈을 떴다. 집이나 사무소가 아닌, 삭막한 흰 천장과 팔에 꽂힌 관들 아래에서. 몸에는 붕대가 어지러이 감겨 있고, 팔다리는 깁스로 굳어져 있는 상태에서, 사요코는 약간의 움직임으로도 격렬한 통증을 부르는 몸을 겨우겨우 일으켰다.

이게대체 무슨…”

타카야마 씨가 의식을 되찾으셨습니다!”

침대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급히 소리쳤다. 곧 문을 열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눈이 퉁퉁 부은 사요코의 부모님이 들어왔다. 사요코는 이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을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했다.

사요코!”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부모님은 부은 눈으로만 보아도 이미 잔뜩 울었지만, 사요코의 얼굴을 보자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내었다. 사요코 본인도 그 표정만 봐도 울고 싶었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한 번씩 아픈 몸으로나마 힘껏 안아 주었다. 남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던 예전의 포부처럼,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엄마, 아빠어떻게 된 거야 나?”

무겁게 입을 연 사요코에게 돌아온 대답은 잔혹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교통사고를 당했어. 반대 차선의 운전자가 술에 취해서는…”

쓰레기 같은 놈, 감옥에서 평생 못 나와야 하는데 사고 내고는 죽어 버리다니.”

지금은 1228일이야. 꼬박 3일을 의식을 못 찾고 있었어…”

답을 찾던 사요코의 기억이 이지러지는 가로등 불빛과 녹아내리는 눈송이에 닿았다.

프로듀서 씨, 무사할까?’

저기, 엄마그 때 동승자는 어떻게 됐어...?”

프로듀서 님 말이라면아직 혼수상태야.”

사요코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몸을 얼른 일으키려고 움직였으나, 뼈를 가르는 고통에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겪어본 적 없는 고통에 비명마저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저 괴로워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지금은 회복이 먼저입니다.”

아아악프로듀서 씨…”

그 분의 용태는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골절상이 심해서 움직이면 예후가 더 좋지 않아질 수도 있어요. 지금도 의식을 되찾은 것이 다행이란 말 밖에 드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의사의 말이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사요코는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괜한 이야기를 하지만 않았더라도,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텐데.’

 

사요코의 몸 상태는 회복해 갔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사고의 깊은 흉터가 남았다. 바깥으로는 부모님께, 그리고 병문안 온 동료 아이돌들에게 괴로워하는 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했으나, 속으로는 작은 상처가 곪아서 붓듯이 더욱더 슬픔과 죄책감이 깊어 가고 있었다. 매일 의사에게 프로듀서가 의식을 되찾았는가 물어보고, 매일 아직 그대로라는 말, 어쩌면 더 악화되었다는 말을 듣고, 매일 의사가 나간 뒤에 하염없이 울고. 창 밖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 날의 생각이 나 바깥에 눈길도 주지 못하고, 이불로 머리를 덮고 하루 종일 괴로워했다. 그렇게 커져가는 괴로움과는 별개로, 그녀의 몸은 치료가 끝나 가고 퇴원할 날이 다가왔다.

사요코, 쉽지는 않은 걸 알지만너무 고통받지 말아 주렴?”

퇴원하는 날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사요코의 마음까지 들리지 않았다. 자기 탓이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죄책감을 가져야 할 사람은 자기니까.

나 때문에 프로듀서가 사고를 당한 거니까.’

퇴원해서도 매일매일 프로듀서에게 연락을 했다. 언젠가 깨어난다면, 확인하고 답해주기만을 바라면서. 메일, 전화, 또 메일, 또 전화. 읽지 않음 표시가 된 메일과 부재중 전화만이, 하염없는 기다림만큼이나 쌓여 갔다. 야속하게도, 프로듀서는 답하지 않았다.

 

사요코는 퇴원하고 바로 사무소를 그만두었다. 사무소 건물도, 대기실도, 비어 있는 사무실의 프로듀서 자리도, 모든 게 프로듀서가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 사요코를 찔렀다. 프로듀서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병문안이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사요코는 집 안에 틀어박혀 버렸다. 학교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그저 방 안에서 울고 있기만 했다.

흐윽프로듀서나 때문인데, 어째서내가 대신 저렇게 됐어야 했는데흐흑…”

숨이 넘어갈 때까지 베개가 다 젖도록 죄책감에 눈물만을 흘렸다. 부모님의 걱정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가고, 프로듀서의 상태도 나날이 안 좋아져 갔다. 그렇게 사요코에게 지옥과도 같았을 겨울이 지나고, 봄은 한 사람 따위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사요코의 곁에 멈춰 서지 않고 지나쳐 갔다. 어느 7월의 아침, 사요코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악몽을 꾸었다. 프로듀서의 곁에 서서, 심전도기 화면의 선만을 바라보는 꿈이었다. 점점 심박을 나타내는 선이 떨리지 않게 되고, 소리도 멎어 가며, 화면에 완벽한 직선만이 그려질 때까지 눈물밖에 흘리지 못하는 꿈이었다. 잠에서 깬 사요코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확인하지 않은 메일 알림 2개를 보았다. 첫 메일은 765 시어터 주소로, 다른 메일은 치료 담당 의사에게 와 있었다.

 

765 시어터, 오토나시 코토리입니다. 타카야마 사요코 양의 담당 프로듀서, @@씨의 사망이 오늘 새벽 437분 선고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심정지라 임종을 지킬 수도 없었습니다. 진심어린 유감과 조의를 표합니다.

 

타카야마 씨, @@씨 담당 의사 ???입니다. 오늘 새벽 4시경, @@씨가 그만 급성 심정지로 돌아가셨습니다. 의사로써 @@씨를 살리지 못한 점, 정말로 죄송합니다. @@씨의 소지품 중 타카야마 씨의 이름이 써진 것들은 우편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깊은 유감과 조의를 표합니다.

 

사요코는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져 통곡했다. 방문 밖에서는 어머니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아악! 안 돼, 프로듀서! 제발 죽지 말아줘! 제발! 흐흑흐아아아악!”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이 막힐 때까지 오열하던 사요코는, 울다 지쳐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그 날 저녁쯤, 사요코는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프로듀서가 살아날 거란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진 그녀에게는, 이미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빈 껍데기처럼, 비틀비틀 부엌으로 걸어갔다. 집은 비어 있었다. 식칼 꽂이에서 칼을 집어 들고, 손목에 깊이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하나, 또 하나, 또 하나.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흐를 때마다 고통이 밀려들었으나,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듯한 기분 또한 마음 속을 채웠다. 사요코는 계속해서 손목을 베었다.

이제서야 죽는구나.’

충분히 많은 상처가 손목을 뒤덮고 바닥에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사요코는 식칼을 놓았다. 이대로 피를 흘리다 죽을 생각이었다.

프로듀서 씨, 저승에서 본다면 나를 용서해 주세요.’

눈물 한 방울, 그리고 셀 수 없는 핏방울과 함께 사요코는 눈을 감고 바닥에 앉았다. 힘이 빠져서 더 이상 벨 수도 없었다. 손목의 아픔도 몽롱함에 묻혀 사라져 간다.

사요코!”

어머니의 목소리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가 새하얘진 얼굴로 뛰어와, 바닥에 앉은 사요코를 끌어안았다. 사요코는 다 귀찮다는 듯이 눈을 감아 버렸다.

 

다행히도, 발견이 빨라서 치료를 제 때 한 덕분에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사요코의 퇴원은 계속 미뤄질 듯했다. 자살기도 때문에, 부모님이 급하게 사요코를 정신과 입원병동에 입원시키기로 한 탓이었다. 본인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사실, 반대할 기력조차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슬픔도 나타낼 수 없었다. 혼이 죽은 것처럼, 하루 종일 퀭한 얼굴로 눈물만 흘리고 있거나, 눈물마저도 흘리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어머니의 물음에 답하는 고갯짓 외에는 아무것도 사요코의 겉에 드러나지 않았다. 속이 빠져 버린 인형처럼, 사요코는 변해 버렸다. 약을 먹는 일 외에는 입을 열지도 않았다. 상담을 하는 의사도, 주사와 알약을 투여하는 간호사도 그녀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 보았지만, 말하는 법을 잊은 듯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계절은 한 사람의 죽음, 그리고 한 사람의 부서짐을 뒤로 하고 흘러갔다.

타카야마 씨?”

의사의 호출이었다. 투약 시간이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의 호출, 매일 같은 약, 그리고 매일 치료에 아무런 차도 없음. 질려버릴 대로 질려버린 약이지만, 어떻게든 목구멍으로 넘겼다.

특별히 몸 상태에 바뀌신 점 있으신가요?”

사요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의사도 무반응에 익숙한 듯, 크게 답을 구하지는 않았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기요, 선생님.”

걸어 나가던 의사가 사요코의 목소리에 등을 돌렸다. 의사는 평소의 무덤덤한 표정에서 눈썹만을 살짝 치켜 올리는 것으로 별일이네요라는 말을 대신했다.

?”

프로듀서는…”

말을 하다가 중간에 끊긴 했으나, 사요코의 눈가는 이미 눈물로 젖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이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다면, 말해 주십시오.”

아무리 내 잘못이래도왜 이런 벌을 주는 거죠?”

울음을 참아 가며 내뱉은 한 마디에, 의사는 안쓰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교통사고는 타카야마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문을 닫고 나가며, 뒤를 돌아본 의사의 눈길에도 연민이 묻어났다. 문이 닫긴 후, 얇은 끈이 끊어지듯 사요코는 오랫동안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없는 병실 안에, 사요코의 오열만이 울렸다.

어째서흐윽어째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통과 슬픔이 처음으로 제자리를 찾은 사요코의 파편이었다.


흩어져버린 조각들을 모으듯이, 사요코의 상태는 점점 나아져 갔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가끔 감정을 숨길 수 없어 심하게 슬퍼하거나 걷잡을 수 없이 화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어떤 감정이 적절한지 잊어버린 듯이 갈팡질팡하곤 했다. 말도 심하게 더듬게 되었고, 말수 자체가 적어졌다. 그렇게 다시 2달이 지나고, 부쩍 나아 보이는 상태에 사요코는 퇴원을 요청했다. 곧 퇴원은 12월 하순으로 결정되었다.

사별은 마주보고 극복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퇴원 후에는 그런 시도를 해 보세요, 타카야마 씨.”

의사의 당부와 함께, 사요코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며칠, 그녀는 다시 돌아온 일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학교는 여전히 나가지 않았지만, 집안일을 돕기도 하고 밖에도 나가 보며 무너진 나날들을 다시 쌓으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여전히 밤이 되면 울고, 이유 없이 화도 내고, 부모님과의 대화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사요코에게 물었다.

의사 선생님이 마주보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잖아. 프로듀서 씨의 무덤에라도 가 보는 게 어떻니?”

사요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 날은 사고가 난 날부터 1년에서 하루가 모자란, 1223일이었다. 나갈 채비를 하며, 지금까지 열어 보지 못한 프로듀서의 유품 상자가 눈에 들었다. 작은 종이 상자였다. 사요코는 상자를 집어들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보는 게 괴롭지만,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보고 싶어요, 프로듀서 씨…’

상자 뚜껑에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제일 아끼던 머플러와 코트를 걸쳤다.

 

오랜만에 다시 맡는 바깥 공기가 차다. 눈에 띄게 핼쑥해진 탓이었을까, 아끼던 머플러와 코트가 헐렁하다. 흰 숨이 머플러 위로 새어나왔다. 지난 해와도 같이 하늘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였으나, 구름 사이사이로 햇빛이 비쳤다. 평일 낮이라 그런가, 프로듀서의 무덤이 있는 묘지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지하철 칸도 거의 비어 있었다. 사요코는 빈 자리만 가득한 지하철에서, 프로듀서의 유품을 꼭 끌어안고 공허한 눈길로 창밖 어딘가만을 바라보았다. 그다지 주변에도, 먼 곳에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지하철이 역에 멈추고, 찬 바람 속으로 사요코는 발길을 옮겼다. 유달리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떨어질 낙엽도 없는 나뭇가지들이 겨울바람에 나부낀다. 묘지 앞문부터는 이상할 정도로 분위기가 쓸쓸했다. 마른 나뭇가지와 바람소리가 함께 참배객들의 슬픔을 떠안은 듯이 울부짖는다. 사요코는 프로듀서의 무덤 앞에 섰다.

프로듀서 씨, 사요코에요. …좀 더 일찍 오지 못해서 정말로 죄송해요.”

프로듀서의 사진은 대답이 없다. 그저 생전의 자상한 표정으로 사요코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프로듀서 씨가 떠나고많은 걸 무너뜨린 것 같아요. 저를 그 자리까지 데려가 주셨던 분인데, 이정도로 굴러 떨어진 걸 알면화내시겠죠.”

어느새 건조한 사요코의 표정이 슬픔으로 뒤덮인다. 눈물이 무덤 위로 흐른다. 겨울바람이 함께 슬퍼하듯이 불어온다. 사요코는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프로듀서의 사진을 꼭 안은 채였다.

흐흑미안해요, 미안해요보고 싶어요, 정말로…”

병원의 치료로 감정 자체는 나아질 수 있어도, 죄책감 자체는 건드릴 수가 없었던 탓에 사요코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깊은 트라우마가 남아 있었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깊게 패인 마음의 상처였다. 그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었기에, 사요코는 주저앉아 우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극복하는 도중이라고 해도, 여전히 17살의 마음이 견디기에는 너무 가혹했다.

다시 보게 된다면, 흐윽꼭 사과할게요제발, 돌아와 주세요! 제발히끅…”

겨우 눈물을 멈춘 사요코는 떨리는 손으로 유품상자를 꺼냈다. 차라리 프로듀서의 앞에서 기억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자의 뚜껑을 열자, 겨우 멈췄던 눈물을 다시 쏟아내고 말았다. 행복했던 추억만을 담아 둔 듯한 내용물을, 너무나 아파 마주볼 수도 없었다. 상자 안에는 직접 짠 듯한 머플러와 편지봉투 하나, 그리고 사요코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머플러의 포장과 편지봉투에는 사요코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머플러와 사진은 조심히 상자 안에 넣어 놓고, 사요코는 계속 흐느끼며 편지봉투를 뜯었다. 편지봉투에도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졌다. 작은 편지지는 프로듀서의 손글씨로 빼곡했다.

사요코에게.

올해도 바쁘게 지나갔네. 네가 아이돌이 된 지도 몇 년이 흘렀어. 처음에 마음만 앞서고 부족하던 너에서부터, 지금 정도로 빛나는 아이돌이 된 너까지. 프로듀서 입장에서 정말로 대견하구나. 장하다, 그리고 고마워, 사요코. 이렇게 잘 따라와 주고, 잘 성장해 줘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서로를 만난 게 다시없을 행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로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작년에는 바빠서 크리스마스랑 생일 둘 다 챙겨주지도 못했지. 미안해, 아직도. 그래서 올해는 약간 준비를 했지선물이 어때? 머플러 하나를 너무 오래 메고 다닌 것 같아서 손수 하나 만들어 봤어. 부족한 솜씨라도 맘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부족한 나라도 신뢰하고 따라와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난 항상 네가 행복했으면 한단다. 메리 크리스마스.

프로듀서가

사요코는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흐느꼈다. 얼마 없는 햇빛이 오열하는 소녀의 등을 비춘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죄책감에, 해가 저물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저, 끝없는 고통에 아파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어떤 통곡도, 때 이른 사별의 아픔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울다 지친 사요코는 천천히 일어나 머플러를 벗었다. 자기가 메고 온 머플러를 프로듀서의 무덤 앞에 놓고, 프로듀서의 유품을 집어 목에 둘러메었다.

따뜻해...’

집 근처 역에 도착하자, 1년 전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내리는 눈송이를 받아 본다. 눈송이 조각은 투명하게 사라져 간다. 막 켜지기 시작한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에 비쳐 반짝이는 눈송이가 아름답다.

프로듀서의 차에 마지막으로 탔을 때도 이랬었지.’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앞이 흐려져서 가로등의 불빛이 주변 어둠에 녹아든다. 번져가는 불빛에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내가 그런 말만 하지 않았어도.’

가로등 불빛이 그 날을 떠올리게 해서일까. 눈물과 숨이 흰 김을 어지러이 피운다. 사요코는 가로등에 기대어, 울음에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제가 잘못했어요, 프로듀서 씨…”

자기 잘못이 아닌데, 사요코는 너무나 아파하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너무나 어이없이 잃은 후유증은, 영원히 낫지 않을 것 같았다.

프로듀서 씨를 잃고, 저도 되찾지 못할 걸 잃어버린 것 같아요…’

상실감일까, 죄책감일까, 아니면 그 무엇일까? 사요코의 눈물은 끝없이 흘러내렸다.

 

비참한 밤이었다. 도시의 불빛은, 사요코의 비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화려히 빛났다. 다시 되찾지 못할 것을 잃은 소녀의 절규는, 듣는 사람 없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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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Lacrima를 듣다가 생각나서 이틀밤을 새워서 써낸 글이지만... 역시나 저는 대놓고 무겁고 우울한 글은 안 되나 봅니다. 그냥 맛없는 활자 띄어쓰기 비빔이 됐어요. 원래는 내용으로 가사를 따라가려고 했으나, 그것도 안 되네요. 안 좋은 필력으로 안구테러를 선사하여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가: 내용이 큰 폭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앨런브라우더님의 피드백을 반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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