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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엽편> 노래를 허락해 주세요, 음악 교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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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6, 2020 12:30에 작성됨.

1. 노래를 허락해 주세요


야부키 카나는 자신이 음악성만 넘쳐 흐르는 음치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빈약한 자신의 표현과 엉망인 발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연습량에서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고행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녀도 사람이었다. 실력 상승폭이 크게 줄어든 때엔 절망과 회의에 휩싸여 노래하기를 그만두다가, 아이돌의 길을 택한 지금은 이것밖에 없다 하고 다시 연습하길 반복하니 안타깝게도 진전이 거의 없었다. 급기야 오늘은 코치에게 혼난 참이었다. 그녀는 노을 지는 강가 부지를 걸으며 혼잣말했다.


"그거 알아? 선생님께서 난 속으로만 노래 잘 부른대. 입 밖으론 크게 나불거리기만 하고 단 한번도 제대로 안 간대. 내가 내 소리를 듣지 않는대. 그런데 어떻게 하지? 나도 끔찍해서 듣기 싫은데..."


돌아온 그녀의 방에는 클라리넷 하나가 놓여 있었다. 차라리 아이돌 하지 말고 기악 전공으로 돌리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까지 클라리넷 할 땐 잘한다고 칭찬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동료 아이돌에게 부탁해서 기악 전공 레슨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뭔 일이야?"
"시즈카, 나 클라리넷 전공하고 싶어. 네가 피아노 지금까지 배우고 있잖아."
"왜 전공하고 싶은 건데? 전공이 만만해 보여?"


카나는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노래를 못하니까..."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레슨 때 무슨 일 있었어?"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현실을 깨닫게 됐어."


시즈카는 몇 초간 말을 아꼈다. 맞는 말이긴 했다.


"그래도 아깝잖아. 넌 성량이 좋잖아."
"그 성량을 제대로 못 쓰는데?"
"조금만 더 하면 할 수 있어!"
"그 말, 내가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알아?"


언성이 높아졌으나 또 어느새 조용해졌다. 서로 이런 상황을 알고 있으니 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 근무시간동안 내내 단 한번도 노래하지 말고 악기만 불면서 연습해. 그러면 선생님 붙여줄게."
"그래. 어차피 노래는 안할 테니까!"
"힘내라. 클라리넷 부는 아이돌."


카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클라리넷 부품의 먼지를 아주 꼼꼼히 닦아냈다. 그리고 고행을 시작했다. 일주일 참아서 전공을 할 수 있다는 건, 매우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생각보다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카나의 목청은 자꾸만 간지러웠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어차피 불러봤자 악기 소리만도 못할 것이니 하고. 그렇게 노래가 고프면 악기 부는 것으로 때웠다.


이레는 금방 지나갔다. 콧노래도 멎고 말주변도 줄어들어서, 입에 돌 쌓은 듯 과묵해졌다. 그리고 약속대로 시즈카는 클라리넷 전공인, 꽤 젊은 여자 선생님을 소개했다.


"이 학생이 야부키 씨인가요?"
"네. 맞습니다!"
"자, 그럼 불러 볼까요?"


카나가 호기롭게 악기를 들었다. 노래 부르지 않고 쏟은 시간이 많기에, 그냥 부르면 칭찬도 많이 받으려나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연습 때와 달랐다. 선생님 앞에 서니까 첫 호흡부터 흔들렸다. 물론 제대로 소리나지 않고, 자신이 부르는 노래보다 더 끔찍한 소음만이 레슨실 안에서 마구 돌아다녔다. 이렇게 불렀다면 학교에선 당장 쫓겨났을 수준이었다.


"긴장했나요?"
"..."


적어도 노래 부르는 시간이면 마음대로 냈던 카나였다. 그런데 더 낫다고 자부한 악기를 들고도 망치다니, 카나는 소매로 눈가를 가렸다.


"선생님은 알고 있어요. 야부키 학생이 음악 좋아하는 거. 다른 음악이라도 다시 해봐요."


고민했다. 차라리 노래를 다시 한다면 내 마음이 허락해줄까. 다행히 노래는 안 부른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아직 포기하긴 이를 때였나. 카나의 입꼬리가 축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갔다. 오랜만에 노래 부르면 확실히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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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악 교실

요즘 아이돌 레슨이라고 해서 다 현대식으로 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사쿠라모리 카오리 되시겠다.


저 언니의 레슨은 쉽지 않았다. 업라이트 피아노를 놓은 뒤 노래도 시키고, 무슨 음정인지 불시에 질문하고, 악보도 그리거나 읽게 했다. 피아노를 연주했던 나도 하자고 하면 버거운 과제였다.


그렇지만 그게 아이돌 활동에 묘수가 되었다. 악보를 이해하지 못해서 보컬 레슨이 늦었던 에밀리만 해도 이 수업으로 인해 속도가 붙었고, 그래서 더 많은 라이브를 뛸 수 있었다. 음정 교정을 동시에 하니 시간이 추가로 단축되기도 했다.


그러니 만족도는 최상급이었다. 카오리 언니는 친절하기까지 해서, 나이 어린 아이돌은 계속 그 언니만 찾을 지경이었다. 허나 문제가 생겼다. 그 레슨을 받은 에밀리가 프로듀서의 말을 안 듣기 시작한 것이었다. 항상 모르는 건 프로듀서나 내게 묻던 아이돌이었는데, 얼마 전에 나랑 대화하다가 아주 정중한 디스가 나왔다.


"에밀리 생각에...관리자님이 정말 바보 같아 보여요. 무능력해요."


이 말을 듣고 겨드랑이가 쑥 가라앉는 듯 오싹해졌다. 그래서 이 수업의 진짜 정체가 뭔지 알기 위해 카오리 언니를 개인적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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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실에 발을 딛었다. 카오리 언니는 그 방 피아노에 엎드려서 잠꼬대를 마구 해댔다.


"일어나세요."
"...응? 시즈카네!"
"잠깐 할 얘기가 있어요."
"나중에..."


피아노 뚜껑을 손바닥으로 살짝 내리쳤다. 텅 빈 나무에서 현들이 조금씩 잔향을 내었다.


"이제 일어나세요! 3시 반이에요!"
"그, 그래?"
"스물 셋이나 잡쉈는데 중학생이 깨워주는 거, 창피하지 않아요?"
"..."


고개를 살짝 삐딱하게 들고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그 언니의 표정에선 반성의 '반'자도 보이지 않았다.


"레슨해주느라 컨디션이 좀 그러네."
"그래요. 마침 그 문제 얘기하려 왔어요."


그 사태의 심각성을 나름 쉽게 설명했다. 프로듀서가 할 일을 아이돌이 다 하려고 하니까 당연히 프로듀서는 무능력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프로듀서씨가 나 보고 부탁한 건데?"
"그런데 에밀리는 그 프로듀서 보고 바보라고 하잖아요!"
"그래. 바보 맞지."


점점 화가 뻗쳐서 이리저리 발을 움직이는데, 언니는 의외로 차분히 말했다.


"그 말할 당시에 에밀리의 표정이 어땠는지 봤어?"


그땐 그냥 그가 바보라고, 무능력하다고 정중히 말한 그녀에게 화가 단단히 나서 미처 볼 수 없었다.


"그 말은 프로듀서씨가 에밀리에게 먼저 했어. 그분 스스로 바보 같고 무능력하다고 했는데?"


이제야 기억이 조금 났다. 그녀는 매운 마늘을 먹은 듯 괴로운 표정을 지었었다. 왠지 난, 길 잃은 상태에서 오거리를 맞닥뜨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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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무것도 하기 싫다


댄스 레슨을 받기로 했는데도 취소했습니다. 당장 급하지 않으니 게임부터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날은 보컬 연습을 안 했습니다. 게임을 했다가 머리가 텅 비었길래 의욕이 나지 않아서였습니다. 이토록 저는 요즘 게임을 많이 했습니다. 제 상태는 일반인 치고 많이 하는 정도와,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답 없이 하는 수준의 어딘가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게임을 무지막지하게 하다가 제가 올라갈 수 없는 수준을 깨달은 것입니다. 일단 깨달음은 괜찮았습니다. 그냥 약하게 설렁설렁 해서 시간 축내는 것보단 한 번이라도 발악은 해보고 그만두는 건, 미련없이 버리는 데 충분한 근거를 주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그런 깨달음을 얻은 지금의 제 상태였습니다. 이젠 바람 빠진 에어지주가 바닥에 축 늘어진 것처럼, 그저 우리 극장 사무소 어딘가의 방에서 엎드려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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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에 안나가 왔습니다. 모치즈키 안나. 동갑내기 친구 아이돌인데, 게임을 잘합니다. 리듬게임이든, 격투게임이든, 레이싱게임이든, 저보다 항상 근소하게 더 앞서 있습니다. 저도 평균보다 잘하는 편이지만, 안나는 그 근소하게 앞서 있는 위치 때문에 레벨이 크게 다릅니다. 그리고 안나는 게임 속에서 정말로 '제 수준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묘기를 선보였습니다. 저도 거기에 혹해서 죽어라 따라해봤습니다. 레슨과 연습을 안 하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였지요.


이제 오늘부턴 안나를 봐도 게임이란 건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안나는 제게 다가왔습니다.


"츠바사...게임, 안해?"
"응. 이젠 아무것도 하기 싫어. 시간을 너무 뺏겼어."
"게임한테 시간...뺏긴 게 아니라...그건 츠바사가...선택한 거야."


남들이 보기엔 역시 그냥 제가 스스로 택한 것이려나요. 그렇지만 제게도 변명할 거리는 있었습니다.


"너 하는 거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리고 네가 해보라고 했잖아."
"안나는...레슨 빼먹으란 말...안 했어."
"도전할 땐 죽어라 해봐야지! 그래야 나중에 미련없이, 빠르게 포기하지!"


그러나 제 변명은 거기서 멎었습니다.


"라이브 연습은...그렇게 죽어라...해본 적, 있어? 바짝 한 적이 없고...설렁설렁 하다 보니...아이돌에 미련이, 남은 거야? 정말 좋아해서가 아니라?"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니, 안나! 그건 아냐!"
"방금 아무것도, 하기 싫다며..."
"..."


아마 정신이 잠깐만 들었나 봅니다. 실제로는 멍하니 있었습니다. 어찌 해야 위기를 모면할까, 생각만 하다가 가만히 안나를 떠나보냈습니다. 아직 전 멀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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