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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아이돌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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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5, 2020 11:15에 작성됨.

상편 중편

센의 본명은 아무도 몰랐다. 마키만이 알았다. 치히로. 성은 기억나지 않는다. 활동 이름은 무라카와 센카라고 했으니 무라카와 치히로였을까. 개명 건은 어찌되었거나 치히로라는 본명과 센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이름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주인공 치히로는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를 되찾기 위해 저주를 건 장본인인 유바바의 온천에서 일을 하게 된다. 마녀 유바바의 밑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진짜 이름을 잃지 않기 위해 가명을 써야한다 - 그 가명이 바로 센이다. 코스프레 클럽에서 일하는 치히로를 숨기기 위한 이름 센. 코스프레 클럽에서 일하는 센과 평범한 치히로. 마키가 지어준 센이라는 이름의 뜻을 센은 알았고,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센을 볼 일은 없겠지. 돼지들에 눈이 돌아가 또 다른 마녀에게 사로잡혀버린 센은 이번에는 센카가 되었다. 6번째 마녀에게 붙잡히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모두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꺼내어줄 때까지 영영 탈출할 수 없을까?

"오늘도 흡연실에서 뵙네요."

"네, 요즘 생각할거리가 많아서요. 그런데 프로듀서 씨, 원래 담배 안 피지 않으셨나요?"

"정확히는 금연중이었죠."

"으음, 금연중의 금단 증상은 굉장히 심하다고 들었는데..... 프로듀서 씨, 혹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주셔도 돼요. 치히로의 스타드링크가 있으니까요."

"괜찮습니다. 수고하세요."

"......."

프로듀서는 센카를 빠르게 지나쳤다. 아이돌들의 컴플레인이 또 늘겠구나, 하고 센카가 혀를 찼다. 사실은 방금 전에도 부탁을 받고 스타드링크의 말을 꺼낸 거였으나, 프로듀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스타드링크 중독자가 낫다구요, 우즈키가 툴툴댔다. 맞아, 스타드링크는 냄새 안 나잖아? 요즘 프로듀서 좀 심해! 미오가 거들고,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린은 담배 피워본 적 있어요? 우즈키가 순수하게 물어봤고, 린은 망설이다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한번. 그렇지만, 중독될 맛은 아니야. 목이 따갑고 폐가 움츠려드는 느낌. 시작이 어렵다면 시작을 하지 않으면 될텐데요, 센카가 난처한 미소를 짓는다. 치히로 씨도 고생이 많네, 맨날 프로듀서 흡연실에서 꺼내오느라. 치히로 씨가 오히려 오해받겠어. 린이 걱정하고, 센카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프로듀서 씨를 보좌하는게 제 일인걸요. 그렇다고 우즈키쨩, 미오쨩, 린쨩을 흡연실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면 우즈키는 센카를 보살을 보듯이 바라보고, 미오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있잖아, 프로듀서 혹시 실연당한 거 아냐? 우즈키는 얼굴을 붉히며 반박한다. 그럴 리가 없어요! 린은 비교적 차분하게 대답한다. 여자친구가 있던 것 같기는 해, 언제 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머지 둘이 화들짝 놀라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 린은 태연하게 스타벅스의 자바 칩과 휘핑크림을 추가한 녹차 프라푸치노를 들이키며 뜸을 들이고, 긴장감이 잔뜩 조성되자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로듀서가 나랑 있다가 어떤 여자랑 전화하는 걸 들었는데, 이름을 끝까지 안 부르는게 뭔가 이상하더라고. 계속 저기, 아니면 저, 라고 하는 거 있지... 그리고 린은 추리로 돌입했다. 아마 린이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숨긴 것일 거다... 라고. 그 외에도 프로듀서가 얼마전부터 왼쪽 손에 반지를 꼈다던가, 같이 퇴근하려고 했더니 집과 다른 방향으로 갔다던가, 그런 소소한 탐정놀이의 증거들을 술술 나열한다. 우즈키는 왼손이 중요한게 아니에요, 위치가 중요하다구요! 라고 항변하고, 미오는 중지였던가, 검지였던가, 약지였던가~ 하면서 연상의 언니를 실컷 놀려먹었다.

그게 낮의 대화였다. 그리고 센카가 기억하기로 그에게 반지를 끼워준 것은 약지였다.

밤의 대화는 주로 프로듀서나 다른 성인 아이돌들과 함께다. 센카는 많은 아이돌들과 친분을 쌓지는 않았다. 아이돌은 전부 경쟁관계다. 특히 센카는 꽤 신인이고, 의지할만한 유닛 멤버나 팀도 없다.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사치고, 늦게 들어온만큼 더욱 눈에 띄기 위해 노력을 해야했다. 다만 모든 것에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센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존댓말을 꺼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존댓말을 해야하는 상황이 있음에도 센카는 차라리 침묵을 택했다. 옆에 있는 동료나 프로듀서가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며. 그 외에도 땋은머리만은 안 된다고 고집하거나, 초록색과 노란색의 의상은 싫다고 하거나, 하는 핑계를 대며 촬영현장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작 센카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그 후 센카는 감독에게 꾸중도 들었고, 간혹 커뮤니티 사이트에 센카와 일했던 스탭이라며 쓴 안하무인에 고집쟁이인 센카에 대한 이야기도 올라왔다. 몇몇은 딱 봐도 거짓이었지만 몇몇은 정말 센카와 일했던 사람처럼 그럴싸했다. 센카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인터넷의 변방까지 가지 않아도 센카에 대한 루머는 넘쳐나니까. 과도한 노출의 코스프레 의상을 한 여자의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해논 후 센카의 과거라며 우기거나, 자신은 인생에서 한번도 마주치지 않았을 법한 고등학교동창이 나타나지를 않나 - 사람들의 상상력은 참 대단하다고 센카는 생각했다. 

그래도 팬을 만날 수 있는 팬미팅과 악수회는 즐겁다. 전혀 만나지도 않은 사람이 루머를 퍼뜨리고, 전혀 만나지도 않은 사람이 부모보다 더한 사랑을 준다.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지 할 질문도 많고 요청도 많다. 무대 또한 즐겁다. 코스프레 쇼에서의 센의 화려한 부활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회식에서 억지로 떠밀려 분위기를 띄울 때와는 다른 발성이 나왔다. 조금만 높은 음이 나와도 바로 환호성이 나온다. 센카는 이것이 민망하기 그지 없었지만, 조금은 기뻤다. 아이돌의 센카는 '다른' 아이돌. 의도한 바가 먹히고 있을까. 나는 캐스팅된 역할에 잘 맞는 배우일까. 그에 "응."이라고 확정격으로 대답을 하듯 우렁차게 센카를 부르는 목소리. 전부 다른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센카에게 도달한다. 그럼 잘 하고 있구나, 라고 화답하듯이, 센카는 누구보다 활짝 웃는다. 

센카는 퇴근 후 두 번 옷을 갈아입는다. 가게에 가는 버스에 탈 때 입을 검은 후드티와 검은 카고팬츠, 그리고 스케줄 때 입으려고 신경써서 코디한 코스프레 의상. 첫번째로 갈아입은 옷으로 센카는 프로듀서와 오늘 두번째로 마주한다. 기다림은 길지 않아 센카가 가게에 도착한지 5분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프로듀서의 차가 도착한다. 그럼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오전의 어떤 어시스턴트는 절대 인사로 해주지 않을 키스로 인사를 한다.

"잠깐, 나중에...."

뭐 평소에는 그렇다는거다. 

곧바로 이상함을 감지한 센카는 그의 손을 확인했다. 핸들에 놓인 건 반지가 없는 오른손. 센카가 잡고 있는 왼손에는... 반지가 느껴진다. 센카는 쓴웃음을 짓는다. 

"오늘 가게 준비 돕는데, 마키 씨한테 한소리 들었어. 방송에서 너무 가식적이라는거야. 그러면서 챙겨보는 건 너무 앞뒤가 안 맞는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조금 기뻤어. 왜 그랬으려나. 당신이 나를 찾아주지 않았으면 이렇게 살 수 없지 않을까 해."

"........"

"흐음."

집중을 안 하는 사람은 벌이야. 센카가 프로듀서를 꾹 찌른다. 이런 센카의 장난에 평소에는 익숙치 않아하면서도 웃어주던 그가 조금 화난 듯이 그녀를 쳐다본다.

"왜?"

"왜 아무렇지 않아?"

"왜냐니..... 혹시, 내가 다른 남자랑 손 잡았다고 화난거야?"

"남자랑 손을 잡았다고?"

"저번 악수회에서."

"........농담할 기분 아니야."

"나도 농담하고 있지 않아. 왜 화가 나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아무 이유라도 던질 수밖에 없잖아."

"센카에게 화가 난게 아니야. 센카를 아이돌로 끌어들인 나한테 화가 난거야."

센카는 방금 들은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숨을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것에만 집중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심장이 조여와 호흡이 떨린다. 

센카의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오래 정적을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귀에 들어오는 거슬리는 소리, 그 소리가 참을 수 없이 커졌다. 당장이라도 차를 멈추고 그의 머리를 한 대 치고 싶다. 그러면 소리가 없어질 것 같았다. 아니, 평소에 하던 루틴이 깨져서 이런 잡음이 생기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키스를 해야할까. 센카는 두 개의 양립하는 생각들을 떨쳐내야만 했다. 이러면 안 된다. 센카에게는 단 한가지 선택지만이 있었다. '무라카와 센카가 된다.'

진짜 무라카와 센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진짜 ◯◯◯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는 어떤 사람일까, 왜 어째서 이런 일을 했을까, 가정환경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영향을 받았을까, 어떤 인과관계로 과거의 그 일이 일어난걸까, 어째서 이런 옷을 입고 저런 옷은 안 입지, 문제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할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감정을 가질까, 참을 수 없는 일은 어떻게 거절할까, 거절은 잘 할 수 있을까, 생업이 달려있다면 어떨까, 생업은 어떻게 결정했을까, 어떤 신념이 그것을 결정하게 했을까, 신념에는 어떠어떠한 것이 있을까, 그런 신념은 어떻게 생겨난걸까, 만약 다른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달라졌을까, 이럴 때 이렇게 행동하는 건 저럴 때 저렇게 행동한다는 말과 같을까.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들로 정의될 수 없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거듭하고 또 거듭한다. 완성된 사람이란 죽은 사람이다. '이럴 때는 꼭 이렇게 하는 사람'은 없다. 

센이 시마무라 우즈키일 때는 힘들어도 웃는다. 센이 무라카와 센카일 때는 힘들면 그만둔다. 센이 센카와 치히로일 때는 힘들면 노력한다.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무라카와 센카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진짜 무라카와 센카만이 안다.

무라카와 센카라면 어떻게 할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무라카와 센카가 어떻게 행동할지 모른단말이다. 

"나...."

'나'를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부서졌다.

"나를 캐스팅한걸 후회해? 그런 말을 하는거지? 지금, 나한테!"

언젠가 유리잔을 깨뜨렸던 그 날처럼 그를 몰아붙인다. 그러나, 이번에는 센카가 바라는대로 진행되지않는다.

"나는, 단 한번도 당신을 캐스팅한 적이 없어요."

".........."

캐스팅.

그러고보니 이상하다. 

스카우트라는 말이 자연스러울텐데, 센카는 줄곧 캐스팅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캐스팅과 스카우트, 비슷한 느낌을 주는 단어가 아닌가. 헷갈릴 수도 있지만 철저한 센카가 설마 캐스팅과 스카우트, 두 단어의 뜻을 헷갈릴 리가 없다.

배역에 너무 충실했던 걸까.... 센카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에 가슴을 움츠렸다. 

"미안해....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거나 서로에게 복수할 수는 없어. 피차 그럴 수 있는 위치가 아니잖아."

대답 없는 조수석이 신경 쓰였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센카를 사랑하는데 센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니까."

차는 말도 없이 도로를 달렸다가, 공연장 앞에서 지하로 방향을 튼다. 주차장을 나온 두 사람은 서로의 의무가 있는 곳으로 흩어졌다. 

센카는 대기실로 들어가 먼저 도착한 선배들에게 인사하고 메이크업 담당 스탭에게 다시 인사한다. 아무래도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인지 센카 혼자 메이크업을 받을 때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대부분은 센카 본인이 직접 하기 때문에 수정 작업이 다수인 것도 한몫 한다. 이런 저런 준비를 마치고 난 센카는 가수를 위해 준비된 음료수캔을 따서 마시다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할 일은 없다. 그냥 한 칸에 들어가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앉아있는 것이 다다. 그러다가 조금 추워지면 쪼그려앉아 온 몸을 끌어안는다. 센카가 자주 그러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었다. 시간이 되면 다시 밖으로 나와 이미 연습을 하고 있는 선배 그룹에 동참한다. 연습이라기보다는 장난따먹기에 가까운 친목회다. 아무런 말도 듣지 않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일 선배의 "가장 쓰레기같은 스틱이 뭘까~요?," "판타스틱 4!"라는 개그에 가까운 말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들 웃고 있어서 센카의 굳은 표정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덧 데뷔 순서대로 공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데뷔가 가장 늦은 센카의 솔로 무대는 맨 마지막이다. 데뷔 순서라고는 하지만 팬의 순서와도 같다. 346 전용의 작은 극장공연은 그렇게도 무정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무대를 보고 나면 나갔다가, 다시 볼만한 아이돌이 나오면 돌아온다. 센카도 겪어보았기에 안 사실이다. 그런 것까지 자세하게 알고 상처받을 일은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영역이지, 어시스턴트의 영역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센카는 아이돌. 그 날의 '내일'부터 시작했던 신인 아이돌이니까 안다. 최적이다, 라고 생각했다. 마에카와 미쿠가 얼굴분장도 하지 않은 채 손만 말아서 움직이는 모양은 실제 고양이보다도 사랑스럽다. 시마무라 우즈키는 살짝 미소짓기만 해도 벚꽃이 휘날리며 봄이 찾아온 기분이다. 오가타 치에리는 누구보다도 약하지 않다. 다른 아이돌들이 펼치는 꿈같은 무대들을 보면서, 더욱 더 그 생각은 깊어졌다. 최적이다, 최적이야. 센카는 밀물과 썰물처럼 빠지는 팬라이트를 보며 계속해 생각했다. 세트리스트의 아이돌들이 하나 하나 전부 공연을 마친다. 그야말로 최적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프로듀서 씨."

드디어 할 일을 마친 듯한 프로듀서가 피곤한 기색으로 걸어왔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그는 놀란 것 같다. 오전에도 이렇게 불러주었었지, 아마. 그리고 한동안 말을 안 하다가, 가게에서 만나서 차를 타고 또 말을 하다가, 또 한동안 말을 안 하다가, 떨어져 있었다가, 다시 건넨 말.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아이돌들은 익숙한 목소리에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목을 축이기에 바빠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처음부터 다 알았던 거구나....."

"........."

"나는.... 그냥 인정받고 싶었어....."

"........."

"돈에 미친 귀신처럼 아득바득.... 사적인 건 꼬투리 잡힐까봐 숨겨... 그래야만 사회에서의 내가 있을 수 있으니까, 캐릭터처럼 살아가고 있었어....."

"........"

"그러다 당신을 만난거야. 내가 숨기던 나를 좋아해주던 사람.... 그리고 왜 나를 스카우트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하하, 그게 뭐야. 너무 사랑고백같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베짱이 대단했네요, 프로듀서 씨. 센카의 앞에서 한건 그렇다 쳐도, 이미 다 알면서 내 앞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센카가 나갈 차례가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당신을 만나도, 내가 원하는 건 같았어요."

센카는 구두를 고쳐신었다.

"그냥.... 내 자신만으로도..... 사랑받고 싶었어요. 내가 있다는 것만으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런건 아무도 해주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러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속 아이돌이란 배역에 캐스팅된 것처럼 행동했고, 당신도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지. 정말 바보 같아...."

프로듀서는 난감한 듯이 웃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물었다.

"지금 뭘 하려고 하는거야?"

"전부 그만둘래. 지금이 최적의 시간이야."

"........."

센카는 무대에서 새어나오는 빛으로 걸어갔다. 흐트러짐없이 걸어가고 싶었는데 자꾸만 심장이 두근거려서 비틀거렸다. 프로듀서도 쫓아갔지만, 무대로 향하는 계단까지는 따라붙지 못했다. 계단을 걸어가던 센카는 중간에 멈춰 중얼거렸다.

"팬들이 좋아해줬던 건 아무것도 아닌 허공 뿐이지만, 좋아했던 마음만큼은 진심이겠지?"

"........응."

"그러니까 나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무대에서 죽을게."

펜라이트가 울렁거렸다...

***

무라카와 센카는 5년쯤 후에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것이다. 아이돌의 현실이 그렇다. 나오지 않으면 잊혀진다. 답없는 아이돌 오타쿠인 나 자신조차 훗날에는 센카를 잊어버릴 것 같다. 이름도 기억이 잘 안 나서 대충 음절 6개짜리 걔- 정도로 기억하지 않을까.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섰던 무대를 보았다. 실력의 문제를 떠나 아이돌의 역할은 즐거움을 주는 대가로 사랑을 받는 것이다... 센카는 사랑받을만 했고, 사랑받는 것을 벅차오를만큼 사랑하는것 같았다. 

그녀, 그리고 끝으로, 그녀의 컨셉트를 존중하며 훌륭한 어시스턴트 역할을 수행했을 어떤 P에게 이 글을 바친다. 

센카는 아이돌로 존재하는 동안만큼은 아이돌에 더할나위 없이 충실했다. 

- <아이돌 평론 28편 ◯◯◯◯◯◯ 편> 끝부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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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겸 짧은 에필로그가 (곧)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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