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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아이돌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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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7, 2020 13:11에 작성됨.

센은 코스프레와 롤플레잉을 즐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을 즐긴다는 건 배우의 특성과도 맞아떨어지지만, 특성이 아닌 결과에서 둘은 다르다. 코스프레는 많은 사람이 즐기지만 그에 비등하게 많은 수의 사람이 좋지 못한 시선을 보낸다. 

편견이란 어렵다. 가령, 취미 시간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고 하면 흔히 고상한 사람의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그 책이 사실 만화책이며 영화는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라 하면 그 사람은 순식간에 기분 나쁜 오타쿠가 된다. 만화는 어쩌면 종합예술이다. 지문과 대사가 있고, 그림이 있고, 영화와 같은 연출도 있다. 한 권의 잘 만든 만화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몇십, 아니 몇백 시간의 고뇌가 들어간다. 이처럼 감상하는 사람이 편하게,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의 노력은 플랫폼에 대한 편견으로 평가절하되곤 한다. 센은 종종 이런 류의 생각을 한다. 만화와 일반 책의 인식, 종이책과 전자책의 인식, 아이돌 산업과 오페라, 발레 등 각종 문화 산업의 인식 그리고 그 외의 다른 편견들에 대해. 어떤 것이 서브컬쳐의 저급성이고 어떤 것이 고전 예술의 고급성인지.

센이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인터넷의 코스프레 지인들은 그런 열변이 오히려 오타쿠를 더 오타쿠스럽게 만든다며 기함을 토한다. 그럼 센은 같은 처지끼리 이런 말도 못하냐며 혼자 분을 삭인다.

보통 코스프레라 함은 가상인물에 한정되어있다. 

하지만 센은 실존인물의 코스프레에도 관심이 있었다. 정확히는 실존인물의 페르소나를 내세운 코스프레다. 물론 센이 생각하는 건 연예인일 수밖에 없었다. 센의 어머니같은 사람을 코스프레해봐야 센도, 관객도 원치 않을테니까.

그럼 어떤 연예인의 페르소나를 모방해야할까.

센은 바로 아이돌을 떠올렸다. 우스꽝스러운, 그래서 항상 우스운 사람이어야 하는 개그맨도 확실한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이겠지만, 센은 아이돌의 본질이 가상인물 - 즉 통상적인 코스프레에 조금 더 가깝다고 믿었다. 아이돌은 어떤 이미지라도 보일 수 있다. 팬들을 대하는 태도가 까칠하면 소금대응 컨셉으로 돋보인다. 한편 노래를 못해도, 춤을 추지 못해도 밉지 않은 아이돌이 있다.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습득력이 느려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된다. 그 외의 부분이 사랑스럽다면. 그렇게 정해진 역할을 연기해나가는 직업이 아이돌이다.

아이돌 시장은 어린 아이들을 원하면서 어린 나이 특유의 변화와 불안정함은 참지 못한다. 방황을 시작하지도 못하고, 웬만하면 컨셉도 무너뜨릴 수 없다. 그게 센이 생각한 가상인물의 '철저함'과 닮은 점이다. 가상인물은 어느 날 마시멜로를 좋아했다가 다른 날 마시멜로를 싫어할 수 없다. 사람은 어느날 단 것이 먹고 싶기도 하고 어느 날은 매운 것이 먹고 싶기도 하다. 아이돌은 굳이 말하면 가상인물에 더 가까웠다.

그래, 아이돌을 해보자. 사내 흡연실 안에서 센은 끝까지 남자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치히로 씨?"

"어머, 프로듀서 씨."

"담배... 피시는줄 몰랐네요."

"아... 제가 담배를 피는건 아니고, 생각할게 좀 있어서 들어갔다 나왔어요. 제 아버지는 소설가셨거든요. 틀에 박힌 작가 이미지처럼, 항상 다음 이야기를 떠올리실 때는 담배를 한 대 태우셨죠. 저는 그 냄새가 싫어서 '아빠, 그게 좋아?'라고 물었고, 그럼 아버지는 항상 '응, 이 연기가 코에 들어오지 않으면 다음 이야기를 볼 수 없어'라고 웃으셨어요. 후후.... 어릴 적 들은 말이라고 머리에 틀어박혀버렸나. 지금도 냄새는 싫지만, 머리 속이 복잡할 때는 담배 냄새가 종종 그리워져요."

뻥이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요 뭘."

"그, 그렇군요. 저... 그럼 실례했습니다."

"네, 오늘도 프로듀스 힘내세요."

센은 스타드링크 판매원 시절 단련한 말빨로 오전 직장의 동료를 간단히 제압하고 다시 코스프레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오늘은 센의 코스프레 클럽에서 여는 코스프레 쇼가 있는 날. 우선 신청도 했고, 옷도 만들어두었다. 옷 두 벌에 소품의 세트도 두 개다. 평범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코스프레와 아이돌의 코스프레. 흡연실에서 돗대를 태우며 생각한 결과로 아이돌을 하자고 결심하긴 했지만, 평범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뒤처리도 문제였다. 보통은 장터에 파는데, 이건 수요가 별로 없을 것 같아서 고민이었다. 대학 후배인 미사키가 아이돌 옷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니 그냥 팔아넘겨버릴까. 어차피 아이돌 의상은 코스프레 의상에서 판타지스러움만 빼면 되니까...

"센!"

"아아, 아이쨩."

계속 고민을 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 코스프레 쇼.

클럽의 다른 직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 센은 오전과 확연히 다른 메이크업을 입고 있었다. 거의 맨 얼굴에 가까웠던 오전과 달리 지금은 센이 주인공이다. 오전의 센은 어떤 곳에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데, 코스프레 클럽에서만큼은 늘 주인공이나 준 주인공의 가면을 쓴다. 가상인물은 지나치게 큰 눈과 또렷한 눈동자를 갖고 있어서 코스프레를 할 때는 화장을 진하게 해주는 것이 보통의 룰이다. 센도 줄곧 그래왔지만, 오늘의 센은 가상인물의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아니어서 평소보다는 옅은 화장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화려한데다 머리 스타일도 눈썹산도 전부 바꿔버려서 오전의 '센카와 치히로'와 언뜻 보면 꼭 다른 사람 같다. 펄이 들어간 블러셔로 애교살 밑까지 철저히 반짝거리도록 마무리를 한 센은, 담배 연기로 꽉꽉 들어찬 의상실 안에서 기침도 하지 않고 여유롭게 악세서리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네."

"자자, 여유 되는 애들 있으면 가서 손님들이랑 좀 놀아주고 있어. 마키 언니 오늘은 준비할게 많다 그래서 자리를 비웠거든."

"그러면 어떡해! 마키 씨가 원래는 안내 담당이잖아. 마키 씨 보러 온 손님도 많고, 또 오늘은 코스프레 쇼라고 이상한 인형탈까지 만들어서....."

"센이 마키 언니인 척 하면 되잖아? 인형탈이니까 들킬 걱정도 없고! 마키 언니랑 얼추 목소리도 비슷하고."

"그러는 너는... 후. 머리 되려면 좀 걸리겠네.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센은 준비에 바쁜 다른 동료들을 훑어보고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할 수 없이 인형탈을 썼다. 클럽의 매니저인 마키가 했던 코스프레 중에서 가장 닮았다고 평가받았던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특별 제작한 인형탈이었다. 구멍이 커서 머리 모양이 망가지지 않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 센은, 대충 큰 코트를 집어 자신의 의상을 가리고 의상실을 나왔다.

"어서 와~ 이 쪽으로 들어오면 돼."

"오, 마키. 이 탈, 사진으로 이미 봤지만 실제로 보니까 더 신기하네. 오늘 뭐 하려고 인형탈까지 쓴거야?"

"스, 스포일러 방지랄까, 그런거니까. 그 이상 물으면 싫어."

"하긴 그러려나~ 알았어. 기대할게. 그런데 금연 시작한거야? 목소리가 평소보다 부드러운데."

"싫다, 원래 부드럽거든?"

처음에는 인형탈을 완강히 거부했던 센도 롤플레잉에 몰입해서 어느새 완전히 마키의 말투로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손님들 중 어느 손님이 진짜 마키를 아는 손님인지는 의문이었지만, 대체로 센의 마키에 별 다른 트집을 잡지 않고 넘어가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마키가 올 때까지 순조롭게 마키를 하고 있던 센에게 위기가 닥쳤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 입구는 이쪽인가요?"

직장 동료...

...즉, '프로듀서 씨'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형이 여기서 왜 나와...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보려던 센이 이 상태에서 눈을 비벼봤자 탈에만 손이 닿는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던 차에, 이 처참한 사실을 재확인 시켜주려 프로듀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키 씨 맞죠? 오늘 안내해주신다고..."

"네, 그럼요."

"?"

"아, 아니.. 그래. 친절하게 안내해줄테니까 따라와. 그리고 조금 더 편하게 말해줘도 되는데?"

"저는 이게 더 편해서요."

"하하, 그렇구나~...."

저는 존대말 하는 프로듀서 씨가 너무 프로듀서 씨 같아서 더 불편하거든요. 센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 동료가 코스프레 클럽의 손님으로 왔다는 것도 충분히 충격인데, 코스프레 쇼가 다가온다는게 더해져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센은 프로듀서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아무 말로나 대답하다가, '진짜 마키'가 의상실 쪽에서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센은 대충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핑계를 대고 의상실로 향했다. 안에서 옷을 바꿔입은 센은 적당히 마키와 말을 맞추고 떠나는 그녀를 허탈하게 바라보았다. 잘 하고 왔냐는 질문도 무시하고 거울 앞에 섰다. 

센은 센카와 치히로다. 센과 센카와 치히로를 이어주는 것은 등호(=)다. 하지만 거울 안의 센은 센카와 치히로가 아니라, 가상인물-아이돌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화려한 주인공 센이었다. 프로듀서는 센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센, 시작이야."

코스프레 쇼는 막이 올랐다. 

센은 언제 충격받았냐는 듯 완벽한 아이돌로 변신해서 무대에 올랐다. 센을 아는 몇몇 손님들이 휘파람과 박수를 보내고, 센을 모르는 방문객들도 센이 코스프레한 아이돌을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센과 원래의 아이돌은 별로 닮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소가 아름답다는 점이, 또 웃음을 준다는 점이 닮았다. 

센이 코스프레한 아이돌은 시마무라 우즈키였다.

".........."

코스프레 쇼에서 센은 우승하지 못했다.

우승을 하려고 신청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우승하는 꼴은 보기가 싫어 담배갑을 챙겨들고 조용히 무대 뒤편으로, 가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게 안은 센이 처음 모습을 보였을 때처럼 시끄럽고 활기찼다. 찰칵하고 라이터에서 작은 불이 솟아나왔다. 센은 때 아닌 성냥팔이 소녀 놀이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불을 붙이지도 않고 라이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였다.

"저기....... 센?"

"프......!"

로듀서였다.

"....레젠트라도 주러 쫓아나온거야?"

목소리가 비슷하면 알아챌테니까, 센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평소에 하던 존대말이 아닌 거친 말투를 썼다. 아이돌로 표현하자면 무카이 타쿠미 같은... 아니, 센은 이런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아야카같은 갸루 말투를 쓸 걸 그랬어.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 센은 급하게 라이터부터 껐다.

"...프레젠트일까요. 센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요."

"음....."

센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프로듀서가 가까이 다가오면 얼굴을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왜 고개를 숙여요."

"내가 너무 못나서."

"센은 예뻐요."

".......프레젠트라더니, 작업멘트?"

"네? 아니요, 진심입니다. 거짓으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프레젠트라는 건....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프로듀서는 명함을 내밀었다.

346 프로덕션 아이돌 부서 담당 프로듀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건 아셔야할 것 같아서..."

아니, 설명하지 마세요. 알아요. 너무 잘 안다고요....! 그리고 이 다음에 니가 뭐라고 할지도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하지 마세요!

센은 속으로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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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쓰는 걸까?

To be continued in 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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