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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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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3, 2020 00:01에 작성됨.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스미레, 호리 스미레입니다.
후쿠이 출신이고, 현재 오사카대학에 재학해 영문학을 전공 중이죠.
열심히 공부해서 장래에 졸업하고 나면 옥스퍼드로 유학을 갈 예정이에요.




저에게는 3살 터울의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요.
얘는 옛날부터 저와 확연히 달랐어요.
똑똑하단 말을 자주 듣던 저와는 달리, 왠지 바부팅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죠.


게다가 얘는 초능력에 관심이 많은 걸 넘어서, 아예 자기가 초능력자라고 믿더라니까요?
그러더니 어느 날은, 자기가 대단한 예지몽을 꾸었다면서 무려 아이돌 오디션을 보러 간 거 있죠?
뭘 어떻게 한 건지 떡하니 합격한 뒤엔, 지금까지 사이킥 파워라느니, 자기가 초능력자 아이돌이라느니 하는 되도 않는 소릴 해대며 백치미를 뿜뿜하는 중이에요.



사실, 저도 동생의 그 ‘사이킥 파워’를 못 본 건 아니에요.
동생이 집에서 사이킥 파워라는 이름의 바보짓을 한 뒤엔 언제나 뭔가가 일어나 있었으니까요.
심지어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과제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게 제 동생의 ‘사이킥 파워’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대부분의 일들은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거고, 과제 같은 경우, 제가 가끔 깜빡깜빡하는 경우가 많은지라, 해놓았다는 사실을 잘 잊어버리고는 하니까요.
세상에 초능력이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저는 딱히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이 누구냐고요?
소개할게요. 후쿠이 출신의 자칭 초능력자 겸 솔로곡도 있는 16살 현역 아이돌.
걔 이름은, ‘호리 유코’입니다.




저는 TV를 통해 유코가 종횡무진 치고박는 활약을 자주 보곤 합니다.
동생을 딱히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지만, 가끔, 아니 자주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 걸 볼 때마다 헛웃음만 나와요.
아이돌은 매력이 포인트인데, 대체 유코는 어딜 봐야 매력이 느껴지는 건지, 지금도 연구 대상이에요.



한번은 검색창에 「유코의 매력포인트」를 검색해 보았는데요.
「땡글땡글한 눈」, 「댕청미」, 「명랑함」 등등 여러 가지가 떴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쪽에 치이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저는 유코의 언니인데도 크게 닮은 것 같진 않은 구석이 않네요.


그래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은 저와 유코가 자매라는 걸 쉽게 믿지 못합니다.
딱히 밝힌 적도 없지만, 밝혀도 못 믿는 것은 외모와 성격이 너무나 판이한 까닭입니다.
그들에게 저와 유코의 공통점은, 그저 성별과 ‘호리’라는 성씨 뿐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지난 1월, 학교가 종강하고 방학 시즌에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인데요.
그때 저는 우연찮게 유코 소속사인 미시로 프로덕션의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크기는 도저히 프로덕션 건물이 아니라 유럽 황성의 레플리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었어요.


‘이런 곳이라면 아이돌이 못해도 200명은 있겠는데?’
‘알려지지도 않은 연습생들까지 합하면 한 3~400명 되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건물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제게 다가왔어요.
모습이 굉장히 험상궂었기에 순간 식겁했습니다.
저도 평소 꽤 사납게 생겼다는 말을 몇 번 들은 적 있지만, 이 사람 앞에선 상대도 안 될 것 같네요.


“어우 깜짝아. 누구신가요?! 무슨 일이세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아이돌 한번 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며 내민 명함에는 ‘타케우치 슌스케’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아이돌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주신 명함은 받아둘게요. 아이돌 하는 건 제 동생으로 충분하니까요.”
“동생 분이 아이돌이시라고요? 그분이 누구십니까.”


대답하려던 순간, 우연찮게 섹시 길티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카타기리 사나에, 오이카와 시즈쿠, 그리고 제 동생 호리 유코.
유코와 저는 눈이 마주쳤고,


“어! 언니! 언니가 왜 여기에?!”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그냥 들러봤어. 스케줄 가는 거야?”
“스케줄은 다 끝났어. 사이킥 기숙사 돌아가는 길이야!”
“유코 짱, 아는 사람이야? 누구야?”
“저희 언니에요! 에헤헷!”


그러자 모두가 제게 인사를 건넸고, 저도 허리 굽혀 인사했습니다.


“호리 스미레입니다. 유코가 항상 신세지고 있네요.”
“아닙니다. 호리 유코 양이 너무 잘 하시고 계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유코 짱이랑 별로 닮지 않으신 것 같아요~”
“시즈쿠짱! 그런 말은.”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런 얘기 많이 듣기도 하고, 저도 저 스스로가 유코와 많이 안 닮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생각했어요.


‘그래도 친자매인데, 왜 안 닮은 건지 모르겠네. 어느 정도는 좀 닮는 게 좋은데.’



하여튼, 대화를 끝낸 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사실은 미시로 프로덕션 내부도 좀 보고 싶었는데, 유코도 이미 만났으니 더 볼일도 없어졌고, 또 딱히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아졌어요.


듣기로는, 예전에 어떤 아이돌의 민간인 친구가 아이돌 외 금기구역인 기숙사 내부까지 올라간 일이 있어 소란이 일어났었다는데, 저는 유코에게 그런 소란과 창피를 안겨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하튼 그런 일도 있었죠.
그 일이 있은 후로, 저는 전보다도 더 자주 유코의 방송을 챙겨보기도 했고, 유코 팬카페 ‘에스페르’에도 가입했어요. 언니 마음에 동생을 남몰래 응원하고 싶긴 하니까요.
가입인사를 할 때 최대한 유코처럼 활발한 말투로 저 자신을 숨겼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유코 이 댕청이자슥이 댓글로


-언니...너무 활발한 척 안 해도 돼. 언니는 그런 거 안 어울려.-


라고 말하는 바람에, 제가 유코의 친언니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저도 대댓글로


-유코야 제발 모른 척 좀 해봐...-


라고 말함으로서 성대하게 자폭을 하고 말았죠.
전 원래 이런 사람이 절대로 아닌데, 어째 점점 동생이랑 비슷한 구석이 생겨나는 것 같네요.
뭐, 이런 구석조차 없는 것보다는 100배는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허당끼(?) 때문에 팬카페에서 가입 한시간만에 핵인싸로 등극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유코의 친언니임이 밝혀지자마자 질문공세가 날아들었습니다.
유코는 어떤 애인지, 유코의 연락처가 어떻게 되는지, 집에서도 이러는지, 기타 등등.
그 질문들에, 대답해 줄 수 있는 것들만 대답해주고 나머지는 몽땅 스루했습니다.


대충 그런 다음에, 에스페르를 둘러보며 유코의 족적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는데, 세상에나,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댕청함이 가득했어요.
그 바보같음에, 저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 맙소사, 이게 진정 인간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댕청함이란 말입니까?!


살면서 이런 무식함을 본 적도 없고, 설령 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늘 저는, 무식함의 바닥이 갱신되고, 댕청함의 신기원이 발견되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유코야, 대체 어디까지 할 생각인 거니, 대체 언제까지 이럴 작정인 거니...




가입하고서 또 며칠이 지나갔습니다. 날짜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긴 하지만 말이죠.
이제 2월도 거의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수강신청을 해놓은 뒤, 한가하게 침대에 누워서 과자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기에 나가보았습니다.


문 밖에 서있던 사람은, 지난번에 보았던 그 프로듀서였어요.


“안녕하십니까, 호리 스미레 씨.”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처음에는, 제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나 싶었지만, 어차피 이력서엔 집 주소도 쓰여져 있을 거고, 제가 방학 때마다 후쿠이의 본가에 있는다는 사실을 유코가 알려준 거라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겠군요.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나요?


“우선 들어오세요. 그런데 어쩐 일이신가요, 프로듀서님?”
“Aㅏ, 다름이 아니라, 호리 유코 양의 일로 왔습니다.”


유코? 유코가 왜요? 뭘 잘못했나요?


“무슨 일 있나요? 유코가 뭐 사고쳤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사실은 호리 유코 양이 이번에 회사에서 주관하는 리얼리티를 찍게 되었는데, 그 프로그램의 나레이션을 맡아주셨으면 해서 말입니다.”
“전 민간인인데요? 할 거면 전문 성우를 쓰시는 게.”
“원래는 그 말씀대로 할 예정이었으나, 호리 유코 양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습니다. 언니 분께서 목소리가 좋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유코 얘가 진짜, 사람 부끄럽게.



“그런가요. 프로듀서님이 들으시기에, 제 목소리가 좋은 편인가요?”
“음, 외람된 주관으로 말씀드리자면, 목소리에서 고고한 느낌이 강하게 묻어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이런 목소리로 하는 나레이션이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어울릴지, 잘 모르겠네요.”
“호리 유코 양께서 직접 추천하셨기에, 저는 그럴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긴, 유코는 예전부터 은근히 감이 좋았습니다. 그렇기에 유코의 선택이 마냥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죠.
유코의 ‘사이킥한’ 선택을, 한번 정도는 믿어 봐도 괜찮겠군요.



그나저나 이 회사, 낙하산 인사라는 것에 대해 너무 관대한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돌들이 자기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바로 바로 취직되었단 얘기가 있었는데요.
그 중 한 명은, 그나마 면접이라도 보고 들어왔으니 조금 낫지만, 또 다른 한명은 아이돌이 프로듀서한테 청탁해 면접도 안 보고 바로 보조 P로 취직, 그것도 몇 달 안 지나서 정식 담당 P가 되었다더군요.


지금 저의 경우에도, 되는 것이 프로듀서가 아닐 뿐이지 사실상 낙하산 인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일수록 그런 악습이 뿌리 뽑혀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더욱 권장되는군요.
미시로 프로덕션 이대로 괜찮은 건가요...나중에 유코가 피라도 보게 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여하튼 스카웃 되자마자 바로 프로덕션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들은 충격적인 소식.


“언니! 왔어? 이제 출발하자!”
“출발? 웬 출발? 어디로?”
“에? 얘기 못 들었어? 언니도 같이 사이킥 리얼리티 찍는 거야!”


...?!?!
ㅁ...뭐라고?! 나도 같이 하는 거라고?!
아니 이봐요 프로듀서.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어...호리 유코 양, 언니 분은 나레이션을 맡아주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원래는 그랬는데, 생각해보니까 언니도 같이 하면 사이킥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어차피 정해진 대본 같은 것도 없으니 괜찮잖아요!”


...아이고, 유코야.
벌써부터 피곤해지네요. 천당이 눈 앞에 보이는 느낌입니다.


“언니! 사이킥 파이팅하자! 사이킥~파이팅! 므므믓~사이킥 기력 충전!”


...사이킥...에휴.
그냥 체념해버렸습니다. 차라리 그러는 게 조금이나마 속 편해요.




그날부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동안 메챠쿠챠 유코에게 휘둘리고 끌려다녔습니다.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눈물 또르륵, 하는 말이 뭔지 이해가 가더군요.
이걸 촬영하는 나날들이 제 멘탈을 승천시키다 못해 해탈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 나레이션 녹음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전혀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웬만한 보케에는 여유롭게 츳코미도 걸 수 있었고요.
사이킥 멘탈강화에요...아니 내가 무슨 말을. 이러니까 제가 마치 유코처럼 머리가 비워진 바보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유코가 제 동생이기도 해서 그런지 사랑스러울 때도 있더군요.


예를 들어서


잘 때, 자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았어요.
무대에서 노래할 때, 역시 괜히 아이돌을 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죠.
그리고 웃을 때, 제 동생은 뭐니뭐니해도 미소가 정말로 사랑스러워요.




방송이 나가고 나서, 주변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생겼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 같은 게 있다면,


“호리 유코의 언니 분 맞으시죠? 대박! 보기엔 안 닮았는데!”


정도일까요.


옛날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안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조금 화가 납니다.
아무리 안 닮았어도 그렇지, 그걸 면전에 대고 얘기하는 건 실례잖습니까?
옛날에야 정말 가끔 듣고, 또 서로 처음 보니까 그냥 넘어갔지만, 이렇게 자주 듣게 되면 이젠 좀 기분 나쁠 수밖에 없네요.




시간도 3월에 접어들고 새로운 학기를 준비할 시즌이 되었습니다.
저는 수강신청을 해두었던 과목들을 예습하며 공부했었고, 그러느라 시간은 또 흘러갔습니다.
그동안은 유코 팬질을 거의 못 했네요.



눈을 떠보니 시간은 어느새 3월 6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1주일 후면 유코의 생일이네요.
케이크도 준비할 거고, 줄 선물도 미리 정해놓았습니다.


다만 이걸 어떻게 전해줄지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에 빠졌습니다.
제가 알기로, 유코는 그날 오후에 로케가 있고, 그러면 늦은 저녁에나 기숙사로 돌아갈 겁니다.
기숙사엔 못 들어가니 전해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네요.
...그래도 오전엔 대기하기 위해 사무소에 있으려나.


그리고, 어떻게 전해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일인데 선물을 그냥 딱 주기만 하고 가버리면 별로 감흥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선물을 줘도 뭔가 좀 특별한 방법으로 주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전에 유코가 말하기를, 우리 아버지는 사이키커였는데 자신에게 그 사이킥 파워가 유전되었다고 했었죠.
그것 때문에 아버지는 사이킥 파워를 잃게 되었다고 했고요.


굉장히 뜬금없이 떠오른 것이지만, 왠지 연이어서 그런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유코 자신에게 아버지의 ‘사이킥 파워’가 유전되었다면, 언니인 나도 어느 정도는 받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묘하게 저도 ‘사이킥 파워’를 갖고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하게 되네요.
옛날 같았으면 이런 건 바보 동생의 주접떨기라고 생각했을 텐데, 오늘은 왠지 ‘사이킥 파워’가 크게 와닿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는 내심 ‘사이킥 파워’를 믿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날부터, 저는 인터넷에서 초능력의 종류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동생이 하는 것처럼 수련을 개시해보았습니다.
물론 유코처럼 숟가락 들고 므므믓이라든가 하진 않지만 말이죠.
...이러니까 저도 바보되는 느낌입니다. 누가 유코네 언니 아니랄까봐 자매가 쌍으로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단 소리 듣기 딱 좋겠네요.


그렇게 수련하고 나니까 뭔가 발전이 있는 듯 합니다.
발전이라고 해도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펙트 화려하게 뭔가 되는 건 아닙니다만, 최소한 물건이 적당한 속도록 빙글빙글 돌아가게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뭐, 이것만 해도 이미 유코의 수준을 뛰어넘은 거지만요.


솔직히 말해서, 이게 되는 걸 본 순간 기절초풍할 뻔했습니다.


“유코가 말한 ‘사이킥 파워’가 진짜 있는 거였구나!”


유코 본인이 아니라 언니인 제가 각성(?)한 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 어쨌거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가지 초능력 같은 건 믿지 않았는데, 이젠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런 기적(?)을 보고 나니, 왠지 다른 능력에도 관심이 생겼고,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지금 왠지 유코처럼 정신줄 놓는 기분입니다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 ‘다른 것’을 알아내는 데는 하루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전날의 ‘사이킥 파워’를 잊어버린 채 점심식사를 한 뒤,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며 중얼거렸습니다.


“지금 유코는 뭐하고 있으려나...”


그러자, 놀랍게도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는데, 그 환영 속의 유코는 연습실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안무를 보아하니 ‘서머카니’네요. 여름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렇게 연습을 하는데, 유코는 돌연 발목이 꺾여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한술 더 떠서, 곁에 두었던 생수통의 뚜껑에 무릎이 긁혀서 까졌고요.


“아 안 돼! 아아...”


끔찍함에 눈을 질끈 감자 환영은 지워졌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어요.


“뭐였을까, 그 환상...분명 꿈을 꾼 건 아닐텐데...”


그러자, 문득 어제 본 초능력 중 대상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투영하는 「현재시」라고 하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제가 방금가지 보았던 환상도 아마 현재시가 아니었을까요.


동시에 어제 해냈었던 염동력(?)도 생각났습니다. 이틀 만에 초능력을 2개나 각성(?)했네요.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렇긴 한데 말이죠...아무래도 진짜 사이키커는 유코가 아니라 저인 것 같습니다.



하여튼 그건 그렇고, 이제 선물을 결정해야겠습니다. 뭘로 주는 게 좋을까요.
정해놓았다고 말하긴 했지만, 포괄적인 부류에서 정했던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또한 케이크도 주겠다는 생각만 했고 정확히 어떤 맛으로 할지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요.




결국 다음날 아침 10시 반쯤 되는 시간에, 도쿄 시내에 가서 물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중 한 악세사리 가게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는 마침 해리포터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더라고요.
팔찌나 손목시계 같은 걸 선물하려는 생각이 있기도 했고, 또 이런 콜라보를 하니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유코는 슬리데린을 좋아합니다. 제 생각에도 유코는 거기가 제일 잘 어울려요.



-띠링-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어서 오세요, 고갱님! 무엇을 찾으시나요?”
“슬리데린 악세사리를 좀 보고 싶어요. 곧 동생 생일인데, 생일선물로 주려고요.”


점원의 인도를 받아 가게 된 코너에 있는 슬리데린들은, 하나같이 유코가 좋아할만한 것들이어서, 무엇을 주면 좋을지 한참 고민했습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고른 것은 미산가 느낌이 나는 초록 팔찌였습니다.
가격도 괜찮고, 디자인도 예쁘고,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은, 적당한 무게감이 있는 그런 팔찌.


“이걸로 주세요.”
“네, 고갱님. 550엔입니다.”


조금 비쌀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돈을 지불한 뒤, 가게를 나왔습니다.



케이크도 좀 볼 목적에 빵집으로 향하는데, 근처에 커다란 신발 전문 아울렛이 보였습니다.


“신발도 좀 살까...”


아이돌 특성상, 줄기차게 뛰어다니고 그러느라 신발이 빨리 망가지고 닮는다, 고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이유는, 회사가 대량 구매한다고 싼 걸 샀기 때문이고요.
거기다가 망가진 신발 수선한다고 수선비가 포함되면, 드는 돈이 얼마입니까?
아무리 초거대 기업 미시로 프로덕션이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 3년만 하면 망할 겁니다. 제가 보기엔 그래요.


하여튼, 그래서 저는 좀 비싸더라도 내구성 튼튼한 신발을 사줄 계획이 다 있습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죠.



-띠로리로리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장대하게 진열되어 있는 신발들이 보였고, 그것들을 신어보고 구매하려 줄을 선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사하는 점원을 뒤로 하고서 유코에게 사줄 운동화를 고르러 갔습니다.
기꺼이 비싼 신발을 사주겠다고는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비싼 가격이 적힌 가격표를 보고 나니 눈앞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어요.


‘대형마트라 그런가, 하나같이 내 지갑 다이어트 시키는데 특효약들뿐이네.’


3980엔, 4000엔, 5500엔, 6490엔, 심지어 7280엔대의 가격까지...
물론 유코를 위해서라면 아깝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비싼 걸 보면 눈알 튀어나오기 일보 직전인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결국 눈 질끈 감고, 유코를 위해 지갑을 비우기로 했습니다.
가격 같은 거 그냥 깔끔하게 무시해버리고, 예쁘고 편리한 신발을 찾아내기로 결심했어요.



우선은, 유코에게 필요한 기능이 무엇이냐, 생각해 본 결과,


1.격한 안무의 스텝을 밟아도 발바닥이 아프지 않고,
2.발이 조이면 불편하니 조이지 않고-이건 한 사이즈 큰 걸 사면 해결되더라고요.
3.유코 표현대로 ‘사이킥한’ 디자인이 되어 있는,


그런 신발을, 저는 사려고 합니다.
그런 신발이 어디 없을까 이리 다니고 저리 돌아보며 두루 찾아다녔습니다.



한참을 찾아다니고 또 둘러본 결과, 괜찮은 신발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유코 펜라이트 색깔을 베이스로 하고, 그보다 조금 더 진한 색의 줄무늬가 있는, 거기다 키높이도 대략 5cm 정도 붙은 그런 운동화입니다.
점원 분께 부탁드려서 유코 발 사이즈에 맞는-유코 발 사이즈가 250mm이니 255mm를 샀습니다-신발을 구매할 수 있었어요.


이제 남은 일은 케이크를 사는 건데, 벌써 살 필요는 없겠죠.
D-1, 그러니까 12일에 사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포장지를 사온 다음, 집에 도착하자마자 포장을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포장을 하고는 있는데, 왠지 잘 안 되는 느낌이네요. 전 이런 쪽엔 별로 소질이 없나 봐요.
메챠쿠챠 포장을 끝내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습니다.


유코의 생일이 되려면 아직 나흘은 더 남았는데도 왜 벌써부터 이렇게 열을 올리냐는 질문을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모르겠어요. 다만 제 동생의 생일이란 걸 생각하니까 일찍부터 몸이 움직이게 되네요.
게다가, 조금 옛날에, 일을 미루다가 크게 손해 봤던 기억도 있는지라, 요즘은 어떤 일이든 일찍일찍 처리하곤 해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사이킥 파워’ 연마에 힘썼습니다.
제가 이 바보같아 보이는 일을 하는 이유는, 유코에게 선물들을 전달할 때, 뭔가 임팩트가 있었으면 하는 까닭입니다.
사이키커의 언니가 보여주는 레알 사이킥 파워, 기대되네요.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 대망의 D-DAY, 3월 13일이 왔습니다.
전날(마지막 남은 돈을 털어) 사온 케이크와 포장한 선물들을 들고 시부야의 미시로 프로덕션으로 향했어요.
3번째로 방문하는, 사적으로는 2번째인 미시로 프로덕션이네요.



프로덕션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현재시를 발동시켜 유코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았어요.
음, 이제 막 씻은 참인지 머리에 물기가 묻어있네요.


아무래도 조금 이따가 올라가야겠어요.



1층 로비의 카페에 들러서, 음료 한잔을 마시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엔 다른 아이돌들도 많이 있는데, 다행히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네요. 그럴 만한 사람도 없고요.
입으론 음료를 마시면서, 눈으로는 끊임없이 현재시를 발동시켜 유코의 행방을 쫒고 있는 중입니다.




카페를 나와 엘리베이터를 잡은 건 그로부터 20분 후였습니다.
현재시로 본 유코는 사무소로 막 들어간 참이었고, 미리 준비했던 건지 다른 아이돌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는 장면도 보였어요.
유코, 정말 좋은 동료들을 둔 것 같아서 굉장히 부럽네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4층의 사무소로 도착했습니다.
제가 서프라이즈로 왔다는 걸 알면 유코는 어떤 반응일까요.
최소한 문제가 되진 않겠죠? 문제없어야 할 텐데...
그냥 연락하고 갈 걸 그랬다는 생각이 조금 들긴 했습니다.



-끼익-


케이크와 선물들을 문 앞에 둔 채, 사무소의 문을 열었습니다.
걸어 들어가면서, 폭죽의 종잇조각이 아직 바닥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어? 누구세요?”
“민간인 아냐?”
“민간인은 여기 못 들어오시는데.”
“저기, 누구, 세요?”


주변에서 저를 보고 이런저런 말들이 들려와요.
당연하다면 당연하죠. 저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테니.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유코에게로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유코도 저를 보았습니다.


“안녕, 유코.”
“어! 여긴 웬일이야?”
“생일 축하해, 유코. 이거 선물이야.”


말하며 팔을 폈어요.
그러자, 저어기 문 앞에 있던 케이크가 ‘사이킥 염동력’으로 제 손으로 날아왔고, 동시에 포장된 선물들도 바닥에서 튀어올랐습니다.


“?!?! 우와 대박!!”
“어떻게 한 거예요?!”
“뭐야! 사이키커였어?! 나처럼 사이키커였던 거야??!”


미소를 지었습니다.


“유코, 예전에 네가 그런 말 했었지. 네 사이킥 파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그래서 네가 사이키커인 거라고. 그거,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조금이나마 받았어.”
“사이킥하네! 그거 어떻게 했는지 알려주면 안 돼?!”
“글쎄다~나도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어.”



얘기를 주고받는데, 사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제게 물었습니다.


“저기, 대화 중에 죄송한데, 누구신가요?”
“저는 호리 유코의 친언니, 호리 스미레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변에서 놀람과 함께 진짜냐는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별로 닮진 않았죠?”
“실례긴 하지만 안 닮으신 것 같아요! 진짜 친언니 맞으세요?”
“맞아요! 저희 언니 맞답니다!”


유코가 거들었습니다. 그러자 더욱 놀라네요.
이 사무소에 지금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도 탄성이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유코,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고마워, 언니...내가 갖고 싶었던 것들만 사왔네. 사이킥 고마워...!”

어느새 포장을 뜯어본 모양이에요.


“케이크는 친구들이랑 다 같이 나눠먹어. 그리고 한 가지 더 줄 게 있어.”
“또 있어? 그게 뭔데?”
“그건 말이야...”


말하고, 유코를 껴안았습니다.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저의 어떤 기운이 유코에게로 옮겨지는 느낌이에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이건 분명히...저보다는 유코에게 더욱 잘 어울리는 것이겠죠.


“언니...뭔가, 사이킥한 게 나한테도 들어오는 느낌이야...”


유코도 느껴지나 보네요.
그래. 이건 널 위한 내 마지막 선물이야.



잠시 후 포옹을 풀었습니다.


“어때, 유코? 느껴졌어?”
“왠지, 사이킥한 느낌이었어! 이거 뭐야?”
“그거, 내 사이킥 파워야. 언니는 이제 필요 없으니 유코 줄게.”
“에?! 진짜?! 진짜 사이킥 파워야?! 그런 거 나 줘도 돼?”
“나한테 그게 있어봤자 어디에 쓰겠니. 진짜 사이키커인 유코가 갖고 있는 게 더 어울려.”
“고마워, 사이킥 고마워, 언니!”


말하고, 유코는 다시 제게 안겼습니다.
그 포옹 속에서 느껴졌어요. 유코의 심장이, 넘치는 사이킥 파워로 힘차게 뛰는 것을요.
그렇기에, 저는 유코를 언제나 사랑합니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가끔 본능적인 의식으로 인해 다투곤 하지만, 얼마 안가 화해하곤 했어요.
그때마다 저는 유코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죠. 유코도 저에게 그렇게 말했고요.
그 마음이 언제나 변함없었기에, 오늘도 저는 유코를 사랑합니다.



“유코, 다리는 어때? 발목이 꺾이고 생수 뚜껑에 긁혔잖아.”
“에?!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무한테도 말 안했었는데?!”
“후훗, 사이킥 파워로 알아낸 거니까. 사이킥 파워는 만능이잖아?”
“언니...! 맞아! 사이킥 파워는 사이킥하게 만능이야!


저희 참 죽이 잘 맞는 자매네요.



“앞으로도 사이킥 열심히 해야 해. 언니가 언제나 지켜보고 있을 거야.”
“응, 기대해! 사이킥 파워로 모두를 사이킥 매료시켜버릴 거니까!”


역시 제 동생 유코다운 각오에요. 사이킥하잖아요?



그 말을 끝으로, 저는 유코의 사이킥한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유코에게 모든 사이킥 파워를 전부 넘겨주었기에,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현재시도, 염동력도 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유코가 더욱 사이킥한 아이돌이 된다면, 제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사이킥 페서네이트로 더욱 많은 팬들이 생겨날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한다구요.




집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계속 웃음이 나왔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운 동생이라서,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사이킥한 유코여서.
그래서, 저는 계속, 하루 종일, 그렇게 웃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가지뿐입니다.
유코, 많이 사랑해주세요. 제 동생 유코로서가 아닌, 미소녀 에스퍼 사이키커 아이돌 호리 유코를 많이많이 사랑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유코는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아이니까요.
옛날엔 몰랐는데, 이제는 알았어요. 유코는 이 세상에서 제일 사이킥하고, 예쁘고, 귀여운 아이라는 걸요.


유코야, 생일 축하해. HAPPY BIRTHDAY!
언니가, 언제나 사랑하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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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 유코 생일 축하해!!!!!! 프로듀서도, 언니도 윳코의 사이킥 파워 포텐을 언제나 기대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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