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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2, 2020 17:10에 작성됨.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아마 신데렐라 프로젝트가 정해진 결말이 있고 거기서 끝나는 이야기였다면, 그 이야기는 아마 시작부터 끝까지 극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평범한 boy meets girl 클리셰에서 시작해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극적인 마무리까지.


그 모든 과정에서 그녀는 참 아름다웠다. 현재는 346에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그녀지만, 그는 그녀의 사진을 전부 지워버리고, 방에는 고독한 남자의 체취만이 남게 되어버렸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은 사라지지가 않았다.


신데렐라 프로젝트. 어디까지나 프로젝트였지.


신데렐라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 모든 멤버들의 행방은 순조로워 보였다. 란코와 린은 신데렐라 걸에 등극하는 쾌거를 누렸고, 미시로 상무. 지금은 전무인 그녀가 새로 선보인 프로젝트였던 프로젝트 크로네의 멤버들도 신데렐라 프로젝트의 멤버들과 잘 어울렸다. 내적인 관계 부분에 있어서도, 외적인 성과 부분에 있어서도.


그렇게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기쁜 일이 생기고 나면, 꼭 인연이 끊기고, 슬픈 일이 생기는 법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서로 일선을 넘는 성격도 아니었고, 넘으면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안 그와 그녀의 관계는 둘 다 만나면 얼굴을 붉히고 손을 맞잡고 마는 선에서 끝나고 말았다.


그가 갑작스러운 부서이동을 통보받은 것 몇달 전이었다. 그렇게 몇달동안 잡은 손이 마침내 붙으려고 할 적이었다.


토사구팽이라거나 보복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 부서는 프로듀서 일을 하기 전에 그가 원래 일하던 부서였고, 오히려 아이돌 부서에서 세운 공을 높이 사서 그를 더 높은 직급에 앉히겠다고 말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적 갑작스럽게 그를 부른 미시로 전무는, 그의 의지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를 대신할 프로듀서는 이미 스카웃되었다고 말했다. 그보다 더 프로듀서로 일한 기간이 기니 일처리에 있어선 걱정 안해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회사에서 처음 시도한 부문에서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느라 어려운 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괄목할 성과를 낸 것에 대해서 회사는 당신을 눈여겨볼 인재로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지랄맞도록 기쁘기가 짝이 없는 칭찬이었다.


다음 날. 그녀를 만난 그는 더이상 손을 더이상 잡을 수가 없었다. 왜 손을 잡지 않느냐는 그녀의 물음에도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전무는 다음주쯤에 아이돌부서에 전체적으로 이를 통보할 생각이라고 했었지. 그때까지만이라도, 그는 며칠간이나마 그녀에게 붙어있고 싶다는 미련을 버리기 싫었다.


정전기가 일어나면 깃털같은게 달라붙다가 훅 하고 불기만 해도 곹잘 떨어지고 말지. 내가 그저 훅하고 불면 사라질 깃털이었을 뿐이고, 우리의 만남은 잠시 찌릿하고 마는 정전기같은 만남이었다니.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데, 그는 스스로가 당사자인데도 상황이 참 웃기기가 짝이 없었다. 전무가 통보를 하는 날이 오기 전까지 그는 집에만 가면 홀로 키득키득 웃어댔었다.


전무가 잔혹한 사실을 통보한 당일. 그녀는 그가 퇴근한 후. 그의 집으로 바로 달려왔다. 그녀는 문을 5분동안 안 열어주다가 돌아가려는 듯한 발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문을 열어준 그를 보자마자 말했다. 왜 말하지 않았나고.


왜 말하지 않았냐고. 말하면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것 아니냐고. 왜 그랬냐고. 왜. 대체 왜.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으며, 손에 휘감겨오는 고립의 실마리를 느끼며, 그녀는 말했다.


그의 대답은 단 한 마디였다. 말하기 싫었어.


전후사정따윈 묻지 않고, 앞으로의 행방에 대해선 묻지 않으며, 그저 그 이유만을 물어본 그녀의 똑같은 질문이 다시 한번, 아니, 몇 십분이고 반복될 때까지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그녀의 기나긴 질문에 비하면 그의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그냥. 그냥 너랑 헤어진다고 말하기 싫었어. 아무런 일도 없는 것 처럼 있고 싶었어. 그냥 평범하게 있고 싶었어. 난 못된 놈이지. 그치.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보고 못된 놈이라고 욕하지 못했다. 스스로를 탓하지도 않았다. 내가 너보다 힘들다 니가 나보다 힘들다 할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둘 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녀와의 만남을 뒤로 한 채. 집에 cd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피아노인지 기타인지 베이스인지 드럼인지... 아무튼 적당한 반주가 나오면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 위에 깔린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그녀는 말했다. 넥타이랑 정장은 다 팔아버리고 나랑 함께 살자.


그는 말했다. 내가? 왜?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기엔 내가 너무나도 작은 존재라고, 그는 말했다. 잘 생각하라고. 나 같은 것 때문에 인생을 망치면 안 된다고.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고. 너는 프로라고. 너도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프로. 프로는 참으로 막중한 수식어다. 산이란 것은 꼭대기로 갈 수록 그 면적이 좁아진다. 그만큼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도 적어질 수밖엔 없다.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녀 스스로였기에, 그의 말을 세차게 뿌리치고 싶었던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자리에서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집에서 그녀의 집까지 쭉 이어지는 눈물을. 다음 날 햇살이 떠오르면 곧 그 햇살에 증발되어 사라지고 말 눈물을.


해가 다 진 오후. 그는 집에 도착하고 난 후에는 시계를 보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다. 대충 밖이 얼마나 밝은지만으로 시간을 어림짐작하며, 그는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래. 신데렐라 프로젝트. 신데렐라 프로젝트...


그는 볼펜 하나를 잡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초상화를 그려본다. 그녀의 얼굴과 웃음을 떠올리며, 헤어스타일과 머리색을 떠올리며. 하하하. 반 고흐 납셨네. 이제 귀만 자르면 되겠어. 아 맞다. 이 그림은 존나 병신같지? 그럼 귀를 자른다면 그럼도 못 그리고 귀도 잘린 병신일 뿐이네? 하하하.


하하하하. 얼굴을 잔뜩 찡그린 그는 속으로 웃으면서 바로 그림을 찢어버리고 냉장고에서 딸기우유 한 팩을 꺼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외로움엔 술도 소용이 없었고. 담배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너무나도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은 오히려 속이 뒤틀릴 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단 것 뿐이었다.


신데렐라에선 24시에 마법이 풀렸지. 마법이 풀리는 시간이 다 지나면 마법사는 할 게 없다. 달콤한 첨가물이 잔뜩 함유된 우유를 입에 머금고 '마법이 더이상 소용이 없다면 마법사는 뭐란 말인가?'같은 것을 몇번이고 잘근잘근 씹어대며 할 게 없는 시간을 다 깬 채로 허비해버리면서 그는 다음 하루를 보낼 준비를 한다. 또 다시.


그는 한 여자의 상을 떠올린다. 지금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 지에 대한 관심은 딱히 생기지 않는다. 일개 월급쟁이보다 나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겠지.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고 난 뒤에는 왕자님과 사귀지. 마법사는 이야기에 나오지도 않으니까. 곧 넌 더 나은 사람과 손을 잡고 달리고 있겠지.


또 혼자야. 또 혼자야. 혼자야... 그는 세 마디를 되뇌인다.


난 운이 좋아. 난 운이 좋다고. 그 행운이 끝날 것 같아. 날 죽여줘. 너의 그 사랑으로, 날 죽여줘.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 날 꺼내줘. 호수 속에서 날 끌어내줘. 왜냐면, 난 너의 슈퍼히어로니까. 우린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어. 그가 참 좋아하는 라디오헤드 노래의 가사였다.


그 가사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못을 박듯 꼽고, 그가 지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곤 창 밖 말고는 없었다. 그것이 소용없는 짓거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몇달에 걸쳐 서서히 그를 발가락 끝까지 좀먹어버린 고립감과 괴리감은 참 짙게도 반짝이는 클럽의 LED 간판과 술에 취해서 행복하게 비틀거리다 구토하는 사람들을 바라봐봤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별 후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녀는 346을 떠나서 다른 기획사와 계약을 하기로 했다. 다른 프로듀서가 그녀를 컨택했다고 하고, 거기서 제시한 금액과 조건이 346 측에서도 이해가 갈 만큼 좋은 조건이었기에, 그녀는 떠나게 되었다.


확실히, 생기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입지도 좋지 않았던 부서와, 프로듀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미숙했던 그에 비하면. 콘크리트 같은 백지들을 다루는 부서와, 이제는 외부인이라 더이상 만날 일도 없어진 그에 비하면, 그곳은 확실히 더 나은 곳일 것이다.


너는, 확실하게, 나보다 더 나은 남자랑 함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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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출처: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alk&wr_id=19299

맥 드마르코 듣고 삘받아서 빨리빨리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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