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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 시리즈)15.임유진-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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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9, 2020 22:21에 작성됨.

안녕, 나 유진이야. 기억하고 있어?

아무래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나랑, 해나 언니랑 주니 언니가 남아있다고 믿어.



지금 나는 아이돌을 그만두고 일반인으로 살고 있어.

옛날처럼 아이돌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지만, 다시는 그럴 수가 없겠지.

한국에선 왠지 데뷔하고 싶은 마음이 들질 않고, 일본은 우릴 버렸으니까.



그런 일본에, 난 다시 오게 되었어.

예전에 스카우트 되었을 때, 그때 나는 유학 중이었던 거 기억해?

아이돌 활동 하느라 잠깐 휴학을 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복학해서 학교 다니고 있어. 절대로 꿇은 건 아니야.



통학 때문에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지나가는 길목에 미시로 프로덕션이 있거든.

그걸 보노라면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 기억이 다 떠올라.

그날, 계약 해지 통보가 날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해나 언니는, 주니 언니는, 지금도 저기에 있었겠지.


얘기는 들었어. 얼마 전에 새로운 애들이 들어왔다며?

그 중에 한 명은, 실루엣이 나와 매우 닮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다시 복귀하는 줄 알았단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

그래, 진짜 나였다면 좋지 않았을까. 다시 한 번 무대에 설 수 있었을 테니.


미련이 남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 남지 않을 수 없었던 추억이야.

미시로 아이돌로서 활동했던 2년, 단 2년이었지만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어.

이제 다신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 되었고, 또 다시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하지도 않아.


하여튼 지나가는 길목에서 보이는 미시로 프로덕션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이 들게 해.

그래서 때로는 그 곳을 애써 외면하곤 하지.

외면하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은 여전히 쑤셔와. 기억이란 그런 건가봐. 기억할 수 있어서 더 아픈 건가 봐.




그로부터 몇 날이 흐르고, 하교해서 집으로 돌아온 때였어.

이제 조금 있으면 종강이 코앞이야.

시험은 이제 한 과목밖에 안 남았는데, 꽤 쉬운 과목이라 큰 노력 안 해도 돼.



심심해서 TV를 켰는데, 우연찮게 예능이 방영되고 있었어.

아이돌 두 명이 나왔는데, 한 명은 코시미즈 사치코. 얘기를 들어보니 쟨 이제 베어그릴스 뺨싸다구 갈기는 생존전문가가 됐다는데, 사실인가 봐. 저기서 밀웜 구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먹고 있잖아. 저런 걸 우예 먹노?!


또 한명은, 신입 중 한 명이라는 유메미 리아무, A.K.A. 타락 유진이.

이렇게 보니까 묘하게 날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

데뷔하자마자 총선 3위에 랭크하다니,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인기가 많긴 한가봐. 그 때 본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하여튼 둘이 여기 예능에 나와서 벌칙으로 벌레튀김을 먹게 됐어.

사치코는, 자기가 더 징그러운 걸 먹겠다고 밀웜을 선택했는데, 그 논리면 차라리 그걸 리아무한테 줘. 리아무는 지금 귀뚜라미 먹게 생겼다고.

태국산 수제 벌레튀김이라는데, 난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모르겠어.


그네들의 저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왠지 씁쓸했어.

나도 저기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저기서 저렇게 튀긴 곤충을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운명이 이렇게 되니 왠지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지’ 하고 체념하게 돼.




예능이 끝나고, 딱히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안 해서 TV를 껐어.

그렇게 되니 시간은 벌써 저녁이 되었고, 이제 식사를 해야 해.

이제 슬슬 반찬이 떨어져가. 오늘까지만 이렇게 먹고, 내일 학교 끝난 뒤 장을 봐야겠네...



밥을 담고, 국을 뜨고, 반찬을 꺼내 식탁을 차리던 중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어.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웬 택배? 주문한 거 없는데.


뜬금없이 배달된 택배상자를 열어보니, 이상하게 생긴 과일 같은게 들어있었어.

쪽지도 같이 있었는데, 손글씨임에도 굉장히 이쁜 거 있지. 나도 이렇게 글씨 잘 쓰고 싶다.

하여튼,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


「To.임유진 씨.

이 열매는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드시면 그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P.S. 열매가 맛이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라는데?

기억 조작이라니 말도 안 돼. 그게 어떻게 가능해? 게다가 맛도 없다니 최악이잖아.

근데 한국 분께서 주신 건가? 한국어로 쓰여 있네.


어쨌든 이 과일은 후식으로 먹고, 일단은 밥부터 먹자.

아까도 말했지만, 이제 슬슬 반찬이 다 떨어져 가니까 내일 시험 끝나고 장을 봐야...

아니다, 밥 다 먹고 바로 가자. 쇠뿔도 단 김에 빼랬어. 어차피 오늘 시간도 남으니까.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한 다음, 이 과일을 한 입 베어 물었어.

진짜로 맛이 없네. 이게 대체 무슨 맛이야?

한 입 겨우 삼키고 나니 도저히 더 못 먹겠어서 그대로 내던지듯 내려놓았어.

혹시 이거 혐한의 소행인걸까? 그렇다면 보기 좋게 당했는걸.




입을 헹궈내고 마트로 출발했어.

아직도 입에서 그 열매의 구린 미감이 맴돌아.


“으우욱...”


열매가 맛없다는 건 정말 팩트야.

하지만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단 건 거짓말이겠지.

어디 사는 혐한 사기꾼의 소행일 거야, 분명.


아니면 내가 틀린 걸지도. 이게 사기가 아닐 수도 있어.

만약 사기였다면 맛없다는 말도 굳이 쓰지 않았을 테니까.

그게 진짜인 거라면, 한 번 믿어도 되는 걸까.


내 기억들 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기억을 떠올려보았어.

계약해지 통보서가 날아오고 나서, 집에 돌아가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

그것이 내게 있어 가장 괴로웠던 기억이야.


그 기억을 떠올리니, 왠지 거짓말 같이 그때의 장면이 실제처럼 눈앞에 보였는데, 그때의 나는 울고 있었지.

여기저기에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서, 울고 있던 내가 울지 않게 바꾸었어.

슬플 때 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땐 너무 꼴사납게 울어서...


‘잊어버리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듯 읆조렸어.

밑져야 본전이지만, 그래도 이루어진다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어라?

순간 앞이 멍했어. 뭔가 변했나?

정신차려보니, 마트 앞에 도착해 있었어.

생각에 잠기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네.



마트에 들어가 여러 반찬들을 쓸어 담았어.

내일은 시험도 끝나니 닭을 구워야겠닭.

종강기념 치킨 빠뤼닭!



그 재료들을 모두 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어.

뜬금없지만 말이야, 입사시기가 2014년이면 어지간한 애들보다도 선배잖아.

애니메이션도 출연시켜줬으면 좀 좋아? 생각해보니 꽤 아쉽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어.


“임유진?”


누군가 해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아, 오랜만이야, 프로듀서.”


그것도 내 담당(이었던) 프로듀서였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었어. 이렇게라도 만나니 좋네.”

“그러게. 아, 맞아, 유진아.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정확히는 추천인데.”


추천? 뭔데?


“내일, 시간 돼?”

“몇시 쯤에?”

“되도록이면 일찍이었으면 해.”

“내일 시험 끝나면 11시 쯤 될 것 같은데,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라, 프로덕션 사무소로 와줬으면 해서.”


...에? 프로덕션으로?

이미 아이돌 생명 끝난 현직 일반인이 거긴 왜?


“갑자기 왜?”

“사실은, 아까 오후 쯤에 회의가 있었어. 다름이 아니라 너희 중 한명을 사무소로 다시 데려오면 어떻겠느냐고.”


에?


“그 중에서 네가 선정되었고, 상황에 따라서 다시 계약을 맺는 쪽으로 진행되었어.”

“그...그 말은...!”

“유진아, 넌 내일부터 다시 아이돌이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어.

아이돌이라니, 내가 다시 복귀라니!

눈물이 계속 흘렀고, 마음이 벅차올랐어.

내게도, 이런 날이 다시 올 줄이야!



집으로 돌아가서도 이 마음이 주체되질 않았어.

아이돌 복귀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JUMO! 샷다 내려! 나 내일 시험 때려칠 거야!




정말로 다음 날 시험을 대충 본 뒤, 곧바로 프로덕션으로 달려갔어.

달려가서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나를 환영하는 동료 아이돌들이었어.


“유진 쨩! 어서 와!”

“오랜만이야!”

“모두들...안녕! 보고 싶었어!”


그러자, 모두의 기억이 스쳐지나가듯 보였고, 그 속에 있었던 내가 보였어.

진짜로 기억 컨트롤이 가능한건가 봐! 모두의 기억이 보여!

나에 대해 좋은 기억들로 가득한 것 같아.



고개를 돌리니, 저 쪽에 리아무가 보였어.


“아, 당신이 리아무 씨!”

“당신이 임유진? 야무하네! 나랑 닮긴 했어!”


당신이 바로, 타락한 임유진이라 불리는 유메미 리아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왠지 더 닮은 것 같네.

...근데 얜 뭘 어떻게 살았길래 기억이 이따구야?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완전히 뒤죽박죽 쓰레기장이잖아.



그날부터 ‘아이돌 임유진’으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어.

임시 활동기간은 방학 동안인 2달, 그 이후의 여부에 따라 정식으로 재계약을 할 수도 있어.

그때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릴 거야! 그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임시지만 복귀했다는 소식이 올라오자, SNS는 그야말로 축제분위기로 불타올랐어.


「드디어 돌아온 거야?!」

「보고 싶었어, 유진 짱!」

「좋은 활동 기대할게!」


대체로 이런 반응이었지.

가끔 혐한들의 조롱이 있긴 했는데, 팬들이 그 즉시 다굴빵 때려서 금방 사라지기 일쑤였단 건 안 비밀.


리아무가 그걸 보더니 하는 말,


“레알 야무! 나도 이렇게 환영받고 싶어! 나도 이렇게 오구오구 받고 싶단 말야!”


...이 사람 원래 이래?

지금껏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봤지만 이런 사람은 또 처음이야.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흐르며 여러 방송에도 나가고 노래도 불렀어.

토크쇼에서 보케와 츳코미를 넘나들기도 하고, 광고도 3개 정도 찍게 됐어.

심지어 예능에서는, 리아무가 그랬던 것처럼 사치코와 함께 벌레튀김도 먹은 적 있었고.

고작 일주일만에 그 모든 게 이뤄진 거야!

보통 신인한테 이 정도의 일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내 네임밸류가 아직 건재했던 모양이야.



다음 스케줄을 이행하러 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생각나는 게 있어서 프로듀서님한테 말을 걸었어.


“프로듀서님.”

“응? 왜, 유진아?”

“아니, 좀 옛날 생각 나서.”

“옛날? 아, 5년 전에 활동하던 그 때?"

“응, 그때. 참 좋았던 시절이었지.”

“이제 그 기회가 다시 왔잖아.”

“만약에 말이지, 그 때 계약이 만료되지 않았으면, 나랑 해나 언니랑 주니 언니의 위치는 지금쯤 어디에 있었을까?”

“그러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유진이들은 유닛곡과 솔로곡이 나왔을 거고, 인기도 더욱더욱 많아졌을 거야.”

“그렇겠지.

난 말이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뭐 지금도 안 그렇다고는 못 하겠지만, 나랑 해나 언니랑 주니 언니를 잘라버린 미시로 프로덕션을 굉장히 많이 원망했어.

그나마 나는 다시 복귀할 수 있게 됐으니 사정이 조금 낫지만,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를 해나 언니랑 주니 언니는 그 때 무슨 기분이었고, 지금은 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싶어. 어쩌면 예전의 나처럼, 회사를 많이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 . .”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해나 언니와 주니 언니, 끝까지 책임져 줬으면 해, 프로듀서님. 당신이 키운 아이돌들이니까.”


원래 이 말은 호죠 카렌의 명대사지만, 나도 쓸 수 있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아.

계약만료라는 이유로 연장도 없이 내친다면, 나중에 다시 잡고 싶어도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나를 다시 데려올 수 있었던 건, 그거 참 행운이지 않아?

내가 유학도 그만뒀으면 우리 셋 중에 아무도 다시 스카웃 할 수 없었을 테니까.



“네 말이 맞아, 유진아.”


프로듀서님이 다시 입을 열었어.


“나도, 정말 책임질 수 있다면 어떻게든 책임지고 싶어. 사정만 된다면, 너뿐만 아니라 해나와 주니까지 불러서 다시 한 번 코리아나(가칭)를 결성시키고 싶다.

처음에, 너와 주니, 해나 중 누구를 재스카웃 하면 좋겠냐는 논의에 꽤 많이 고민했어. 결국 너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나는 생각하고 있었어. 너 아니라 해나나 주니를 데려오게 되었다 해도, 지금 유진이 네가 했던 말을 그들에게도 똑같이 들었을 거라고.”

“그 둘이 일본에 오면, 재스카웃 할 수 있어? 적어도 연락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데.”

“세부적인 건 회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 둘이 스카웃을 받아들인다는 전제라면 충분히 가능해.”


거절할 이유가 뭐 있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할 것 같아.

자기들을 헌신짝처럼 버린 회사가 뭐가 좋다고 돌아와 주겠어? 그리고 그 둘이 아이돌 활동에 미련이 아직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아마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둘이 돌아와 주면 고맙긴 하겠지만 거절해도 이해할 수 있겠지.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토크쇼 촬영을 속행했어.

특별한 건 없었지만,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나는 ‘전설 속의 아이돌’로 기억되고 있었다는 거야.

뭐랄까, 마치 원피스의 더글라스 불릿 수준의 전설로 평가받고 있었달까.

나 은퇴한지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내 은퇴기간보다 히다카 마이 잠정 기간이 더 길 걸.

하여튼, 그래서인지 나를 거의 우대해주는 듯한 느낌이야.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괜찮은데. 너무 우대해주면 오히려 불편하다고.


그러고 보면, 이 토크쇼, 한편으론 참 그리웠어.

내가 전성기(?) 시절에 여기 나온 적이 있는데, 그 회차가 뜻하지 않게 대박을 쳤고-그게 나 때문은 아니었겠지만-내 전성기를 대표한 방송이 되었지.

이제 그 전성기가 끝난 지 한참 뒤에 다시 나온 방송이지만, 아직도 그 기억이 새록새록해. 전성기가 다시 온 것 같달까?



촬영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PD님이 들어왔어.


“유진 양.”

“아, PD님, 무슨 일이신가요?”

“우선은 여기, 출연료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방송, 꽤나 오랜만이시죠. 예전에 하셨던 몸개그,-방송엔 안 나갔지만-이야,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 젠장. 그거.

예전에, 코끼리코를 돈 뒤에 의자에 달려가 앉는 게임을 한 적 있었는데, 그때 돌다가 출발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뒤로 자빠진 적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그거가 내 인생 최대의 흑역사야. 편집돼서 방송 안 나간 게 천만다행이지.


“그런가요? 그거 저 아닌 것 같은데요.”


이렇게 된 거, 기억을 뜯어고쳐야겠어.


“아닙니다. 분명 유진 양이었어요.”

‘떠오르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자, PD님의 5년 전 기억이 떠올랐어.

나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서, 몸개그를 한 것이 내가 아닌 같이 출연한 다른 탤런트였던 것으로 고쳤어.


“전 기억이 없는데요.”

“에...그런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이었네요. 미안해요, 유진 양.”


말하고서 PD님은 나갔고, 나도 조금 뒤에 방송국을 떠나 집으로 향했어.




돌아와서 씻은 뒤, 한번 해나 언니와 주이 언니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어.

아까 얘기했다시피, 지금 그 둘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할 수 없지.

연락처는 있는데, SNS가 다들 바뀌었어. 갱신 안 된지 3년은 더 된 것 같아.

그렇긴 해도, 연락은 한 번 해봐야지. 오랜만에 근황이라도 들어보자.



-뚜루루루-


[여보세요?]

[여보세요? 해나 언니?]

[이 목소리는, 유진이?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야, 언니! 잘 지내?]

[난 잘 지내지! 넌 어때?]

[나도 잘 지내! 지금은 일본에서 다시 아이돌 하고 있어.]

[그래? 좋겠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언니, 그때, 그러니까 5~6년 전에 활동할 때, 기분이 어땠어?]

[그때? 정말 좋았지. 비록 2년간이었지만 얼마나 좋았는데.]

[사실 내가 언니에게 그것에 대해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

[다시 아이돌 활동 해볼 생각 없냐고?]

[어떻게 알았어?]

[왠지 그럴 것 같았어.]

[그런 게 맞긴 한데, 어떻게 할래?]

[음...싫어.]

[어, 왜?]

[일단은, 이젠 미련이 없기도 하고, 그 회사는 우릴 버렸어.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러느니 안 돌아가고 말지.]

[그래...역시 해나 언니야.]

[무슨 뜻이야?]

[만약 언니가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분명 이와 같은 이유로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어.]

[짐작하고 있었단 거네.]

[아무튼, 알겠어.]

[주니에겐 물어봤어? 그러고 보니 주니 소식 못 들은지 꽤 됐네.]

[이제 물어보려고. 주니 언니라면 이 제안에 긍정적이지 않을까~그러고 보니 언니, SNS 좀 팔로우 걸어줘. 계정 옮겼어?]

[아, 맞아. 곧바로 걸게. 잊고 있었네.]

[무슨 팔로우 거는 걸 3년이나 잊고 있었을 수가...]

[아무튼, 잘 지내야 해, 유진아.]

[그래, 언니도 잘 지내고. 안녕.]


-뚝-



해나 언니와의 전화를 끝내고, 곧바로 주니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


-뚜루루루-뚜루루루-


[Hello?]

[주니 언니, 안녕. 나 유진이야.]

[아, 유진이구나. 잘 지내고 있어?]

[난 잘 지내고 있어. 언니는?]

[나도 잘 지내고 있어.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한 거야?]

[다름이 아니라, 언니에게 한가지 제안이랄까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나는 지금 일본에서 아이돌을 다시 하고 있어.]

[아, 그래. 알고 있어.]

[엥? 어떻게 아는 거야?]

[지상파 방송에서 네가 나오더라, 그거 보고 알았지.]

[그렇구나. 아무튼, 언니에게 우선 그걸 좀 물어봐야겠어. 언니도 나랑 같이 아이돌 활동 했었는데, 어땠어?]

[그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 언니한테 안 밀린다는 생각이 가득해서 좋았지. 지금은 밀리는 느낌이지만.]

[그러면, 혹시 여기 와서 다시 아이돌 할 생각 없어?]

[그러네. 사실 나도 복귀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아. 다만, 사무소는 미시로가 아니었으면 해.]

[우릴 버렸으니까?]

[그 이유지. 계약 기간 다 차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잘라버린 프로덕션이 뭐가 좋다고 복귀하겠어?]

[해나 언니랑 똑같이 말하네...]

[해나랑 연락했었어? 나도 연락 좀 하고 싶어. 요즘 해나랑 얘기를 못 나누고 있는데.]

[나한테 SNS 팔로우 해줘. 내가 해나 언니 연결시켜줄 테니까.]

[알겠어.]



주니 언니와도 전화를 끝내고 나니, 해나 언니의 팔로우와 주니 언니의 팔로우가 들어왔어.

수락해서 맞팔한 뒤, 프로듀서님에게 전화를 걸었어.


-뚜루루루-


[여보세요?]

[유진이야? 무슨 일이야?]

[내가 방금 해나 언니와 주니 언니에게 아이돌 복귀 의사를 물어보았어.]

[그래? 둘이 뭐라고 해?]

[둘의 입장은 정반대였어. 해나 언니는 복귀 의사가 없다고 했고, 주니 언니는 복귀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래? 주니는 오고 싶대?]

[그렇긴 한데, 둘의 입장이 판이해도 한 가지 공통된 부분이 있어.]

[...뭔데?]

[우릴 버린 미시로 프로덕션엔 돌아가기 싫대.]

[...그렇겠지. 어쩌면 이건 미시로 프로덕션에 주어진 인과응보야.]

[그렇게 되고 말았네.]

[알았어.]



프로듀서와의 통화까지 다 끝나고, 스스로 플래시 백을 해보았어.


‘떠오르게 하여 주옵소서.’


해나 언니와 주니 언니와 함께 했던 기억들이 계속 떠올랐어.

우리 셋의 공통된 의견은, 그때가 너무 좋았고, 또 너무 행복했다는 거야.

이제는 전부 옛날 일이 되었고, 다신 그 때처럼 셋이서 행복하게 활동할 수는 없게 되었네...

비록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행복했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눈물이 다 나네.

이런 기억, 어쩌면 없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

그럼에도 난 행복해. 좋았던 기억이었으니까.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났어.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한 달이 채 안 돼.

그 한 달 안에, 난 최선을 다해서 뛰어 모두의 기억에 나를 새겨넣을 거야.




사무소에서 스케줄 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상부 총책임자인 미시로 전무가 시찰한다고 내려왔어.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지 뭐야.


“자네는 누구지?”


5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일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네.


“나는, 임유진이야. 지난 달부터 이번 달까지 임시 복귀를 하게 되었지.”

“임시 복귀라니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전에 우리 회사 소속이기라도 했다는 건가?”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전무님? 나 여기 꽤 오래 있었는데.

미시로 애니가 시작될 때도 나는 여기 있었고, 뉴 제네레이션의 시부야 린이 신데렐라 걸이 되었을 때도 있었고, 심지어 전무님이 이 회사에 돌아왔을 때도 난 있었어.

비록 시마무라 우즈키가 신데렐라 걸이 되는 걸 보기 직전에 잠정 은퇴를 하게 되었지만, 나는 2014년부터 이 회사에 있었어. 정확히는 우리가 있었지.”

“자네는, 누구지?”


이젠, 밝혀야겠어. 내가 누구인지, 기억을 상기시켜줄게, 전무님.


“나는 한국에서 왔고, 미시로가 키웠으며, 또한 미시로에 의해 버려진, 코리안 제네레이션의 패션 타입 아이돌, 임유진이야!”


‘떠오르게 하여 주옵소서.’


플래시 백.


전무님의 기억이 이곳에 펼쳐지며, 5년 전 기억에서 나와, 해나 언니와, 주니 언니가 즐겁게 노래하는 장면이 흘러갔어. 기억 속에 있는 걸 보니 전무님도 내심 눈여겨 봤던가봐.


“큭, 이런, 자네가 그 사람이었군. 분명 계약이 만료되었을 텐데 왜 이곳에 있는 건가?”

“말이 계약 만료지, 계약 기간이 몇 달은 더 남았는데도 멋대로 잘려버렸잖아. 그 남은 기간 채우러 왔어.”



전무님은 말을 더 잇지 않고 시찰을 마친 뒤 나갔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어.

그런 나를 본 리아무가 다가와 말했어.


“유진씨! 알고 보니 대선배였어! 야무! 게다가 전무님을 논리적으로 꺾었어! 엄청 대단해!”


뭐, 글쎄. 논리적으로 꺾었다기보단, 그냥 내 주장을 말했을 뿐이지.

그리고 이어지는 리아무의 말,


“그리고 아까 전무님의 기억을 꺼낸 거 개야무! 역시 유진 씨도 능력자야?!”


그게 무슨 소리야? 웬 능력자?

그리고 나‘도’ 능력자냐니, 그럼 여기에 나 말고 이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단 소리야?


“여기 분들 다 능력 개쩔던데! 막 번개가 치고 몸에서 불이 나고 개쩔어!”


ㅇ...여기...그런 데였어?

큰일이다...생각보다 훨씬 정신 나간 사무소였어...

뭐...그런 곳이라서 오히려 내가 있을 수 있는 것 같지만...




한 달 동안 열심히 달렸어.

음악이면 음악, 예능이면 예능, 토크쇼면 토크쇼, 연기면 연기, 뭐든지 열심히 했지.

그렇게 달리다 보니, 마지막 한 달이 지나고 개강이 코앞으로 다가왔어.


“어느 새 이런 시간이 되었네.”

“두 달 동안, 어땠어?”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 내 생애 그 어느 때보다도.”

“그래. 이제 어떻게 할래, 유진아?”


이것은 재계약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최종 질문이겠지.


“음...”


이 질문의 대답에 따라서, 나의 길이 결정된다.


확실히 지금까지 너무 기쁘고 즐거웠어. 내가 다시 아이돌이 될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거든.

다시 복귀하고 나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기억해주고 있을 줄 몰랐어.

역시 한국의 임유진이라는 이름이 있던 시간은 헛되지 않았구나.

계속 활동하고 있어도 나쁘지 않겠는걸.



“어때, 유진? 결론이 났어?”

“응. 마음을 정했어. 나는 재계약을.”


“안 할래.”


나는 4년 전 은퇴할 때, 이미 이름값을 충분히 했어.

박수칠 때 떠났으니 후회는 하지 않아.


그리고 해나 언니와 주니 언니도 이제 없어.

둘이 없이 나 혼자서 있어봐야 예전과 같은 느낌은 나지 않을 거야.


아이돌은 별이야. 나도 하나의 별이었고.

별이 수명을 다하면 폭발하며 빛을 내는데, 그것이 초신성이야.

폭발이 끝나면 어두워지면서 다시 새로운 별이 될 준비를 하지.


내가 그런 별이야. 이미 터져버린 별, 수명을 다한 별, 최대의 빛을 발했던 별.

이제 나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또 하나의 별이 되어야 해.

그리고 나로 인해 다른 아이돌들이 빛날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족해.



“그래, 알겠어. 대신에 어딜 가서든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할 수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 5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잘 가, 유진아. 나도 고마워. 그동안 정말 행복했어.”


-탁-


문을 닫고, 사무소 밖으로 나왔어.

이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플래시 백」


정말로 좋았던 기억들만 남았어.

옛날에도, 지금도 어느 것 하나 싫었던 기억이 없네.


물론 힘들었던 일도 많았고, 혹평을 받았을 때도 많았어.

때로는 그걸 견딜 수 없다고 불평한 적도 있었지.



하지만,


그것들 모두가,


내겐,


좋았던 기억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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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5편까지 완성함으로서 큐트 5편, 쿨 5편, 패션 5편으로 타입 비율을 맞췄어요.

이번 열매는 초인계 메모리메모리 열매, 복용자는 한데마스의 유진이에요.

한데마스가 진짜로 복귀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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