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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 성[1:하야미 카나데-고독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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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7, 2020 05:07에 작성됨.

    

(이전화: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131138&sfl=wr_name%2C1&stx=chromawickerman&sop=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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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8일 화요일 오전 7시 42분, 하야미 카나데의 아파트 거실>



연한 파란색을 띠는 단색화면이지만 두 사람의 모습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Good moooOOOOOORRRRING!!"


딱히 인터폰의 스피커가 켜진 것도 아닌데 쩌렁쩌렁한 음성이 문 너머로부터 선명하게 들려온다.

요란스런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터폰의 화면을 상체와 얼굴로 한가득 채우고 있는 웬디. 어제와는 달리 하얀색 티셔츠와 어디에서 났는지 모를 야구모자를 쓰고 있다. 그런 옷차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지팡이로 현관 앞의 카메라를 가볍게 두들긴다.


"오하우디 두~~!!"


이상한 인삿말과 함께 웬디의 머리를 슬며시 밀어내면서 화면 안에 비집고 들어오는 또 하나의 얼굴.

너구리 모양 선캡과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있지만, 그녀가 프레데리카라는 것을 숨기기엔 특유의 정신없는 기운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쉴 새없이 웬디와 카메라 사이로 고개를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반갑다는 듯 손을 계속 흔들어댄다.


"뭐예요, 그건?"

"이거? 영어하고 일본어를 섞어서 새로운 인사말을 만들어봤어!"

"Howdy do?"

"그래그래 그거!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거 포르투갈어였지?"

"...영어 맞거든요. 그나저나 카나데 양의 반응이 없네요. 초인종을 누르는 것도 벌써 세 번째고, 밖에서 봤을 땐 창에 불빛도 보였는데."

"자고 있을 수도 있겠네!"

"불을 켠 채로요?"

"아니면 벌써 집을 나갔나?"

"글쎄요."

"어쩌면 지금 말없이 우리를 보고 있을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죠. 카나데 양! 잡아먹으러 온 게 아니니까 나와주세요!"

"FBI! OPEN UP!"


그리고 이 광경을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는 한 쌍의 금빛 눈.


"도대체..."


이 사람들이 비오는 날 아침부터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왜 예고도 없이 찾아온 거지.

왜 듀엣으로 방음도 제대로 안 되는 아파트에서 야단법석이지.

그 외에도 여러가지.


카나데는 추락하듯 허리를 숙이고 양손으로 이마와 인터폰이 있는 벽을 짚는다.


"그냥 초인종을 계속 누르고 있어 볼까요?"

"내가 할게! 내가내가!"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딩ㄷ키익!]


귀를 찌르는 소음과 함께 멎는 초인종 소리.


"미야모토 양이 고장 냈대요."

"아니거든! 분명히 카나데가 안에서 끈 걸거야."

"그렇게까지 저희를 보기 싫은 걸까요?"


짜증스럽게 인터폰의 전원 스위치를 내려버린 카나데는 인터폰이 걸려있는 벽에 등을 기대어 무릎을 껴안고 앉는다. 잠옷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전화와 이어폰을 꺼내 꼬인 선을 풀지도 않고 바로 이어폰을 양쪽 귀에 힘껏 꽂는다. 바깥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끔. 눈을 질끈 감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이따금 몸을 타고 흐르는 바깥의 진동을 애써 무시한다.


"하지만 프레모자 콤비의 수제 아침밥이 있다면 어떨까! 아!"

"침!"

"밥! 카나데~! 같이 아침 먹자! 부엌만 빌려주면 천하일미를 맛보게 해줄게! 피시 앤 칩스는 아니지만!"

"카나데 양!  아침으로 피시 앤 칩스는 좀 아닌 것 같아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재료...같은 거를 사 왔습니다! 연어는 오늘 새벽에 시장에 갓 들어온 놈을 얻어왔어요!"

"카나데가 지금 안 먹으면 연어 신선도가 떨어질걸? 그리곤 냉장고 안에서 울먹이겠지? '카나데한테 먹히고 싶었는데에에~!'"

"연어의 죽음이 헛되고 말아요! SHAAAAAME!!!"


하지만 문밖에 있는 한 쌍의 불청객들은 음악 소리 따위 알게 뭐냐는 듯 정신 사나운 불협화음을 카나데의 귓속에 들이민다.

카나데의 평안, 잔잔한 음악 소리, 심지어 두 사람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나마 녹아있는 다정함까지 덮어씌워 버리는 산만한 아우성이다.


"아, 맞다. 그리고 어제 깜빡하고 카나데한테 주고 갔던 만년필! 그거 모자찡 거니까 돌려받아야 한다구!"

"What? WHAT?! 어쩐지 안 보인다 싶어서 계속 찾아다녔는데 남의 만년필을 왜 들고가요?!"

"'임시' 프로젝트 룸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으니까?"

"a.k.a 제 사무실이잖아요! 옆에 제 물건이랑 같이 놓여있던 거 보면 감이 안 와요?!"

"이렇게까지 애지중지하는 물건인 줄 몰랐지. 원래는 금방 돌려줄 생각이었고 그건 확실히 내가 잘못했,”


지팡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잠깐. 갑자기 나는 왜 드는 거야? 지팡이 떨어졌는데 괜찮아? 왜 프레짱의 머리를 볼링공 닦듯이 문지르는 건데?"

"I am, The Law."

"에?"

"피고 미야모토 프레데리카 양을 즉결처분형에 처합니다. 최후 변론 있으십니까?!"

"프레짱의 머리는 문을 부술 만큼 단단하지 않다구! 앞뒤로 흔들지 마?! 카나데, 살려줘!!"

"I KNEW YOU SAY THAT!!(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끼이익하고, 녹슨 문의 소름 끼치는 소음이 현관으로부터 울려 퍼져 복도로 퍼져나가고, 그 메아리가 다시 현관으로 돌아온다. 어두컴컴한 현관을 덮는 복도의 구름 먹은 햇빛,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두 사람의 정신없는 만담.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웬디는 프레데리카를 어깨에 얹은 채로, 프레데리카는 웬디의 어깨 위에서 그녀의 양팔에 감싸져 추욱 늘어진 채로 현관문 안쪽을 바라본다.


"...두 사람 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싸늘한 금빛의 시선이 음침한 현관 안쪽으로부터 뻗어 나와 두 사람을 찌른다.


“이 아파트는 방음 측면에서는 최악이야. 밤에는 2층 위에서 신음까지 들려올 정도로.”


아무것도 신지 안은 맨발로 현관문의 스토퍼를 쿵 하고 내려찍는 카나데. 소리에 굳은 얼굴로 몸을 움찔하는 웬디와 프레데리카.


“아... 카나데의 화난 얼굴 오랜만에 보네.”

“저건 화난 것보단 그냥 세상만사 다 까라는, 아야!”


웬디의 속삭임은 그녀의 머리로 가볍게 날아온 프레데리카의 박치기에 끊긴다.


“그런데 만약 두 사람이 소란을 피운 것 때문에 다른 집에서 따져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차가운 목소리에 비해 카나데의 얼굴은 표정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희로애락이 느껴지지 않는, 어딘가 심리적으로 지쳐 보이는 얼굴. 다만 반쯤 뜬 눈이 압박으로 다가올 뿐이다.


“프레짱.”

“Je suis desole(죄송합니다)...”


애칭으로 불리자 풀이 죽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이는 프레데리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카나데의 입술에 살짝 힘이 들어간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다가도 이내 다시 다물고 만다. 침을 한번 삼키고 다시 입을 움직여보지만 치아도 안 보일 만큼 우물쭈물 움직일 뿐, 결국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대리석상처럼 굳게 닫힌다. 카나데는 코로 깊은숨을 내쉬고 어깨와 가슴을 타고 흐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다. 이제 그녀의 눈은 웬디에게로 향한다.


“내 친구 내려놔.”

“그러죠, 뭐.”


간단한 일이라는 것처럼 대꾸하면서 웬디는 프레데리카를 조심스레 어깨에서 내려놓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의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고쳐주는 두 사람.


“자~. 그러면 목적도 이루었으니!”


프레데리카는 몸을 홱 돌린다. 계단 위에 놓여있는 것은 뭐가 들어있는지 모를 두툼하고 검은 비닐 봉지 두 개. 허리를 숙여 봉지를 집으려 한다.


“그 무거운 걸 혼자 다 들려고요?”


그러자 웬디가 기겁하면서 다급하게 봉지를 전부 가로챈다. 꿈도 꾸지 말라는 듯, 프레데리카를 향해 고개를 휘휘 저어 보이는 웬디. 봉지의 무게와 힘 때문인지 그녀의 구릿빛 손가락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현관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옮기지만,


“난 들어오라고 한 적 없어.”


카나데의 하얀 오른손이 웬디의 가슴팍을 막아 세운다. 웬디는 멍청하게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고는 낑낑대며 비닐봉지를 든 팔로 모자의 챙을 올린다. 모자에 가려져 있던 웬디의 회색 눈이 5~6센티 정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카나데의 그것과 마주친다.


“미야모토 양의 부탁으로 아침밥을 차리러 온 거라도요?”

“마음만 받을게. 그 봉투 안에 든 게 뭔진 모르겠지만, 우리 집엔 쓸만한 요리 도구도 별로 없거든.”

“제 사무실에 캠핑용 코펠이 있는데, 챙겨올걸 그랬나요?”

“왜 사무실 같은 곳에 코펠이...”

“마침 친구가 프로덕션에 있으니까 부탁해볼게!”


카나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끼어드는 프레데리카. 휴대전화를 꺼내 기관총처럼 타자를 치고는 배시시 웃으면서 두 사람을 향해 손으로 V자를 만들어 보인다.


“20분 내로 온다네! 프레짱 잘했지?”


그러고는 누가 대답할 틈도 없이 현관 안쪽으로 발레를 하듯 사뿐사뿐, 카나데를 곰인형처럼 부둥켜안고는 쏜살같이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카나데의 집 안쪽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고운 금발과 웬디의 지팡이를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며 거실 바닥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는 프레데리카로부터 천친난만한 아이의 무언가가 비쳐온다. 금방 상황파악이 안 되는 것처럼, 얼마간 우두커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카나데와 웬디.


“어... 들어갈께요?”


웬디가 먼저 말을 꺼내며 아까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발을 뻗는다. 카나데는 입으로도 몸으로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다 웬디가 카나데를 지나치려던 도중 카나데의 손이 웬디의 팔을 잡는다.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것처럼 다급한, 그러나 강압적이지 않은 움직임.

“아이돌 일에 복귀할 생각 따위 없으니까.”


난처한 듯 낮게 신음하는 웬디.


“오늘은 다른 제안을 하려고 왔어요. 카나데 양이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지요.”

“처음엔 저지 드레드 흉내를 내더니, 이제는 대부 흉내야?”

“아아~. 저지 드레드! 실베스터 스탤론 아시는구나!”

“...마음 바뀌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


카나데는 쫓아내듯 웬디의 등을 집안으로 살짝 밀어주고는 들리지 않게끔 한숨을 내쉬며 뒤따라간다. 웬디가 신고 있던 샌들은 손이 모자란 웬디를 대신해 정리해둔다. 잠옷 소매를 걷고 긴 머리를 고무줄로 묶으려던 카나데지만 바로 프레데리카에 안겨 거실의 이부자리로 내동댕이쳐지고, 고무줄은 웬디가 빼앗아 자신의 정수리 위에 사과 꼭지처럼 우스꽝스럽게 묶어놓고는 자신의 야구모자를 카나데의 머리에 씌워놓는다. 웬디는 손짓하여 프레데리카를 부르고는 그녀와 함께 비닐봉지를 풀어 음식재료를 솜씨 좋게 손질하기 시작한다.

카나데가 대충 살펴보니 봉지에서 나온 것은 소시지, 감자, 돼지고기, 당근, 연어, 간장, 흰쌀 한 봉지, 그리고 왜 있는지 모를 인스턴트 죽 두 캔. 나머지는 아직 비닐봉지 안에 있거나 통에 담겨있어 제대로 알 수 없다.


"아, 맞다."


한참 깎던 감자를 내려놓고 고개를 카나데 쪽으로 돌린 웬디가 입을 연다.


"미야모토 씨에게는 미리 말해뒀습니다만, 오늘 아침 메뉴는 소시지 볶음, 톤지루, 고기 감자, 연어구이가 되겠습니다, 고객님. 밥은 당연히 기본이지요."


희극 주인공처럼 장난기 어린 목소리. 신이 난 모양인지 작은 맨발로 박자까지 맞춘다.


"오늘 아침에 먹을 것치곤 딱 봐도 양이 너무 많은데."

"소시지말고는 따로 보관해뒀다가 드시라구요. 연어도 지금 다 먹을 게 아니고 남는 거로 연어장을 만들 거예요. 지금 쓰레기통 안에 뭐 굴러다니는 거 보니까 저희가 떠나고 나선 또 저런 거로 끼니 때우실 게 눈에 훤히 보이네요, 아주."


웬디가 가리키는 '저런 거'는 부엌의 한구석에 놓여있는 쓰레기통이다. 어제저녁에 카나데가 먹었던 샌드위치 상자가 조개의 혀처럼 뚜껑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그 밑에는 그 전에 먹었던 것들의 용기가 깔렸을 것이다. 무엇하나 빠짐없이 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 따위다.


"편의점 음식을 마지막으로 '안' 먹었던 게 언제였어요?"

"...."

"흥."


웬디는 한숨인지 콧방귀인지 모를 것을 약하게 내뿜고는 다시 부엌일에 집중한다.


모르겠어.


카나데는 대답 없이 껴안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다. 카나데에게 씌워졌던 야구모자가 챙이 무릎에 부딪혀 벗겨진다.

얼마간 도마와 식칼이 가볍게 부딫히는 소리. 부스럭부스럭, 사각사각, 감자와 양파 껍질이 벗겨지는 소리. 물이 흐르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 웬디와 프레데리카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오간다.


쿵쿵쿵.


생선의 소금내와 흙냄새 사이에서도 카나데의 후각을 자극하는 초콜릿과 담배 연기가 섞인 냄새. 어제 웬디의 자동차에서도 맡았던 그것에 이끌려 카나데는 자신의 옆에 떨어진 웬디의 모자를 내려다본다.

모자 안쪽의 검은색 천에 무엇인지 모를 회색 가루가 조금 묻어있다. 손톱으로 긁어내 보니 무언가 타고 남은 재같다.

담뱃재일까. 모자 안쪽에 담뱃재가 묻을 정도면 이 웬디라는 사람은 얼마나 골초인 걸까.


"...?"


혹시 지금 머리 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 머리를 가볍게 털어보지만 아침에 샤워하고 머리를 빗지 않았을 뿐, 딱히 위화감이나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평소대로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안정적인 게 좋다'. 머리를 기르라고 했을 때 예전의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했었다.


쿵쿵쿵!


"저기."


웬디가 물기 묻은 손을 자신의 앞치마로 닦고 카나데를 부른다.


"저희가 들어오고 나서 인터폰 안 켰죠?"

"...아."


그대로 잊어버렸다.


"코펠이 온 모양이네요. 마침 도마 위의 공간도 모자라서 비닐 봉투라도 씻어 쓸까 했는데 나이스 타이밍!"


웬디는 카나데의 손가락이 걸쳐져 있던 야구모자를 집어 머리에 푹 눌러쓰고 현관으로 종종걸음을 놓는다.


"혹시나 모르니."


방향을 틀어 인터폰의 전원을 켜놓고, 다시 현관으로 나간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미야모토야아아아아앙!!"


기겁하면서 빈손으로 튀어들어 온다.


양파를 썰던 프레데리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돌아보니, 세상이 망한 것 같은 뒤틀린 표정에 입만 찢어질 것처럼 미소 짓는 웬디의 얼굴이 그녀의 코앞에 닥친다.


"미야모토 양이 집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했던 말 다시 해보세요."

"에.... '20분 내로 온다네. 프레짱 잘했지?' 오늘도 대학 과제 부탁해도 돼?"

"없던 거 만들어내지 마시고, 그 전에!"

"친구가 프로덕션에 있다고 했던 거?"

"'친구'. 친구우우우우....!"


당장에라도 찌를 것 같은 두 손의 검지로 부들부들 프레데리카를 가리키는 웬디. 하얀 치아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이때만큼은 귀신의 것처럼 보이는 회색의 두 눈을 부릅뜬다.

그러면서도 표정과 동작이 과장되어 무서워 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애매하다.


"미안."

"예?"

"미안. 잘못했어.... 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윽...."


떨리는 목소리와 프레데리카의 양 뺨을 타고 흐르는 구슬 같은 눈물에 웬디의 표정이 누그러진다.

카나데의 눈에 양파와 도마를 등 뒤로 조심스레 숨기는 프레데리카의 모습이 들어오지만, 웬디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나원 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는 프레데리카의 양파즙 섞인 눈물을 닦아주는 웬디.


"카나데 양이랑 앉아서 쉬고 계세요. 미야모토 양 대신 조수로 쓸만한 요주의 인물이 한 명 늘었으니까. 어제도 레슨실에서도 그렇고 사람 놀라게 하는 데에 재미라도 들리신 건지..."


자신의 앞치마로 프레데리카의 양손을 닦아주고는 터덜터덜 현관으로 되돌아간다.


대체 누가 왔길래 저렇게 야단법석인 걸까. 그리고 집주인은 나인데.


마음 한구석을 간지럽히는 호기심과 불만에 카나데는 조용히 일어나 웬디의 뒤를 따른다.


"좋은 아침이다. 파블로프나."

"좋은 아침이네요. 미야모토 양의 친구 되시는 분. 오전 스케줄은 어쩌고요?"

"오후와 내일로 옮겨놓았다. 내일 태풍의 상태에 따라서 더 밀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미야모토의 친구라는 말은 이해가 안 된다만?"

"그 말을 꺼낸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요."


현관문을 열어젖히자마자 성숙한 목소리와 투덜대는 목소리가 오간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얼굴이 먼저 눈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 화려한 액세서리.

마치 갑옷과도 같은 분위기의 정장이다. 문밖에 서 있는 그녀의 여성용 정장은 비즈니스 우먼의 정석이라 할 수 있지만 한 손에 들려있는 빛바랜 코펠과는 괴리감이 있다.

미시로 상무는 말없이 코펠을 건네온다.


"오늘도 무겁네요, 미시로 상무님."


웬디는 자신의 코펠, 그리고 미시로 상무의 다른 손에 들려있는 서류가방을 잽싸게 가로채 방 안으로 들어간다.


"무겁다고요."


갑작스러운 행동에 살짝 커진 상무의 눈이 웬디가 도망치듯 들어간 현관 안쪽을 따라간다. 그것도 잠시, 웬디의 모습에 가려져 있던 신비로운 눈의 소녀에게 빨려 들어가듯 상무의 고개가 움직인다.


"자네는...?"

"...."


웬디의 등이 사라지고, 그 뒤에 숨어있었던 카나데를 향해 구름먹은 햇빛과 미시로 상무의 눈빛이 쏟아진다.

집 안쪽에서 금속이 가볍게 부딫히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는 가운데 현관의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딱히 눈이 부신 것도 아닌데, 카나데는 회색 햇빛을 등지고 서 있는 그녀의 눈을 마주칠 수 없다. 그녀의 눈빛, 그녀의 정장. 그 어떤 것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돌이켜보면 '특유의 괴상함'때문인지, 웬디와 처음 만났을 때 카나데는 다른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

무언가가 목을 조여오는 듯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


"하야미 카나데 양."


한동안 이어진 그 불쾌한 침묵을 깬 것은 미시로 상무 쪽이다. 무슨 말이 나오든 빨리 끝내길 바라는 심정으로 현관 바닥의 타일을 향해있던 카나데의 시선에, 길고 가는 양손과 명함이 파고든다. 어두운색으로 물들인 손톱 때문에 그 손은 명함만큼이나 새햐얘 보인다.


"346 프로덕션의 미시로 하루에 상무라고 합니다. 346 아메리카에서 연수와 근무를 거치고 3분기부터 본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만."

"예? 아, 네...."


떨떠름하게 명함을 받아드는 카나데.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으로부터 내보이는 정중한 언행에 저절로 명함을 받는 손길이 조심스러워지고, 늘 했던 것처럼 표정을 관리하는 것까지 잠시 잊어버린다.


[346 프로덕션 예능 사업부 총괄이사 미시로 하루에 상무이사]


명함의 이름을 확인하고 애써 고개를 드니, 미시로 상무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카나데를 뚫어져라 응시할 뿐이다. 자신의 한쪽 팔을 꼭 껴안는 건 이 사람 나름의 버릇일까.


"저번의 일은,"

"두 사람 다 현관에서 비석처럼 서서 뭐하는 거예요?"


하지만 조금 전까지 프레데리카가 입고 있던 앞치마를 들고 나타난 웬디의 방해로 상무의 속마음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조져놓은 모양이네요."


뒤늦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달은 웬디는 두 사람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마른 입술을 훑는다.


>>>>>>  


"카나데 양, 이제 여기까지 왔으니 사람 대 사람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요. 탁상에 수저 좀 놔주실래요? 아, 제건 필요 없어요."

"...지금까지 없는 사람 취급해놓곤 이제 와서."

“따지고 보면 저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충분히 민폐인데 궂은일까지 시킬 수는 없잖아요.”

“흥.”


수저라고 해봤자 프레데리카가 급하게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온 일회용 젓가락이다. 요리가 거의 다 될 무렵에야 집의 수저가 모자란 것을 발견한 것이다. 수저 뿐이라면 다행이었겠지만, 음식을 보관할 용기마저 부족했다. 웬디가 음식을 종류별로 많이 만들었고 카나데가 혼자 사는 것을 감안해도 마찬가지였다. 웬디와 프레데리카로부터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느냐는 투의 질문을 들었지만 카나데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헥...헥...데리카...”


덕분에 홀로 촉박한 시간에 맞춰 무거운 장을 봐온 프레데리카는 녹초가 된 상태로 카나데의 이부자리에 대자로 뻗어있다.

카나데는 다리가 녹슨 탁상 위에 나무젓가락 3개를 놓는다. 곧바로 웬디와 미시로 상무가 밥과 각종 반찬거리를 하나하나 탁상 위에 올린다. 요리하는 동안 웬디가 미시로 상무를 향해 끊임없이 투덜댔지만 음식은 별문제 없이, 오히려 질적으로 대성공을 이룬 것이 눈에 보인다.

아까 웬디가 말했던 대로, 식탁 위에 오른 메뉴는 소시지 볶음, 톤지루, 고기 감자, 연어구이. 밥은 말할 것도 없다. 옅게 피어오르는 김과 음식의 향은 지쳐 누워있던 프레데리카도 벌떡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굳이 감점요소를 찾는다면 수저와 식기 대부분이 일회용이라는 것. 그리고,


“그게 뭐야?”

“중탕으로 데운 인스턴트 죽요. 카나데 양도 조금 드실래요?”

“...됐어.”


웬디의 앞에 놓인 인스턴트 죽 두 그릇 정도. 수저가 3개만 필요하다고 했을 땐 요리할 때 썼던 젓가락을 쓰겠거니 했는데, 그녀가 죽과 함께 들고 온 것이라곤 죽 안에 들어있었던 조그만 접이식 숟가락이 전부다.


“병 같은 거래. 죽하고 수프, 마실 게 아니면 아무것도 못 먹는다나?”


카나데의 미심쩍은 눈빛을 눈치챈 프레데리카가 귀띔해주지만 그녀의 의문점을 완전히 해소해주진 못한다.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처럼 얼굴 근육과 사지를 총동원해서 날뛰는 이 여성이, 유동식 이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할 뿐인 병에 걸렸다니. 그런 병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먹을 입 하나 줄고 좋잖아요. 자,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으니!”


웬디는 접이식 숟가락을 곧게 펴고 탁상 앞에 각자의 자세로 앉은 카나데, 프레데리카, 미시로 상무의 얼굴을 미어캣처럼 둘러본다. 싱긋 웃으며, 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잘 먹겠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약간 제 기대보다는 약한데. 어쨌든 잘 먹겠습니다!”


즐겁게 외치며 젓가락을 드는 프레데리카. 그리고 웬디의 기대에 마지못해 입을 여는 미시로 상무와 카나데.

혼자 애처롭게 죽만 뜨고 있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제외한 3개의 젓가락이 탁상 위를 오간다. 한 쌍은 요란스럽게, 한 쌍은 군더더기없이 절도있게, 또 다른 한 쌍은 소극적인 것이 마치 낯선 것을 보고 경계하는 고양이 같다.


"이상한 거 안 들었어요. 제가 못 먹어도 제 옆에서 검증해준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


카나데의 바로 앞에 마주앉은 웬디가 숟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양옆에서 각자 나름대로 식사를 즐기고 있는 미시로 상무와 프레데리카를 가리킨다.

식사예절에 어긋나는 그녀의 행동에 살짝 구겨지는 상무의 미간. 이내 체념한 듯 콧바람을 내쉬고는 다시 앞에 있는 반찬으로 눈을 돌린다.


"그 쪽분... 미시로 상무님은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 게 익숙하신가 봐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나데가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비록 연구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높은 사람'과 마주할 기회가 없던 그녀였지만, '상무이사'라는 계급의 무게감과 아랫사람들이 그 계급으로부터 느끼는 압박감에 대해서는 적게나마 들은 것이 있다. 어지간해선 엮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던가.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프레데리카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고,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를 웬디의 헛소리와 잔소리를 크게 나무라지도 않는다. 지금까지의 언행을 보면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좋은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일 차 태워주랴, 종종 저녁해 주랴, 2주에 한 번꼴로 방 청ㅅ,"

"웬디, 파블로프나, 이름이 뭐든 간에 당신한테 말한 게 아니니까 잠시 조용히 해줘."

"힝."


혹은 단순히 웬디가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위도 아래도 없는 희대의 미치광이라서 통제를 아예 포기했거나. 따지고 보면 애초에 못총을 들고 남의 사무실에 쳐들어간 시점에서 이미 어떤 선을 넘은 지 오래다.


"서로의 습관을 알 만큼 오래 알고 지냈다고만 해두겠습니다."

"의외네요. 행동이나 말하는 걸 보면 두 사람은 극과 극인데."

"혹시 저희 프로듀서가 뭔가 실례되는 일이라도 저질렀습니까?"


미시로 상무는 카나데의 말에 동그랗게 눈을 뜬 웬디를 노려본다. 이전에도 여러 전과가 있었던 걸까.


"이쪽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상무님이 존댓말 하는 걸 오랜만에 봐서 놀란 거니까."


웬디는 뻔뻔스럽게도 아무 상관 없는 제 삼자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하게 숟가락을 움직인다. 꽤 재미있는 볼거리를 구경하는데 팝콘 대신 죽을 씹는 모양새다.


"실례되는 일 말이죠."


처음에 카나데의 마음속에서 웬디라는 사람은 그저 한 번 보고 말 타인 정도였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됐으니 딱히 미시로 상무가 쥐여준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결국엔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사소하고도 조금 즐거운 복수. 카나데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깍지를 낀 손으로 턱을 받친다.


"미시로 상무님이, 괜찮으시다면 지금부터 상무님이라고 부를게요. 상무님이 어디까지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사람은 오늘 우리 집에 오는 걸 예고를 하지도,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어요."

"혹시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아뇨. 하지만 샤워를 하던 도중에 찾아와서 급하게 마무리 짓고 제대로 정돈도 안 된 상태로 그들을 맞이해야 했죠."

"미야모토.... 파블로프나...!"


상무는 소시지볶음을 들려던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본의 아니게 스스로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른 것 같은 얼굴로 살벌하게 프레데리카를 웬디의 이름을 부르자, 그 당사자들은 콩트라도 짠 것처럼 손을 움직인다. 프레데리카의 손은 자기 자신을, 웬디의 손은 프레데리카를 향한다.


"프레짱이 부추겼대요."

"미야모토 양이 약 팔았대요."

"하...."


사고뭉치 두 명을 곁에 두고, 어떻게든 유지하던 표정을 끝내 무너트리며 꺼질듯한 한숨을 쉬는 상무의 모습은 조금 측은해 보인다. 이실직고하는 카나데가 오늘 그랬는데, 상무도 이런 이야기에 황당하기가 밑도 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카나데는 하던 말을 계속한다.


"상무님은 파블로프나의 상관 같은 분이죠?"

"그렇습니다. 프로듀싱과 무대 관련 작업을 겸업하고 현재의 업무와 기존에 여러 다른 부서로부터 동시에 받은 업무가 겹쳐져 있습니다만, 일차적으로는 제가 내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저를 어떻게든 영입하려고 했던 건 상무님의 명령인가요, 아니면 파블로프나가 원하는 건가요?"

“파블로프나의 결정입니다.”


카나데 스스로도 좀 곤란한 질문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다. 뜻밖에 상무는 일말의 동요나 머뭇거림도 없이 퍼뜩 내뱉는다.

직설적인 대답을 예상 못 했던 카나데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다.

상대 쪽으로부터 그런 반응을 보인 이상 카나데도 굳이 에둘러 말할 이유가 없다. 늦어도 오늘 안에는 해결해야 한다. 웬디는 살짝 굳어진 얼굴 그대로 카나데를 바라보다가 입 밖으로 흘러내리기 일보 직전의 죽을 급히 빨아들인다.


"그렇다면 상무님의 권한으로 이 사람이 저를 포기하게 하실 수도 있겠네요."

"굳이 상무님께 부탁할 필요도 없어요."


카나데의 말에 대답한 것은 상무가 아닌 웬디다. 상무와 눈을 마주치길 아주 잠시, 어떤 큰 결심을 한 듯 침을 꿀꺽 삼킨다.


"어차피 오늘 몇 가지 절차를 거친 후에 바로 카나데 양을 포기하려고 했으니까요."

"의외네. 당신이라면 적어도 이틀은 더 물고 늘어질 줄 알았는데. 그런데 절차라니?"

"비즈니스 우먼이 이런 상황에서 할 '절차'가 딱히 서류 말고 뭐가 있겠어요? 계약 만료서하고 보안 유지 각서, 쉽게 말하면 '저는 퇴사한답시고 입을 함부로 나불거리지 않겠습니다' 각서정도겠네요. 그 두 장에 문장 한두 줄 따라쓰고 서명만 하시면 돼요."

"그럼 그 서류를 지금 갖고 온 거네."

"아뇨. 가져오기는커녕 사무실 컴퓨터에 파일로 남아있는 데요."


즉답. 곧바로 웬디의 얼굴에 정통으로 날아오는 두 개의 한심함이 넘쳐나는 시선. 프레데리카는 아까부터 그랬듯 그저 순진한 얼굴로 반찬을 우물거린다.


이 여자가 대체 뭘 꾸미려고. 거머리 같은 눈앞의 미치광이 때문에 답답한 심정을 애써 짓누르는 카나데.

한편 미시로 상무는,


"현명하군. 하야미 양의 주소가 미야모토에게 유출된 것도 자네의 보안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같은 시선, 그러나 다른 이유로 가시가 돋힌 말을 쏘아붙인다.


"네. 이런 이유 때문에요."


수치심은 있는 모양인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쓴웃음을 짓는 웬디. 철벽같던 마이페이스가 조금이나마 무너지는 모습에 살짝 통쾌해지는 카나데지만, 만약 미친 셈 치고 이 이상한 사람이 자신의 새로운 프로듀서가 되었다면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에 가벼운 닭살이 절로 돋는다.


"카나데가 직접 346 프로덕션을 찾아가서 서명해야 한다는 거지? 그럼 겸사겸사 본사를 견학해보는 건 어때?"


한가득 부풀어 오른 자신의 뺨을 행복하게 어루만지며 홀로 식도락에 빠져있던 프레데리카.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손가락을 탁 튕기며 카나데를 향해 고개를 들이민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절로 쪼그라드는 카나데의 어깨. '나가려고 하는 사람을 견학시켜서 뭐하게'라는 말 한마디조차 목에 걸려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제 프레짱이 아이돌을 한다는 걸 듣고 기겁했지? 이대로 괜찮아?"

"뭐가 괜찮,"

"지금의 카나데는 프레짱이 일이 즐겁고 괜찮다고 말해도 믿을 수 있어?"

"...."


믿을 수 없다.

처음 프레데리카로부터 근황을 들었을 때 이미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속에서 피어오른 꿈을 찾아서 발을 내디뎠다가 너무 많은 것을 잃었건만, 그 와중에 느닷없이 소중한 옛 친구가 나타나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하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소중한 사람이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떠나기엔 프레데리카가 불안하다. 346 프로덕션 본사라는, 카나데에게 있어서 미지의 영역에 그녀를 두고 떠나기엔 너무나도 불안하다.


“괜찮을까?”


프레데리카의 일자리를 둘러봐도.


“괜찮습니다.”


웬디를 향해 카나데가 질문하니, 문득 곁에서 미시로 상무가 대신 입을 연다.


“346 프로덕션의 전체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선 많은 이들의 앞에서 빛나는 우상들뿐만 아니라 그 뒤에서 그들을 위해 마법을 걸어줄 요정들 또한 회사에 맞는 고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의미가 금방 와 닫지 않는다. 잠시 말의 의미를 고민하는 카나데.


"그, 연예인과 사무직들 모두 346에 적합한 인재가 되어야한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까요...?"

"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너무 많은 분 께 상처를 주었고 346 프로덕션을 더럽혔습니다. 당사자의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계획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무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가지런히 내려놓는다. 아직 그녀의 밥그릇은 절반 정도 남아있다.


"더럽혀진 호박 마차와 성에 저희가 마법을 걸어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기꺼이 저도 하야미 양의 견학을 제안하고 싶군요."

“네....”


60%의 동의와 40%의 의문이 섞인 긍정의 말.


그나마 의미를 알 것 같은 웬디, 프레데리카와 눈을 맞추는 카나데지만, 프레데리카는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할 뿐, 웬디는 왜 자기한테 묻느냐는 듯 질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내젓는다.

그녀들로서도 난해한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


<2015년 8월 14일 오후 9시 32분>


“저기.”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서기 직전, 소녀는 웬디를 불러 세운다.


“듣고 있어요.”

“하야미 카나데는 어떻게 할거야?”

“...하야미 카나데 양을 끝장내 달라느니 어쩌라느니 같은 소리 하면 저 여기서 토할거예요.”

“다른 애들도 그렇게 말했구나.”

“정확히 말하면 다른 애예요. 방금 나카무라 양까지 하면 두 명째네요.”

“분명 말을 안 한 애들도 똑같이 생각할 걸? 우리는 모든 걸 잃어버렸지만 하야미는 아니라고.”

“나카무라 양, 조사는 해보겠습니다만,”

“우리가 이런 꼴을 당했다는 걸 그 사고로 겨우 알게 됐겠지. 그 아이가 코우이치 새끼 한 명 때문에 손목을 그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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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을 끝장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렇다쳐도 다 쓴건 12월 말이었지만요. 면목없습니다.

(다음화: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13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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