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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름달이 뜬 날 밤 후미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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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9, 2020 02:20에 작성됨.

"달이 아름답네요."


후미카는 보름달이 뜬 하늘을 보며 청아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달빛이 그녀의 검은 머리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테라스에 손을 얹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후미카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지만, 정작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짓궂은 농담이었다.


"나쓰메 소세키?"


나는 후미카의 그녀다운 언어유희에 가볍게 반문해 대답해주었다. '달이 아름답다'라, 흔히 사랑을 돌려서 표현할 때 속삭이는 말이었다. 물론, 그녀는 꽤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기에 정말로 그런 뜻이었다면 후미카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네. 나쓰메 소세키는 '사랑해.'라는 말을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고 하죠. 일본인이라면 직접적인 표현이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욱 일본의 정서에 어울린다면서요."


"그저 도시전설이라는 말도 있지만 말이야."


"진위여부와는 관계 없이, 이 이야기는 번역이라는 일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원문이 있음에도, 어떻게 표현하냐에 따라 글을 읽은 후의 감상이 바뀌죠. 지나친 의역은 글의 매력을 망가뜨리지만, 적절한 의역은 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니까요."


후미카는 달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촉촉하게 젖은 눈은 달빛을 머금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빛 때문인지,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임에도 오늘은 후미카의 말이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런 내 감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미카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번역이란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한 구절을 잘못 해석했을 뿐이지만, 그 한 구절 때문에 독자가 받는 감상이 전부 흐트러질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원문의 내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문화에 맞는, 그러한 번역은 글의 값어치를 더욱 올려준다고 생각합니다."


후미카는 그 말을 마치고 잠시 주저하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고서점에서 책을 읽으며 지내던 저를, 사기사와 후미카라는 밋밋한 원문을, 당신은 하나의 어엿한 아이돌로서 번역해주셨습니다. 방금 전 말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셨어요."


후미카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방금 전에 보였던 주저함은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또박또박 청명한 발음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마치 뉴스의 아나운서와 같이 정갈한 발음은 후미카가 말하는 내용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어주었다.


"당신과 만나기 전의 저는, 그저 고서점에 앉아 책을 읽는 게 전부인 사람이었습니다. 책 속의 인물들과 소통하며, 현실보다 책 속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그런 사람. 하지만, 당신이 와주신 후부터 저는 책을 제외하고도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어요."


후미카의 갑작스러운 말에 제대로 돌려줄 말이 생각나지 않아 멈춰있길 잠시, 후미카는 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는지 다시금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당신께서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당신께 처음 아이돌 제의를 받았을 때, 떨리면서도 궁금했습니다. 제가 아는 길은 그저 책을 읽는 것 하나뿐이었기에, 새롭게 밝혀진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두려우면서도,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


"첫 레슨을 마치고 기진맥진했을 때, 기초 레슨임에도 불구하고 기진맥진했었지요.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좁은 세계에 있었는지. 마치 우물에만 만족하고 있던 개구리처럼, 그저 책 속에 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듣는 후미카의 진심이었다. 여태까지 후미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 정도로 적나라한 본심을 듣는 것은 분명 처음이었다. 흔히 말하는 보름 달의 마력에 홀렸는지, 아니면 밤이라는 시간이 감수성을 흔드는 것인지, 후미카는 계속해서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저는 운동도 서투르고, 사람 앞에 나서는 것도 서투른 천학 비재한 몸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제게 아이돌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보자'라고. 당신께서 기억하실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말 덕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당신덕분에 저는 저만의 좁은 세계를 깨고 나아갈 수 있었어요. 당신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평생 고서관이라는 알 속에 갇혀 있을 뿐이었겠죠. 자신이 갇힌줄도 모르는 채로 말이에요. 갑작스러우시겠지만,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말을 끝마치며 후미카는 보름달을 뒤로 한채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환한 달빛에도 불구하고 순간 달이 사라졌다고 착각해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몽환스러운 분위기에 취했는지, 아니면 나도 보름달의 마력에 홀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미카에게 여태까지 말하지 않았던 본심을 말하고 있었다.


"후미카는 내가 후미카의 세계를 넓혀주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후미카가 내 구원자였다고 생각해."


후미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후미카를 내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계속된 프로듀스의 실패와 아이돌과의 소통 단절로 실의에 차있던 내게, 마지막 기회로서 다가왔던, 그리고 찬란하게 성공한 사기사와 후미카라는 아이돌에게, 나는 감사하고 있었다.


"구원자....라뇨?"


후미카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그런 후미카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본심을 털어놓았다.


"후미카와 만나기 전, 나는 실패한 프로듀서였어. 아이돌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아이돌과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지도 못하는, 그저 글로만 업무를 배운 애송이였지. 하지만, 후미카를 만난 이후, 후미카와 함께 일하면서 진짜 프로듀서가 될 수 있었어."


후미카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것에 놀란 기색이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후미카와 첫 라이브를 성공했을 때, 첫 앨범을 발매했을 때, 처음으로 정규 방송에 출연했을 때, 점점 성장해가는 후미카를 보면서 난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어. 단순히 사무적 관계가 아니라, 아이돌과 신뢰를 쌓고 나아간다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거야."


"후미카는 내가 후미카를 이끌어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후미카가 나를 이끌어 주었다고 생각해. 후미카가 있었기에,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


내 말을 전부 들은 후미카는 뭔가 생각하는 듯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다른 기쁨이 서려있는 미소는 과연 '아이돌'이라고 칭하기에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예쁜 미소였다. 후미카는 잠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즉,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사이라는 건가요. 마치 옛 전설에 나오는 각기 한 장의 날개를 가진 비익조처럼. 후후..."


말을 마친 후미카는 앞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고는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새하얀 손에서 전해져오는 온기는 매우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후미카의 손을 포개어 다시 잡았다.


"오늘 이렇게 제 마음을 전해줄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저뿐만 아니라 당신도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셨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었지만, 그저 당신께 이끌린게 아니라 함께 걸어왔다고 생각하니, 하고픈 말이 흘러넘쳐 제대로 말할 수가 없어요."


"..."


"당신께서도 저와 같은 마음이실거라 믿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당신과 같은 경치를 볼 수 있다면, 당신과 함께 앞을 보며 걸어나갈 수 있다면...무심결에, 그렇게 바라고 있습니다."


후미카는 말을 마친 후 내 대답을 기다리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후미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설렘과 약간의 불안이 뒤섞여 떨리고 있었다. 그런 후미카를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달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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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이라 보름달 구경하고 나니 갑자기 필이 꽂혀서 썼습니다

새벽 지름작이라 내일 이불킥 예약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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