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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인사이더>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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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6, 2020 09:48에 작성됨.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alk&wr_id=18690&page=4


위 링크 글에 달린 아룬드님의 댓글 '더스크와 아마릴리스가 정착할 곳을 찾으러 가던중 정신차려보니 구세계로 와버리는 내용으로 부탁드립니다.' 을 바탕으로 해서 적고 있는 리퀘스트 작품입니다. 일전에 제 트위터 상에서 엽편으로 적었던 


https://www.evernote.com/shard/s656/sh/687d8964-151b-47b9-b38f-07319fe94f41/473d61af173f377bcd9bb16edce62f4c 과도 연관이 조금 있습니다(굳이 읽지 않아도 무관)


1편 2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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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프로듀서가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더스크와 아마릴리스는 스텝 일에 잘 적응해, 별 탈 없이 이 곳 765 프로덕션 시어터 아이돌의 무대를 준비해주고 있었다. 


"저기, 더스크."

"아아. 무슨 일이지."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뒷편에서   지금 더스크를 불러세우는 치하야 또한 도움을 받았던 아이돌들 중 하나였다. 각종 자재를 정리하고 있던 더스크는 동작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자신을 쏙 빼닮은 이가, 아직 무대의 열기를 간직한 채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고마워. 덕분에 지금 보일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과찬이군."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걸 보면 당신도 이제, 이 세계에 많이 적응한 모양이네."

"후후, 그런가." 

"노래는 여전히 못하는 것 같지만."

"이봐, 그건."


약점을 찔린 더스크가 발끈했다. 처음 엉망이었던 노래를 선보인 뒤로, 더스크는 몇 번인가 더 연습을 했지만 그리 나아지지는 못했다. 반대로 아마릴리스는 아이돌 데뷔를 하는 것도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을 정도였지만.....더스크가 필사적으로 말리는 모습이 일품이었지. 이런 식으로 보이는 평범한 소년 같은 모습에 치하야는 그만 느슨해지려는 입가를 다잡으며 말했다.


"미안. 좀 지나친 농담이었나보네."

"사람이 다 같은 건 아니니까. 아무리 생긴 게 너와 비슷하다고 말이지."

".....응."


더스크가 지난 일로 얻었던 교훈을 입에 담자, 치하야는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 마디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당신과 나는 닮았다고 생각해. 단순히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음?"

"나는....이 세계에 있으면서도, 이 세계에서 떨어져 있는 것 같았어. 예전의, 이제 막 이 곳으로 온 당신처럼."

"그런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이것 또한 당신과 마찬가지. 그렇지만." 


이 곳에 있는 모두 덕분에 소중한 걸 되찾을 수 있었어. 이 세계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어. 치하야가 도중에 수줍게 웃어보였다. 더스크는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을 가만히 경청했다.


"내가 더스크, 당신과 닮았듯이.....당신도 나를 닮게 된 모양인가봐."

"후후훗."

"....있지, 더스크."


계속 그를 연기하기 위해, 그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던 치하야다. 일견 허심탄회한 것처럼 느껴지는 더스크의 웃음소리에서 일렁이는 일말의 불안감. 그걸 잡아내는 것 정도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응?"

"뭔가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있어?"

"갑자기 무슨 말이지?"


더스크는 애써 평정을 가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과 똑 닮은 눈이 올곧게 지켜보고 있는 한, 도저히 진실을 감춰낼 수는 없었다. 한동안 이어졌던 무언의 실랑이 끝에 더스크는 그만 졌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앞머리를 매만졌다.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꼭 뭔가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그저 속 안에만 감춰두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그래....그렇지."


치하야가 항복한 더스크를 추격하듯이 입을 열었다. 더스크는 내키지 않아하면서도 그에 응했다.


"나는 미래에서 왔다."

"알고 있어."

"나는 연구소의 실험체였어."

"응. 그것도."

"내가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물론이야. 더스크, 혹시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거니?"

"....응."


더스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계속 망설이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본 건, 황무지였어. 풀 한 포기조차 존재하지 않고, 옛 문명들은 흔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아. 이따금 불어닥쳐오는 모래폭풍은, 혹독하지."

"설마....이 세계의 미래가?"

"처음에는 그렇다고 생각했어."


치하야의 추측에 더스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가 보고 있는 미래는, 아마 근미래 아웃사이더의.....즉, 원래 우리들이 있었던 세계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해."

"당신들의 세계는, 전부터....."

"맞아. 그랬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쭈욱."


아무런 변화 없는, 그저 멸망한 세계로 남아있는 게 아닐까. 더스크가 침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있지, 치하야."

"응."

"그 곳에서 죽어가는 아마릴리스만 살릴 수 있다면. 같이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더스크는 아직 정리를 마지치 못해 너저분한 무대 뒷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더스크가 보여주는 쓸쓸한 뒷모습에, 치하야는 조금 더 가까이 그에게 다가갔다.


"이 세계에 와서, 아마릴리스가 살 수 있었어. 그리고 너희들을 만나서 살아갈 터전을 얻었고, 새로운 일을 배웠어. 그렇게 해서 너희들을 빛나게 할 수 있었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엄청난 행운이라고도 생각했어. 이대로 아마릴리스와, 너희들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그걸로 좋다고...."


더스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 없는 조명 탓에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 치하야는 더스크 바로 뒤에 선 채, 그걸 고스란히 받았다.


"우리가 이 곳에 남는다면, 그 곳은 쭉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해. 더는 발전도 무엇도 없이. 오만한 생각일까?"

"글쎄. 그건."


더스크는 마지막에 물음을 덧붙이며, 예전 군대와 함께 세상을 구하겠다 천명한 인물을 떠올렸다. 아마릴리스를 납치해간 원수. 자신의 은인이자 친우였던 버스터 블레이드와 같이 불타는 폐허 속에서 생을 마감했던 그 사람. 파이널데이. 세상을 구하겠다는 그 이상은 분명 멋진 것. 고결한 것. 그렇지만 점점, 그 이상은 모래바람 속에 풍화되어.....


그런 건 싫다. 그 사람과 똑같이 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이대로 편히 있을 수만도 없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황야. 그 세계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남아가는 사람들. 버스터 블레이드의 무기를 고쳐준 어비스. 파이널데이의 본거지로 가는 과정에서 만나, 때로는 싸우며 때로는 도움을 주고받았던 이들....


더스크는 황야에서 맺은 인연들을 결코 잊어버릴 수 없었다. 가장 처음의 가능성에게도 잊혀진 세계라면 자신이 그 가능성이 되어 그 세계를 기억하고 싶었다.


"치하야. 나는 역시.....돌아가야한다고 생각해."


등 돌린 더스크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치하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은 찾아봐야겠지만,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어."

"아마릴리스는?"


치하야의 물음에 더스크의 두 어깨가 움찔했다.


"아마릴리스에게는...."


더스크는 말 끝을 흐렸다. 아마릴리스가 처음 이 세계에서, 하루카와 에밀리, 그리고 카나와 아유무와 같이 불렀던 노래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아마릴리스는 자신에게 있어서 무척 소중한 사람. 다시는 떨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 그렇지만....자신과 같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돌아갈 세계는, 그에게 있어서는 독. 겨우 얻어낸 빛을, 생명을 잃게 할 수는 없어.


"이 세계가 나은 것 같아."

"기다려!" 


더스크가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을 때였다. 돌연 자신의 한 손을 낚아채는 느낌이 들어, 더스크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진검 같이 날카로운 두 눈을 하고 있는 치하야가 있어, 더스크의 힘없는 손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치, 치하야!"

"그런 건....혼자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돼."


혹시라도 더스크가 혼자서 사라질까 두려웠던 걸까. 치하야는 붙잡은 손에 또 다른 손을 더해 포개었다. 더스크는 멍하니 서 있다가, 곧 자세를 바로 하고는 가볍게 잡힌 손을 몇 번 흔들었다. 그제서야 더스크가 원하는 바가 뭔지 알아챈 치하야가 천천히 두 손에서 힘을 빼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직 더스크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로.


"더스크. 당신에게 있어서 아마릴리스는 무척 소중한 사람이겠지."

"물론, 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야. 먼저 이야기를 해봤으면 해. 같이 갈지, 아니면 남을 건지 그 애도 정해보라고 해. 네 멋대로인 결정을, 그 애가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걸."

"......"


치하야의 지적이 정곡을 찔렀다. 더스크는 면목없다는 투로 빛 바랜 고글에 손을 올렸다. 


"네 생각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해. 그곳은 위험하겠지. 그렇지만, 그 애를 혼자 놔두지는 말아줘.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오히려 그 편이 그 애를....아마릴리스를 괴롭게 할 것 같으니까."

".....고마워, 치하야."


더스크가 고글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 손을 떼었다. 그리고는 감사의 의미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치하야는 그제서야 시선에서 날카로움을 거두었다.


"더스크. 내가 아는 근미래 아웃사이더는, 가혹한 이야기였어. 잃어버린 걸 되찾으려 발버둥치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너는 무언가를 다시 얻었고, 또 무언가를 잃었지."

"...."

"앞으로는 넌, 더 이상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겠네."

"응."


우리가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던 건 현실. 내가 연기했던 너는, 지금 내 눈 앞에 있어. 마치 거울상과도 같았던,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던 너. 그리고 너는, 이 곳을 뒤로 하고 다시 그 황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구나. 삭막하고, 황량하고. 최소한의 생존마저도 불투명한. 치하야는 자신고 똑 닮은 친구를 붙잡고 싶어지는 마음을 억눌렀다. 그리고는 가능한 한 다정함을 가득 담아,


"행운을 빌게. 그 곳에서 부디, 네가 생각하는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치하야......"


앞으로 그가 걸어나갈 길을 축복해주기로 했다. 


"미안.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어서."

"아니, 괜찮아. 충분해."


말 정도는 누구든 못할까. 내심 걱정했던 치하야였지만, 그 걱정이 현실이 되는 일은 없었다. 더스크는 걱정하지말라는 듯 이를 보이며 씨익 웃어보였다. 그 나이대 소년 같은, 시원한 미소. 그리고는 일부러 한 톤 높인, 활기를 띤 목소리로 전했다.


"고마워."


치하야의 축복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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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분이 사라졌다....이제 주말에 마저 써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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