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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우(初雨) - Cold Rain」 하기와라 유키호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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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2, 2020 18:10에 작성됨.

이 작품은 트와이스 팬픽, 어느날 네가 나타났다의 외전, 초우를 기반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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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린다. 근래 들어 제법 따가운 볕을 만들어 내던 햇님은 거짓말처럼 흔적을 거두고, 마른 땅 위를 살포시 감싸주는, 올해의 첫 비가 내린다.


 후두득- 천천히 유리창을 잠식하는 빗방울을 보며 어떤 감흥도 들지 않음에. 지금의 분위기를 천천히 즐겨본다.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어. 내 마음이 어떤지. 언제까지 빙빙 돌려가면서 그를 꿈꿔야 하는 건지.


 그래. 한 사람을 양분된 길 위에서 다가서지 못하고, 그저 꿈꿔야만 한다는 건. 답이 내려져 있음을 의미해도. 나는 애써 부정 할 수밖에 없다. '호감', '사랑', 미세한 차이에서 방향의 진정성이 달라지는 행동의 끝. 이미 떠나버린 사람을 구름 위로 추억해야만 하는 지금을. 오늘도 거짓된 정의로 단정 지어본다.


짝사랑. 아니, 끝사랑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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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시작점에서 그의 주위를 멈추지 않고 머무는 햇살이 많아,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하루카, 코토리 씨, 그리고 미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리고 시간이 무르익었을 때. 아카바네 켄지 라는 사람에 대해 경계가 풀리고 관찰을 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그의 곁으로 내가 먼저 다가서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먼저 어리광과 같은 투정으로 관심을 돌리려고 했다.


 남자가 무서워. 극복하고 싶어. 도와줬으면 좋겠어. 프로듀서의 입장에선 어린 아이의 치기어린 투정으로 보였을 거다. 말없이 눈을 굴리면서 눈치만 살피던 아이가 어느 샌가 손을 잡는데도 주저함이 없이, 텅 빈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으니까.


 1년이나 지났지만 죽만 쑤던 765의 혁신을 위해 ALL STARS 프로젝트는 시작되었고, 프로듀서는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가 어울리는 시간이 늘수록 알게 된 그의 모습. 765의 프로듀서, 야요이의 가족, 하루카의 생명의 은인,


그리고......


미키의 연인.


 부럽다. 미키가 프로듀서와 사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왜 그런 감정이 드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왜? 같은 감정 속에, 마음을 함께 하고. 행동을 같이 하는 것뿐이잖아. 부러울 이유가 있어?


 갑자기 머리를 들이밀어 대비하지 못하고, 온전히 나타난 감정. 미키의 옆에는 프로듀서가. 프로듀서의 옆에는 미키가. 언제나 혼자가 아닌 둘을 바라보면서 찾아온 답은.


함께니까. 함께라서 부러운 거야. 너와 내가 아니야. 우리라서, 그 안에 나는 없기 때문에 동경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나도 사이에 들어 갈 수 있을까? 틈이라고는 볼 수 없는 둘의 사이에?


 아니. 답은 애초부터 정해졌어. 안돼 유키호. 아니잖아. 네가 뭐라고? 프로듀서한테 너는 그저 담당 아이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니?


그래도, 노력을 해보면... 내가 좀 더 다가선다면 프로듀서도......


......


 망상이야. 내 관점에서 이후의 모든 일을 풀어감에, 합리화를 하는 것. 너는 하기와라 유키호, 그걸로 끝이야. 뭘 꿈꾸고 있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웃음이 나온다. 너무나 허무해서 시작조차 할 수 없음에, 웃음이 나온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유키호. 너 참 비참하다. 그치?


 비도 같다. 저토록 장대한 존재감이 순식간에 말라버려 사라진다는 걸. 내 사랑도 때가 지나고 말라버리게 되어있다는 상실감, 결국 눈을 감고야 말았다.


 푹신한 이불보를 몸에 감싸도 따뜻하지 않아. 넓은 방안에 흐르는 기온이 차가워서. 그만큼 내 마음도 차가워져서. 움직일 수 없이 천장을 바라보게 된다.


달님. 하얀 달님. 달님도 온기가 필요한가요? 밤마다 혼자 떠있는데 외롭지 않아요?


하안 천장, 하얀 달님.


"미쳤어......"


꿈을 꾼 것처럼 몽롱한 환상. 정작 아무것도 없어. 정말 미쳤구나?


"후......"


 심장이 뛴다. 프로듀서를 생각하는 순간이 끝나면, 매번 심장은 가눌 수 없이 뛰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가슴이 동반 된 후 미려하게 저려오는 손과 발.


 프로듀서가 떠난 그날부터. 미키와 그가 교제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몸의 이상.


숨이 가빠온다. 눈앞이 흐려져 시야가 불분명해질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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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꿨다. 미키와 프로듀서의 아이를 내가 업어주고, 보듬어 주며 잠을 재우는 꿈을. 어째서 내가 저기 있는지. 바보처럼 아이의 모습에 동화되어 웃고 있는 건지.


 구역질이 나와 참을 수 없다. 거짓된 가면을 쓰고 가장 비참해진 모습의 나를 볼 수가 없었다. 감아야 한다. 더 이상 비참한 광경을 보지 않게.


나는......


약냄새, 부자연스럽게 둔감한 왼쪽 팔.


여기가 어디지......


불규칙하게 들리는 레벨미터 소리, 새하얀 천장, 차가운 침대.


 병실... 침대에 누워서 잠에 들었고. 아니, 잠에 들기도 전에 정신을 잃어버려서. 이제야 깨어난 건가......


"흐흐......"


 웃음이 나왔다. 어디까지 밑바닥으로 떨어질련지. 아이돌이라는 자가 제 몸 하나 관리하지 못하고 이 지경에까지 다다르다니.


"아흐흐......"


 최악이야. 연습은? 스케줄은? 나 하나 때문에 모두가 감당했을 피해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려, 더없이 몸을 가눌 수가 없다. 지울 수 없는 죄를 혼자 짊어진 것 같아서. 결국 피하고 만다.


 가슴께를 덮은 이불을 치우고 옆에 드러난 미키의 얼굴. 침대에 얼굴을 댄 채 잠에 빠진 그녀가 깰까, 조심스럽게 땅에 발을 딛었건만 소리가 컸나보다.


"...유키호."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든 그녀는, 뭐에 놀랐는지 살짝 입을 벌렸다가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다행이야. 걱정했어. 눈가에 묻은 다크서클 위로 온전히 보이는 미키의 감정. 또르르 흘러내린 눈물이 손등에 떨어지고. 물밀듯이 쏟아져 내린 미안함이 복받쳐서. 아이 같이 숨죽여 울었다.
그런 나를 미키는 안아 다독여 준다.


 "유키호... 많이 아파?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미안해... 내가 나빴어. 미안해 미키......
 욕심을 부리고 싶었어. 너에게서 프로듀서를 빼앗고 싶었어. 한 번쯤은 그의 곁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었어.


들리지 않겠지만 전하고 싶어서. 눈물은 죄를 씻겨버리고 싶은 건지 멈출 줄 모르고 흐른다.


"미키! 유키호... 어? 유키호 왜 울어?"


미안해 하루카. 내가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줘.


"유키호 많이 아파? 괜찮아. 괜찮아..."


 이유 없는 걱정. 제일 먼저 나를 생각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그녀들의 걱정이 너무나 아파서, 미안해서. 애써 웃음을 띄운 채 보려고 해도 눈물에 젖어, 시선이 얼룩져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괜찮아 하루카. 괜찮아 미키..."


고마워. 나보다도 너희들이 더 슬플지 알면서도 투정을 부렸어. 잊을게. 내가 잊을게.


프로듀서를 보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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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키호가 쓰러졌다. 프로듀서가 미국으로 떠난 직후, 기운이 없어 보이다가 갑자기 웃어 보였고. 밥을 먹다가도 그림을 그리러 사라지는 등. 알 수 없는 이상함을 보이던 유키호가 별안간 기절을 해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아미의 아버지가 의사인 병원으로 찾아가 빠른 입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과정을 생략한 채로 그녀를 병실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 유키호가 깨어나면 진료를 해보자는 의사의 말에도 너무나 걱정이 되어, 하루카는 홀로 후타미 씨를 찾아가 그간에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사무소와, 스케줄. 그 안의 유키호의 일상을 숨기지 않고.


"신경성 심계 항진이로구나. 폭식, 실소, 그 밖의 돌발적인 행동. 너무나도 전형적일 정도로군."


"신… 그게 뭐에요? 유키호가 심각한 병에 걸린 건가요?"


"아니. 유키호 양이 깨어나면 정확하게 진단을 해봐야겠지만... 연예인이니 잘 알겠지? 공황장애 말이다."


"공황… 장애요…?"


"그래. 쉽게 말하자면 하루카 양이 불치병에 걸렸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언제 약이 만들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시면 어떨 것 같으니."


"어... 불안할 거 같아요."


"그래. 불안한 거야. 유키호 양은 불안해하고 있어. 혹시 과거에 크게 충격적인 일을 겪은 적이 있니?"


"아니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크게 일이 있던 적은 없었는데…."


"사고 같은 게 아니여도... 소중한 사람을 보냈거나, 떠났거나. 이별을 겪은 사람에게 오기도 하지."


 말도 안 된다. 유키호가 공황장애를 겪었다니. 오랜 시간동안 무명으로 지내다, 계속해서 피할 수 없이 쏟아진 대중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나.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리더로서, 활동을 이어나가는 과정이 힘들어서, 나 홀로 버티기에도 급급해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지 못했다.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병실로 향하는 와중에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유키호... 무슨 일이 있었니. 우리에게 말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일이 무엇이길래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 거야.


......


정말 미안했다. 변명을 해서. 활동이 힘들었다는 건 다 핑계였다. 버틸 수가 없었다. 프로듀서가 생각나서, 지우려고 해도 자꾸 생각나서.


... 정신 차려 하루카. 리더잖아. 리더답게 이제부터라도 도와주는 거야. 유키호도, 다른 아이들도.


너는 리더니까.


 깨어났을까... 슬며시 병실 문을 열고 들여다보자 미키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유키호가 보였다. 마음이 무거워져, 나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웃어야 했다.


 괜찮아. 괜찮아 유키호. 함께 이겨내 보자. 나도. 너도. 우리는 가족이잖아. 내가 도와줄게. 너의 옆에서 잊을 수 있게.


나도... 잊을 수 있게.


프로듀서를 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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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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