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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가 나비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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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8, 2020 22:26에 작성됨.

"그럼 잘 가."

"잘 지내세요."

미야는 프로듀서와 갈라져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간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도착한 뒤 가면은 벗겨졌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로듀서는 미야에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다년간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사무적 관계로만 지내왔던 것을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미야는 성인이 되자 프로듀서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둘은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듀서는 점점 미야와의 연애에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다. 지난 세월을 모두의 성장에 바친 그에게 한 여자만의 사랑은 너무 벅찼다. 언제부턴가 프로듀서는 높은 위치에 오른 미야가 자신을 사랑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지만 미야의 기분이 상하는 일을 우려해 모두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다. 미야가 승승장구할수록 의문은 확신이 되어갔고 결국 프로듀서는 자신은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존재일 뿐이기 때문에 미야의 앞날을 위해서는 더 이상 가까워져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미야는 자기 방 바닥에 주저앉아 양 손에 얼굴을 묻고 폭포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가 오열하는 모습은 평소의 느긋하고 태평하며 밝은 미야라면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프로듀서... 거짓말쟁이... 안 버린다면서요... 10년이든... 몇 년이든... 함께한다면서요!"

지난날의 달콤한 대화가 기억속에 아직 머물러있었지만 이제 미야에겐 아무 소용도 없는 기억일 뿐이었다. 그 사실들은 도리어 슬픔만을 더 불러올 뿐이었다.

"계속 믿었는데..."


그 날 이후, 미야는 무기한으로 휴식기를 가지기로 결정했다. 지금의 컨디션은 도무지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제일 급한 건 역시 심신의 안정을 되찾는 일이었다.


수 달이 지난 뒤, 어느 날 미야는 재밌는 것을 보고 기운을 차리고자 TV를 켰다. 하지만 화면엔 거짓말같이 방송에서 자신이 프로듀서를 언급하는 장면이 나왔고 트라우마가 자극된 미야는 TV를 끄고 리모컨을 던지듯이 치워버렸다. 기분이 상해버린 미야는 바람이나 쐬기 위해 집을 나왔다.

거리를 배회하던 미야의 눈과 귀에는 동료들의 활약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미라이와 시즈카, 츠바사의 신곡, 모모코가 출연한 영화의 포스터, 엘레나가 광고하는 아이스크림까지. 문자 그대로 어딜 가도 동료들의 얼굴이 보였다.

"같이 일할 때는 좋았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미야의 동료임과 동시에 자신과 헤어진 프로듀서의 동료였다. 소속사를 바꾸지 않는 이상 활동을 재개한다는 것은 그를 다시 본다는 뜻이기도 했다.

미야의 발길이 닿은 곳은 극장 근처에 있는 고양이카페였다. 평소에도 고양이를 좋아했던 미야가 아무 생각없이 고양이를 보며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지만 오늘은 진심으로 고양이들이 필요해졌다. 자리를 잡은 미야는 사람 손을 제일 잘 타는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오자 웃으면서 쓰다듬어준 다음 마음 속에 담아두던 말을 꺼냈다.

"오랜만이네요... 여기 오는 것도. 예전엔 퇴근할 때 가끔 들렀었는데, 그 때는 아무 걱정도 없었죠."

고양이는 미야의 무릎 위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이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은... 다시 일하러 가기가 겁나요. 한 때 사랑했었던, 지금은 아닌 사람을 보는 건 저라도 주저하게 되네요. 얘기가 많이 어렵죠? 헤헷, 사람으로 사는 건 참 복잡하네요. 저도 차라리 고양이였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슬픈 생각 없이 언제든 느긋하고 편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미야는 고양이가 편한 친구인 것처럼 하소연을 했다. 또 다른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날 밤, 미야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라? 웬일이시지...?"

발신자는 같은 유닛이었던 엘레나였다. 미야는 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잘 지냈어?"

"엘레나씨... 어쩐 일이세요?"

"카페에 있는 걸 봤는데 기운이 너무 없어보이길래 걱정되서 전화해봤어!"

"엘레나씨...!"

미야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보고 생각해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나중에 우리 뭐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 기운차리는 데는 먹는 거 만한 게 없다구!"

"네, 엘레나씨. 다음에 같이 가요."

그렇게 둘은 어느 유명한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꼭 와보고 싶었어! TV에서도 엄청 맛있는 데래!"

"오~ 기대되네요~ 언젠가 여기 이름을 들어봤는데 그게 여기였는지는 몰랐어요~"

"어디에서 들었는데?"

"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음식이 나올 때, 이야기는 서로의 근황 쪽으로 넘어갔다.

"그 동안 뭐 하고 지냈어?"

"종일 집에만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다 밖에 나가면 동료들이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는지만 보여서 마음이 복잡했어요~"

"난 미야가 너무 보고 싶었어! 한 동안 없으니까 765프로가 절반은 빈 것 같더라니까? 다들 미야를 보고 싶어한다구!"

"다들...이요? 프로듀서씨는..."

프로듀서 얘기가 나오자 엘레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인물과 관련된 말은 미야에게 신중하게 해야 했다.

"프로듀서는... 그만 뒀어."

"정말... 인가요?"

"응. 그 날 이후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765프로를 떠났어. 잡으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더라구."

프로듀서가 떠났다. 어떻게 보면 미야는 이제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그 정도로 죄책감을 가지는 것을 원한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절대로 기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미야가 필요한 거야. 이제 남아있는 우리가 더 똘똘 뭉쳐서 전보다 더 열심히 활동해야 하는데 미야만 빼놓고 할 수는 없잖아."

"이미 무너진 제가... 함께 해도 괜찮을까요?"

"만일 지금 너무 힘들면 나중에라도 와도 돼! 미야가 돌아와서 다 같이 예전처럼 즐겁게 일할 날을... 계속 기다려줄테니까!"

둘은 그 뒤에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갔다. 미야가 보고싶은 사람은 아직 많았지만 엘레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럼 바이바이~!"

"또 만나요~"

식사가 끝나고, 미야는 엘레나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친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항상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현재는 매번 그러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이 아팠다. 본인의 선택이라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게 되겠지만 실연의 아픔이라는 껍질은 아직도 자신을 단단히 묶어놓고 있었다. 스스로 깨기에는 너무 단단한 껍질이었다.

잠들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미야는 스마트폰을 켰다가 수십개의 읽지 않은 메시지를 발견했다.

'하긴, 요즘 통 문자를 안 봤으니까요~'

목록을 본 미야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활동 중단을 선언한 그 날부터 765프로의 동료들은 계속해서 응원을 보내고 있었고 프로듀서에게서 온 장문의 사과도 있었다.

"미안해, 미야. 끝까지 함께 해주지 못 해서, 나날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미야를 보면서 생각했어. 미야를 톱 아이돌로 만드는 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고. 그래서 765프로를 떠나기로 했어. 새로운 곳에서 나도 성장하고 싶어서. 이 문자를 볼 때 쯤에는 이미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765프로는 이제 나 없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그러니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동료들 곁으로 가서 열심히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해. 멀리서 언제나 응원할 테니까."

메시지를 전부 읽은 미야는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자신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 멘토이자 옛 열정의 불꽃의 뜻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손꼽아 기다리는 동료들의 곁으로 가는 것이 그녀가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들 오랜만이에요~" 765프로 극장은 미야가 휴식기를 가지기 직전과 거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프로듀서의 유무만 빼면 동료들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미야! 돌아왔구나!"

"오랜만이야~!"

"잘 돌아온 거에요!"

엘레나를 시작으로 아이돌들은 돌아온 미야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이제 중학생 티가 나는 이쿠부터 남은 동료를 이끈 하루카, 최연장자 코노미까지, 모두 함께 기뻐했다.

"고마워요, 모두들~ 잠깐 쉰다는 걸 너무 오래 쉬어버렸는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미안하긴 무슨! 미안해야 할 건 프로듀서지! 자기가 뭔데 미야를 차고 도망가?!"

노리코가 프로듀서 탓을 하자 미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프로듀서씨는 도망간게 아니에요~ 저희가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준거죠~ 너무 미워하진 말자고요~"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 사람이 너무 착한 거 아냐?"

"후후훗~"

단순히 착해서가 아니라, 미야는 정말로 프로듀서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에 머무르지 않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게, 번데기를 나와 나비가 될 수 있게 해주었기에. 여기까지 이끌어준 사람이자 한 때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의 판단이라면 분명 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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