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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다리는 소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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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6, 2020 13:08에 작성됨.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이에요. 간주가 치고 들어오기도 전에 지나치게 밝은 소녀들의 합창이 노래를 시작한다. 그러면, 그 한 소절 외에 특별할 것도 없는 무대에 관객들은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열광할 수밖에 없는 핫팬츠에 탱크톱 차림이어서일까. '오토메스톰'을 기획한 프로듀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환호를 보내는 이유는 이들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서, 능숙하지 않아서, 감출 줄 모르고 순수해서, 그래서 역으로 매혹적이다. 그게 소녀가, 이 신인 아이돌이 아름다워보이는 이유다. 계절로 표현하자면 한창 초록색으로 물들 때인 여름이다. 그렇다, 여름이다. 여름 아니랄까봐 선풍기가 탈탈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데도 무대를 보고 있으면 덥다. 프로듀서는 보이지도 않는 관객석의 팬들이 얼마나 열심히 소리를 지르고 응원봉을 흔들고 있을지 상상하며 자꾸 떠오르는 좋지 않은 감정들을 흔들어버리려고 했다. 가령 주말에 '거짓말쟁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보냈던 츠바사라던가. 그 이후 성질 더러운 아기고양이처럼 굴고 있는 츠바사라던가. 평소답지 않게 오토메스톰의 구호에 충실히 따라주던 츠바사라던가....

"허~니."

"미키? 여기는 어떻게..."

"쉿, 잠깐만 보다가 바로 갈게. 그러니까 리츠코한테는 비밀로 하는거야."

".....레슨 빼먹었구나?"

"무슨 소리야? 쉬는 시간이 조금 긴 것 뿐인걸."

알았다. 이미 온 걸 어쩌겠어. 프로듀서는 습관처럼 미키의 머리를 헝클이고 다시 무대에 집중

"미키...."

하려고 했는데, 왜 팔에 미키가 꼭 붙어있는걸까? 

"허니, 무대에 제대로 집중해줘야지. 그리고 무대 뒤에서 소리 내는 것도 금지야?"

어떻게 반박을 못하겠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데, 이래서 애를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안 된다고 하는구나. 프로듀서는 어쩔 수 없이 미키를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계속 감각이 그쪽에 쏠리는 것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어린 담당 아이돌이라도, 여자가 팔을 감싸안듯이 하고 달라붙어있으면 게이거나 무성애자거나 저 먼 후지산에서 도 닦는 도인이 아닌 이상 무대를 모니터하는 프로듀서의 의무에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아니, 그런데 미키가 오기 전에도 집중은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건 분명 츠바사 때문이었다. 그리고 츠바사는 프로듀서가 배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절규하던 그 날, 미키를 만나는 걸로 되어있었고. 그렇다면 미키는 무언가 알지도 모른다, 까지 프로듀서의 사고가 미쳤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하지만 노래는 아직 들려오고 있었다. 2절의 첫 소절이다. 그러니 무대에서 소녀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짧은 대화를 나눌만 한 시간이 있다. 미키가 뜸 들이지 않고 대답해준다면야. 그리고, 미키는 대부분 프로듀서가 한 질문에 한해서는 간단히라도 빠르게 대답하는 편이다. 조금 비겁하지만 프로듀서는 츠바사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동료 아이돌 찬스를 쓰기로 했다.

"있잖아, 미키. 혹시 전에 츠바사랑 놀러 갔을 때, 무슨 일 있었어?"

".........."

"미키?"

대답이 들리지 않자, 프로듀서가 재빨리 고개를 숙여 미키를 보았다. 미키는 놀란, 아니 놀란 것보다는 마치 도미노를 실수로 무너뜨려버린 어린 아이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은 프로듀서를 향해서가 아니라 무대를 향해서다. 

"미키, 괜찮..."

"...허니. 미키 가볼게."

"응? 아, 응."

"츠바사한테는, 1절의 후렴구에서 다시 간주로 넘어가는 구간에서 조금 더 힘을 빼는 편이 좋을 거라고 얘기해줘. 미키가 말했다고는 하지 말고."

"....그래."

지금 상태에서 춤까지 관리질을 했다가는 냥냥펀치 얻어맞을 것 같은데. 하지만 프로듀서는 현명히 아무말도 하지 않고 미키를 보냈다. 어른스러운 대처와는 달리, 조금은 덜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걱정거리가 두배로 늘어났다. 1) 츠바사에게 사과를 해야한다면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2) 미키는 대체 왜 그런 표정을 지었나? 혹시 극장 안에 쥐가 있었나? 아, 만약 정말로 이것이 이유라면 세번째로 분류해야 한다. 쥐가 있다면 정말로 큰일이니까. 3) 극장 안에는 쥐가 있었던건가? 4) 그럼 바퀴벌레는, 뭐 그건 당연히 있기야 하겠지만, 5) 그것들을 전부 처리하려면 비용은 어떻게....

"와-!!!!!!"

"감사합니다, 오토메스톰이에요!"

"앞으로도 노래 많이많이 들어줘~ 예이!"

무대가 끝났다. 퍼뜩 정신이 든 프로듀서는 예의 친절한 눈웃음을 지으며 땀투성이가 된 소녀들을 맞이했다. 

"수고했어."

미안해, 무대는 잘 보지 못했어. 그러니까 무대 좋았어, 라고는 칭찬해줄 수 없어. 그런 속마음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에 무대 좋았다는 말이 빠졌다는 것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물이 급했고, 곧바로 다음 무대를 위해 준비해야했으니까. 프로듀서는 수건 따위를 건네주며 한명한명의 표정을 살폈다. 특별한 이상징후가 보이지는 않는다. 생수로 병나발을 부는 츠바사조차 다음 무대로 향할 결의로 가득해보였다. 프로듀서 씨, 다녀올게요. 미라이가 웃으며 먼저 힘차게 무대로 향한다. 쥬라기의 아기공룡처럼 해맑게 웃는 유리코도 그 뒤를 따랐다. 다음은 츠바사, 안나, 미즈키 순으로 다시 올라간다. 다음 곡은, 올스타즈의 '레디'를 커버합니다. 선배님들처럼 멋지게 해내지는 못하겠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마이크로 크게 울리는 미라이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군대와 같은 팬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

"아까 미키 선배 왔었죠?"

"어, 봤어? 아니, 잠깐. 미키 선배라고?"

"으응, 뭐. 그렇게 부르게 됐어요. 뭐가 그렇게 놀랄 일이에요?"

"....아무것도."

프로듀서가 호칭보다 더 놀란 것은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오는 츠바사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좋은 징조다.

"츠바사, 그 때 보낸 문자 말인데... 어떻게 된거야?"

"감기, 안 걸렸었잖아요."

징조는 징조고 츠바사는 아직도 삐져있다. 미키가 그렇게 말하던? 프로듀서는 멋 없게 웃으며 묻고, 츠바사는 뾰루퉁하게 프로듀서를 쏘아보았다.

"왜 그랬어요? 그 전 날까지 저랑 같이 있었으면서 그런 거짓말을!"

분명 츠바사는 프로듀서가 그 자리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듀서는 단지 미키의 말을 과하게 충실하게 따른 죄밖에 없다. 미키가 츠바사와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어달라길래, 셋이 만나자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미키가 프로듀서를 끌어들인 목적이 '둘이 만날 명분이 없어서'라면, 프로듀서는 명분만 만들어주고 빠지면 된다. 이 계산에 츠바사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하지만, 츠바사는 미키가 아니라 프로듀서와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거다. 프로듀서는 그제야 모든게 설명되는 느낌이 들었다. 번개가 번쩍 내리치는 것 같았다. 

"미키가 셋이 만나자고 했었던거지."

"....응."

"미안, 츠바사. 나는...."

"........."

"나는, 미키가 츠바사와 함께 있을 시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단지 그것 뿐인줄로 알았어. 네 기분을 생각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미키에게도 생각이 짧았다고 얘기해두도록 할게."

어른이 소녀 앞에 고개를 숙였다. 소녀는 그 정중한 머리에 다소 마음이 복잡해졌다.

".....괜찮아요, 프로듀서 씨."

"......"

"다시는 거짓말 하지 말아요. 저, 프로듀서 씨가 우리 바람맞힌 줄 알고 조금 서운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된거에요."

"담당 아이돌인걸. 절대 바람맞히고 싶지 않다고."

"그런거에요?"

"물론이지. 그리고... 내가 같이 놀러가는걸 원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어. 언제가 좋을까?"

조금씩 골머리를 앓던 문제가 풀려가는 기미가 보였다. 프로듀서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츠바사를 붙잡았다. 이로서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을 터였다.

"응, 뭐 아무때나......."

생각 없이 대답하던 츠바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간이라면 지금이라도 괜찮은데, 어디에 가고 싶은지도 말해줘."

"잠깐. 잠깐만요."

"혹시 차를 가져가야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진심이에요?"

"응."

평소에 얘기를 꺼내던 드라이브까지 제안했는데 츠바사의 반응이 이상했다.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동공은 커졌고, 목소리의 톤은 높아졌다. 단순한 변화지만 프로듀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무언가 이상하다. 곧바로 들떠서 이것저것 말을 할 것 같은데, 진심이냐는 이상한 확인 질문만을 한다. 혹시, 아직도 풀리지 않은건가 싶어 프로듀서가 말을 덧붙였다.

"거짓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렇게 약속했는데 바로 어길 사람은 아니야."

"응, 알아요."

".....고맙네요."

"있잖아요, 그러면... 이거, 찬스죠?"

"찬스....라니?"

"프로듀서 씨랑 둘이서 놀러가는 찬스. 바로 쓰지 않고, 킵해둬도 되는거죠? 어떤 때라도 쓸 수 있는 찬스로요."

프로듀서는 '어떤 때라도'라는 클리셰적인 시간 설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거나 츠바사가 스케줄이 있는데도 무작정 리스크를 감행할 아이는 아니란 것을 알기에 어물쩡 수락했다. 이걸로 츠바사와의 갈등은 봉합된 걸까. 혼자 토라지지 않고 바로 털어놔주어서 다행이라고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그러나, 물어볼 것이 있었다.

"그런데 혹시.... 미키도 나한테 화나 있어?"

"글쎄요.... 오늘 미키 선배 왔을 때 무슨 말 안 했어요? 애초에 왜 왔던거에요?"

미키는 평소와 별 다른 점이 없었다. 이상한 말도 하지 않고, 아, 팔짱은 껴왔다. 그런데, 그러다가 중간에 나가버렸다.

"너네 무대를 보러 온 것 같았는데... 중간에 말이야. 조금 이상한 표정을 짓더라고."

"응?"

"충격 받은 표정.... 이라고 해야하나? 응, 약간 그랬어."

"으~음, 쇼크? 우리 안무 틀렸던가 했어요? 아니면 실수로 속옷이... 아, 하지만 바지였는데. 혹시 노래에서 어느 부분에 그랬는지, 기억나요?"

"음... 2절의 시작 부분이려나. 그리고는 바로 나가버렸어. 레슨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요...."

역시 츠바사도 별 수 없나. 무대를 하고 있었으니까 미키도 아주 잠깐 본걸테고. 프로듀서가 그냥 나중에 미키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단념하려던 차에, 어떤 직감이 프로듀서를 강타했다. 츠바사는 무언가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직감. 

직감은 언제나 오는 것은 아니다. 틀릴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맞을 것 같은 예감은 있지 않은가. 동전을 넣고 뽑기 인형 기계 앞에서 기다릴 때, '왠지 이 버전이 나올 것 같아'라는 두근거림이 그것이다. 왠지라는 말은 무서운 것이다. 예감이라는 것이 그렇다. 왠지, 왠지 그럴 것 같다.

"짐작가는게 있는 것 같은데."

"아뇨....."

츠바사가 소파에 뺨을 대고 기댔다. 프로듀서는 끈기있게 대답을 기다렸다. 츠바사가 말을 흐리는 간격에, 예감은 어느덧 확신이 되어가고 있다. 확실히 해둘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2절 시작 부분이라면 말이에요."

"응."

".....우리, 눈이 마주쳤었어요."

그게 다? 

응. 그게 다. 

이번에는 츠바사가 멋 없이 웃었다. 하지만 뭐, 귀여우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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