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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프로듀서 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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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4, 2020 22:14에 작성됨.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나마 쬐는 해는 언제나 따스하고 아름답다. 마치 겨울이라는 것이 오지 않으리라는 듯이, 인생에는 그저 행복하니 가득해 그 어디에도 밤이 오는 것을 볼 수 없다는 듯이. 아아, 보인다. 따스한 햇살을 머금고 미소를 짓는 꽃들이 보인다. 따스한 햇살에 맞춰 살랑살랑 춤을 추는 꽃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리고-


「....전화?」


그 순간, 전화기가 자그마하게 울린다. 이상하다. 시계를 쳐다봐도 점심시간이 끝나기에는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보고서 독촉 전화일까. 그래,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받을수도 받지 않을수도 없는 저주스러운 전화. 하지만 휴대폰의 대기화면에서 점멸하고 있는 번호를 봐서는 그런 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누구에게서 온 전화지. 어리둥절함을 머릿속 한가득 집어넣은 채, 나는 전화기를 열어 전화를 받았다.


「네, 저는-」


「오랜만이네, 프로듀서 씨.」


「....카나데.」


「어머, 그리운 울림이네.」


정말로 몇 년 만에 들어보는 그녀의 목소리일까. 아마 얼추 해서 10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래, 10년이다. 과거의 잘못된 인연에서 멀어진 시간.


「저기요, 프로듀서 씨? 듣고 계신가요?」


「그 호칭으로 부르지 마, 카나데. 이제는 더 이상 프로듀서가 아니잖아.」


카나데 특유의 고혹적인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는, 과거 따위는 다 잊어버렸다는 듯이 아직도 나를 프로듀서라고 부르고 있었다. 프로듀서. 그래, 10년 전 즈음의 나는 이런 작은 회사의 사무원이 아니라 프로듀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 지금의 나는 회사의 작은 기계부품일 뿐. 그러니까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연예인인 하야미 카나데는 나와 엮여서는 안 된다. 어디에 파파라치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어머, 그래도 이 쪽이 부르기 편한걸? 아, 혹시 마음에 안 들어? 그래도 난 계속 부를거야.」


「정말 고집스럽다니까, 카나데는.」


「후훗, 그야 당신이 키운 아이돌인걸.」


아이돌. 분명히 카나데는 5년 전에 아이돌을 그만두고 연기자로 전업했을 터였다. 그런데 아이돌이라니. 정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카나데는 변하지 않았구나. 나는 이렇게나 흉한 아저씨로 변해버렸는데.


「프로듀서 씨?」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생각할 것이 조금 있었어. 그보다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 거야? 아는 사람이라고는 지금 다니는 회사 사람들밖에 없는데.」


「알아내는데 정말로 힘들었어. 당신은 10년 전의 일로 사라지고, 그 어떤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그야 당연하지. 그 때의 나는-」


죽으려고 했다. 10년 전의 그 일로 나는 죽으려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나의 죽음이 아니면 이 일을 마무리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목숨과도 같았던 그 아이였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프로듀서 씨.」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조금의 용기를 낸 듯한 목소리로 카나데의 감사가 들려온다. 그녀의 감사를 들은 나는, 내가 그 감사를 들을 만한 자격이 되는지 잠시 생각했다. 그래, 나는 감사받을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책망을 들었다면 들어야겠지만 말이야.


「....그보다 카나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무슨 일 있어?」


「으음, 그렇네.... 프로듀서 씨, 혹시 이번주 주말에 시간 돼?」


「주말?」


「응.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 준다면 만나고 싶어서. 안 될까?」


주말, 주말이라.... 그야 물론 시간이 안 되지는 않는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월급은 짜도 주말과 출퇴근 시간은 정확하게 지켜주니까 말이야. 하지만....


「안돼, 카나데. 갈 데가 있어.」


「갈 곳?」


「응. 그래서 안 될 것 같아.」


난 카나데를 만나서는 안 된다. 내가 만날 자격이 되지 않는다. 과거의 인연으로 만나서도 안 된다. 그 인연은 그 아이... 마유가 죽은 10년 전의 사건에서부터 끊어졌으니까.


「...그렇구나. 그러면 어쩔 수 없네.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할 때는 꼭 만날 수 있게 해줘야 해?」


「....응.」


그 한마디를 끝으로 끊어진 전화.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며 휴대전화를 잠시 쳐다보았다가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파란 하늘은 아무런 걱정도 없다는 듯이 맑기만 하다. 그 덕분에 기운이 난 것일까, 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휴대전화를 든 손을 양복 앞주머니에 쑤셔넣고 어두컴컴한 실내로 들어간다. 그래, 실내다. 내가 있을 곳은 어두컴컴한 그 곳.


그리고 일은 언젠가 끝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 금방이라도 끝날 것처럼 내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터널은 끝나지 않겠지, 나는 늘 타는 지하철을 타며 중얼거린다. 그래, 터널은 언제고 끝나지 않아. 야근을 하고 막차를 탄 지금의 나처럼, 언제고 나의 삶은 이 지하에 묻혀 있어야한다. 그래, 그것이 마유에 대한 속죄가 될 것이다. 속죄라고 하기에는 내가 지은 죄가 너무 깊지만.


새벽이 다 되어 타는 막차는 늘 그렇듯 여러 인간의 군상이 자리한다. 자신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슬픔을 아무나 붙잡고 토해내는 사람, 자신의 감각을 죽여낸 사람,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자신은 관련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있는 사람. 그 모든 사람들을 태우고 막차는 터널을 지나간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리는 곳에 내려주겠다는 듯이, 하지만 결국 종착지는 하나도 변한 것 없는 고층 건물들의 도시라는 듯이.


내가 내려야하는 지하철역에서 내려 길게 하품을 하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두르려는 찰나, 휴대전화가 점멸하며 누군가의 이름을 띄운다. 두 번째 수신. 오늘의 일을 기억해낸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는다.


「뭐하는거야, 카나데.... 너무 늦은 시간 아니야?」


「어쩔 수 없잖아. 지금 막 촬영을 끝냈는걸.」


「고생이 많네, 너도.」


「프로듀서 씨 만큼은 아닌걸.」


따스한 카나데의 말.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쁨 한 조각이 내 가슴 한 켠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느껴진다. 아니야,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그녀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니 오히려 나는 그녀에게 더 차갑게 대해야만 한다. 그녀에게 나는 과거의 추억일 뿐이니까. 미래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카나데에게, 나는 잘 포장된 짐덩어리에 불과하다.


「괜찮아, 프로듀서 씨?」


「아, 응. 잠시 졸았을 뿐이야. 그보다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이야?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거야?」


「그렇네.... 프로듀서 씨, 이번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다고 했지? 그럼 다음주 주말은 어때?」


「다음주 주말? 아니, 그보다 무슨 일이길래....」


「당신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약속이야. 그래서 다음주 주말, 어때?」


밀어붙이는 카나데와 막아내려는 나. 하지만 카나데에게 따뜻한 말을 들은 후라서일까, 나는 그녀의 말에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나도 인간인지라 위로하는 말에 감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아, 내가 인간이 아니었다면 좋았을까. 하지만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카나데가 전화한 것은 현실이고, 나는 현실의 손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저기요-? 듣고 계시다면 제 말에 대답을 좀 해주시겠어요?」


「대답? 아, 그랬지. 다음주 주말?」


「응, 다음주 주말이예요. 어때, 시간 되지?」


이제 와서 안 된다고는 할 수 없겠지. 그것은 나도 알고 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아가씨라니까....」


「후훗, 그건 프로듀서 씨도 알고 있었잖아?」


「에휴, 알았어. 나보다 백 배는 바쁘신 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별 수 없지.」


「고마워요, 프로듀서 씨.」


경쾌하고도 매력적인 목소리. 그 마지막 울림을 끝으로, 전화에서는 기계적인 연결음만이 들려온다. 끝난건가, 나는 내 마음 속에 채워지는 공허를 저 끝으로 밀어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쓰다듬는다. 꽤나 긴장한 것일까, 나의 손이 젖어올 듯이 땀이 매만져진다. 이것이 나의 죗값이라면 너무 싼데.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살짝 휴대전화를 쳐다본다. 쳐다본 액정에는 하야미 카나데의 이름이 전화기록부 맨 상단에서 점멸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리 약속한 주의 주말. 미리 언도받은 카페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낡은 카페의 문을 열어젖힌다. 고풍스러운 카페의 분위기가, 나의 발걸음과 함께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나를 감쌌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늙수그레한 바리스타의 웃음소리와 그의 두툼한 손.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도 나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그는 한참 동안이나 나의 손을 어루만지며 웃더니 한 자리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기다렸어, 프로듀서 씨?」


「카나데....」


나의 히로인이었던, 그리고 지금도 히로인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미녀 여배우 하야미 카나데가 모습을 드러냈다. 변한 것 하나 없구나. 나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카나데의 얼굴을 보며 작게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머, 일어나지 않아도 돼. 지금은 나만의 프로듀서 씨니까. 그렇지?」


「그건 또 무슨.....」


「후훗, 말해본거야. 그보다 요즘은 무슨 일 해? 아이돌 프로듀서?」


「그럴리가 없잖아, 카나데. 회사원이야. 평범한 회사원.」


「회사원....」


기분 탓일까, 카나데의 말끝이 조금 흐트러진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일꺼야. 회사원이 나쁜 직업도 아니니까.


「뭐,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거지?」


「천천히 말해도 되잖아, 프로듀서 씨. 그렇게 서두를 것 없지 않아?」


「서두를 것이 없다라.... 음, 내가 절대 하지 않을 일을 제안하려고 뜸들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야?」


나의 말에 카나데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슬픈 빛으로 가득 찬다. 침묵. 1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앞에 놓고서도 침묵했다. 그래, 그녀와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은 10년 만이다. 이렇게 대면하고 대화하는 것은, 그 일 이후로 처음이다.


「두 분,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사이를 잠시 현실세계로 돌려놓는 점원의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감사해하며, 나는 카나데를 쳐다보았다. 카나데는 우리들의 대화가 끊긴 것에 약간의 불만이 있는 것처럼도 보였지만 이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그렇네. 저는 늘 마시던 걸로 주세요. 프로듀서 씨는 뭐 마실래?」


「그렇네. 바로 말해주지 않을 것 같으니 음료 하나 정도 주문해도 나쁘지 않겠지. 저는 녹차 프라푸치노로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점원이 사라지고 노년의 바리스타가 안내한 자리에 잠자코 앉는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게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그 흔한 안부인사 오가지 않는다. 10년만인데도 어째서 우리는 아무 말도 없는걸까. 어째서 우린....


「주문하신 카페오레 나왔습니다.」


다행히 그 침묵은 오래지 않아 주문한 음료를 들고 온 점원에 의해 깨졌다. 차가운 인상을 가진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은 따뜻한 카페오레. 어라, 그런데 우리가 카페오레를 주문했던가.


「아, 이 쪽으로 주세요.」


나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빙긋 미소를 지으며 점원에게 대답하는 카나데. 아, 그러고 보니 카나데는 늘 마시던 것으로 달라고 했던가. 카페오레라, 예전의 카나데라면 좋아했을 음료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긴, 기억이 나는 것도 이상할 법 하지. 그야 10년만에 만난 사이인걸. 그녀의 취향같은 것을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리가 없다. 그래도 조금은 기억하는 편이 나았을까. 머릿속을 채우는 엉킨 실타래같은 생각들을 조금 밀어내려고 노력해보며, 나는 어느샌가 내 앞에서 차가운 김을 내뿜는 음료를 들어 한 잔 마신다.


「...당신에게 만나자고 한 건,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서야.」


「제안이라....」


내가 프라푸치노를 한 모금 들이키자,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카나데의 입술이 열리고 마법같은 목소리가 내 귀를 홀린다. 마법이라, 한 때는 내가 마법사였던 적이 있었지. 왠지 모르게 입가에 느껴지는 씁쓸함을 애써 부정해가며 카나데를 쳐다본다. 내가 본 카나데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으로 나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흔들림 없는 눈이었다. 단 한 번도 흔들림 없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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