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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다리는 소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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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2, 2020 13:14에 작성됨.

사실, 미키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라고 하면 츠바사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랬다. 미키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러고 있다'는 건 아까 영화관에서 말한 진짜 데이트인지 뭔지 하는 뭐시기를 말하는 걸텐데, 미키로서도 그저 츠바사에 맞춰 잠깐 말장난을 한 것에 불과했다. 오히려 이제는 미키쪽에서 묻고 싶은 정도다. Why so serious? 아, 이건 빌런의 대사였던가? 안경빌런 리츠코? 아니, 그럼 츠바사는 히어로? 아이돌 히어로즈.... 애니메이션.... 윽 머리야. 미키는 별안간 진지한 질문을 받은 탓에 혼란스러운 머리 속을 어찌 할 수 없었다. 미키는 그냥 딸기 바바로아가 맛있었을 뿐인데. 솔직히 말한다고 해도....

"어차피 말한다고 해도 츠바사가 믿는대로 믿을거잖아?"

"........"

지금 혼자 근엄-한 것처럼 말이야. 미키는 다시 태연하게 딸기크림을 포크로 푹 찔렀다. 물론, 그렇게 보여도 마음 상태는 태연하지 않다. 츠바사가 느꼈던 찝찝함이 미키에게로 전염되었다. 미키가 그럴 듯한 말로 '데이트 연습'이라는 낙서를 적고, 츠바사가 그 위에 미키의 지시대로 이런 저런 낙서를 하다가, 어느덧 쓸데없이 고퀄리티가 되어버려 미키도 처치곤란하게 된 것이다. 로코 아트는 재활용 쓰레기로 처분, 아 아니 사무소에서 따로 쓸데라도 있지 이 찝찝한 기분은 마음대로 버리지도 못한다.

"츠바사, 미키가 언젠가 한 말 기억해?"

"언제 한 말이요?"

"우리, 별로 얘기 나눈 적도 없는걸. 잘 생각해봐."

"윽, 그럼 라인으로 엄청 대화 나눈건 뭐에요?"

"미키 때는 말이야, 그런건 대화로도 치지 않았다구. 얼굴을 마주보고 해야 진짜 대화인거야."

"흥, 나보다 한살밖에 안 많으면서. 어디보자..."

얼굴을 마주보고 한 대화라면 미키 말대로 손에 꼽을 정도다. 츠바사는 찬찬히 기억을 더듬었다.

"....프로듀서 씨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그거요?"

지금 대화와 연결된 주제라면 아마 그렇지 않을까. 데이트를 하기 전, 그러니까 미키가 데이트를 돕기로 약속한 날이다.

"응."

사실 미키는 그 대화를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츠바사가 떠올린 것이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괜찮았다. 그게 츠바사의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이 분명하니까. 

"미키 말이야. 조금 외로워질 때가 있어. 허니가 하루카나 유키호랑- 아니, 그 둘이 아니라도 다른 누구랑 대화 나눌 때."

"....네에."

그럴 때가 보이기라도 하면 곧바로 파고들어버리는 미키라서, 그런 질투를 느끼는지는 츠바사도 몰랐다. 하긴 질투를 느끼니까 그렇게 대처를 하겠지? 몰랐던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 츠바사가 음료수를 쪼옥 빨아들이며 미키에게 경청했다. 모처럼 솔직하게 말해주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고. 미키는 그런 츠바사가 꼭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고 조른 후 선생님을 보는 학생 같아서 귀엽게 느껴졌다. 이 애,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허니, 별로 굶주려보이지도 않고... 유키호 같은 애들이랑도 가능성 없다고 미키는 생각, 아니 확신하는거야. 그래도 그래. 그런데 이상하게 츠바사에게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 단지 좀 괘씸할 뿐."

괘씸하다니 너무해. 츠바사가 입을 삐죽거렸지만 미키는 아직도 초반의 츠바사에 대한 인상이 남아있어 발언을 철회해주지 않았다. 츠바사는 그에 한숨을 내쉰 뒤 정답을 유추해본다.

".......후배라서요?"

"글쎄, 왜 그럴까? 미키도 모르겠어."

"에이.."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잖아? 미키보다 잘 할 리가 없어, 라고 생각한 아이가 무대에서는 엄청 반짝반짝 빛난다던가, 실력을 생각해보면 미키보다 아랜데, 그래도 더 반짝거린다던가."

"그거, 실제 겪은 일이에요?"

"응. 뒤쳐지면 분해. 하지만, 뒤쳐져도 분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 존경스럽고, 미키도 더욱 힘내게 돼. 이유없이, 그런 사람이 있어."

그건 '치하야 씨'? 츠바사는 이번에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츠바사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해."

"그럼 저를 존경..!"

"그 중에서도 신경 쓰이고 걱정된단 말이야."

"흠. 그거 좋은건가요?"

"...좋은거라고 해야겠지? 미키가 외롭지 않아.. 라는 뜻이야."

"난 외로운데."

미키의 얼굴에 일순 당황스러움이 번졌다.

"....외롭다구요, 저는? 미키쨩이랑 프로듀서 씨랑 붙어있거나 하면. 왠지 저에 대한 이야기 할 것 같고!"

"아, 으응. 그건 한 적 있어."

"너무 솔직해."

"싫어? 싫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믿을까봐요?"

"봐, 얘기해도 안 믿잖아. 미키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거야."

"뻥치시네, 맨날 '잠자고 싶다'나 '주먹밥 먹고 싶다'는 소리만 하면서."

"말에 날개가 돋쳤구나?"

"가시가 돋친거거든요."

미키는 댕청미를 뽐내고, 츠바사는 툴툴거린다. 츠바사는 아직도 미키가 '진짜 데이트'를 하자고 한 것에 속뜻이 있는 줄 알고, 미키가 그것을 말하지 않음에 대해 서운해하고 있으니.

"그럼 미키랑 있으면? 그래도 허니가 생각나서 외로워?"

".....아니."

뾰루퉁한 와중에도 대답은 꼬박꼬박 한다. 미키는 그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린다.

"츠바사, 그게 바로 데이트인거야."

"어?"

"서로 외로워하지 않고, 행복한거야!"

"그, 그런가요?!"

"응. 허니가 생각나지 않는 정도로 미키를 보고 있으면 그게 그거 아닐까?"

그런가? 그런건가? 데이트는 사랑하는 남녀가... 츠바사의 가치관에 혼동이 오고 있다. 분명 데이트는... 데이트라는건.... 어른의 데이트란건....!

".....아까도 물어봤지만, 조금 더 바라는게 있는거야?"

"........"

"그럼 미키한테 말해봐."

"...없어요!"

"정말 없어?"

"아니, 없다는데 왜 그러세요?! 저 이래봬도 데이트에 대해 들은 얘기 많거든요! 사랑 노래도 불러봤고! 엄청난 라이브도 했다구요!"

이럴수록 곤란해진다는걸 당시에는 모른다. 오늘, 츠바사의 차렵이불은 목숨이 위험한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아 맞다 라이브."

"네?"

"허니가 말했어. 츠바사, 굉장한 라이브를 했다고 하던데."

"아....."

솔직한 칭찬에 츠바사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프로듀서 씨가 미키쨩에게 그 말을 전하고, 미키쨩은 그걸 나한테 얘기해준... 그게 기뻐서 방금까지 흥분하던게 싹 사라졌다. 소녀다 소녀.

"노래방 가지 않을래? 미키는 츠바사 라이브 못 봤으니까... 보고 싶은거야."

"으, 응. 그래요. 어제만큼 에너지 있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돌이라도, 가수는 언제나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하는거야. 츠바사는 기본기가 좋으니까 오늘도 잘 할 수 있을거라 믿어."

"....네."

츠바사는 어느새 비어버린 딸기 바바로아 접시를 홀린듯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럼 바로 가자!"

"미키쨩도..! 노래할거죠?"

"응. 미키의 노래, 올스타즈의 노래, 시어터의 노래, 전부 부를거야! 허니는 이런 특급 아이돌의 라이브를 놓치다니 불행한거야. 감기에나 걸려서는...."

츠바사가 나서려는 미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멈칫했다. 그러다가 턱을 긁적이고, 아무 말 없이 바로 미키를 따라갔다. 비밀이랄 것도 없는 비밀을 지킬지 말지 저울질하는 마음이 피곤했다. 데이트에 대한 고민은 싹 사라졌지만. 그러다 가까운 노래방을 발견해 바로 들어갔다. 낡은 건물의 지하, 미러볼이 빛나는 새까만 곳. 쿵쿵거리며 울리는 노래를 귀를 찢을듯이 발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지극히 평범한 노래방이다. 하품하는 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하고 방 번호를 찾아서 미키가 문을 열 때, 츠바사가 초조한 목소리로 미키를 멈춰세웠다.

"프로듀서 씨, 감기에 걸린거 아니에요."

왜 그 타이밍에.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츠바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키는 잠시 생각하다가 츠바사의 귀에 속삭이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아는거야' 네 글자가 츠바사를 이상한 기운으로 단단히 휘감았다.

***

「이 날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니까-

「가응베끼쟈나이- 와타시타치데스-!

「이 언덕길을 올라갈때마다~

「아유 레디! 아임 레-디! 하지메요오!

「MASH UP!!!!!

"하아, 하아...."

"미키쨩 샤우팅 굉장했어요!"

영화관에서 뒹굴대던걸 여기서 발산하는 듯이 하얗게 불태운 미키였다. 잠시 문 앞에 츠바사가 멈춰있던 사이 엄청난 속도로 부를 곡들은 전부 예약해둔 탓에, 여태까지는 전부 미키의 순서였다. 이제 츠바사가 예약한 곡의 제목이 올라온다. 미키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지치지도 않는지 물 한모금을 마시고는 바로 츠바사의 노래에 동참했다. 둘이 함께한 곡이 없었기에 같이 부르는건 처음이었지만, 맞추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부르는게 더 즐거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제법 음색이 잘 섞여들어갔다. 음정이 완벽하지 않아도, 기운은 넘쳤다. 

"이거 재밌다!"

"미키쨩, 다음 곡은 이거에요!"

"아핫, 나이스 초이스! 역시 츠바사인거야!"

"그~러~니~까~ 라인에서 대화 나눈것도 대화라니까요! 노래 취향에 대한 얘기 했었잖아요!"

"그건 그냥 미키랑 츠바사의 취향 문제인거야!"

말싸움에 쉴틈도 없이 다시 한바탕 듀엣이 시작되고. 

한동안은 츠바사의 솔로, 그리고 다시 듀엣. 신나게 노래하다 미키가 별안간 취소를 눌러버렸다. 츠바사가 왜요~ 라고 할 타이밍이었지만, 남은 시간은 1분. 마지막 노래는...

"...미키쨩."

간주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들어와야되기 때문에 제목 나오는 타이밍을 잘 봐야한다. 츠바사가 안무까지 준비자세를 취했다. 미키도 어느새 다시 앉은 채다.

「One, two, I love you chu chu....

귀엽게 시작하는 도입부. 방심할 수 없이 바로 하이노트가 나오는데, 츠바사는 무대처럼 완벽하게 처리한다. 이 부분은 미키도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잘 하네, 미키처럼.

.....애매한 건 NO랑 똑같아 평균점을 가뿐히 넘어서서 

둘이서 특별한 관계가 되어보자 약속이야

약속의 키스, 초급편은 끝....

"CHU!"

츠바사의 첫 솔로곡, 사랑의 레슨 초급편. 멋지게 마무리해낸 츠바사가 하아, 하아 하고 숨을 고른다. 관객은 미키 하나뿐이고, MR도 노래방 믹스인 라이브지만 이상하게도 긴장이 되었다. 기량은 어제보다 조금 못했지만 역시 잘 했다. 미키의 박수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츠바사가 안무도 마이크도 내려놓았다. 

"잘한다, 츠바사! 제법 굉장한거야."

굉장한거면 굉장한거지 제법 굉장한건 또 뭐람.

"고마워요.. 열심히 했다구요?"

"응, 그런 것 같더라. 마침 노래방 시간도 아슬아슬, 피날레였어."

"마지막이 내 노래라서 어떡해요?"

"나중에 또 오면 되지. 그리고, 그만큼 좋았으니까."

"그렇구나아-..."

츠바사가 소지품을 챙기고 미키를 본다. 칭찬을 들은 것은 기뻤다. 그런데 나갈 때가 되자, 아까 미키가 속삭였던 말이 또 생각이 났다.

밖으로 나오니 해는 이미 져있었다. 미키를 만났을 때만 해도 햇빛이 살살 비쳐왔는데...

"슬슬 헤어질래?"

"......네, 미키 선배."

낯선 호칭이다.

"선배?"

"응. 아이돌의 선배."

"여태까지 그냥 불렀으면서 이제 와서?"

"데이트도 선배구요."

"응."

"....그리고 나머지는 비밀이에요."

"생각 안 나서 그러면서."

"비~밀~이에요. 미키 선배도 궁금하죠?"

궁금했다.

"그치만 비밀이에요."

미키 선배도, 굳이 본인에게는 치하야 씨라고 부르는 이유 안 알려줬을 것 같아서. 그게 싱겁기 그지없는 츠바사의 비밀이었다.

"짜증나는거야...."

"헤헤. 바래다줄까요?"

어차피 같은 방향인걸. 미키가 별 수 없다는 듯이 에스코트를 받아들였다. 키도 엇비슷, 나이도 엇비슷, 그러나 미키 쪽이 조금 더 앞선 둘이 걸어간다.

"나 외로워지면."

"......"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해줘요. 미키 선배도 재밌었잖아요?"

"아후... 졸린거야."

미키가 대충 말을 얼버무린다. 하지만 부정은 안 했으니까 괜찮다는 뜻이겠지. 츠바사는 멋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해버렸다. 

"데이트 말이에요."

츠바사가 웃는다.

미키는 조금 위화감을 느끼고는,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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