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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려보면 코타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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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2, 2019 15:53에 작성됨.

"치하야 쨩, 치하야 쨩."

"으음...."


들려오는 소리에 치하야가 천천히 감겨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정사각형 탁자에 엎어져있던 상반신을 일으키고는, 아직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보이는 익숙한 벽지와 구조물. 그리고, 그 곳에 같이 자리잡고 있는 역시 또 익숙한 인물. 아니. 단순히 익숙함을 넘어서, 치하야와 무척 친밀한 관계를 맻고 있는 사람. 그 사람, 하루카의 동그스름한 갈색 단발머리에 얹어지듯 매여있는 한 쌍의 리본이 조금 살랑거렸다.


치하야가 가만히 그 움직임을 눈으로 쫒고 있자, 좀 전의 쾌활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치하야를 불렀다.


"치하야 쨩."

"으, 응."


치하야가 느슨하게 풀어졌던 두 눈에 살짝 힘을 주었다. 촛점이 어긋났던 시야가 확하고 선명해지면서 하루카가 짓고 있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눈에 가까이 들어왔다.


"이제 일어났어?"


일어났다니? 치하야는 순간 하루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곧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눈치챘다. 상반신과 다르게 두툼한 담요에 폭 감싸져있는 하반신. 그렇다. 치하야는 하루카가 멋대로 사비를 털어 주문했던 코타츠에 반 강제로 몸을 녹이고 있다가, 그만 껌뻑하고 잠들어버린 것이었다.


"아주 곤히 자던데. 깨우는 게 조금 미안해질 정도로."


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잠시 나더니, 하루카가 가지고 있던 봉투에서 뭔가를 꺼내 치하야에게 넘겼다. 하루카가 준 거라면 안심하고 받아도 되는 것. 알게 모르게 그런 인식이 박혀있던 치하야는 선뜻 주황빛이 도는 둥근 물체를 받아들었다. 옅게 풍겨오는 시트러스 계통의 향기에, 그제서야 치하야는 그게 귤이라는 걸 알아챘다.


"에헤헤, 코타츠라고 하면 역시 이거지요. 치하야쨩이 자고 있는 동안에 마트에서 사왔어."


툭. 하루카가 너스레를 떨면서 탁자에 귤이 든 비닐봉투를 놓았다. 그리고는 치하야의 맞은편으로 가서 온기를 가두고 있는 두툼한 담요를 슥 들어올리고는, 발끝부터 쏙 집어넣었다. 하루카치고는 군더더기 전혀 없는, 숙련됨이 묻어나오는 동작이었다.


"후아~ 따뜻해."

"그러니."


치하야는 마치 남 일 이야기하는 듯 대답했다. 물론, 치하야가 실제로 느끼고 있는 것하고는 달랐다. 하루카는 그것마저도 다 알고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봉투에서 귤을 한 개 꺼내고는 슥슥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치하야 쨩."

"응?"

"어때. 이번 겨울 최초의 코타츠 체험은."

"....편하긴 한데, 그래도 역시 히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하고."

"우후후, 아직 풍취를 모르는 구나."


자. 하루카는 어느덧 껍질을 다 벗긴 귤 알맹이를 반으로 뚝 쪼개고는 반쪽 중 하나를 치하야에게 내밀었다. 치하야는 아직까지도 들고 있던 귤 하나를 탁자 한 구석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하루카가 준 거라면 안심' 이라는 인지도식에 의해 스스럼없이 그걸 받아서 조금 더 작게 쪼갰다. 한 입에 넣기 좋은 사이즈가 된 그것을, 하루카의 무언의 재촉에 의해 하나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꿀꺽.


"어때?"

"으음, 뭐.  적당히 새콤달콤하고 괜찮은 것 같아."

"자, 자. 여기 더 있으니까 사양하지 않아도 돼."


이번에는 소리의 형태를 갖춘 재촉에, 치하야는 군말없이 남은 귤 조각들을 전부 해치웠다. 그러자 하루카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은 반쪽을 작게 쪼개서는, 이번에는 직접 치하야의 눈 앞에 들이댔다.


"아~ 해볼래?"

"꼭, 해야하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하루카가 준 거라면 안심. 그렇지만 그와는 별개로 부끄러워. 치하야는 하루카가 당황하는 사이에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하루카의 장난과 애정 서린 새 모이 주기 시도는 장절하게 실패로 끝났다.


"해주면 참 좋았을텐데."

"부끄럽잖아. 안 돼."

"히잉."

"그런다고 해도 말이지....."


귀여운 투정소리를 내던 하루카는 먹이는 걸 거절당한 귤 쪼가리들을 남김없이 자기 입에 털어넣었다. 그 사이 치하야는 앞에 내버려두었던 자기 몫이었을 귤을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표면에 짧게 정돈한 엄지손톱을 꾹 박아넣고는, 살짝 들떠오르는 껍질을 들어올려 벗겨내기 시작했다. 스륵, 스륵. 먹기에 방해되는 껍질을 벗겨낸다는 아무 감흥없는 동작. 그런데도 하루카는 마치 신기한 구경이라도 한다는 듯 집중해서 그걸 바라보고 있어서, 여기에는 과연 치하야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저기, 하루카?"

"응?"

"무슨 문제라도....?"

"아아니."

"그럼?"

"그냥. 보고 싶어져서."


그런 이유라고 해도....치하야는 뭐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냥이라는 이유는 정말 그냥이다. 거기에 거창한 속내 같은 건 전혀 없다. 굳이 캐물어봤자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치하야는 묵묵하게 껍질을 마저 깠다. 그렇게 해서 속살을 드러낸 귤은 처음에 하루카가 벗겨낸 것과 별 차이 없었다. 치하야는 귤을 반으로 쪼개 그 반쪽을 하루카에게 넘겼다.


"하루카. 여기."

"어? 주는 거야?"

"하루카가 줬으니까. 이쪽도."

"에헤헤, 고마워."


평소 자리잡고 있는 '준 만큼은 돌려줘야한다' 라는 묘한 책임감이 만들어낸 행동이었다. 하루카는 감사인사와 함께 기꺼이 그걸 받아들이고는 더 잘게 쪼개서 하나 입에 넣고는 맛을 보았다. 적당히, 새콤달콤. 치하야가 평했던 말과 똑같은, 좀 전 자신이 먹었던 것과 똑같은 맛이 났다. 하루카가 먹는 걸 지켜보던 치하야도 무심결에 남은 반쪽을 몇 개 뜯어 먹었다. 역시 맛은 달라진 바 없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입가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예전에는 말야, 겨울방학이 되면  이렇게 코타츠 안에 푹 파고들어서는, 늘어져라 있었어."

"후후, 그러니."

"바깥은 너무 추우니까, 통 나올 생각이 안 들어서....그만 치하야 쨩처럼 껌뻑 잠들어버리기도 하고. 그러다 엄마한테 잘 거면 방에 침대 가서 자라고 혼나기도 하고 말야."

"푸훗."

"아하하, 치하야 쨩~? 그렇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니랍니다? 치하야 쨩도 이미 마수에 걸려들었다고? 이제 겨울만 되면 이게 그리워지게 될지도!"


하루카의 지적에 뜨끔한 치하야가 곤란한 듯 탁자에 깍지 껴서 올려놓은 두 손을 작게 꼼지락거렸다. 확실히, 따뜻하고 편하다. 조금 앉아만 있기만 했는데 금방 노곤해진다.  이 포근하고 안락한 공간에서 나오는데는 다소 용기가 필요할지도 몰랐다. 앞으로도의 성실한 생활 패턴의 지속을 위해서는 치우는 게 좋을 것이다. 치하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하루카 말대로네. 이거, 상당히 위험한 물건인 걸."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치우는 건 좀 아깝지 않을까. 하고 간사한 마음이 흘러나와버렸다. 편한 것을 찾는 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 일간에서 스토익하다는 평을 듣는 치하야라고 해도, 거기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어때. 가끔은 좋잖아. 가끔은."

"음...."


거기다, 이렇게 마주보고 불을 지피는....처음부터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 원흉을 강제 선물한 장본인이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부추기기까지 하는 만큼, 아무리 치하야라도 해도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귤 하나 더 먹을래?"


부스럭하는 하는 소리와 함께, 하루카는 치하야가 승낙하기도 전에 봉투에서 귤을 꺼냈다. 이렇게 되면 어울려줄 수밖에 없나....혹시 또 먹여주려고 한다면.....그것만큼은 거절하고 싶지만. 치하야는 마치 어쩔 수 없이 하루카에게 따른다는 투로 굴면서도, 은근 기대하는 시선을 그쪽에게 보냈다.


이 코타츠, 두 사람이 마주 앉기에 정말 적당해. 너무 좁지도, 너무 넓지도 않고. 딱이야. 혼자서 쓰기에는 좀 넓을 것 같고...아마 혼자 있을 때 이걸 꺼내드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러니까. 하루카가 와준 오늘만큼은 이 따스함을 원없이 즐겨도,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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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루팡 사이코~! (짝짝짝) 하루치하 사이코~!(짝짝짝) 하나로 올리기 다소 간당간당한 길이이지만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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