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사랑해, 라는 말의 무게』 외 1편

댓글: 2 / 조회: 770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12-02, 2019 11:47에 작성됨.

『사랑해, 라는 말의 무게』


"저기 있지. 치하야 쨩은 사랑한다는 말, 쉽게 안 하는 것 같아."


사무소에서 대기하던 도중이었다. 돌연, 근처에서 같이 대기하던 하루카가 이상한 말을 꺼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걸까. 우선은 잠자코 뒤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치하야 쨩이 하루카 씨를 정말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지~"


장난처럼 흘러가는 말소리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그러고보면 나는....지금까지의 일상을 돌이켜보니, 사실이었다. 나는 하루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한 것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친구 사이라면 모를까, 그보다는 조금 다른 교제를 이어나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사랑한다는 말은 확실히.....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해. 


그렇지만.


쉽게 꺼내기에는 무게감이 있는 말. 공연히 입에 올리기에는 부끄럼이 앞서는 말. 나는 어디의 누구 씨처럼, 간단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치하야 쨩, 듣고 있어?"

"으, 응."


한참 변명을 자아내고 있을 때였다. 하루카의 재촉에 바닥을 비추고 있던 시선을 급히 그쪽으로 돌렸다. 따스하면서도 약간 짖궂은 의사가 느껴지는 녹빛 눈동자가 나와 마주했다.


"그러고보니 치하야 쨩은 노래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않아?"

"그거야 가사니까."

"아, 그렇네."

"하루카도 마찬가지잖아."

"응."


끄덕끄덕. 하루카는 알아서 납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곧 반짝반짝하고 눈을 빛내며 내게 다가왔다.


"그럼 노래로 하는 거면 괜찮다는 거지!?"

"엣?"

"에헤헤, 아직 모르는 사랑의 말을 가르쳐줘~♪ 라던가."

"그, 글쎄...."

"자, 자. 빨리."


하루카는 리츠코가 들었다간 얼굴을 붉힐지도 모르는 한 구절을  슬쩍  흘려놓고는, 이쪽의 답가를 자꾸만 졸랐다. 뭘까, 사랑이라는 건....폭신폭신 따끈따끈 토스트 번? 그것도 아니면 손 때 묻은 구절, 듣기 질린 사랑의 말....아니, 이건 아닌데. 떠오르는 가사들 중 어느 것이 적당할까 고민하던 와중이었다. 


".....사랑이 아니어도 사랑해."

"에, 아, 아하하...."


무심코 중얼거리고 만 무거운 가사에 하루카는 난감하다는 웃음을 지었다.


"저, 저기. 어디까지나 이건 가사이니까. 노래 속 화자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

"무, 물론 그렇겠지!"


수습하려고 해도 이미 늦은 듯 했다. 나는 하루카의 억지로 밝은 척하는 목소리에게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치하야 쨩, 다른 건 안될까?"

"전 세계여, 사랑이 되어라...."

"방금 그건 일부러?"

"그냥 떠오른 건데....저기, 하루카. 사랑의 의의란 뭘까."

"에,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그렇지만 하루카는 아직 포기못하겠다는 듯 끈질기게 달라붙어왔다. 정 그렇다면....좀 더 괜찮을 법한 사랑 가사를 골라볼까 하는 순간. 하루카는 그마저도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소리쳤다.


"으, 이렇게 되면 이 하루카 씨가 시범을 보이겠어!"

"시범이라니?"

"노래로....아니, 노래가 아니어도."


하루카는 도중에 말을 멈추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쥔 뒤, 마저 입을 열었다.


"치하야 쨩."

"으, 응."

"나 있지."

"응."

"치하야 쨩을."


그 뒤에 이어질 말 정도는 좀 전 상황을 통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사랑해. 내게는 너무나 어려웠던 말. 나는 숨 죽여 하루카의 시범을 기다렸다. 그런지 몇 분 지나지 않았을 때.


"음....그러니까....사, 사, 사....으으, 어쩌지. 괜히 부끄러워졌어....."


하루카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붉어진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쥐며 고개를 푹 숙였다. 후훗, 하루카도 참.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때는 언제고.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푸훗, 후후훗...."

"웃지마...."

"역시, 부끄럽지?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흑, 그렇게 못 하는 게 당당하다는 듯 말하지 말아줄래."

"괜찮잖아. 어차피 하루카도 말 못하면서."

"그, 그게 갑자기 하려니까!"


아직 붉은 기를 가라앉힐 줄 모르는 채, 뭐라뭐라 변명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사랑스러웠다. 사랑.....그래. 나는 하루카를 사랑한다. 무대에서 빛나는 모습도. 이런 사소한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도. 그밖에 다른 모습들도, 전부.


"하루카."

"응?"


그러니까, 말하고 싶은데.


"아니, 아무 것도."

"뭐야~"

"후후, 미안. 그냥, 갑자기 불러보고 싶어져서."


....역시 아직은 말할 수 없어. 나는 입 안에 무겁게 머무르는 말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


고독에 지고 싶지 않아


아이돌은 화려하기만 한 게 아니다. 오히려 다른 애들보다 수수한 생활을 하고있을지도. 일, 레슨, 라이브.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 세 단어로 끝인 게 아이돌의 생활이니까.


하루는 24시간. 그 누구에게도 평등하다. 내게도 그 사실은 변함 없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 예를 들자면 자고, 씻고 먹고, 몸단장하는 시간. 그리고 아이돌이 아닌 나로 있는 시간. 아이돌이기 전에 나는 학생이니까. 어느 정도는 학교에 가줘야한다. 그런 시간들을 제외하고 나면, 나는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돌로 있는 시간이라는 건, 그 나머지 시간을 빈틈없이 매워버릴 정도로 거대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른 무언가가 끼어들 여지는, 그다지 없었다. 학교 친구들과 어디 놀러간다던가, 집에서 여유롭게 만화책 따위를 읽으면서 뒹굴거리는 일 같은 건 이젠 상당히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고보면 나, 아키 쨩하고 이야기한지 꽤 오래 되지 않았나. 문득 떠올리는 그리움. 나는 탁자에 놓여진 휴대전화를 꼭 손에 쥐었다가도, 시간을 확인하기 무섭게 도로 내려놓았다.


달콤했던 휴식시간도 이젠 끝. 다시 연습해야해. 나는 근방에 펼쳐진 낡은 노트북을 건드렸다. 까맣던 화면이 금방 밝아지고, 켜놓았던 댄스 트레이너 선생님의 시범 안무 영상이 보였다. 자판에서 스페이스를 치자 물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동작들의 연속이 눈 앞에 펼쳐졌다. 순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또 한 번 스페이스를 쳤다. 그리고는 탁탁하고 아직 열이 남아있는 두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 일어섰다. 커다란 전면 거울로 걸어가 자세를 잡았다.


요즘 들어 난, 저 동영상에서 선보이는 춤을 연습하고 있다. 앞으로 있을 정기 라이브에서, 다른 애들과 같이 관객 여러분들께 선보일 신곡에 어우러질 안무였다. 완벽. 히비키 쨩이 자주 입에 올리곤 하는 말처럼 철저하게 익혀야하는 건데. 그렇지만....아직 음원을 틀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삼아 몸을 움직여봤다. 분명 몇 번이고 연습한 동작인데, 여전히 삐걱거림이 느껴졌다.


동작을 다 외운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야.


트레이너 선생님이 개인지도를 하시면서 해줬던 말을 곱씹어보았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던가. 그런 말처럼, 맞는 건데도 내겐 쓰게만 느껴졌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정말, 힘껏 노력한 거라고요.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알아주셨으면 좋았을텐데. 그치만, 그래도 역시, 좀 더 잘 했으면 해서 그러신 거겠지. 응. 마음 속에서 생겨나는 쓰고 텁텁한 불만에 억지로 설탕을 뿌렸다. 아주 약간 달아졌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아주 약간이 아닌 부분은 여전히 쓰다. 거울에 비쳐진 내 모습은 바깥에 오래 방치해둔 식빵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다. 이러면 안되는데.


일부러 웃어보려고 해도, 어딘가 고장난 것처럼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이럴 때, 이럴 때는....나는 공연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곳, 레슨룸에는 차갑고 적막한 공기만이 가라앉아있다. 온기를 가진 거라고는 나밖에 없을 거야. 그도 그렇겠지. 지금은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 스케줄표에 적혀진 일정 이외의 개인연습인 걸.


다른 애들도 같이 연습하고 있으면 좋았겠지만, 오늘은 아무도 없다. 실은, 일부러 이런 날을 골랐다. 모두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으으응, 사실은. 나는 이마에 살그머니 배여들어오는 식은 땀을 손등으로 슥 훔쳐내고는 다시 노트북이 있는 곳으로 향해, 저장된 음원을 틀었다. 라이브의 처음을 여는 밝고 통통 튀는 음색이 레슨룸을 차게 식은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나간다. 후다닥 뒤로 물러나 몸을 움직여본다. 그렇지만 역시.  잘 맞지 않지 않았다. 조금씩 어긋나는 싱크. 곡의 중반부가 지나서는 음악이 홀로 앞서나가버린다.


앗, 하는 사이에 나보다도 먼저 안무를 외워버렸던 미키처럼.


몇 번 맞춰보는 것만으로도 금방 트레이너 선생님만큼 능숙하게 안무를 소화해내던 마코토하고 히비키 쨩처럼.


처음에는 나처럼 힘들어하나 싶더니 결국은 따라갔던 그 외 다른 애들처럼.


나만을 남겨두고.


꾸우욱. 분한 마음에 주먹을 꾹 쥐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아프게 자국을 남길 정도로. 마찬가지로 꽉 깨문 입술에도 아픔이 달렸다. 조금 떨어진 거울에 외로운 내 모습이 우중충하게 비쳤다. 어쩌지. 지금 여기서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남겨진다면. 뒤쳐진다면.


나,아마미 하루카가 가진 하루 24시간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는, 고독 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써왔던 아이돌로서의 시간은, 어떻게 되어버리는 걸까. 휴짓조각처럼 되어버리는 걸까. 아이돌이 아니게 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남아버린 시간을 보내야하는 거야?


아니, 그 전에. 무엇보다도!


나는 아직, 아이돌로 있고 싶어....


톱 아이돌이 되고 싶어! 모두와 함께하고 싶어! 빛나고 싶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고독에....지고 싶지 않아! 안 져! 지지 않아! 반드시, 절대로 그럴 테니까!"


나는 힘껏 소리쳤다. 온 몸을 짓누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어떻게든 떨쳐버리고 싶었다. 


------

1편만으로 용량이 모자르다면 2편을 동시에 올리면 되지! 이라는 생각으로 올려봤습니다. 요즘 하루 1천자는 써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적당히 끄적적하고 있는데 아직은 그럭저럭 할만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2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