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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벌새의 모닝 티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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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02, 2019 01:03에 작성됨.


관련 전작 : 카오리 허밍(歌織 Humming)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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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모리 카오리는 아침에 약하다.


765 프로덕션의 아침은 아홉 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아침에 약한 그녀로서는 보통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최근 들어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오전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소파에 앉아서 얌전히 자고 있는 사쿠라모리 카오리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사무소의 동료들이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상관 없다. 가끔 바바 코노미나 모모세 리오가 그녀의 잠든 얼굴을 찍어서 놀리는 경우가 있지만, 어디로 유출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려러니 웃어 넘긴다.


하지만, 그 모습을 프로듀서가 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무래도 연심을 품고 있는 사쿠라모리 카오리로서는 그 상대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런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조금은 씁쓸한 커피를 먹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상하게도 765 프로덕션의 사무소에는 커피 자판기나 자동 커피머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직접 커피믹스를 사서 타 먹거나, 원두를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런 귀찮은 과정에도 불구하고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꾸준하게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른 아침의 카페인은 그녀에게 활력을 주었고, 그리고 나서 프로듀서가 출근하기 전까지 스스로를 가다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 날도, 별 다를 바 없어야 했었던 아침이었다.


오전 10시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여덟 시 반에 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항상 여덟 시 정각에 출근하는 텐쿠바시 토모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스케줄이 없는 휴일일 것이다.


그러나 불이 켜져 있는 것은, 누군가가 이미 출근을 했다는 말이다. 오토나시 코토리일 리는 없다. 아키즈키 리츠코거나, 아오바 미사키거나.


안녕하세요~?”


사무소로 들어가며 인사를 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있었더라면 인사를 했을 텐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어제 누가 불을 안 꺼두고 갔나? 카오리는 중얼거렸다. 음악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당직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겠지만, 765 프로덕션은 당직이라는 개념이 없다.


나름 대형 프로덕션이지만, 프로덕션의 정규직은 사장을 포함하여 오토나시 코토리, 아오바 미사키, 아키즈키 리츠코, 그리고 프로듀서뿐이다. 아이돌은 계약직이다.


보안팀이 없는 이상, 누가 불을 켜두고 갔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카오리는 겉옷을 걸어놓고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후아암.”


소파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졸음이 몰려왔다. 노곤노곤한 몸은 그러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들은 체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체이지만 가끔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괜찮다. 탕비실에는 그녀가 사비로 구매해 둔 커피 원두가 있다. 조금 귀찮을지언정, 프로듀서에게 또 다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낫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걸어가려는 순간, 맞은 편 책상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생각해보니 사무소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누군가 안에 있을거라 결론내리는 것이 가장 타당했을 터인데, 어째서 자신은 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던가.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조심스럽게 소파 위의 가방을 집었다.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무가의 여식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은, 그 작은 가방 안에 들어있는 것으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저 건. 두 번이나 연사할 수 있는 가장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다. 전극이 꽃히는 순간, 건장한 남성이라도 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 쓰러지게 만드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를 사용하기 위한 훈련을,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충분히 받았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남들에게 들켜서는 안 되지만, 비상시라면 어쩔 수 없다. 도둑이 들었거나, 아이돌을 노리는 이상한 사람이 숨어있을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테이저 건을 사용하는 것을 그녀의 아버지는 이해해 주시리라.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친 뒤, 천천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던 쪽으로 총구를 들이밀고 걸어갔다. 프로듀서의 책상 쪽이다. 커다란 모니터가 놓여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책상 아래에 누군가 숨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책생 옆으로 돌아들어간 뒤, 재빨리 총구를 책상 아래쪽으로 겨누었다. 그 순간,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자기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서 씨?”


서류더미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는 프로듀서의 얼굴이 보였다. 호흡이 일정한 것을 보니, 수면중이리라.


황급히 총의 안전장치를 다시 잠그고, 후다닥 뒤로 총을 숨겼다. 오해와 실수가 겹쳤다고는 하나,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사쿠라모리 카오리를 프로듀서가 본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오해가 생길 것은 뻔하다.


미움받고 싶을 리가 없다. 그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여서 다시 소파로 되돌아갔다. 아버지의 사랑은 다시 가방 속 깊은 곳에 봉인되었다. 남자를 만나는데 있어 아버지의 사랑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 최대한 숨을 죽이며 그가 자고 있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눈가에 다크서클이 있는 것이, 분명 피곤한 모양새다. 상황을 보아하니 새벽에 출근했거나, 밤을 샜거나, 둘 중의 하나이리라.


프로듀서 씨는, 항상 저희를 위해 수고해 주시네요...”


정말로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솟구치는 바람에게 벌새는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곤히 자고 있는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카오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자그마한 욕망이 끓어올랐다.


마침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눈치를 볼 사람도 없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카오리 자신의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뿐이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면 앞질러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프로듀서....”


침을 꿀꺽 삼킨 뒤,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더 이상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


조심스레 손끝을 그의 뺨에 가져다댔고, 그 부드러운 촉감에 카오리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녀의 욕망은 여기서 멈출 생각따윈 없었다.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의 뺨으로 향했다. 이전에 그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을 때에 보여주었던 그의 표정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자고 있어서 표정변화를 볼 수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술은 여전히 그의 뺨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일어나버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주 살짝, 정말로 살짝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카오리는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키스마크를 아주 진하게 남겨서 자신의 것이다, 마킹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프로듀서가 일어나버릴 것은 분명했고, 고작해야 키스마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할 정도로 그녀의 연적들은 나약하지 않았다.


“언제나, 감사드려요.”


그의 귓가에 살며시 속삭인 뒤,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살며시 그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분명, 고요한 공간에 울려퍼진 애정어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리라.


“......하아.”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지는 것임을 알면서도, 괜스레 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달콤한 맛이 입술에 느껴졌고, 조금은 씁쓸한 커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달콤하게 우유와 설탕으로 맛을 내겠지만, 지금은 입 안이 너무나도 달다.


원두를 갈아 한 잔의 커피를 타자. 아니, 두 잔을 타자. 아침의 티 타임은 두 명인게 훠얼씬 즐거울 것이니까.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프로듀서를 뒤로 한 채, 벌새는 종종걸음으로 탕비실에 들어갔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보이는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니리라.


예가체프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핸들을 돌린다. 사라락 떨어지는 원두 가루를 커피 필터에 올려놓고, 아래에 드리퍼와 커피 서버를 둔다.


그가 잠에서 깨면, 십여 분 정도의 짧은 티타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단 둘이서. 그렇게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커피포트의 끓는 물을 들고, 둥글게 팔을 움직여 천천히 원두 위에 물을 붓는다. 입술을 간질이는 커피의 향이 터질 것만 같은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찻잔과 받침을 두 개 꺼내어 서버 안의 커피를 쪼르르 찻잔에 따랐다. 뜨겁고 쌉싸름한 커피다. 슈가스틱을 하나 찢어 정확하게 절반씩 넣었다. 이 정도면 고유의 풍미를 해치지 않을 적정선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프로듀서는 어떤 커피를 좋아할까, 아니면 역시 차 종류이려나, 카오리는 중얼거렸다. 나중에 하기와라 유키호에게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앗, 뜨거워라.”


들뜬 마음에 그만 찻잔을 잘못 잡아버렸다. 조금 전까지 팔팔 끓던 물이었기 때문에 뜨거운 커피인 것은 당연하다.


특별히 그녀가 고양이 혀인 것은 아니지만, 프로듀서는 어떨까,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느 쪽이건, 지친 그를 위해 배려하는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두 개의 찻잔을 원목으로 된 얇은 나무받침에 올려둔 뒤, 프로듀서의 찻잔을 집어들었다. 잠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커피를 보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뭘 하려는 거지, 도대체.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이미 천천히 숨을 들이키며 입술을 오므리고 있었다.


그리고, 달아오른 얼굴로, 후-후-, 조심스레 찻잔에 담긴 커피를 식혔다.


“으으......”


부끄럽다. 다른 동료들이 보았더라면 최고의 놀림거리다, 라고 생각하며 피라냐처럼 물어뜯을 것이다. 절대로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다행히 탕비실에는 아무도 없다.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혼자 있다면 견딜 수 있다. 부끄러움보다는 그를 향한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애정을 담아, 다시 한 번 후-후-.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새빨개져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는 법이다. 모처럼이니,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 보자. 그가 찻잔을 어떻게 잡고 어느 쪽으로 커피를 마실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할 생각은 없다.


살며시, 따스한 찻잔의 한 쪽에 쪽,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한가득 담아 입술을 가져다댔다.


“......사쿠라모리 씨?”


갑작스레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제 일어나 탕비실로 온 것인가, 자신의 행동이 들키지 않았는가, 손이 파르르 떨렸지만, 다행히 조금 커피를 조금 흘린 것이 전부였다.


“아, 프로듀서 씨. 좋은 아침이에요.”


“아하하, 좋은 아침이네요.”


어쩐지 그의 웃음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설마, 하고 뒤를 돌아보니 어색한 얼굴로 웃고 있는 그가 있었다.


모른 척 해 주는 것이다. 사쿠라모리 카오리의 담당 프로듀서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작은 배려다.


하지만 그의 그런 점이, 카오리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받침에 내려놓았다.


손수건이나 티슈로 찻잔을 닦지 않는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애써 만들어놓은 마킹이 지워져 버릴 테니까.


자연스럽게, 그가 모른 척 해주는 것을 조금 이용하여 권유해 보자. 프로듀서는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프로듀서라면 고민은 할 지언정, 분명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저어, 프로듀서 씨.”


누군가 비겁하다고 말해도,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 벌새는 달콤하게 웃었다. 둘만의 조금 이른, 모닝 티 타임의 시작이다.


“커피 한 잔,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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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잉여 글쟁이입니다.

6장짜리 단편을 들고왔습니다.

본가 담당 이벤트 달리면서 쉬는 기분으로 쉬엄쉬엄 끄적여 봤습니다.

무검수, 무퇴고, 무플롯의 환장의 콜라보가 만들어낸 뻘글입니다.

비평, 감상, 오타 및 문법지적 등등 모두 환영합니다


다음에는 이전처럼 30장 이상 분량의 단편(단...편?)을 계획중입니다.

절반 이상 써 두었습니다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네요 흑흑...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올려야 하는데...


그래도, 짧은 글이지만 재미있게 보셨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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