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봄 기다리는 소녀" 5

댓글: 0 / 조회: 635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11-24, 2019 13:26에 작성됨.

미키와 츠바사가 '어른스러운' 즉 비싸고 좋은 영화관에서 표를 끊고 자리를 찾아갔을 무렵, 프로듀서는 끙끙 앓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분명히 거짓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건 전혀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 미키가 츠바사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기에 기분 좋게 허락해주었고, 당일에는 둘을 위해 자리를 피해주려던 것 뿐이었다. 츠바사와 미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몰랐으니까 미키가 둘러댄 문자를 그대로 믿은 프로듀서는 차마 츠바사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했다. 프로듀서는 문자를 확인하고 당황해서 츠바사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물론, 츠바사는 영화관의 관람 예절을 충실히 지키는 성실한 아이여서 휴대전화의 전원은 항상 끄는 스타일이었다. 미키도 츠바사를 곁눈질로 보고는 바로 전원을 꺼버렸다.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프로듀서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왜 둘 다 전화를 안 받아. 게다가 미키는 '츠바사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라고 분명히 말했던 당사자임에도 문자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아서 더 황당했다. 아무리 열정 넘치는 그라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전화를 걸 체력은 없었으므로, 프로듀서는 포기하고 침대에 기묘한 자세로 엎드렸다. 한동안 끊었던 손톱을 잘근잘근 씹는 습관이 되살아났다. 최소 굿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던 프로듀서에게 이 사건은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배드 커뮤니케이션. 프로듀서는 환영처럼 떠오르는 글자에 손톱을 씹던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머리를 싸맸다. 두뇌를 최대한 가동시켜서 어떤 기억이 미키와 츠바사를 동시에 전화도 안 받을만큼 화나게 만들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렸다. 프로듀서는 헐레벌떡 전화기를 들었다. 

츠바사: 거짓말쟁이>< [2분전]

그렇다. 앱등이였던 프로듀서도 배드 커뮤의 충격에 휩싸여, 아이폰은 문자 알림을 확인하지 않으면 2분 후에 다시 알림을 준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아아아악!!!"

프로듀서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한편, 불과 2분 전만해도 앙심 섞인 문자를 보냈던 츠바사는 전원을 끄고 그런건 전부 잊어버렸다. 처음 와 보는 고가 영화관의 푹신한 자리는 14살의 귀여운 여중생을 정신 놓게 만들 위력이 있었다. 그건 시트에 편히 몸을 기대고 있는 미키도 마찬가지였다. 

"사무소 소파보다도 편한거야.... 이거라면 편히 잠들 수 있어... 아후."

"으음~ 팝콘도 사르르 녹아요~!"

이미 영화의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두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천국을 맛본 츠바사는, 전원을 키자마자 보이는 부재중전화의 기록은 누군지 보지도 않고 사뿐히 넘겨버렸다. 기념으로 엔딩크레딧과 함께 셀카를 찍는게 부재중 전화 따위를 확인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했다. 영화 본 것을 자랑하는 척 좋은 영화관에 온 것을 자랑하기 위함이다. 미키는 졸음에 찌든 와중에도 아이돌의 본능으로 어기적어기적 츠바사의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나, 둘, 셋! 하고 카운트다운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와~ 잘 나왔다! 미키쨩도 보내줄게요. 그런 다음에 인스타에도 올리고..."

"부- 부- 인거야."

미키가 퀴즈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문제를 틀렸을 때 울리는 버저 소리를 낸다. 

"왜~요~."

츠바사가 팔을 파닥거리며 애교스럽게 응수했지만, 미키는 정말로 진지해보였다. 츠바사는 왜 사진을 올리는 것에 심각하게 반응을 하는지보다도 왜 자신의 애교가 먹혀들지 않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있었다. 무대에서, 팬들 앞에서는 츠바사의 애교 한방에 다 쓰러지는데. 심지어 학교에서도 남학생의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귀여움인데. 왜 프로듀서와 미키는 이렇게도 냉담한걸까. 765의 즈어어언통일까? 츠바사는 납득을 할 수 없었다. 하긴 미키쨩은 여자고, 프로듀서 씨는 프로듀서 씨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그런 점이 어른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매력적이랄까... 

그제야 츠바사는 자신이 보냈던 문자 메세지가 생각났다. 

"츠바사, 잊었어? 이건 데이트 연습인거야! 어른의 데이트는, 비밀로 하는거야."

"그런가요?"

"응. 그런거야. 말하자면 어른은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지잖아? 공공연히 알리는 데이트도 마찬가지인거야."

츠바사는 잘은 모르겠지만 우선은 알아들은 척을 하기로 했다. 그야 미키가 제법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오버 마스터나 노스탤지아, 릴레이션즈, 마리오네트의 마음, 우리들의 레지스탕스 같은 곡을 부를 때 살짝 스쳐지나가는 표정. 싸늘한 무표정도 아니고, 저걸 뭐라고 해야하지? 아무튼 여기서는 오케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으, 으응. 알았어요. 비밀이에요!"

저거 못 알아들었는데 알아들은 척 하고 있네. 하지만 미키는 우선 넘어가는척을 하기로 했다. 

"음, 츠바사는 정말로 미키를 잘 알아주는거야."

뭐야, 저 영혼없는 말투? 저거 못 알아들었는데 알아들은 척 한걸 알아차렸는데 일부러 넘어가는 척-해주는 척 하면서 돌려까고 있잖아? 츠바사는 코웃음을 치며 반격했다.

"응, 미키쨩은 뭔가 어른 같네요."

"아핫, 별로 그렇지도 않은거야. 하지만 흉내낼 수는 있는거야."

"흉내내는건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죠!"

츠바사가 강하게 말하자 미키는 잠시 말을 멈췄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며 제각기 갈 길을 떠나고 있었다. 영화관에 정신이 팔려 같이 보러 온 영화가 끝나고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미키와 츠바사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츠바사는 이미 영화의 내용을 까먹고 있었다. 영화보는 내내 라지사이즈 팝콘을 쉴새없이 입에 가져가며 어떤 자세가 이 시트의 편리함을 최대한으로 만끽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했다. 간간히 미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도 봐주고, 옆에 앉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부자길래 이런 곳에 올지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곳에 올수도 있었는데 기회를 놓친 불쌍, 아니 자업자득인 프로듀서 씨를 마음 속으로 씹기도 했다. 그리고 주연 배우는 잘생겼고.....미키쨩은 뭘 생각하는 중일까?

"그럼 츠바사."

드디어 말했다. 츠바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연습 말고, 진짜로 데이트할래?"

뭐에요, 무슨 장난이에요? 하고 애교로 일축시킬 수도 있었지만, 왜 그러지 못했냐는 확실했다. 즈어어언통의 대를 이은 미키답게 무시당할거라 생각해서가 아니다. 예의 그 오버 마스터나 노스탤지아, 릴레이션즈 그리고 이하 생략의 미소를 짓는 미키에, 츠바사는

"그래요."

라고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일을,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한채 하루종일 하고 있었던 때가 있는가. 어? 어어? 어어어?! 하면서도 우선은 계속 하고있다. 멈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란스러움을 다스릴 방법도 딱히 없다. 그냥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아니, '몸을 맡긴다'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쇼핑, 버스킹 구경, 공원 산책, 그리고 디저트 카페에 들러서 미키가 가장 좋아한다는 딸기 바바로아를 시켜 먹고 있는 츠바사가 지금 그랬다. 사실 장소만 늘어놓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고, 그냥 친구끼리도 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 코스였다. 그러나 내용물보다 중요한 건 포장이었던가. '진짜 데이트'라고 포장한 미끼를 미키가 던지고, 그 미끼를 덥썩 츠바사가 물었을 때부터는 무언가 달라졌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집을 담력시험 장소라고 속이면, 그 집에 불가해하게 으스스한 기운이 흘러넘친다. 오므라이스에 하트모양으로 케챱을 뿌리고 '소스에는 특별한걸 넣었어요, 우후후...'라고 하면 무섭다. 그렇다면, 이것을 데이트라 이름붙이기만 하면 두근거리는게 맞는걸까? 그냥 생각없이 하는 것도 의심스럽고, 손이 다가오면 움찔거리고, 앞으로 '뭔가' 더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라고 할까, 공상하게 되고.

"미키쨩, 맛있어요?"

"응! 진짜로 맛있는거야. 둘이 먹다 한명의 입에 크림이 묻어도 놀리지 않을 것 같은 맛인거야!"

미키가 행복하게 다른 한입을 머금었다. 츠바사도 한입을 먹었다. 맛있었다. 진부하지만, 부드럽고 달콤하고 상큼했고, 끝에는 약간의 우유 맛이 남았다. 미키처럼 맛을 음미하려고 하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미키가 좋아하는 것이 뜨거운 퐁당 쇼콜라가 아니라 차가운 바바로아여서 다행이었다. 츠바사는 새삼스럽게 아까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지 않은 것 또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밀로 한다는 것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잘 모르겠고 답답한 감정이라면 숨기고 싶었으니까. 확실하지 않은건 싫었다. 오겠다고 해놓고 거짓말을 치고 안 온 프로듀서가 차라리 처음부터 확실하게 거절했었으면 했다. 그게 평소 프로듀서다운 행동이 아닌가. 미키까지 속여가며 (미키가 프로듀서를 어떤 말로 꼬셨었는지 츠바사는 모르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건 비겁했다.

"미키쨩, 이건 무슨 데이트에요?"

이부키 츠바사, 14세. 기다리기도 하지만, 할말은 한다. 미키는 딸기 바바로아 타임을 방해받았음에도 얼굴도 찡그리지 않고 츠바사의 말을 받는다.

"조금, 더 해주길 원해?"

"조, 조금이라니 뭘요?"

"원하는건 있는거네."

"......미키쨩이 솔직히 말해줬으면 해. 왜 저랑 이러고 있는건데요?"

미키는 대답할 수 없었다.


계속.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