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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다리는 소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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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7, 2019 01:47에 작성됨.


아침의 카페는 지나치게 한적해서, 아무도 없는 테이블을 햇빛만이 채우고 있었다. 츠바사도 기세 좋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금세 위화감을 느꼈다.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손님, 신문을 보고 있는 손님... 아무리 봐도 프로듀서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미키로 보이는 사람도 없기는 없었지만, 미키는 당연히 지각을 할거라 생각했기에 상관 없었다. 프로듀서 씨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인데 혹시 무슨 일 생긴거 아냐?! 츠바사는 불안해졌다. 프로듀서는 어른스럽기는 해도 언제나 어딘가 다른 곳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아이돌, 아이돌, 아이돌. 그 놈의 아이돌 생각에 눈 앞에 있는게 트럭인지도 귀여운 어린아이인지도 모르고 걸어갔다거나, 그런게 아닐까? 별을 보다가 우물 물에 빠졌다는 탈레스처럼, 아이돌 오타쿠 아이돌 프로듀서는 반짝이는 그의 별들 생각에 잠겨서...!

"아, 츠바사?"

이 목소리는 미키다. 미키가 어느새 온 걸까, 했는데 카페 안은 그대로였다. 후드티를 입은 손님은 아직도 자는 것처럼 보였다. 카페 안에서까지 자고 있는건 미키스럽긴 했지만 츠바사를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 설마 신문을 보고 있는 사람?

"아핫, 정말 못 알아보네."

"미, 미키쨩. 왜 신문을 읽고 있어요?"

"으응, 읽고 있는게 아냐. 아이돌의 변장술인거야!"

미키는 신문을 반으로 접고 또 접어 츠바사에게 안겨주었다. 얼떨결에 신문, 아니 본인에게는 아마 쓰레기에 불과할 종이 뭉치를 받아버린 츠바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미키를 바라보았다.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가, 금세 시무룩해졌다. 

"있지, 츠바사. 안 좋은 소식이 있어."

".....뭔데요...?"

"허니는 감기가 심해져서 못 오는거야."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감기가 심해졌다는 말은 원래 감기에 걸렸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다. 그렇다고 목을 혹사시키지도 않았다. 전날 목을 혹사시켰던 건 오히려 츠바사였다. 내일이 드디어 데이트 날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평소보다 더 열심히 라이브에 임했으니까. 츠바사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역대 여자 아이돌 직캠 순위 1위에 근접할 수 있을만큼의 힘을 쏟아서 노래를 불렀었다. 비록 올스타즈의 선배들은 자리에 없었지만 프로듀서는 칭찬해줬는데. 시즈카도 미라이도 감탄했다고 흥분하면서 얘기해줬는데. 모두들 그렇게 말해줬는데, 프로듀서는 사실 내가 자랑스럽지 않았던거에요? 어제 프로듀서 씨를 만나지 못했던 미키쨩한테 감기에 걸렸었다는 거짓말까지 치면서? 나는 프로듀서 씨가 멀쩡했다는걸 아니까... 그냥 아무런 말도 안 하고....

"허니한테 전화했었는데, 전화를 바로 끊고 문자로 말해줬던 거야."

그야 전화를 하면 멀쩡한 목소리로 바로 들통나버릴테니까. 그런거죠? 치사해. 정말 치사해. 나한테까지 거짓말을 시키고. 츠바사는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게 미키가 츠바사의 데이트를 위해 꾸며준 자리라는걸 알고 그런걸까? 아니면, 그냥 미키와 츠바사가 '친해지길 바라'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빠진걸까? 어느 쪽이든 츠바사는 프로듀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미키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런 일로 미키와 프로듀서의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프로듀서는 영원히 미키의 '허니'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츠바사, 미안."

"미키쨩이 뭐가 미안해요!"

아, 이건 실수다. 화는 났지만 화난 말투가 미키를 향해서는 안 되었었는데. 미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츠바사를 바라봤다.

"....아무튼 기대하게 해놓고는 확실히 처리하지 못했으니까, 미키가 미안한거야. 허니는 아프니까 미안하다고 하지 못하잖아."

츠바사는 분노한 마음이 사그러드는걸 느꼈다. 츠바사가 보기에 미키는 평소 성격은 어떨지 몰라도 프로듀서에게만큼은 헌신적이고 상냥했다. 게다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돈독한 유대가 고작 미키 혼자만의 착각으로 이루어졌을 리가 없다. 미키쨩같은 사람이 그렇게 러브러브모드라면 평범한 프로듀서와 아이돌이 하는 일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지 않아? 그리고, 그리고 데이트도 많이 했다고 하고... 아무튼... 그러니까 미키쨩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짝사랑 동지로서 말이야. 츠바사는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기로 결심했다.

"나도 미안해요.. 갑자기 화내서."

"화난 것보다는 삐진 병아리처럼 보였지만, 어쨌거나 괜찮은거야!"

"삐진 병아리라뇨?!"

"츠바사는 날개는 있지만 날지는 못하잖아? 그리고 노랗고. 작고, 귀여우니까."

미키가 츠바사의 날개머리에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츠바사는 다가오는 손에 순간 얼어버렸다. 그렇게 언 것 치곤 별 것 아닌 손놀림이 날개머리를 슥슥 쓰다듬고 지나갔다. 미키는 이미 문자로 본 츠바사의 코디를 처음 본 것처럼 훑어봤다. 응, 뭐 귀여울지도 몰라. 미키만큼은 아니지만. 

"그럼 츠바사, 오늘은 데이트 연습으로 할래?"

"연습.. 이요?"

"응. 오늘이 망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는거야. 언젠가 할지도 모르니까 대비해두는거야! 그래도 미키는 어른의 데이트 많이 해봤으니까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

"어, 어른의 데이트....라고요..."

"아, 그래도 호텔은 가지 않은거야!"

"그건 당연하지!"

츠바사가 바로 씩씩대자 미키가 다시 웃었다. 츠바사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른스럽게 미키를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입장이 바뀌어버렸다. 그래도 전처럼 패배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미키도 츠바사를 배려해서 제안을 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좋아요."

"응? 호텔에 가지 않은거?"

"그게 아니라, 데이트 연습! 좋다구요.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그리고.. 또... 스티커 사진도 찍고... 그럴거에요!"

미키는 츠바사의 어설픔, 아니 좋게 말하면 풋풋함이 싫지 않았다. 솔직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좇는 점도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나가자."

"신문은..?"

"혹시 모르니까 가져가는거야. 미키 가방에 넣어도 돼."

그렇게 미키와 츠바사의 이상한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쉬고 있던 프로듀서에게도 이상한 문자가 도착했다.

츠바사: 거짓말쟁이><

....프로듀서는 최근 한숨이 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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