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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 성[1:하야미 카나데-고독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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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14, 2019 05:39에 작성됨.

(이전화: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131137)



<<Kudamono Knife no Shi>>


느닷없지만 괜찮은 용돈 벌이라고, 소녀는 생각한다. 


수업 중에 써서 압수당했던 휴대전화를 찾으러 교무실로 들어가니, 웬 여자 한 명이 자신의 담임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검은색 챙모자와 타원형의 안경. 양복과 똑같은 검은색의 지팡이를 짚고 있는 기묘한 여자였다. 피부가 좀 어두운 걸 보니 외국인인듯했다.

혀를 차고 교무실 밖으로 향하는 그녀에 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잠시뿐, 빨리 휴대전화를 찾고 친구들과 하라주쿠에 놀러 가기로 했기에 담임에게 휴대전화를 달라고 재촉했다.


"괜찮은 용돈 벌이가 있는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교무실 바로 앞의 복도에서 양복의 여자가 소녀에게 제안했다.

혹시 하야미 카나데 양을 알고 있느냐고 묻길래 같은 반이라고 대답하니, 자신을 주간지의 연예 쪽 기사를 맡은 기자라고 소개해왔다. 

애초에 연예계에 없는거나 마찬가지라 돈벌이로는 모자란 하야미 카나데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의 정보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침 용돈도 다 떨어져 가는 참이었기에 소녀는 가볍게 제안을 수락했다.


<2015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3시 56분, A고등학교의 비어있는 부활동실>


"왜, 고아 같은 애들은 학교 내에서 소문이 쉽게 퍼지잖아. 거기다 하야미는 쓸데없이 예쁘장하기도 했고. 그래서 입학했을 때부터 애들 사이에서 관심사였어."

"주로 어떤 식으로였죠? 그러니까, 관심을 가진 주제 같은 거요."

"대학생이랑 사귀고 있네, 돈 많은 회사사장한테 들러붙고 있네, 그런 얘기. 평소에도 보면 사람들을 내려다본다든가, 애들이랑 말도 안 섞고 거리를 두고, 하는 짓이나 말이나 여우 같은 게 당연히 그럴법한 얘기잖아."

"...그럴 법 한 건가요?"

"드라마 같은 거에도 나오잖아! 어쨌든, 처음에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아이돌 하는 거 까발려진 뒤로는 얘기가 더 커졌지. 아예 돈 받고 몸을 팔고 있다고 말이야."

"...."

"내 친구가 한번 하야미한테 아이돌 하는 거 맞느냐고 물어보니까 본인이 346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대.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의심이 커진 게 올봄에, 그러니까 그 뉴 제네레이션하고 러브라이카가 G 백화점에서 데뷔 공연하고 그다음 주였나? 그때 한두 곡 라이브 한 것 말고는 TV하고 인터넷 어디에도 안 나오는 거야! 대기업에 들어갔다면서 그게 말이 돼? 분명 어디 이상한데에 들어가서 대주고 있는 거라니까! 괜히 걸레년이네 뭐네하고 얘기가 퍼지는 게 아니라고!"

"만약,"


여자는 마른 침을 삼킨다.


"만약입니다만 카나데 양이 사실은 몸을 팔 생각도 없고 판 적도 없다면요?"

"걔는 걔 인생 알아서 살고, 우리는 우리 인생 살던 대로 사는 거지. 사과하라고 고집부리면 사과하는 거고. 당연하잖아, 그런 걸 왜 물어?"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자, 이제 돈 줘."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여자는 지팡이를 짚고 나무의자에서 일어서고는 안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낸다. 손가락 끝에 침을 바르고 1,000엔 다섯 장을 꺼내 소녀에게 건넨다.


"혹시나 모르니까 잘 세어보세요."

"하나, 둘, 셋,"

"그리고 카나데 양은 그러지 않았어요."

"뭐? 무슨 말 했어? 넷…?"


지폐를 세던 소녀의 손이 굳는다. 지폐 넷째, 그리고 다섯 장째의 지폐 사이에 끼워져있는 하얗고 뻣뻣한 종이. 그 위에 검은색 원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는 로고. 


궁궐, `346 PRODUCTION`이라는 문자.


"카나데 양은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느닷없이 지폐 사이의 명함에 꽃인 소녀의 시선에 구릿빛 손이 파고든다.


"꺅!"

"사실 저도 조사하면서 조마조마하긴 했습니다. 이미 당한 피해자 소녀들의 건이 너무 심각했거든요. 이 사달이 날 동안 제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하고 무력감까지 들었지요."


소녀가 올려다보니 여자는 한 손에 든 명함의 앞면을 보란 듯이 소녀에게로 향하고 있다.


[346 프로덕션 무대 연출 컨설턴트 및 예능 3과 프로듀서, Wendy. P. Williams]


"그 새끼, 범인은 카나데 양만큼은 가만히 두었어요. 대충 보고서에 적을만하고 미디어의 눈에 안 날 정도로 사소한 일감만 카나데 양에게 줬더군요. 이 잡듯이 사건을 뒤지고, 나오는 게 죄다 지랄 맞아서 화장실에서 그날 끼니 때운 거랑 재회하고, 또 뒤지기를 반복했어요. 그래도 카나데 양의 성매매에 관련해서는 물증도 심증도 안 나왔지요. 범인에게 있어서 카나데 양은 자신의 말뚝 또는 명줄이니까. 다른 사람들, 카나데 양이 동료를 소중히 여기든 말든 일차적으론 자기가 살아야 하니까. 정말 징글맞을 정도로 구린 일에 안 꼬이게 하려고 발악한 게 보였어요. 잃을 거 다 잃어버린 와중에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만,"


소녀에게 다시 명함을 건네는 그녀의 입은 웃고 있다.


"자기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카나데 양이 알아서 자기 인생을 살 만큼 그걸 털어낼 수나 있을 것 같아요?"


정작 그 눈가는 산산조각이 난 거울에 비친 것처럼, 분노로 흉하게 일그러져있다.


>>>>>>


타누키 아드레날린 랜드.

원래는 평범한 곳인 척하면서 사람을 무섭게 하는 컨셉의 유원지. 1, 2년 전쯤에 765의 아이돌들이 홍보해준 뒤로는 조금이나마 손님의 눈에 맞추고 숨김없이 컨셉을 밝혀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더라.

예전에 우리가 같이 갔을 때는 정말 긴장감 있고 무시무시한 곳이었는데, 잘 됐다면 잘 됐고, 아쉽다면 아쉬워.

그래서 나는 너를 이끌고 지금도 있는 추억의 어트랙션들을 돌아보기로 했지.

우선 시작은 당연히 빙글빙글 커피 컵! 다른 놀이공원의 것보다 몇 배는 빨리 돌고 재미있었지! 특히 커피 컵 손잡이를 돌려서 최대한 덜 어지럽게 버티는 게임을 하기도 했잖아. 

그런데 오랜만이라서 그럴까? 너는 커피 컵을 탄 후에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며 나랑 같이 벤치에 앉았어. 30분 동안 말이야. 


`괜찮으니까 다른 거라도 하나 타고 와. 잠시 쉬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 괜찮은 척 내게 미소 지어도, 그런 거짓말에 그냥 넘어가기엔 너를 좀 많이 알고 있는 걸. 그래서 나는 어트랙션을 타러 가는 척하고는 상어 모양 아이스크림과 레몬 샤베트를 사 왔어.

예전부터 맛보다는 상어 모양 자체가 마음에 든다면서, 정말 좋아했잖아. 나는 지금도 레몬 샤베트를 여전히 좋아해. 그런데 너는 어때? 비록 말없이 먹어서 반응은 못 봤지만, 여전히 그래?


`어트랙션 기념사진? 괜찮아. 비싸고 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은걸.`


대부분의 어트랙션에 기념 촬영 서비스가 새로 생겼어. 인화해서 종이 액자에 끼워주는 게 2,000엔이었지. 솔직히 아직은 연습생이라 조금 부담이 되는 돈이야. 하지만 너와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인걸. 하다못해 유원지를 다니면서 같이 셀카라도 찍어뒀어야 했는데. 

예전에는 기념 촬영 같은 게 없어도 공원을 다니면서 수십 장의 추억을 남겼었잖아. 지금도 내 집 어딘가에는 그때의 사진이 남아있어. 너는 어때? 만약에 잃어버렸다면 내가 도와줘도 될까?


`오늘은 신세 졌어. 그럼 안녕.`


유원지에서 나와 너를 배웅할 때, `안녕`이라는 말보다는 `또 보자`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 그래서 너에게 물은 거야. 내일 다시 만나도 되느냐고.

좀 더 너를 일찍 찾아왔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 메신저만 주고받던 지난 시간이 후회돼. 만약에 내가 진작에 너를 찾아왔다면 오늘의 인사는 `또 보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잖아.


카나데, 기억해? 처음에 우리는 서로 정반대였어.

첫 만남은 좋지 않았지. 네가 실수로 날린 피구공이 내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으니까. 미안하다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나를 보고 어이없어했잖아. 왜 3학년이 1학년한테 이런 식으로 사과하느냐고 말이야.

너한텐 지금까지도 말 못 했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남들과 다르다는 건 좋기도 하고 괴로운 일이지. 주변의 시선을 한 번에 끌어올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의 관심사가 되어버려. 

그걸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서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어.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속으로 다른 아이들을 헐뜯으면서. 카나데를 처음 만났을 때도 쓸데없이 나대고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라고 생각해버렸으니까, 나중에 사과해야겠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너와 함께 보낸 반년 남짓한 시간은 하루하루가 기적 같았는데, 그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말을 한다는 생각조차 못 했거든.


그나저나 카나데도 둔감하네. 내가 카나데를 유원지에 데려간 것도, 커피 컵 게임을 제안한 것도, 아이스크림을 사 준 것도, 집요하게 사진을 찍자고 졸라댄 것도, 혼자 갈 수 있다고 하는데도 고집스럽게 버스를 탈 때까지 배웅해준 것도.

전부 카나데가 내게 해주었던 걸 그대로 따라 한 거였는데 말이야.

정말 무서운 생각이지만, 내가 알고 있던 카나데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서 불안해.

카나데. 너에게 큰일이 일어났고, 모자찡이 너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오늘 난 그저 카나데가 보고 싶어서 왔을 뿐이야.

예전에 나를 이끌어주었던 하야미 카나데는 아직 미야모토 프레데리카의 안에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같이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믿고 싶었어.

내일도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게 너무나도 불안해서 섣불리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어. 만약 다시 보게 된다면,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야. 선배도 한 번쯤은 그 말을 들어봤을 거 아냐.`


부디 프레짱으로부터, 우리로부터 눈을 돌리지 말아줘.


>>>>>>


<2015년 9월 7일 월요일 오후 9시 54분, 346 프로덕션 여자기숙사 로비>


"네! 방금 요주의 인물, 미야모토 프레데리카 양이 이곳 346 프로덕션 여자기숙사에 들어왔습니다! 왼쪽에 들고 있는 가방은 타누키 아드레날린 랜드의 기념품 가방이네요. 이 기자도 예전에 일 때문에 방문한 적이 있어서 알고 있지요!"


웬디가 자신의 지팡이를 마이크 삼으며 요란스럽게 프레데리카를 맞이한다. 어쩐 일인지 챙모자와 안경은 안 쓰고 있다. 

그것의 대신이라도 되는 건지, 검은색의 절연테이프를 코 바로 아래에 수염처럼 붙여놓았다.


"미야모토 씨! 미시로 하루에 이사상무에 대한 사기혐의, 그리고 346 프로덕션 및 웬디 파블로프나 윌리엄스에 대한 서류 무단 열람…. 뭐시기하고, 만년필 절도 혐의를 받고 계십니다만, 범행을 인정하십니까!"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오두방정을 떨며 프레데리카의 입가에 지팡이를 가져간다.


"놀이동산에서 놀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습니까? 피해자들에게 하실 말씀은 있으십니까?!"

"핫!"


프레데리카가 비어있는 손으로 웬디의 지팡이를 잡아챈다.


"엥?"


얼빠진 표정을 짓는 웬디를 무시하고 프레데리카는 당장에라도 소리를 내지를 것처럼 양손으로 지팡이를 꼭 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네! 타누키 아드레날린 랜드는 그 세월 속에서도 죽지 않았습니다! 너구리의 혼과 사디스트의 혼이 여전히 자신이 살아있다고 과시하고 있었어요! 기존에 있던 탈것들은 업그레이드되어서 원래 안전 바가 없던 놀이기구에까지 안전 바를 새로 설치했고, 새로운 어트랙션도 탑승자의 공포를 자극합니다! 롤러코스터! 자이로드롭!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타누키 랜드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트랙션이지요! 건 슈팅 어트랙션도 업그레이드되어서 이제 좀비 아포칼립스와배틀로얄의재미를이현실에서한번에맛볼수있게되었습니다공포의회전목마의말머리는이제90도가아닌360도로회전하고이프레짱이단연컨데,"

"아 됐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다고요! 이제 그만!"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웬디는 프레데리카의 말을 자르고 지팡이를 채간다. 질렸다는 표정으로 프레데리카를 노려보고는 자신의 얼굴에 콧수염처럼 붙은 절연테이프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잡아 뜯는다.


"으아오오오오!!"


그래놓고 빨갛게 달아오른 입가를 손으로 감싸며 상반신을 푹 숙인다.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푹 숙인 게 마치 노파 같아 보인다.


"빈틈 발견!"


그 모습에 눈을 빛내며 프레데리카는 기념품 가방에 손을 쑤셔 넣는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허겁지겁 뒤져서 꺼낸 물건은,


"너구리~! 선캡~!"


프레데리카는 추억의 애니메이션에서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목소리를 흉내 내고는 너구리 모양의 선캡을 그대로 웬디의 머리에 푹 씌운다.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드는 웬디. 손으로 선캡을 더듬거리더니 지팡이의 끝으로 선캡의 뚜껑을 올려 얼굴을 드러낸다.


자신의 목표와 정체성을 헤매는듯한, 공허한 표정이다.


"모자찡의 선물을 생각하다가 모자찡이 정말 햇빛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샀어! 어때?"

"미야모토 씨가 너무 싫어요."

"에이~! 모자찡이 우릴 모두 좋아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적어도 직장 동료로서는 미시로 상무님 다음으로 싫어요."


그러니까 부디 안녕히 주무세요. 웬디는 내려치듯 선캡의 뚜껑을 다시 내리고는 자신의 지팡이에 무게를 실어 프레데리카에게 등을 보인다. 


“!”


하지만 프레데리카는 떠나가는 그녀의 손을 붙잡는다. 


“어.”


깜짝 놀라 얼빠진 신음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보는 웬디의 뺨에 프레데리카의 차가운 손이 닿는다.

왼쪽 뺨에 이어서 오른쪽 뺨. 그다음에는 뒤통수로 물 흐르듯 움직여 그녀의 머리칼을 어루만지고, 마지막으로 양손이 닫는 곳은 그런 머리카락을 짓누르는 선캡의 다리.

프레데리카는 선캡의 양다리를 조심스레 잡아 웬디의 머리로부터 벗겨낸다.

그녀의 양손을 배로 가지런히 모아 선캡을 쥐여주고, 절대 놓치지 말라는 듯이 온기가 담긴 손으로 꼭 쥐여준다.

선캡을 웬디의 손에 미소 짓고 그대로 고개를 살짝 올리는 프레데리카.

웬디의 입장에서 프레데리카의 윤기 있는 입술에 비치는 기숙사의 따스한 조명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 


“Okay…?”


웬디는 약간의 놀라움이 섞여 있지만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보다 키가 7㎝ 정도 더 큰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다.


“저기이~. 모자찡?”

“아, 네이~. 마드모아젤.”

“프레짱을 위해 밥을 해주면 포상으로 같이 목욕하게 해줄게.”

“Wait.”


눈을 휘둥그레 뜬 웬디가 고개를 홱 돌려 로비의 괘종시계를 돌아본다, 시간은 10시 정각이 거의 다 됐다.


“포상이고 뭐고, 이 시간까지 쫄쫄 굶고 어디서 뭘 한 거예요?”


>>>>>>


그래서 급탕실에서 상무랑 만들고 남은 피쉬 앤 칩스를 대충 데우고, 먼지만 쌓인 채 구석에 박아두었던 도시락통을 씻어 냉장고에 있던 쌀밥과 반찬거리를 이것저것 넣었다. 가득 채운 도시락통을 내 방에서 같이 먹자고 졸라대는 미야모토 양 본인과 함께 그녀의 방에 반강제로 처박았다. 그녀에게는 또 사내문서를 멋대로 보여줄 수 없다고 해두었지만, 그 이전에 톱밥과 ‘담뱃재’가 바닥에 깔린 곳에서 밥을 먹이긴 좀 그렇잖아.

그 후 나는 방에 돌아와 도중에 멈추었던 목공작업을 계속했다. 다른 방에 들리지 않도록 조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 감각이 무뎌진 것인지.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 미야모토 양이 빈 도시락통을 들고 찾아왔을 땐 그녀의 귀가시간으로부터 30분을 조금 넘겼다.


“정말 맛있었어, 모자찡! 자, 자. 이제 목욕하러 가야지? 곤란하면 이 프레짱이 목욕 준비하는 거 도와드려요~! 등도 밀어줄게!”


한 손에는 도시락통, 다른 한 손에는 목욕 바구니. 배시시 웃으며 슬금슬금 문 안쪽으로 파고들어 오는 그 모습은 제법 사랑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어찌나 얄밉던지.

행여나 또 방을 뒤져서 괴상한 물건을 꺼낼까 봐, 나는 미야모토 양이 내 물건에 손을 댈 틈도 없이 잽싸게 목욕용품을 챙기고 그네처럼 흔들리는 그녀의 손에 질질 끌려갔다.


기숙사 공용목욕탕의 운영시간은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프로덕션의 연예인들을 위해 맞춘 시간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거나 만사가 귀찮다면 방마다 설치된 욕조를 쓰면 그만이다.

우리가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자 그곳에는 탕 안에서 녹은 것처럼 축 늘어진 고양이…. 사람, 한 명뿐이다. 이쪽을 한번 흘끗하더니 앓는 소리를 내며 도로 늘어진다.

타케우치 선배가 데리고 다니는 마에카와 어쩌고 양이었던가. 기숙사 복도를 어슬렁거리다가 들은 고양이 100마리를 데리고 라이브를 하네 마네 하던 이야기가 인상 깊었지. 

아마도 농담일 것이다. 그딴 게 실제로 일어났다간 아이돌, 관객, 심지어 나를 포함한 스태프들까지 봉변을 당할 테니까. 


"탕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씻어야지! 우선 모자찡부ㅌ,"

"10, 9, 8,"

"알았어, 알았어! 모자찡도 참 부끄럼 쟁이네."


옳지 옳지. 미야모토 양은 허겁지겁 내가 가리키는 좌식 샤워기 앞에 앉는다.

샤워 모자를 머리에 쓰곤 이제 나까지 외워버린 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을 동동 구른다.


"맨 처음에는 그 빨간 통에 있는 거로, 그걸 헹구고 난 다음에는 노란색 통에 있는 거로 하면 돼."

"네. 머리는 그렇게 감기면 되죠?"

“응. 처음이니까 살살 부탁해, 자기야~!”

“....”


살살이고 나발이고 빵 반죽을 갖고 놀듯 미야모토 양의 인정사정없이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머리 감기로 적당히 골탕먹인 후에는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것 정도. 미야모토 양이 혼자서 씻을 수 있을 만큼은 남겨둔 후에야 내 몸을 씻을 기회가 찾아온다.

눈을 질끈 감고, 톱밥과 ‘담뱃재’가 엉킨 머리를 감는데,


“만세에에에~!!”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등 위로 튀는 물보라.


“냐아^%$^#?!”


그리고 고양이가 허우적거리는 소리.


“수영장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다이빙을 하면 어쩌자는거냥?!”


그 말 그대로 된 모양이다.


머리와 얼굴에 묻은 거품을 씻어내고 돌아보니, 탕 안에는 세상만사 편한 얼굴로 수면 위에 누워있는 미야모토 양. 

탕의 가장자리에는 당장에라도 할퀴려들 것 마냥 팔을 난간에 걸치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고양이 양. 


“...교육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과연 교육이 될까 싶지만요.


몸까지 다 헹궈 낸 후 노골적으로 이쪽을 경계하는 고양이 양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탕에 몸을 담근다.

탕 위에 둥둥 떠다니다가 내가 탕에 들어오자 무슨 외계 공포영화처럼 다리만 움직여 슬금슬금 머리를 이쪽으로 향해오는 미야모토 양. 그대로 내게 곤두박질칠 듯 하더니, 익숙한 몸놀림으로 상체를 세워 내 옆에 앉는다.


"모자찡, 내일은 뭐 해?"

“내일은 연차를 좀 쓰려고요.”

“연차? 어디 놀러 가?”

“카나데 양이요. 오늘 미야모토 양이 냅다 튀기 전에 제가 먼저 찾아갔어요.”


그리고 별 성과도 없이 말아먹었지.


“미시로 상무님 명령이에요. ‘내일 하루 동안 카나데 양이 업무에 복귀하도록 설득시켜라.’ 그리고 ‘사원 이전에 인간으로서 연차도 좀 쓰고 살아라’. 그래서 말입니다만,”


나는 마르지도 않은 입술을 핥고 침을 삼킨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건 서류로 알았지만, 직접 찾아갈 정도로 친분이 있으실 줄은 몰랐는데. 미야모토 양하고 있는 카나데 양은 어떤 느낌인가요?“


더 정확히는, 남과 허울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카나데 양은 어떤 느낌일까. 내가 볼 일이 있는 건 그쪽이다. ‘오늘 같은 쪽’이 아니라.


“음…. 글쎄.”


미야모토 양은 금방 대답하지 못하고 턱에 손을 올린다.


“만약 카나데가 프레짱 1호 같은 느낌이었다면 어떨 것 같아?”

“한동안 카나데 양을 볼 때마다 미야모토 양의 얼굴이 떠오르겠죠.”

"좋은 거야?"

"어떨까요."

“물론 원래의 카나데도 지금의 나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자각은 하고 있었던 건가.


“‘원래의 카나데’라는 표현은 혹시,”

“응.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되어있었어. 얘기도 내가 일방적으로 하고.”

“그래도 대충 밤늦게까지 같이 있었으면 조금이나마 옛 모습 같은 게 보였을 텐데요.”


미야모토 양은 내 말에 고개를 젓는다.


“헤어진 건 대충 6시쯤이었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해도 따로 볼일도 있고 서로 동선이 안 맞아서 안 된다고. 그런데 그대로 카나데를 보내자니 어째서인지 가슴이 자꾸 두근거려서, 몰래 따라갔어. 처음에 갔던 곳은 가는 질에 있었던 우체통. 그 후엔 바로 집으로 들어갔지."

"부탁이니까 이 시간이 되도록 계속 카나데 양의 집 앞에 집 나간 개처럼 있었다고 하지 마세요."

"있었는데? 모자찡도 친한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하면 똑같이 했을걸?"


당연한 걸 왜 그러냐는 것처럼 이쪽을 향하는 똘망똘망한 눈. 뜨거운 물 때문인지 약간 현기증이 난다.


"뭘 했든 간에 미야모토 양처럼 밖에서 비석처럼 서 있지는 않았겠죠. 어쨌든 성과가 없는 건 우리 둘 다 마찬가지네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나는 그대로 물속에 눕듯이 머리까지 잠긴다. 기포 소리가 잠시 귓가를 맴돌고, 이내 조용해진다.

눈을 떠보니 시야에 가득한 목욕탕의 하얀색 천장. 수면으로 굴절되어 내려오는 따뜻한 색감의 불빛은 마치 금실로 짜낸 그물처럼도 보인다.

온갖 생각으로 쑤셔왔던 머리도 지금 이 아래에서는 그나마 안정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직 카나데 양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애초에 이번 일은 카나데 양을 복귀시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미시로 상무도, 그녀와 달리 아이를 다루어 본 경험이 있는 나조차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가, 나 같은 년이 남의 상처를 보듬어주려다 상처가 더 벌어지지는 않을까.


"풉."


옆구리를 찔러오는 가느다란 무언가에 조금이지만 숨을 내뿜는다. 수면 위로 올라가는 이산화탄소를 확인할 새도 없이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엎드리는 자세로 가라앉아 이쪽을 바라보는 미야모토 양. 욕심 많은 다람쥐처럼 입을 부풀리고 반갑다는 듯 이쪽을 향해 한 손을 흔든다.

다시 내 옆구리를 그 손가락으로 쿡 찌르지만 애초에 약점도 아니었고, 누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시점에서 더는 의미가 없다.


`됐거든요`.


나는 미야모토 양을 향해 고개를 저어 보인다.

그 얘기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 미야모토양. 검지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웬디`.

`미야모토`.

`손목`. 아마 손목시계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 위`


숨참기 시합이라도 하자는 것일까.


"!"


손짓을 그대로 돌려주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걸 보니 정답인 것 같다.


상체를 조금 세워 자세를 잡고 미야모토 양을 향해 한쪽 귀를 막고 하늘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해 보인다.


`경기 시작`.


미야모토 양이 나보다 늦게 들어오긴 했지만, 수영을 밥 먹듯이 했던 이쪽은 폐활량에 자신이 있다. 하지만,


“푸흡?!”


눈앞의 광경에 반사적으로 참았던 숨을 내뿜고 만다. 코에까지 물이 들어오고 폐에 물이 걸리니 시합 따위 어찌 되도 좋다. 


아마 미야모토 양은 ‘요염하게 옆으로 누워 이쪽을 보는 미녀’ 따위를 흉내 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라비아 사진집이나 괴상한 의상으로 누군가의 눈을 엿먹일 때 자주 보이는 그 포즈. 여유롭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같은 여자를 유혹해서 뭘 어떻게 해보려고 한 것인지. 하지만 무슨 의도였든 간에 부력은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덕분에 미야모토 양은 떠오르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서도 억지로 자세를 유지하다가 결국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허우적거렸다.


이런 간단 무식한 상황이 예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웃음 샘을 자극하는 것인지.


“푸하아, 크하하, 커켁, 케헥!”


수면 위로 솟아오르자마자 고통스러운 기침과 웃음소리가 섞여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어떻게 시야와 정신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얼굴을 감싸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언가.


"내가 이겼네!"


미야모토 양은 내 얼굴을 자신의 손으로 닦아주고, 눈가를 가린 채 축 늘어진 젖은 머리를 정리한다.

그후, 미야모토 양의 두 손은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내 시선은 그 빨려들 것 같은 매력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리적으로.


"내가 이겼으니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줘!"

"제가 무슨 램프의 요정도 아니고.... 그리고 저는 그런 조건 들은 적 없는데요."

"당연하지! 물 속이니까. 그리고 이런 시합이 아니라도 프레짱은 열심히 했다구! 트레이너 씨들한테 부탁해서 연습도 앞당기고, 완벽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까지 열심히 연습하고! 이렇게 노력하는 프레짱이니까 보상을 강력하게 희망합니다만!"


내가 아니라 미시로 상무님한테 부탁해야 할 것 같지만, 내 선에서 미야모토 양한테 뭘 해준다고 해도 큰일 나지는 않을 것이다.


"소원 첫 번 째! 내일 아침 카나데한테 갈 때 나도 데리고 갈 것!"


내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리고 두 번째! 나한테 밥해줬던 것처럼 카나데한테도 아침밥을 차려줄 것!"


아주 자신 있게 미야모토 양은 말한다. 내가 악당이고, 빼앗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는 것처럼.

그런 것치고는 제법 소박하고 다정한 소원이라 나도 모르게 입 근육이 씰룩인다.


"그럴 거면 지금부터 장보러 나가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그래 주면 정말 고맙다냐…."


옆에서 다죽어가는 고양이 양의 목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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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카와 카나데가 간 놀이동산은 아이돌 마스터 Colorful days에서 따왔습니다.


(다음화: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e&wr_id=132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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