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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다리는 소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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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8, 2019 12:05에 작성됨.

촬영을 마친 저녁은 모두가 돌아갈 시간이다. 미성년자는 밤 촬영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츠바사가 가방을 챙기며 생각했다. 요즘 인기 있는 갸루 아이돌 죠가사키 미카가 광고하는 가방이었다. 이런 걸 사면 프로듀서도 '와, 귀여워!'하고 넘어가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남중생들의 러브.. 아니 팬 레터만 늘고 있으니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츠바사는 금세 울적해졌다. 프로듀서 씨처럼 멋진 남자도 있고, 바라던대로 학교에서 인기도 많아졌고, 여자애들 사이에서도 잘 나가는데 뭐가 문제지. 

“아아-! 프로듀서 씨랑 데이트 하고 싶다~”

츠바사는 광활한 대나무숲에라도 임금님이 사실은 탈모라는 것을 털어놓아야 속이 후련할 타입이었다. 물론 대나무숲에 임금님의 충실한 부하가 있을거라는 건 생각을 하지 않고 우선 대나무숲이니 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다. 대나무숲을 산책하던 부하, 아니 성의 공주쯤 되는 등급의 호시이 미키는 소리도 내지 않고 츠바사의 시야에 쏙 들어왔다.

“미.. 키쨩?”

“프로듀서랑 데이트하고 싶어?”

츠바사의 몸이 수치심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바보 미라이여도 부끄러웠을 판에 하필이면 미키라니. 차라리 사악한 우동마인 시즈카가 나을 뻔 했다. 차가운 경멸의 눈빛 1초만 견디면 되니까. 악랄한 브라콘 시호라도 괜찮다. 츠바사가 이러는게 하루이틀인가, 하고 넘길 것이다. 그 애는 가족 외의 남한테 관심이라곤 일절 없으니까. 사실은 누구라도 괜찮았다. 미키만 아니면 됐다. 미키는 츠바사의 데이트 타령에 대한 갈증이 어디서 나온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츠바사의 값싼 입이 미키를 어설프게 도발하려 든 죄가 결국 제 입으로 데이트는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중학생이라는 것을 실토하게 만든지는 꽤 되었다. 그럼에도 미키가 그 일을 까먹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 일. 지금은 아무 생각같은건 없어보이지만 속으로는 백퍼 비웃고 있을거야. 그런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츠바사가 신경질적으로 선빵을 날렸다.

“시, 신경쓰지 마세요?!”

아쉽다, 임팩트가 세야하는 첫 한마디가 조금 약했다. 하지만 무너지기 직전 치고는 꽤 잘 버티고 있다. 츠바사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이건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절대 질 수 없었다. 미키는 그런 츠바사의 승부욕을 눈치 채고도 무표정했다.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미키가 도와줄까?”

“..네?”

“데이트, 하고 싶다며.”

“미키쨩이.. 저를 도와줄 이유가 없잖아요.”

츠바사의 본체, 날개머리가 축 쳐졌다. 이미 충격으로 너덜너덜해진 츠바사는 미키 앞에서 자존심을 세울 힘도 없었다. 

“있는거야.”

“그치만, 미키쨩 프로듀서 씨를..”

"허니는 미키와 연애할 생각이 없어. 미키를 옆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다니~... 아마 게이거나 무성애자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거야."

미키가 너무 단호하게 말하자 츠바사도 말문이 막혔다. 미키가 이렇게 쉽게 인정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거니와, 뒤에 이어지는 충격적인 추측은 또 무어란 말인가.

"그러니까 츠바사가 허니랑 데이트 비슷한걸 해서 허니가 흔들릴 가능성은 제로. 미키적으로는 얻는것도 잃는것도 없는거야."

"어떻게 확신해요? 그냥 미키쨩이 취향이 아닌걸수도 있잖아요?"

츠바사가 반격에 나섰다. 어른의 세계로 유혹을 해버린 (온전히 츠바사 중심적인 생각이었지만) 프로듀서가 츠바사에 끌릴 일이 없다니,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츠바사에게는 아예 기회조차 없어지는 셈이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어야해. 지금 저거 나를 깔보는거잖아. 연애할 생각이 없다니 운운하는 것도 사실은 거짓말일지도 몰라.

"미키가 취향이 아니라면 츠바사가 취향일거라고 생각해?"

"........."

"허니가 말하더라. 츠바사, 미키랑 비슷해보인다고. 으응, 외모를 말하는게 아니야. 허니는 츠바사에게서 미키를 본대. 솔직히 미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허니가 말한 이상 조금은 신경 쓰이기 시작한거야."

"저랑 미키쨩이..."

"그래서, 미키는 츠바사가 미키와 같은 선로를 밟지 않기를 바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떨어질거면 빨리 떨어지라는거야. 허니는, 담당 아이돌과는 절대 연애같은건 하지 않을테니까."

걱정을 해주나 싶어 들떴던 츠바사의 마음이 냉장고에 있던 아카네쨩의 푸딩만큼 차게 식었다. 츠바사에게는 미키의 말이 그저 거슬리는 어린애를 제거하기 위한 심술로만 들렸다. 확실히 미키는 츠바사에게 아이돌이 구사해야할 화법을 쓰지는 않았다. 츠바사가 삐뚤어진게 아니라, 미키도 말을 하는것에 있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츠바사는 계속 미키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미키가 딱히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어 해탈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올스타즈 안에서는 바보 미라이 정도의 취급을 받는 댕청함의 소유자임에도. 분명 프로듀서가 관찰한 츠바사미키설은 틀리지 않았다. 미키가 츠바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보는 것도 그런 엉성한 등호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미키가 고려하지 않은 것이 두가지 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잠시 필터를 거치지 않은 자신의 말과, 츠바사의 오기였다.

"좋아요, 도와줘요! 프로듀서 씨랑 데이트할거니까! 어떻게 도와줄건데요?"

"응?"

"도와주겠다면서요? 설마 그런 것도 생각 안 하고 말을 막 한거에요? 흐음, 그게 프로듀서 씨가 미키쨩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이유일지도~"

지금의 츠바사는 무지개별을 먹은 마리오였다. 이미 츠바사의 마음 속에서는 그라데이션의 빛나는 효과와 함께 흥겨운 배경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선빵이 약했던 그 이상의 후살에 미키는 짐짓 당황했다. 불쾌함보다도 당황스러움이 컸다. 여기서 이렇게 반응하는게 아닌데? 이게 아니라 '휴우, 프로듀서 씨는 그렇구나...'하고 실망해야하는거 아냐?

"......."

하지만 과연 프로 아이돌. 무표정 공격으로 츠바사의 마음 한구석 양심이란 것에 미사일포를 날린다. 미키의 무표정은 미즈키의 무표정과는 무게가 달랐다. 오토메스톰에서 항상 당하던 공격임에도 미키가 날리는 건 유독 아팠다.

".....저기, 미키쨩..."

여기서 항복하는건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조금 지나 츠바사도 정상적으로 생각회로가 돌아갔다. 선후배 관계도 떠나 츠바사가 한 말은 잘못이 맞았다는걸, 본인도 아는거다. 그러나 어떤 말을 해야할지 전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허니랑 셋이 놀자고 해볼게."

미키가 의외의 대답을 했다.

"..........네?"

"그래서 미키는 중간에 타카네라거나 다른 사람과의 약속으로 빠지는걸로 하면 되지? 허니, 츠바사랑 미키가 친해지길 바라고 있으니까 아마 수락할거야."

아와와. 츠바사가 고장났다. 츠바사는 옆동네 346 프로덕션의 '나는야 고철 안드로이드' 팀의 뺨을 세대 연속으로 후려갈길만큼 어색하고 뻣뻣한 움직임으로 미키를 붙잡는다.

"미키쨩!"

"싫어?"

"싫은게 아니라...."

미키가 웃었다. 우물쭈물하는 츠바사는 혼자보기 아까운 광경이었다. 이 애랑 미키가 뭐가 닮았다는거야, 허니는?

"미키 말이야, 거짓말 한 적 없어. 미키는 허니 때문에 츠바사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키도 슬슬 진정이 되어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떨어질거면 떨어지라는 건 너무 직접적이기도 하고, 부적절했을지도 모른다고. 츠바사는 미키의 말이 어려웠다. 진심인지, 거짓인지 헷갈려서 어려웠다. 조금은 진심 같은데 저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미키는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고 "연락할게"라며 사무실을 떴다.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츠바사는 괜한 쿠션에 냥냥펀치를 날리다가, 급하게 스마트폰을 켜서 데이트에 입을 옷을 살만한 쇼핑몰을 둘러보았다. 왠지 대화어플의 프로필 사진도 신경이 쓰여서 3번 정도 바꿨다. 미키의 선 라인이 올 것 같으면서도 안 왔다. 답장하고 가야지, 답장하고 가야지... 계속 되뇌이며 잠을 참던 츠바사는 결국 소파에 뒹굴거리던 모양 그대로 잠이 들었다. 늦게까지 연습하다 남아있던 시노미야 카렌이 문을 잠그고 나가려던 중 홀애비 냄새를 맡고 깜짝 놀라 구출하지 않았으면, 츠바사는 아침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츠바사는 자신이 운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악랄한 우동마인 시즈카에게 발견당했다면 더 압도적으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을테니.

어쨌든 시간이 흘렀다. 미키에게 연락이 온 건 그 날의 아침으로, 데이트의 일시는 토요일이었다. 토요일 아침, 츠바사는 완벽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체크무늬 치마와 체인 고리, 베레모, 귀여운 머리핀 등도 예정된 시기에 안전히 배송되었고, 날개머리도 앙증맞게 서 있었다. 안경을 쓰면 모두가 안면인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세계에 살고 있는 츠바사. 덕분에 변장은 이 패션에 안경 하나를 얹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츠바사: 미키쨩, 저 오늘 어때요? 인기있고 청량한 여자애 같아요? ><

츠바사가 거울로 사진을 찍어 미키에게 보냈다. 문명의 세대에서 츠바사와 미키는 페이스 투 페이스보다도 라인으로 먼저 친절한 말을 주고받는 대화를 시작했다. 주간은 츠바사는 츠바사대로 미키는 미키대로 바빠서 볼 일이 없었기에, 이렇게 라인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과연, 거의 일주일만에 만난 라인 친구는 현실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퍼펙트를 띄울 수 있을 것인가. 츠바사는 닥쳐올 일도 모른채 신나게 약속 장소인 카페로 나갔다. 불길한 나레이션이지만 기분 탓이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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