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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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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7, 2019 17:41에 작성됨.

 저번에 썼다가 삭제하고 다시 이것저것 고쳐서 다시 올리는 아이돌 히어로즈 글입니다.




 사람들은 영웅을 동경한다. 

 역사 속의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영웅을 소재로 한 책, 영화가 나오며 더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아예 영웅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은 주변에 영웅이 있거나, 혹은 자신이 영웅이 되길 바라면서 최종적으론 이 세상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동시에 만일 영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를 매우 불행하게 여긴다.

 하지만 영웅이 없는 것은 불행한 것이 아니다.

 영웅이 필요한 것이 불행한 것이다.


 “HQ(본부사령부) 개새끼들아! 대체 지원은 언제 오나! 요청한지 벌써 20분째다! 이미 우리는 전멸 상태다, 반복한다, 우리는 전멸 상태다! 오버!”

 무전에 대고 소리친 직후 다시 M4A1 카빈 소총을 고쳐 잡는다. 그리고 늘 그렇듯 능숙하게 조준경으로 적 보병을 조준하고 그의 몸뚱아리에 5.56mm NATO탄 몇 발을 박아주자 익숙하면서도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들리는 동시에 몸뚱아리 몇몇 군데가 터지면서 쓰러졌고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처음엔 너무나도 충격적인 모습이였으나 이내 익숙해진것도 모자라 이젠 질리기까지 한 이 모습은 내겐 그저 첫사랑끼리의 서툴고 가벼운 애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제대로 죽었는지 확인이 되자마자 총구를 돌려 바로 옆에 총을 들며 달려오고 있는 또 다른 보병을 향하게 하고 조준점을 고쳐 잡아 다시 쏘자 방금 그 자식과 비슷하게 몸에 살덩어리와 내장 조각이 떨어지며 쓰려진다. 이 또한 전희조차 느껴지지않는 가볍디 가벼운 애무였다. 교전이 시작된 지 대략 3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버틸만했으나 약 30분전 대규모 데스톨도 헬기가 지원군을 투입함과 동시에 그 엄청난 수의 헬기들이 공중에서 로켓과 기관총을 퍼붓고 난 뒤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졌다. 이미 대대의 30프로가 송두리째 사라졌고 심지어 대대장도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우리 중대도 20프로가 전투 불능상태, 즉 전멸 상태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후퇴해야하지만 데스톨도의 공격이 너무 거세 후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대대적인 지원뿐이다. 그러나 20분 째 본부사령부에 직접 요청을 보내고 있지만 답은 넉살좋게 지원 순서가 밀렸으니 대기 하라고 한다. 그렇게 총을 쏘며 속으로 망할 호로새끼들이라며 HQ를 욕하고 있자 HQ의 오버시어 대신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키, 양키, 여기는 마이티 세일러 유리코, 귀소 측을 지원하겠다. 이상.”

 마이티 세일러가 속한 아이돌 히어로즈는 데스톨도가 나타난 이후 UN 산하 특수기관이 되었고 그 아이돌 히어로즈 내 최정예 특수부대인 마이티 세일러는 특수작전, 아니면 아주 특별한 전투가 아닌 이상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물론 노는건 아니고 들리는 말에 따르면 비밀임무를 주로 한다고는 하지만.) 그러므로 시민은 물론 우리같은 최전방 군인들도 홍보 차원에서나 보지 실제 전투를 본적은 거의 없다. 그런 마이티 세일러 중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유리코가 직접 지원을 온다고 하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곧 하늘에서 신이 번개를 찍어 내리듯이 유리코가 땅에 착지하자 감정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던 데스톨도 보병들이 겁을 먹는 것이 보였다. 유리코 주변에서 내뿜는 분홍빛 오라는 감히 누구도 다가올 수 없을 정도로 위엄이 있었고 유리코가 마치 누군가에게 일부러 보여주려는 것처럼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행동들로 적들을 제압하자 우리들도 총을 내려놓고 넋을 잃은 채 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제압만 할 뿐 전혀 살육을 하지 않았다. 그런 유리코는 수많은 적들을 죽이며 스트레스에 쩔어 있던 우리가 봤을 땐 매우 평화로운 방법이었고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으며 한편으론 마치 슈퍼히어로 영화의 액션 장면처럼 보였다. 우리는 지금껏 최전방에서 항상 싸워왔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화끈하게 싸우는 광경은 결코 본적이 없고 앞으로도 못 볼 것이다. 그렇게 마이티 세일러라는 반짝반짝 빛나고도 엄청난 존재 앞에 데스톨도 보병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그저 무력하게 보고만 있을 뿐 이였다.


 결국 유리코가 일부 데스톨도 보병을 차례차례 제압하자 그들은 더 이상의 저항은 무리라는 현명한 판단을 했는지 곧바로 항복을 했다. 조금 전만 해도 단체로 죽어가고 피를 튀기며 힘겹게 막아내던 상대들이 영웅이라는 존재의 등장으로 어린아이처럼 겁을 먹으며 항복을 한 것이다.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도 허무했다. 항복을 한 뒤 포로가 된 이들을 후송할 때까지 우리 중 일부는 아까 전투로 인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포로들을 향해 쌍욕을 퍼부으며 가볍게 개머리판으로 때리거나 군홧발로 걷어차며 그들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는 중 이였다.(물론 그러한 행동이 적발될 때마다 곧바로 제재를 먹었지만 말이다.) 전투가 끝나고 시간이 약간 흘러 심적으로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 바닥에 있는 수천 개의 황동색 탄피들은 어찌나 많은지 쌓아 올려서 걸터앉아도 될것처럼 보였고 이 수많은 탄피들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총알을 퍼부었는지 다시 한번 각인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탄피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아까까지만 해도 함께 살아 숨 쉬며 싸운 중대원이었던 시체들이다. 아까 내 눈앞에서 광기에 휩싸인 채 비명을 지르며 기관총을 난사하다 머리가 터진 채 내 앞에 쓰러진 하즈키 상병이 보인다. 며칠 전 우리 중대로 배치된, 항상 겁이 많았으나 정작 전투에선 묵묵히 자기 임무를 수행하던 이치로 이병도 보였다. 

 다들 소중한 전우였지만 한명의 시체를 보자 다른 중대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부중대장이자 나의 친구였던 나오였다. 내가 훈련소에서 남들 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던 날 위로해주고 언제나 함께 했던 내 친구. 그런 그가 내 앞에서 눈을 뜬 상태로 배에 내장을 흘리며 피 범벅으로 쓰려져있었다.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만 부정하면 함께 죽은 다른 중대원들은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군벌줄을 챙기고 흙과 피가 어울려 하나의 그림이 만들어진 전투용 장갑을 벗고 손으로 그의 눈을 감겨주는것 뿐 이였다. 그의 얼굴은 막 얼음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보다 차가웠다. 체온이 느껴지자마자 반사적으로 울컥했다. 조금이라도 부정하고 싶었던 그의 죽음이 그의 체온으로 인해 여실히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가만히 울먹이다가 인기척이 느껴지자 뒤를 돌아봤다. 평소에 항상 보던 군화와 위장색을 입힌 군복 바지가 아닌 검은 학생용 구두와 검은 스타킹, 새하얗고 매끈하며 매우 탱탱해 보이는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절대영역이 보였다. 그동안 보던것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누군지 짐작하고 고개를 올렸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을 흘리지만 않을 뿐 매우 슬퍼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흠칫하면서 약간 당황하는게 보였다. 나에게 말을 걸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입을 살짝 열었다.

 “유감..... 이에요.”

 약간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무전을 들었을 때 지지직거리던 잡음이 없이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니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그런 것 따윈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죄 없는 그녀에게 분노어린 원한이 섞인 채 말하였다.

 “왜 지금... 왜 지금 왔어... 왜 지원 요청... 한지 20분이 지나서야 온거야...”

 말을 하던 도중 울먹임으로 인해 불가항력으로 목소리가 고음이 되며 중간 중간에 말이 끊겼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만남은 매우 음침했고 끔찍했다.

 

 ‘마이티 세일러 유리코, 또 다시 데스톨도를 막아내다’

 

 ‘아이돌 히어로즈, 그들은 구세주인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녀와 나는 몇분 간 아무 말없이 나란히 서 있다가 이내 중대원에게서 기지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전달받고 그 자리를 떠났으며 곧 그녀에게 기자들이 몰려오면서 우리들의 첫만남은 끝이 났다. 그리고 지금은 사단 본부로 전투 보고를 하기 위해 이동중인 차에 탔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할 일이 없자 핸드폰으로 뉴스나 인터넷 기사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기사들의 내용은 내가 그 일을 그만두게 했다.


 ‘UN군이 해내지 못한 일, 한 소녀가 홀로 해내다’


 ‘UN군의 필요성 논란’


 ‘왜 그들은 막아내지 못 했는가’


 "씨발....."

 답답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고 입 밖으로 자그마하게 욕설을 뱉어낸다.

 핸드폰 화면을 껐지만 그 기사 내용들은 마치 생물처럼 계속 머릿속을 뒤적이며 뇌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조직은 사람들이 흔히 영웅이라고 칭송한다. 그녀들은 키네틱 파워라는 초능력을 소유하며 그 엄청난 초능력으로 언제나 데스톨도와의 전투에서 엄청난 전공을 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영웅 그 자체로 추앙받는다. 또한 그녀들은 그 엄청난 인기로 인해 언제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주목을 받으며 마치 그녀들의 조직 이름처럼 아이돌 같은 존재다.(실제로 그녀들은 데스톨도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전 까진 표면상 아이돌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들은(적어도 표면상으론) 깨끗한 사생활과 인격으로 인해 이미지 또한 매우 좋다. 그렇게 화려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있었고 우리는 그런 그들을 영웅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영웅이 아니었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었다.


 보고를 끝마친 나는 마침 시간이 남아 잠기 사단 본부 내에 위치한 카페에 들렸다. 사단 본부에 올때마다 용무를 본 뒤 시간이 남으면 항상 이곳을 찾는다. 나름 단골인 나를 알아본 카페 주인에게서 늘 먹는 아메리카노를 받은 뒤 앉을곳을 찾아본다. 마침 주변에 한 테이블이 비어있어 그곳으로 향하자 갑자기 누군가가 먼저 자리를 차지한 뒤 눈이 마주쳤다. 며칠 전 그녀였다. 그때와는 다른, 노출도가 훨씬 덜 한 그녀의 복장을 얼추 보니 아마 이 의상은 평상복 내지는 정복처럼 보였다.

 ““어?”“

 순간 다른곳으로 갈까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자리도 없었고 무의식적으로 같이 앉고싶다는 생각이 든 나는 그녀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실례합니다만 합석해도 괜찮겠습니까?”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아마 상관일 것 같아 존댓말로 묻자 그녀는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아, 존댓말 하실 필요 없어요! 전 군인이 아니니깐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하긴, 15살밖에 안된 소녀가 전장에 나가는것도 모자라서 심지어 형식상으로라도 군인이라면 아마 여론도 난리가 났을거야."

 실제로 어린 소녀들을 살육이 펼쳐지는 전장으로 내모는것은 미친 짓거리라고 비난하는 여론도 소수지만 존재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적어도 표면적으론)그녀들은 자신들이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직접 출동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하고 무엇보다도 그녀들이 없으면 전세가 매우 불리해지기에 어느정도 묵인하는것도 있다. 이렇게 세상은 생각보다 형식적이다. 나는 자리에 앉고 뜨거운 김을 뱉어내고 있는 아메리카노 잔을 들어 한입 홀짝였다. 씁쓸하면서도 개운한 느낌이 마치 차를 마시는것처럼 느껴졌고 피곤에 쩔어있던 몸이 잠시나마 맑아졌다.

 "그나저나 넌 아이돌 히어로즈 소속 아닌가? 왜 사단 본부에서 있는거지?"

 난 그녀에게 왜 사단 본부에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알려줬다.

 "아, 그건 히어로즈와 군의 협력 관련해서 여기 사단장님과 면담할게 있었거든요, 그리고 며칠 전 전투에 관련해서도.... 앗...."

 그녀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말을 잇는걸 그만두었다.

 "괜찮아, 수많은 전투를 하며 소중한 사람 잃는건 슬슬 익숙해지는 중이거든."

 거짓말이다.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면 나보다 먼저 간 수많은 전우들이 눈앞에 보인다. 그리고 지난 며칠간은 나오의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부정하고싶었다. 하지만 아침 구호를 뛸때 며칠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없는걸 볼때마다 가슴이 찢어질것같았다. 하지만 이런 어린 소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에 일부러 담담한 척을 했다. 미칠것만 같다.

 "그리고 그때 욱해서 따졌던거에 대해선 사과하도록 하지."

 "에? 아니에요...! 그때 제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갔어야했는데.... 너무 늦어버렸어요..."

 그녀가 시무룩해하며 말한다. 나는 이왕 이 얘기가 나온거 좀 더 캐뭍고싶었다.

 "딱히 뭐라하려는건 아니지만, 어째서 20분이나 걸린거지? 그 정도로 다른 교전 지역에서 지원 요청이 많았나?"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은 내가 큰 오해를 하고있엇다는걸 알려주었다.

 "사실 전 당시 근처에서 기밀 임무를 수행중이였거든요... 그리고 임무 수행 뒤 히어로즈 본부로 복귀하려다가 무전 내용을 듣고 달려갔는데.... 너무 늦어버렸어요..."

 "기밀 임무라고?"

 "데스트라드 66과 관련된 일이라고만.... 해둘게요."

 "데스트라드 66? 그게 기어코 도쿄에도 들어왔단말이야?"

 내가 되물어보자 그녀는 방금과 달리 침묵을 지켰다. 전혀 몰랐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데스톨도와 함께 나타난 데스트라드 66 때문에 이미 미국을 시작으로 북아메리카 전체가 감염되어 함락되었고 북아메리카의 군사력, 특히 무엇보다도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군의 전력을 그대로 흡수한 데스톨도는 파죽지세로 다른 대륙을 넘보기 시작했고 이미 많은 국가들이 그들의 무력에 무너져 갔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 끔찍한 물질이 이미 일본에 상륙했다는것이 놀라웠고 또 그것과 관련된 일이 내가 있던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일어났다는것은 상상도 못했다. 물론 이름처럼 당연히 기밀리에 수행되는 작전이니 모르는게 당연할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피 터지게 교전하던곳 부근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하지만 더 이상 캐뭍고싶지는 않았다. 더 이상 알면 일이 귀찮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난 모가지 행이 될것이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위험할만큼 알고있는 상태다. 그녀의 말 중에서 데스트라드 66에 관한건 제쳐두고 다른 내용에 대해 말했다.

 "일단 그런 사정이 있었는데도 우릴 지원하러 스스로 와줬다면 진심으로 감사해야겠네, 정말 고맙다. 진심으로."

 그러자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당황하듯이 말했다.

 "아...아니에요! 사람들을 지켜내는건 저희가 해야할 의무인걸요! 그리고....제가 늦게 오는 바람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잃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제게 키네틱 파워라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지키진 못했고요. 제가 좀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했을텐데...."

 다시 침울해지는 것을 보고 나는 반박을 했다.

 "아니, 그래도 너 덕분에 그나마 우리 모두가 죽지않을수 있었어. 당시 우리 중대뿐만 아니라 3대대 자체가 전멸 상태였거든. 하마터면 몰살 당할뻔했어. 너도 알다시피 데스톨도는 포로를 잡지않잖아."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조금은 표정이 밝아지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는 나에게 살짝 웃어줬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였다. 수많은 미소를 봤다. 그러나 그정도로 순수한 미소는 어머니가 주름진 얼굴로 보여준 미소 말고는 본적이 없다. 그 모습은 조금 황홀하기도 했다.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밖에 나와있다. 왠지 지금은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하고 싶었다. 그녀와 있을수록 그녀만의 알수없는 매력에 빠진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단 둘이 있으니 너무나도 조용했다. 이 조용한 분위기를 너무나도 깨부수고싶었기에 무슨말을 할지 몇초간 고민하던 중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위화감을 느끼자마자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에게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와 질문의 공세가 쏟아졌으나 그녀는 곤란한 기색 없이 인사와 질문 하나하나에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반응해줬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방해하지 않기위해 조금 떨어져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굉장히 부러우면서 계속 보고있자니 별로 좋지않은 기분이 들었다. 열등감인것같았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열등감이 들면서도 그럴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영웅이지만 나는 아니다. 결국 우리들은 유리코라는 빛에 가려진 어둠같은 존재인것이다. 아무리 피터지게 싸우고 희생되어봤자 아무도 기억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실수를 하거나 사고를 저지르면 무관심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를 비난하고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다시 예전처럼 관심을 가져주지않는다. 그게 우리의 일상이다.

 "누나는 최고의 영웅인건가요?"

 "아니, 난 그저 최고의 영웅들과 함께 싸웠을뿐이란다."

 "그 최고의 영웅이면 아이돌 히어로즈를 말하는건가요?"

  한 아이가 그녀에게 질문을 했고 그녀의 답변은 생각의 늪에 빠져있던 나를 깨워줬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 그리고.... 군인분들 말이야."

그 말은 들은 나는 화들짝 놀라 그녀 쪽을 바라봤다. 질문을 했던것으로 추청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아무도 모르게 나를 향해 짓고 있기도 했다. 아까 봤던 미소처럼 아름다웠다.

 

 잠시후 그녀가 사람들에게 빠져나오자 나도 곧 뒷따라갔다. 그리고 우리는 한적한 인근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아까처럼 고요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아까 그런 말은 처음 들었어."

 그러자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다들 영웅이라는 존재로 인해 우리를 잊어버렸지. 물론 우리가 너희들에 비해선 활약도 못하고 지켜주지 못하는것도 많았지. 너무나도 많은것들을 잃어버렸어. 아마 사람들도 그런 우리들에게 질렸겠지.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으니깐."

 "하지만.... 당신들은 분명 최선을 다했어요. 분명 우리들의 힘만으론 데스톨도를 막아내는건 불가능했을거에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것까지 알아주지 않아. 그저 눈에 보이는것만 알아주지. 아무리 우리가 사람들이 눈길 주지 않는곳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희생되어도 몰라주지. 그리고는 우리의 손이 더럽다고 욕하곤 해."

 "그런...."

 "그런데 말이지, 맞는 말이야."

 그러자 그녀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듯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우리 손이 더러운거 말이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의 손을 바라봤고 이어서 말했다.

 "너희들은 살인을 하지 않지만 우리는 하지. 어떻게 보자면 우리도 데스톨도처럼 살인자들인 셈이야. 하지만 어쩔수없어. 세상은 끊임없이 더러워지려고 해. 그리고 그 세상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 손을 더럽히는것, 그게 우리의 임무야."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금껏 본적 없는 매우 단호한 모습이였다.

 "하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면 모두가 영웅이에요. 그게 누구든지, 아무리 그 행동이 작고 별 볼일 없어보여도 말이에요."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은 들어주는것이다.

 "영웅은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화려하거나 멋지기만 하지 않아요. 어쩌면 그 소설속에 잠깐 지나가는 조연도, 더 나아가서 아예 언급되지않는, 존재만 하는 사람이여도 누구나 영웅이 될수있고 그러한 행동을 실천한다면 누구든 영웅인거에요!"

 그리고 그녀가 말을 끝내자 내가 말할 차례가 온것같아 나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영웅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찌보면 안좋은거야."

 "에...?"

 그러자 그녀가 꽤나 당황하는것이 보였다. 나는 그러거나말거나 말을 이어갔다.

 "나나오, 넌 영웅이 뭐라고 생각해?"

 그녀는 내 말을 듣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야.... 세상을 악으로부터 지켜내거나 아니면 더 좋게 변화를 추구하는거죠?"

 "그럼 만약 영웅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분명..."

 나의 되물음에 무언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쉽게 대답이 안나오는것 같아보인다.

 "바로 그거야. 우리는 영웅이 없으면 안되는 세상이야. 다시 말하자면 영웅이 없어지면 세상이 유지되는것도, 올바르게 돌아가는것도 안돼. 영웅의 등장은 어찌보자면 영웅이 필요할 정도로 이미 그 사회는 썩어빠지거나 위험하다는거야. 아주 불행한거지. 당장 우리도 너희같은 영웅이 사라진다면 그 틈을 타 남은 세상이 데스톨도의 손아귀에 넘어가면 우리에게 그린 존따윈 없어지게되는거야. 그래서 우리가 영웅을 필요로 하는거야. 즉 우리도 결국 영웅이 없으면 안되는 불행한 세상이 되어버린거지."

 내 말을 듣자 그녀는 약간 표정이 안좋아진 상태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런것 아닐까요?"

 이번엔 내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말씀대로 분명 영웅이 필요한 세상은 정말 어렵고 암울한 세상이라 영웅이 있어야 하는거지만 다르게 보자면 영웅의 의미는 아무리 악에게 위협받거나 혼란한 세상이라도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버리지않고 언젠간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증거일지도 몰라요. 안개처럼 핀 짙은 어둠속에 한줄기의 빛처럼요! 그말은 즉슨, 그 어느때라도 사람들은 포기하지않고 희망을 잃지않는다는 증거일거에요....! 그리고 전 믿어요! 그 작은 희망과 포기를 모르는 정신 하나하나가 언젠간 기적을 만들어주고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구원할거에요...!"

 그녀의 열변에 나는 감동했다. 물론 그녀의 표현력도 좋았지만 나를 감동시킨 가장 큰 요인은 빛처럼 밝고 깨끗한 저 마음일것이다. 이 추찹하고 더러운 세상을 어느정도는 경험해봤을거라 생각되는 그녀였으나 그녀는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거는 희망이 있었고 그 희망은 그녀가 결코 굴하지않고 꿋꿋하게 버티고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도무지 이겨낼수없었다. 결국 나는 양손을 살짝 들어올리고 항복하는 시늉을 보이며 말했다.

 "휴.... 내가 졌네. 너처럼 그렇게 맑고 깨끗한 사람은 처음 봐. 나조차도 너의 그 긍정적인 생각에 동조하게 만들다니 대단하네. 역시 영웅의 자격이 있어."

 그러자 그녀는 아까처럼 또 다시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ㅇ....아니에요...! 그런 당치도 않는 말씀을....!"

 계속 보다보니 이 나나오라는 소녀는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운것같다.

 "비록 영웅이라 불릴 자격은 없지만.... 만일 사람들이 저를 보며 희망을 가질수있다면.... 부족하더라도 반드시 영웅이라 불리우는 그런 빛나는 존재가 될수있도록 노력하겠어요! 100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살수있는 빛 바래지 않는, 그런 존재요!"

 보기만 해도 꿈과 희망이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다시 한번 감동했다. 왜 세상이 그녀를 좋아하는지 다시 느끼게 됬다.

 "다만.... 제게 좀 더 큰 힘이 있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수 있을텐데 말이죠...."

 그러나 곧 그녀는 이런 말을 하며 조금 축 처진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알기론 나나오 넌 마이티 세일러 중에서도 최강이였던걸로 아는데? 저번에 변신하고 있었을때 양팔에 있던 금속 장갑 같은것도 키네틱 파워 억제장치 아니였나?"

 그러자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제가 키네틱 파워를 억제해야할 정도로 강하다고한들, 코토하 총수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른걸요.... 분명 더 큰 힘이 있었더라면 이 전쟁도 조금은 더 빨리 끝낼수있을텐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당시 억제장치가 부착되어있었던 양팔을 살짝 들어서 바라본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내가 말하자 그녀는 나를 바라봤다.
 "스파이더맨에서 나온 말인거 알지? 나의 좌우명 중 하나야."
 "너는 키네틱 파워라는 큰 힘을 소유하고 있지. 그 큰 힘을 이용해서 신이 될지, 악마가 될지는 너의 자유야. 하지만 너가 그 힘을 어떻게 쓰든간에 그 행적에는 항상 큰 책임이 따른다는것을 반드시 기억해둬."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살짝 웃어줬다.

 시간이 흘러 해질녘이 되자 이만 복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도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말하며 우리는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의미있는 시간이였어요. 또 만나고싶네요...."
 저녁노을에 비쳐지고 있는 그녀가 말하자 내가 말했다.
 "나도 조금은 속이 개운해졌어. 정말 고마워."
 그리고 나는 정말 오랜만이 살짝 웃어줬다. 굉장히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였다.
 "근데 내가 다음 전투에서 죽으면 못만날지도."
 그러자 그녀는 잠시 깜짝 놀랐다가 곧 조금 삐진채로 말했다.
 "정말...... 분위기 좋아지다가 갑자기 그런 말 하기 있기에요?"
 "농담이야."
 "전혀 농담같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 피식 웃고난 뒤 다음을 기약하며 서로 갈 길을 가려다가 그녀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저.... 그리고요...!"
 나는 다시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봤다.
 "유리코.....라고 불러주세요...."
 노을에 비처져 색감이 약간 왜곡되어보였지만 그녀의 얼굴이 약간 붉어지며 부끄러워하는것이 확실하게 보였다. 그동안 영웅이라는 칭호아래 숨겨져있던 나나오 유리코라는 15살의 여자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물론이지, 유리코."
 유리코가 이번엔 밝게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 천천히 걸어갔다.
 건물들이 노을을 가리며 그늘을 만들었고 유리코는 서서히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저번껀 기억하지마세요 그건 어우...... 내가 그딴걸 왜 올린거지.... 아무튼 후속작도 계획중인데 이게 언제나올진 전혀 알수없네요.... 근시일내에는 안나올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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