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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던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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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3, 2019 14:39에 작성됨.

담배를 피던 날이 있었다.

시작이야 어찌되었던 -사실 다들 그러하듯 별다른 이유도 없지만- 담배를 핀다는 건 뭐라 꼭 집어 이르기도 뭐한 일상적인 부분이었다. 


기억이 제대로 나지도 않을 만큼 사소하게 시작했는데 어느샌가 뗄 수가 없었다. 왜 피느냐 무슨 맛이느냐 라고 소리를 들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없으면 어딘가 허전한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있는 게 좋다기보다도 없는 게 싫었다.


내가 담배를 필 때에 일상적인 부분이 하나 더 있었는데 매일매일 지치지도 않고 뛰는 녀석이 있었다. 친구인가 하고 묻는다면 글쎄다. 이름도 모르는 사이인데.

머리카락은 홍차색에 소위 바보털이라고 이르는 것이 한 가닥 위로 뻗쳐있지.

처음에는 눈짓으로 오늘도...인가 라는 생각을 주고받길 몇 번. 말을 트게된 건 아마도 그 쪽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금연권유를 했거든.

그녀는 나에게 금연을 권유했고 나는 거절했다. 서로 이름도 모르면서 말이지!

건강과 담배의 안좋은 궁합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지만 뭐 담배 피는 사람들이 그런 걸 몰라서 안 피는 건 아니잖아? 


어느날이었나 그날도 금연을 권유받았었고 나는 뭐라고 했었다. 음....조금 고민이 있었나. 어떻게 보자면 핑계였겠지. 이만큼 힘드니, 이 정도 담배는 피워야겠다.라는 종류의 말.


여기서 잠깐 물어보겠는데 일반적으로 라면 그런 상황에서 금연을 권유하는 쪽은 뭐라고 할 것 같아? 대답이야 다양하겠지만 다들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않겠지. 


그런데말이지. 그 녀석은 넘어가주더라고. 넘어가줬어. '그럼 오늘은 휴식인 걸로'...라고했던가.


그게 계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매일 담배를 피워도 될만한 일들을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이러면 좀 나쁜 녀석같지만-

그러다보니 내 이야기를 하나 둘 녀석에게 해야했거든.


내가 하는 말에 하나둘 물어보고 대답해주고 더러는 내가 물어보고. 대화한다는게 그런거지. 

나중에 이르러서는 아침마다 내가 담배 태우는 또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어보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늘 이야기는 담배 좀 그만 피우라는 말로 맺음되었지만 말이다.


'또 오늘은 뭐가 힘들었어?'


'그러네... 이번엔 또 뭐라고 해볼까....기다려봐.'


'그렇게 궁리하는 건 안 힘들어? 그냥 편하게 끊자고?'


'그러는 너는 아침마다 뛰는 거 힘들지도 않냐?'


'그건 네가 안뛰어봐서 그래. 땀 흘리고 뜨끈한 탕에서 쭉- 씻어내는 맛... 피부가 보송보송 탱글해지는 느낌? 그거도 좋고~'


'뭔진 대충 알 것 같네.'


'너도 해볼래?'


'아 무리. 숨차'


'그럼 일단 담배를 끊고-'


'차라리 죽으라고해'


최소한의 타협선 아니면 그래도 포기못한다는 근성. 금연이라고 강하게 씌인 휴대용 재털이를 하나 받기도 했다. 생일선물이었지. 그러고보니 난 뭘 줬더라. 안 줬군. 금연을 달라고 했고 싫다고 했으니까.


나는 여전했다. 삼장법사가 긴고아를 외워도 그 원숭이는 제 버릇을 못 고쳤듯이 나 또한 그러했다. 계속 담배를 피웠고 아침마다 잔소리. 적어도 남한테 담배연기 뿌리지않는 방법은 익혔는데말이야


생각해보면 어떤 의미로는 바뀌었을지도. 조금 서로 기다리는게 생겼나.


아쉽게도 내가 이걸 알게 된 것은 조금 엇나가버린 타이밍.


근거도 없이 매일 그럴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해버리고 기대했던 날의 다음날.


오지않았던 날의 그 다음날. 내가 이야기하지 않고 쭉-듣기만 했던 날. 구경하다가 도망치다가 잡혀서 어떤 제안을 들었다고 했었다. 할 말 없이 듣기를 몇 시간. 마지막에는 또 물었지. '오늘은 또 뭐가 힘드셨나?' 그래서 나는 대답했지


'없었는데 생겼어.'


그 다음날, 담배를 피웠다. 깊게 빨아들였을 때 느꼈다. 쓰다는 걸. 

거리낌없이 연기를 내쉬었다. 속에 찬 것이 텅 비고 너무 내뱉은 연기가 자욱했다. 맛은 쓰고 눈은 따갑더라. '금연'이라 쓰인 재털이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그제서야 금연이라고 나는 말했다.


지금도 가끔 담배를 물고 집 앞에 거리에 서 있곤한다.

담배를 피고싶어서가 아니라

담배를 피고있노라면 어디선가 또 달려와서 내게 아무렇지않게, 또 담배를 피우지말라고 해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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