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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다리는 소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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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31, 2019 12:39에 작성됨.

백합주의


이부키 츠바사는 봄을 기다린다. 봄은 시작의 계절. 시작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봄 하면 벚꽃 축제의 시작, 새로운 사계의 시작, 그리고 설레는 마음에 시작되는 사랑. 츠바사는 생각했다. 사랑을 시작하는 건 쉬워. 누군가와 사귀어본 적이라면 없지만 사랑은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수학여행 날 밤 진실게임에서 '나는 사실 집에 송아지를 키워'같은 충격적인 진실을 이야기해도 누구도 진심으로 흥미로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 흥미가 돋는건 '나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라는 한 문장이다. 고백을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럼 흥이 금방 끝나버려 시시하다. 츠바사가 원하는건 누가 밤 공기에 들떠서 시작하는 연애담.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류의 레파토리. 그래서? 그래서? 하고 맞장구를 쳐주며 연애코치가 되어줄 자신은 얼마든지 있었다. 즉, "츠바사쨩은 역시 대단해" 같은 소리를 원했다. 츠바사 자신이 봐도 츠바사란 소녀는 꽤 굉장했다. 잘 어울리는 금빛 단발, 매력적인 눈, 14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몸매. 인정을 받고 싶은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00쨩은 눈이 예뻐서 부러워~'로 시작되는 여자애들의 칭찬 릴레이에 끼는건 시시하다. 그런 자리에서 진심을 얘기할 리가 없잖아. 없어도 어거지로 지어내서 어떻게든 칭찬해줘야하는 애들 사이에서 내가 있는건 너무하잖아. 남자애들한테 고백 받은 것도 벌써 몇번째더라, 아무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고... 또... ...아니, 실은 셀 수 있을 정도지만... 그래도...

그래도 츠바사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돌이 되자. 귀엽고 화려한 옷 입고, 어른스러운 메이크업도 받고, 티비에도 나오고, 그런데 어렵지는 않고. 일단 오디션에 합격하기만 하면 모든건 전혀 어렵지 않다.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된 카스가 미라이도 아이돌이 되었다. 그런 멍청한 애도 데뷔를 했다는건 춤이나 노래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뜻이 된다고 츠바사는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츠바사는 더 높은 기획사가 아니라 미라이가 소속되어 있는 765 프로덕션의 오디션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인기는 납득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너무 빵 떠버리면 정신병자 오타쿠들이 붙게 되니까 곤란해진다. 쉽게 쉽게 가자~ 사랑 받고, 선망을 받다가 질리면 내려오자. 그 때쯤이면 학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지겠지? 츠바사 선배, 하고 불리게 될거야. 상상만으로도 츠바사는 기뻤다. 그러나 이 자기중심적이고 지나치게 낙천적인 여자아이는 사실 운명을 착실히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신호등에 언젠가는 초록불이 켜지는 것처럼, 츠바사는 언젠가는 운명처럼 아이돌을 할 소녀였다. 츠바사는 프로듀서의 권한으로 오디션 현장에서 바로 합격되었다.

프로듀서.

나이 28세, 765 프로덕션의 썩은 물. 외모는 평균정도일까. 이름은... 글쎄, 프로듀서의 이름을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적당히 후지타 유코라고 해두자. 그 비슷한 이름이다. 유코는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동화 신데렐라로 치면 마법사 정도는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 쓰러져가던 765 프로덕션을 멱살잡고 일으킨 인재였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961 프로덕션의 '프로젝트 페어리'를 765로 계약시켜 지금까지 활동하게 만든 대단한 사람. 츠바사는 프로듀서에 대해 그렇게 전해들었다. 오디션 때는 유일하게 젊은 남자여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단지 그 정도였다.

"정식으로 만나는건 처음이네. 오늘부터 담당 프로듀서가 될거야, 잘 부탁해. 아, 부를 때는 이름으로 불러도 될까?"

"...편한대로 하세요."

"고마워. 안녕, 츠바사."

그러다 인사 하나에 마음이 동했다. 항상 '이부키'라는 성만 불리다가 다정한 목소리로 '츠바사'라고 불러주는 가족 이외의 남자는 처음이었으니까. 어쩐지 목소리도 좋은 것 같고, 비록 외모는 평범하지만 수트는 교복처럼 잘 어울렸다. '츠바사.' 친밀함을 주려는 의도지만 실제로 친밀한 것은 아니다.

그 아이러니함이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사회에서 처음 만나는 어른. 그 어른이 14살의 자신을 일의 파트너로 대해준다. 여전히 받는 취급은 14살의 여자아이다. 그런데도 어른이 된 느낌. 그 애매모호한 경계에 걸쳐있는 위태로운 느낌. 사랑을 시작하는 건 쉬워. 츠바사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애에게만 지어주는 달콤한 눈웃음으로 가쁜 감정을 드러냈다.

"프로듀서 씨, 저도 이름으로 불러도 돼요? 후지타 씨~ 하고."

".....그건..."

"뭐에요~, 안 돼~?"

"다들 프로듀서로 부르니까, 아무래도 좀 그렇네."

"치이. 그럼 프로듀서 씨라고 부를게요."

곧바로 선을 그어버리는 아이돌과 프로듀서라는 거리감이 프로듀서를 더 빛나게 했다. 만약 쉽게 승낙했다면 금방 그 감정이 빛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프로듀서는 그러지 않았다. 츠바사는 역시 아이돌 일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이름이 난 프로덕션에 입사해서 유능하고 멋진 어른 프로듀서를 만났다. 이 정도면 이미 좋다. 시작이 좋다. 시작은 곧, 봄이다. 츠바사에게도 곧 봄이

"허ㄴ... 어? 프로듀서, 이 애는?"

올 것만 같다.

대화에 끼어든 건 미키였다. 나이는 츠바사보다 한 살 많고, 아이돌로서의 경력은 한 살의 그것보다 엄청난 이른바 '선배'라는 것이다. 츠바사는 그런건 아직 잘 몰랐지만 아이돌 업계에서 선후배 관계는 엄격하다고 들은 것은 있었다. 좋은 시작을 하려면 여기서 '선배님, 안녕하세요' 같은 말이 나와야한다. 그냥 어리버리하게 있는 것은 7점 정도이다. 인기 아이돌이라, 팬이라고 아는 척 하는 것은 몇점 정도일까? 그것은 미키에게 물어봐도 모를 것이다. 츠바사는 저 세 옵션 중 무엇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미키쨩이죠? 프로듀서 씨가 미키쨩도 담당하고 있나보네요~ 대단해."

아, 미키쨩이죠? [응, 뭐 대충 인지도는 있는 아이돌이네] 프로듀서 씨가 [나의 프로듀서씨가] 미키쨩'도' [그러니까 '나의' 프로듀서 씨가 미키쨩도 덤으로] 담당하고 있나보네요 [어머 몰랐어~] 대단해. [프로듀서 씨가]--

미키도 765 프로덕션의 원년 멤버들 사이에 있을 때는 미라이 정도의 취급을 받는 실정이지만 두뇌회전만큼은 빨랐다.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갓반인이었던 츠바사 따위의 간사한 의도는 확실히 간파할 수 있었다. 프로듀서는 물론 그런 자세한 해석은 몰랐다. 다만 소싯적 치하야 스파이럴을 대처하던 짬밥으로 느낄 수는 있었다. 아, 여기 계속 있으면 누구 한명은 폭주하겠구나. 물론 그 한명은 과시용으로 프로듀서를 부르는 호칭을 실수하는 척을 할 뿐 절제력 하나는 끝내주는 베테랑 아이돌 미키가 아니라, 이제 막 스카우트한 재능충 신인 아이돌 츠바사다. 인재를 놓칠 수는 없다. 프로듀서는 츠바사를 감쌌다.

"응, 프로덕션 초기부터 계속 미키를 담당하고 있었지."

"초기라니, 중간에 프로덕션 이적하지 않았어요?"

"...그건 일시적이었으니까. 어쨌든 미키는 정말 자랑스러운 담당 아이돌이야. 자, 얼른 정식으로 인사하자. 미키, 이 쪽은 츠바사야. 츠바사, 여기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미키."

"잘 부탁하는거야."

츠바사가 뾰루퉁하게 미키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프로듀서는 프로답게 대처하는 미키의 성장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꾹 눌러참았다. 어쨌거나 프로듀서는 어른이었으니까. 츠바사를 일순의 질투에 눈이 멀게한 무자비한 어른스러움이었다.

선배하게 무례하게 굴었던 것과 반대로 츠바사의 아이돌 활동은 탄탄대로였다. 첫 극장 공연에서부터 미키의 언더로 들어가 활약하고, 운이 좋게 새로 시작한 39 프로젝트의 첫 세명안에 들어 간판을 차지했다. 센터는 어디서든 눈에 띄기 마련이다. 센터를 차지한다면 아이돌 활동은 끝난거나 다름없다. 각종 총선거니 (765 프로덕션은 총선거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투표니 모든 부문에서 인기를 휩쓸고 다닐 것이 분명했다. 이미 학교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진짜 아이돌이기도 하지만, 이런게 바로 학교의 아이돌 아니겠어? 츠바사는 즐거웠다. 즐거움이 저물어가는 것도 즐거웠다. 인기가 있다는 것에 질리는게 진짜 인기 있는 사람이잖아. 안 그래? 처음에는 그렇게 행세하던 것이 나중은 진짜가 되었다. 정말로 학교에서 인기를 얻는건 시시했다. '이부키'라고 부르던 남자애들이 '츠바사쨩'으로 호칭을 바꾸어 팬레터를 잔뜩 보내오고 있었지만, 그것은 부족했다. 남자애들은 너무 어렸고, 츠바사를 여자로 보지도 않았다.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누군가를 '여자'로 보기엔 너무 어린 것이다. 하굣길에 츠바사는 팬레터 뭉치를 리본 끈으로 꽁꽁 묶어 한아름 안고 프로덕션으로 걸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돌 활동은 재밌었지만 처음의 목적이 흐려지니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은 느낌이었다.

"아, 미키쨩."

그러다 마주쳤다. 프로덕션에서 걸어오는 금발 모충. 가까운 편의점으로 주먹밥을 사러 가는 모양새였다.

"츠바사? 안녕인거야~ 그 편지들은 러브레터들?"

"으응, 팬레터에요."

"아, 알았다. 러브는 중학생에게는 너무 이른거지?"

"네~... 다들 뭘 모른다니까~. 미키쨩은 알아요? 러브?"

다들 [나 말고 모두들] 뭘 모른다니까~ [나 빼고 다 개초딩들! 아무튼 그럼! 나는 러브로 인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지!] ....스캔완료. 바보털도 쪼끄만게 나대기는. 미키가 적합한 대답을 고르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응, 데이트라면 잔뜩 해봤으니까."

".....데이트....?!"

츠바사 녹다운 5초 전.

"누, 누구랑..."

"그야 허니랑."

"허니란건...!"

"츠바사의 '프로듀서 씨'."

"아, 아이돌이 그런걸-"

"그러는 츠바사는 아이돌과 츠바사의 연애 관계에 참견할 정도로 알아? 러브."

".........."

"데이트 못해봤지?"

"해, 해봤어요!"

"누구랑?"

0초 전. 츠바사는 완벽히 패배했다. 러브를 모른다던 중학생 남자애들? 그들은 애초부터 논외다. 옆집 오빠 같은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어른'과 해봤다면 그건 원조교제로 주간 문춘 제보감이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아니다..... 미키가 서서히 조여든 대답의 거미줄에 걸려버린 츠바사는, 그대로 쓰러졌다.

"츠바사! 괜찮은거야? 팬레터들 다 떨어졌는데."

"상관 없어요...."

"팬은 한명한명 소중하게 대해줘야 하는거야."

"........"

"그건 데이트랑도 러브랑도 관계 없어."

미키는 품에 기댄 츠바사를 밀어... 아니 스스로 설 수 있게 해주고 길바닥에 떨어진 팬레터 뭉치를 주웠다. 츠바사는 그 광경을 멍하게 바라만 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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