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Cogito, ergo sum

댓글: 4 / 조회: 58 / 추천: 0


관련링크


본문 - 10-31, 2019 10:15에 작성됨.

아아, 틀림없다.

이것은 운명.

곧, 종말.

파멸을 향한 여정이다.

당신의 옆에 누운 그녀는 귓속말로 변화무쌍한 사랑을 속삭인다.



사람은 이해 할 수 없는 것에서 공포, 흥미, 사랑,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선사이전의 인류로부터 전해져온 본능 앞에서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소위 천재라는건 그 불가해적인 모든 것을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고 낱낱히 파헤친 자들에 대한 칭호다.

천재들은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미 알아버린 모든것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무기력한 자신의 관심을 끌 자극을 찾는다.

그런 점에서 당신과 시키는 동류다.



그녀의 이름은 이치노세 시키.

당신과 그녀가 처음 만난 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뭐야 당신! 좋은 향기가 나잖아? 나, 당신한테 관심이 생겼어"


정말이지 제멋대로가 아닐수 없다.

홀연히 찾아온 그녀는 순간의 호기심으로 당신의 삶의 한구석으로 뛰어들었다.



"냐하핫, 찾아줬구나?"


오늘도 실종되버린 시키를 찾아내었다.

제멋대로 어디론가 뛰쳐나가는 그녀는 고양이 같았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온동네가 제 집인것마냥 담벼락을 넘나드는 고양이.

그런 그녀이기에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눈에 불을키고 찾아다니고 있다.

하물며 오늘은 하늘이 거무죽죽한게 당장이라도 비가 올듯한 날씨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둘다 비맞은 생쥐꼴이 될 판이다.


"돌아가자, 시키"


골목사이에서 쭈구려 앉아있던 시키는 당신이 내미는 손을 끌어당겨 그 자리에 넘어트렸다.

엉겁결에 그녀를 덮치는 듯한 자세가 되어버린 당신은 조금 민망한 꼴이 되어버렸다.


"아직 돌아가고 싶지 않은걸?"


당신의 아래에 깔린 시키의 모습은 고혹적이다.

남성의 정욕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요염한 작태에 당신또한 헤어나올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 답하는 것은 당신에게나 시키에게나 모두 이른 일이다.


"곧 비가 올거 같아. 빨리 돌아가자"

"괜찮아, 괜찮아♪ 아직 비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구. 그러니까~ 잠깐만 같이 있어주면 좋겠어"


먼지구덩이에서 뒹군 바람에 더러워진 시키의 몸을 일으켰다.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길거리로 뛰쳐나가는 그녀의 옷깃을 잡고 묻은 먼지를 털어내었다.

어차피 일은 끝내놓고 나왔다.

언제 그녀를 발견할지 몰라 미리 퇴근한다 말하고 온게 불행 중 다행이다.

하는 수 없이 잠시동안 그녀의 모험에 어울려주기로 했다.



시키의 뒤를 따라 걷다보니 점점 상점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떤 의미론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시끌벅적하고 온갖 향기가 풍겨오르는 곳, 그리고 수만수천의 자극이 얽혀있는 곳

무료한 삶에 풍요로운 스파이스다.

시키를 찾기위해 당신이 둘러보는 장소들도 그런 곳들이다.

평소라면 누구도 지나다닐리 없는 곳, 한바탕 소란이 난 곳, 그리고...좋은 향기가 나는 곳



둘은 너무나도 닮았다.

성격은 양극단에 서있지만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알게모르게 끌리며 기묘한 엇나감또한 느끼고 있다.

곁에 있어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각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운명의 한쌍이라 말해도 될 정도다.



당신과 시키는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주위의 풍경은 수십번도 더 바뀌었고, 그때마다 신기한 것을 본 아이마냥 즐거워하며 이리뛰고 저리뛰고한다.

그 순간만큼은 매너리즘에 갇힌채 같은 일을 반복하며 쌓여왔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자유롭게, 그리고 생기있게 자신의 색을 찾아간다.

남이 자신을 정의내리게 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처럼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는 행위를 '실종'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한다.

변화무쌍하게 당신의 눈에 비치는 시키의 빛깔은 그저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번쩍하며 번개가 내리치더니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천둥 소리가 들린다.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며 곧 비가 오겠다며 그 자리를 하나둘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키는 그 자리에 멈춰선채 먹구름 낀 잿빛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저기, 비의 냄새가 왜 생기는지 알아?"


자세히는 아니지만 대충은 알고 있다.


"미생물때문이라던가?"

"그래그래! 잘 알고있네~♪ 정확히는 그 미생물이 내뿜는 Geosmin이란 성분때문이거든"


후각이 예민한 그녀는 곧 비가 올거라 느낀거겠지


"이 Geosmin이란건 알코올의 일종인데 사람의 코는 이 물질에 굉장~히 예민하다구"

"그래서! 프로듀서도 맡아져? 비냄새 말이야"

"듣고보니 나도 나는거 같긴하네"

"냐하핫! 시키쨩은 지금 알코올에 취해버렸답니다~"


즐겁게 웃으며 그 자리에서 방방 뛰는 그녀는 정말로 무언가에 취한듯 보였다.

그 자리에서 트립 상태에 빠진것처럼 보이던 시키는 불현듯 당신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어딘가로 당신을 끌고 간다.



시키에게 이끌려 도착한곳은 다리의 밑이다.

왜 이곳에 왔냐고 질문하려는 찰나 장대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그녀지만 아마 당신을 위해 배려해준게 아닐까?

알게모르게 당신도 시키에게 의지하고 있는 면이 있는거같다.


"이 비, 언제쯤 그칠까?'


난대없는 질문이 날아왔다.


"저기 너는 말이야...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생각해본적 있어?"

"음...아니..."

아직까지는


"흐흥 역시 그런건가"

"저기 나는 말이야 미국에서 귀국했을 때 다시 돌아가는게 망설여졌어."

"물론 미국이 지루해져서 돌아온거지만♪"

"집에 돌아가면 대드도, 마마도... 다시 만나러가기 그렇달까? 그렇다보니 한동안 '실종'하면서 즐거운 것을 찾아다녔거든"

"그.런.데 짜잔~ 이렇게 널 발견해버렸지 뭐람?"

"습- 하-, 시키쨩의 코는 정확하다구. 그 향기를 맡았을 때, 당신과 같이 있으면 즐거워질거 같은 예감이 들었어"

"당신이 알려준 아이돌이라는 일, 쉽게 질리지 않아"

"냐하하~ 이게 바로 천직인걸까? 시키쨩 화학 그만둬버려?"


그녀는 몰아치는 빗방울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고 옷도, 몸도, 머리칼도 점점 젖어간다.

옷은 점점 물에 젖어 축축해지지만 자신을 감싸던 허물을 벗어버리듯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역설한다.


"흐응...그래서 말이야! 나랑 같이 여기서 사라지지 않을래?"

"같이 잔뜩 즐거운 일을 찾아보자"

"이게 바로 자아찾기 여행일까나?"


시키의 눈은 진지하다.

하지만 당신은 일언지하에 그 제안을 거절한다.


"뭐야~ 즐거울거라 생각했는데"

"거절한건 미안해, 그렇지만 내가 해야할 일은 끝까지 시키 너를 찾아내고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거야"

"냐핫? 뭐야 그거 고백?"

"그런 뜻으로 말한건 아닌데..."

"농담이야 농담~♪ 아무튼 너의 각오는 잘 들었어. 후엣취-!"


온몸이 비에 축축해진 시키는 체온이 떨어져 재채기를 했다.

일단 몸을 말릴만한 곳으로 가는게 좋을거 같다.

다리의 밑은 서늘했고 불어나는 강물때문에 오래 있을만한 장소도 아니다.

다행히도 근처에 작은 호텔 하나가 있다.

당신과 시키는 그곳을 향해 달렸다.



방을 잡은 당신은 침대에 걸터앉아 일기예보를 보았다.

아무래도 밤 늦은때까지 비가 계속 내릴 예정인 듯 하다.

어쩔수 없이 시키와 당신의 옷이 마를때까지 이곳에서 꼼작없이 갖혀있어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흥흥 뭐야 23시까진 쭉 비인가?'


시키는 뒤에서 목욕가운을 입은채 고개를 내밀어 당신의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있다.


"습-하- 당신의 냄새, 비의 향기와 섞여서... 페닐에틸아민이 잔뜩 분비되려 하고있어♪"

"페닐에틸아민, 바소프레신, 코르티솔, 세로토닌. 호르몬의 카오스에 시키쨩 오버도스해버릴거 같아~"


시키가 당신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귓가에 속삭였다.


"소원하나 들어줄수 있어?"

"일단 들어보고."

"지금 날 안아주면 안될까?"

"..."

"서로가 녹아들고, 섞여서 케미컬한 체인지를 만들어내는거야"

"그리고...나도, 당신도, 보이지않는 깊숙한 곳까지 분석하자"

"당신도 원하고 있잖아.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는걸"


그녀의 매혹적인 도발은 당신의 의지조차 갈등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키의 말대로 일선을 넘고나선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대답하지 않을거같았어"

"하지만 그런 당신이니까, 내 걸로 만들어줄거야"

"사랑해, 프로듀서군"


그녀는 입 밖으로 내선 안될 말을 범했다.

마지막 남은 당신의 이성을 긁어내고 그곳에 자신을 끼워넣었다.

당신과 그녀의 관계는 공멸의 카운트 다운으로 접어들었다.

0 여길 눌러 추천하기.